산행 또한 처음처럼 겸손하며 열정적으로.. 경기하나산악회 이은학대장과 함께 하는 1 大幹 9 正脈 中 6번째 漢南錦北正脈
☆한남금북정맥 2구간☆ -< 갈목재~말티고개~구티재까지 >- 때는 바야흐르 초복(初伏)을 하루 넘긴 7월 14일(음,5/29)이다. 보통 음력 6~7월에 삼복이 들게 되는데, 초복은 삼복(三伏) 중에 처음으로 맞이하는 복날이다. 금년엔 초복이 음력으로 6월 6일에 들었다. 2013년의 초복(初伏)은 7월 13일(음,6/6) 중복(中伏)은 7월 23일(음,6/16) 말복(末伏)은 8월 12일인데,(음,7/6) 초복은 하지(夏至)로부터 세번째 경일(庚日) 중복은 네번째 경일 말복은 입추(立秋)로부터 네번째 경일이다. 복날은 열흘 간격으로 오기 때문에 초복에서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린다. 그러나 해에 따라서는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 간격이 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월복(越伏)이라고 하는데 금년이 월복을 맞이하는 해이다. 삼복기간은 여름철 중에서도 가장 더운 시기로 몹시 더운 날씨를 가리켜 '삼복더위'라고 하는 것은 여기에서 연유한다. 복날에는 보신을 위하여 특별한 음식을 장만하여 먹는데 이를 흔히 '복달음'이라 한다. 그렇다면 '복달음', '복달임'이란 어떤 경우에 써야 하며 두 낱말의 정확한 쓰임새는 어떠한가. 복날의 복자가 엎드릴 '伏 "자인데 이는 사람 인(人)자와 개 견(犬)자가 합해진 글자여서 사람들이 개처럼 엎드려 지낼만큼 더운 날이란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그런가 그 개 견자를 '복날은 개고기를 먹는 날'로 곡해하는 사람들 때문에 오늘날 견공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복달음'과 '복달임'은 언뜻 같은 뜻으로 쓰이는 말같지만 실은 그 뜻이 조금 다르게 쓰인다. '복달임'은 복이 들어 기후가 지타치게 달아서 더운 철이라는 말로써 그 속에는 시기나 때, 세월의 의미가 들어있다.하 예를 들어 "복달임에 개 끌고 가듯한다."는 말은 인정사정 없이 끌고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또한 '복달음'은 "단오에 수리취나물로 수레떡을 해먹고 창포로 머리를 감는다." 하였다. 동국세기에는 "보름날 새벽 날밤, 호두, 은행, 무를 깨물며 '일년 열두달 동안 무사태평하고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주시오.'하고 축수한다. 이를 부럼이라 한다."는 것처럼 우리나라 명절 풍속들 중에 명절이름과 세시풍속 사이에 일종의 유음관계가 성립되는 것(예;[보름]/[부럼], [더위팔기], 여러 의미의 축수)의 통칭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복날 복 떼기, 복 털기, 복 덜어내기" 쯤으로 해석하면 될 듯 하다. 그런데 인터넷사전엔 '복달음'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런 걸로 봐서는 '복달임'이라 하는 것이 옳은 표기이다. 뜻으로는 1)'복이 들어 몹시 더운 철' 2)'복날에 그해의 더위를 물리친다는 뜻으로 고깃국을 끓여 먹음' 그렇다면 '복달음'과 '복달임' 두 단어에 들어 있는 뜻을 하나로 묶어 '복달임'을 표준어로 삼은 듯하다. 복달임 음식으로는 개장국, 영계백숙 등을 많이 먹으며 또한 팥죽을 쑤어 먹으면 더위를 먹지 않고 질병에도 걸리지 않는다 하였다. 한편, 참외나 수박등 과일을 즐기기도 하고 시골에서는 어른들이 산간계곡에 들어가 탁족(濯足;발을 씻음)을 하면서 더위를 피하기도 하고 마음을 깨끗하게 씻기도 한다. 반면 해안지방에서는 바닷가 백사장에서 모래찜질을 하면서 더위를 이겨내기도 한다. 그런데 예전부터 복날과 관련된 미신이 전해져 오는데 복날에 시내나 강에서 목욕을 하면 몸이 여윈다는 속설이 있다. 이러한 속신(俗信)때문에 복날에는 아무리 더워도 목욕을 하지 않는다. 만일 초복 날에 목욕을 하였다면 중복 날과 말복 날에도 목욕을 해야 한다. 이런 경우에는 복날마다 목욕을 해야만 몸이 여위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복날에는 벼가 나이를 먹는다고 한다. 벼는 줄기마다 마디가 셋 있는데 복날마다 하나씩 생기며 이것이 벼의 나이를 나타낸다고 한다. 또한 이렇게 벼는 마디가 셋이 되어야만 비로소 이삭이 패게 된다. 복날에 얽힌 이야기는 많지만 충청북도 청산과 보은에 전하는 속설을 들자면, "복날에 비가 오면 청산(靑山) 보은(報恩)의 큰애기가 운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충북의 청산과 보은이 우리나라에서는 대추가 많이 생산되는 지방인데서 유래되는 속설이다. 대추나무는 복날마다 꽃이 핀다고 하는데 복날에는 날씨가 맑아야 대추나무 열매가 잘 열리게 되는데 이날 비가 오면 대추 열매가 열리기 어렵고 결국 대추농사는 흉년이 들게 된다. 따라서 대추 농사를 많이 하는 이 지방에서는 혼인비용과 생계에 있어서 차질이 생기기에 이를 풍자해서 만든 말이라 할 수 있겠다. 금년 초복에는 중부지방에 날이 맑았으니 올가을 대추농사에는 차질이 없을 것으로 생각되며 어느해 보다도 무더위가 심한 올 여름 좋은 보양식과 적절한 운동량으로 슬기롭게 삼복더위를 이겨내기 바라면서.. <사진 ; 545m봉 직전 바위전망대에서 > 산행개요 산행일;2013. 7, 14(일) 날씨;본격적인 장맛비, 뇌성 번개를 동반한 폭우.. 산행코스; 갈목재~희엄이재~545m봉(서원봉)~말티재~580m봉(차광망울타리) ~591m봉(차광망울타리)~수철령~백석고개~구티재 산행거리; GPS 16.6Km(6시간) 장소 | 도착/출발 | 거리 | 내용 | 비고 | 갈목재(葛目峙)380m | 09;40 | | 삼가저수지에서 갈목으로 넘어가는 고개 | 505번지방도로 | 능선갈림길 | 09;56 | | 능선에 올라 우측방향으로 진행 | 좌측으로 구봉산능선 조망시작 | 546m봉(서원봉) | 10;07 | | 좌측 아래 서원리가 있어 서원봉이라 한 듯함. | | 화엄이재 | 10;24 | 1.7Km | 십자안부 | 좌우로 선명한 고갯길 흔적있음 | 450m봉 | 10;55 | | 노간주나무 한그루 우뚝 서있고 표지기 많이 걸려있음. | 진행방향에 545m봉이 높이 솟아 보임. | 545m봉 | 11:17 | | 급우틀봉 | 이정표, 정상/숲속의집..에서 정상방향 우측으로 진행한다. <알바주의지점> | 산불방지 무선중계국 | 11;24 | | 서남방향으로 보은읍 일대 조망이 시원스럽다. | 구조목, 말티재 A-6 | 531m봉 | 11;29 | | (급우틀지점) 이정표, 휴양림/말티재..에서 말티재방향으로 진행 | 구조목, 말티재 A-5 속리산 주릉과 구병산 능선이 손에 잡힐 듯 조망되는 곳. | 콘크리트 구조물 | 11;39 | | 콘크리트 건물 잔해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산불감시초소나 송신탑이 서있던 곳이 아닐까?(추측) | 이후 급경사 내리막길.. | 말티재 | 11;44 | 3.0Km | 장재리와 갈목리를 잇는 37번지방도.. 장승과 표지석, 삼각점 있음 | 정자가 있는 방향에서 좌측 급경사로 오른다. | 580m봉 (점심식사) | 12;10 /12;15 | | 산양산삼재배지 차광망 시작되는 곳, | 급좌틀하여 검은 차광망을 따라 진행한다. |
차광망과 이별하고 좌측 우회로 지점 | 12;19 | | 차광망을 따라 오르다 정상 못미쳐 좌측으로 우회로를 따른다. | 잠시후 다시 차광망과 만난다. |
차광망 합류지점 | 12;21 | | 정상을 돌아 내려오는 능선길과 합류한다. 다시 차광망을 따라 진행함. | 이후 능선봉 2개를 넘으면 592m봉.. |
능선봉2 | 12;41 | | 산양산삼 재배지로 들어가는 쪽문있음. | 능선 아래로 장재저수지 내려다 보임.. |
592m봉 (오봉단맥갈림길) | 12;52 | | 차광망 울타리가 급우틀하여 이어지는 지점. 아직까지 해오던 장안면을 등지고 보은읍으로 들어서게 된다. (속리산면과 장안면 보은읍의 경계가 되는 삼면봉) 직진하지 말고 우측방향으로 내린다. | 일행들 점심식사 (산들애님 합류) <알바주의지점> |
새목이재 | 13;09 | 2.4Km | 592m봉을 지나 작은 능선봉 하나를 넘고 591m봉 오르기 전 좌측으로 오봉단맥이 올려다 보이면서 아래로는 자동차 지나는 소리가 들리는 지점이다. 우측으로는 산양산삼 울타리로 막혀있어 지금은 고개로서의 실질적인 역할을 못하는 이름 뿐인 옛고개의 흔적이 남아있다. 능선 아래로는 속리터널이 뚫려있다. | |
591m봉(급좌틀지점) | 13;23/13;27 | | 차광망 울타리를 우측으로 보내고 좌측 사면으로 우회한다. 입구에 표지기 많이 걸려있음. | 카메라 메모리카드 교체하고 기념촬영.. |
576m봉 586m봉 | - | | 591m봉에서 내리면서 두 봉우리를 넘는데 25분의 시간을 소요하고 이후 560m봉에 오름 | 두 봉우리 모두 정상에서 약간 좌측으로 우회함 |
560m봉 | 13;53 | | 구룡치에서 576m봉, 586m봉 지나고 구룡치로 내리기 직전 봉우리.. | 가는비로 내리던 장맛비가 폭우로 변하여 쏟아지던 봉우리.. |
구룡치 | 14;43 | 2.5Km | 하판리에서 보은읍 종곡리로 넘어가는 고개. 아홉구비가 졌다고도 하고 아홉룡이 나타날 지형이라고도 하여 구룡치라 불리워짐. | |
수철령 | 14;57 | 1.1Km | 종남리서 내속리면 북암 시장터로 넘어가는 고개, 무수목(무쇠목)이라고도 함. | |
광대수산(631m봉) 갈림봉(600m봉) | 15;20 | 1.7Km | 광대수산은 600m봉에서 100m거리.. 이후 백석리까지는 길고도 급경사의 지루한 하산길이 이어진다. | 우측에 묘지를 두고 좌측 사면으로 내린다. 출구에 수많은 표지기 걸려있다. |
백석고개 | 15;35 | 1.5Km | 631m봉에서 내려와 농로로 진행 후 임도를 만나면 농산물 간이집하장까지 진행 후 삼거리에서 좌측길로 향한다. | 백석길 도로표지(백석길2->76)가 있고 반사경이 있는 절개지를 타고 오른다. 이후 포장임도를 만나 422m봉으로.. |
포장임도삼거리 | 15;42 | | 임도갈림길에서 우틀하여 진행하다 잘가꿔진 종중묘를 우측에 두고 좌측 능선으로 진입한다. 2분후 바로 소나무 밑에 산신제단을 만난다. | 갈림길에서 오른쪽 방향에 종중제단 |
422m봉 | 16;08 | | 백석고개에서 급경사길을 올라 능선에서 좌틀하는 지점 | 구티재방향에 표지기 걸려있음. |
능선갈림길(406m) (급우틀지점) | 16;30 | | 지도상 406m봉까지 가지 않고 중간 안부에서 우측으로 급틀하여 벌목지대로 진행한다. (벌목지대엔 튤립나무가 식재 되어 자라고 있다.) | 우측으로 급틀하여 진행방향(서쪽)에 탁주봉을 앞에 두고 진행한다. |
355m봉 | 16;34 | | 벌목지대 마루금을 밟고 진행하다 탁주봉 앞에 낮은 봉우리인 355m봉을 넘는다. 이후에도 작은 오르내림이 두어번 이어진다. | 못골마을과 그 너머로 멀리 속리산 서북능선인 묘봉,관음봉능선이 조망됨. |
구티재 | 16;52 | 2.3Km | 구티재와 탁주리의 경계.. 575번 지방도.. | 산의 모습이 거북이를 닮았다 하여 구티라 하였다 하고, 구티재를 넘는 고갯길이 아홉구비를 넘는다 하여 구치재.. 도로를 확.포장하면서 지금은 네 구비만이 남아있다. |
<사진;서원봉을 지나며 가야할 정맥마루금>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능선이 남한 땅에서 하늘재를 지나고 문경새재, 조령산, 이화령, 대야산을 거쳐 또 한번 불쑥 솟아오르니 이름하여 속리요 그 중에서도 천왕봉이다. 이후 백두대간은 지리산을 향해 줄기차게 남진하게 되는데, 서쪽으로 큰 가지 하나를 뻗어내니 그것이 바로 '한남금북정맥'인 것이다. 한남금북정맥은 그 이름이 말하듯 한강의 남쪽 울타리이며 금강의 북쪽 울타리가 되는 산줄기이다. 한남금북정맥은 속리산 천왕봉에서 시작하여 충북의 북부지역을 가로질러 보은, 청원, 괴산, 음성을 거쳐서 경기도 안성 땅인 칠장산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약 152Km의 산줄기이다. 이 산줄기의 산들을 보면 백두대간 천왕봉에서 갈라져 나와 말티재, 시루산, 구봉산, 국사봉, 선두산, 선도산, 상당산성, 좌구산, 칠보산, 보현산, 소속리산, 마이산, 자현, 황색골산, 칠장산 등으로 이어진다. 그러면서 칠장산에 이른 한남금북정맥은 북서쪽으로 한강의 남쪽을 따라 한남정맥을 갈래쳐 김포 보구곶리에 이르고, 남서쪽으로는 금강의 북쪽을 따라 금북정맥을 또 하나 갈래쳐서 태안반도 안흥진까지 내달린다. 그때문에 한남금북정맥은 온전한 정맥이라하기 보다는 금북과 한남을 백두대간에 이어주는 가교역할로 여겨져 산꾼들로부터 푸대접을 받아왔다. 그렇지만 한남금북정맥은 도상거리도 만만치 않으며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산세와 그 산자락 곳곳에 어린 숱한 전설과 이야기들로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당당한 이 땅 하나의 정맥으로 존재한다. 이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은 백두대간의 속리산 천왕봉(1058 m)에서 분기하여 北으로는 한강(총길이 494.5 km)과 南으로는 금강(총길이 401 km) 분수계를 이루고, 충청북도를 北西방향으로 연결하며 경기도 안성의 칠장산(七長山)까지 백두대간에서 南韓의 정중앙을 잇는데, 도상거리 약 160여 Km에 달하는 이 산줄기는 속리산권을 벗어나면 좌구산(坐龜山 657.4)이 최고봉이 될만큼 해발 600m급 이하의 비교적 낮은 봉우리들로 이루어진 특징을 지닌다. 그러나 시종 충북내륙의 오지를 걷다보면 호젓한 산세를 간직하고 있는 청정한 산줄기임을 알게된다. 한남정맥 2구간을 산행하고 꽤 여러날이 지났다. 그동안 낙동정맥 출정식이 있었고 한남정맥 2구간 산행을 마쳤다. 산행후기를 시작하여 놓고 한참만에 다시 들어와 보니 어안이벙벙 잠시 지난 시간을 떠올리기에 분주하였다. 사진을 들썩거려보고 미리 정리해 놓았던 산행개요가 있어 다행히도 후기를 마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듯하다. 백두대간 종주 때부터 함께 해온 산아름님을 가슴 아프게 떠나보내고 정맥길에 나서려니 예전처럼 힘이 나질 않는다. 무더위는 극성을 부리고 '다음 주에는 장마가 끝이 난다.'던 일기예보는 한주를 더 연장하고도 길게 늘어뜨린 장마의 꼬리는 지리하게도 고온다습한 기후로 세상을 흔들어놓는다. 무섭도록 쏟아붓던 그 날의 장맛비는 아직도 생생하게 가슴에 두려움으로 남아있는데 3구간의 특색없던 능선봉들이 너울너울 산너울을 이루며 기억속에 파노라마를 그리며 지난다. 이제는 다시 용기를 내어야 할 시간 삼복더위든 어두운 그림자든 딛고 일어서야 할 때, 건강한 노후를 위해 아름다운 황혼을 위해 청춘에 뿌려놓은 씨앗을 거둬들여야 할 시기 아픔을 잊고 새로운 인생의 앞날을 위하여 파이팅을 외쳐본다. 정맥길은 인생길 고난의 파도를 넘고 넘어 아자~ 아자~~아자~~~ 그날도 기상청에서는 중부지방에 오후 늦게 20~60mm의 강우량을 예보했다. 집에서 나올 때 준비는 철저히 하고 나섰지만 막상 산행지에 도착하고 보니 비가 내리지 않았기에 산행중에 내리는 비는 그대로 몸으로 맞이하기로 하고 산행길에 들었다. 어차피 비옷을 입는다 하여도 속에서는 땀에 젖을 것이 뻔하였기에 차라리 비에 젖는 편이 끓어오르는 열기를 식힐 수가 있을테니.. 한남금북정맥길엔 생각지도 않았던 반가운 분들이 몇분 합류하시게 되어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대되는 산행길.. 갈목재 도착한 시간 09;40 고갯마루에 하차하여 지난 번 날머리에서 반대방향으로 갈목재 정상을 넘어 잠시 내려가다 좌측 급경사를 오르며 산행은 시작된다. 들머리에서 우측 아래로 예전에는 통제소가 있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정맥꾼들에게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는 일, 있어봐야 신경만 쓰일 뿐 어차피 통과해야 할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통과를 하고마니 국립공원에서도 이젠 눈감아 주는 이야긴가? 덕분에 마음 편히 들머리에서 오르는 중.. <사진; 갈목재에서 오르며-별하나님 촬영> 갈목재(葛目峙, 380m)는 삼가 저수지에서 갈목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가까운 곳에 갈목 마을이 있는데, 마을 주변에 칡넝쿨이 많아 갈목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설은 길이 갈라지는 목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갈목리라고도 불리우며 보은 8항의 하나라고도 한다. 보은에는 4증 8항이 있는데 증은 시루라는 뜻이며 항은 목덜미라는 뜻으로 급소를 말한다고 하며 도선국사의 도참설에 나오는 것으로 재해재난으로 부터 안전한 지대를 뜻하기도 한다. 쉽게 말하면 피난처가 되는 곳으로 4증 중 동증은 마로면 적암리 시루봉, 남증은 마로면 변둔리 시루봉, 서증은 수한면 질신리와 광촌리 사이의 시루봉, 북증은 내북면 이원리 시루산을 말하고, 8항은 가항(구병리 멍에목이), 갈항(갈목리), 오항(성주리, 삼년산성 주변), 불항(불목), 구항(장갑 비들목), 사자항(속리산 중사자암 부근), 치항(마로면 임곡리 솔개미봉), 상자항( 확인 안됨)을 말한다. 갈목재에서 급경사길을 올라 카메라를 작동시키려니 습한 날씨라고 벌써부터 애를 태운다. 너무 부려먹는다고 요즘은 자주 앙탈을 부려대니 나도 마음 먹은김에 새것 하나 더 장만할까부다. 집에 카메라가 두개 더 있어도 메고다닐 수가 없으니 어차피 디카나 들고 다녀야 할 신세여라. 그래 니가 원하는게 그거라면 이젠 널 버려주마. 혹시나 하여 갖고 왔던 비상용카메라를 들이댄다. 갈목재에서 오르는 울님들 모습 좀 담아보려 했더니만 꾸물거리는 사이 다 지나버리고..ㅠㅠ
갈목재에서 급경사지를 올라 이동통신 기기가 있는 곳을 지나고 잠시 후 능선갈림길에 오른다. 능선갈림길에서 우측능선으로 진행한다.(09;56)
능선에 올라서서는 좌측으로 갈목재를 오르던 서원리방향의 도로와 그 뒤로 구병산능선을 조망하며 걷게 된다. 등로 옆엔 오래 된 조선소나무들이 멋진 자태를 자랑하고 있어 눈이 심심하지 않으며 그들 사이로 언듯언듯 지나치는 구병산 능선을 건너다 볼 수 있다. 비가 오려는지 구병산 능선엔 먹구름이 자욱하니 덮여있고..
안부를 지나도록 한동안 소나무들에 눈이 팔려 걷다가..
갈목재에서 1시간 진행하여 첫번째 안부를 지난다. 내리막길 좌측으로는 암릉을 이루고 있는 조금은 거친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서..(10;03)
4분간 오르막길을 치고 오르니 546m봉인 서원봉이다. 속리산국립공원 경계표시인 첫번째의 시멘트봉을 만나는 곳인데 좌측 아래로 서원리가 있어 서원봉이라 부르는 듯하며 이후 능선을 걸으며 좌측 아래로 아름다운 서원리의 풍경과 구병산능선을 조망할 수 있다.(10;07)
갈목재에서 뒤에 청풍명월 대장님이 오르시기에 인증샷을 부탁드리고..(10;07)
서원봉에서 서남방향으로 구병산 들머리를 줌하여 본다. 갈목재로 오르는 중간 서원리를 지나며 다리 위에서 우측으로 바라보이던 들머리가 기억에 남는다.
서원봉에서 내려보는 서원리계곡과 구병산능선..
구병산 들머리가 있는 서원리마을이다. 좌측 능선으로 구병산능선이 이어져 오르고..
서원리에서 시작되는 구병산능선..
서원봉을 지나면서 능선에서 진행방향으로 조망되는 가야할 한남금북정맥.. 서쪽방향으로 나가던 정맥이 우측(서북방향)으로 돌아나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좌측으로 바위벽을 이룬 능선봉을 지난다.(10;12)
방금 지나온 능선봉 우측으로 구병산 능선이 보이고..
좀 더 가깝게 내려다 보이는 구병산 들머리..
이어서 오르막길은 완만하게 이어지고 등로엔 오래되어 봉분이 거의 다 내려앉은 무명봉 하나를 지난다.(10;13) 이후 완만하게 오르는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 편평한 능선길을 잠시 걷다보면 진행방향 숲 위로 가야할 마루금이 보이면서 내리막길엔 또 하나의 묘지가 나타난다.(10;23)
순천김씨묘를 지나내리면 이내 화엄이재이다. 화엄이재는 회너미재(回越峙. 回踰峙)라고도 하는데, 그 유래는 갈목리에서 외속리면 서원리로 넘어가는 이 고개는 옛날 속리산 스님과 구병산 스님이 이 고개에서 만나기로 해놓고는 허행하고 되돌아갔다 하여 생긴 이름이 "회너미재"라 하며, "화엄이재"라 하게 된 것은 고려시대부터 이곳 장안리와 갈목리에서 법주사로 불공을 드리러 가기 위해 넘던 고개에서 유래한다.
화엄이재에는 속리산국립공원 경계표시인 시멘트봉이 꽂혀있고 서원봉 다음 두번째의 국립공원 경계표시이다. 여기까지가 속리산 국립공원 구역이다. 중앙에는 잔돌로 이뤄진 돌무지가 있다. 십자안부로 이뤄진 화엄이재는 좌우로 옛 고갯길의 흔적이 뚜렷하다.(10;24)
화엄이재에서 3분정도 오르다 보면 등로에는 또 하나의 비석묘가 나온다. 경주이씨묘이다.(10;27)
6분 후엔 능선봉 위에 서게 되고 이후 20분 남짓 작은 오르내림이 어려움 없이 이어지다 450m봉 정상을 지나게 되는데 정상에는 노간주나무 하나가 우뚝 서있다. 병화님 표지기가 눈에 확 뜨이는데 이후로도 홀로 걷다가 병화님 붉은 표지기만 보이면 반가운 마음에 병화님~~하고 불러보기도..ㅎㅎ(10;55)
450m봉에서 좌측으로 조망되던 구병산능선..
450m봉에서 살짝 내려앉은 안부를 거쳐서 올라서면 밑둥치가 휘어 자란 소나무 하나를 만나게 되는데 조금 더 오르면 표지기 여럿이 걸려있는 정상에 서게 된다. 이 봉우리가 532m봉이다.(10;59)
532m봉을 지나내리는 내리막길엔 오래된 무명묘 하나가 떼를 벗은 채 알몸을 드러내고 있다. 덕분에 전방엔 조망이 트여 모처럼만에 시원함을 맛보게 되는데 오늘 지나게 되는 정맥길에서도 꽤 많은 묘지들을 만나게 된다.(11;00) 여기서 "떼"란 영어로 sod를 말하여 잔디를 의미한다. sad로 가운데 스펠을 잘못 쓰면 슬픈(마음이 우울한)의 뜻으로 되지만, 예전에는 묘지에 입히는 잔디를 보통 떼, 뗏장이라 했는데 근래엔 그런 말을 들어보기가 어려워.. 인터넷 사전엔 그런 단어가 아예 없는 것으로 보아 사투리인가? 순수한 우리말로 알고 있었더니.. 좀 더 알아봐야 될 듯 싶다.
묘지터에서 올려다 보는 가야할 마루금에 545m봉이 우뚝 솟아보인다. 그 뒤로 531m봉이 보이며 두 봉우리 사이엔 무인산불감시 안테나가 보인다.
그 후 내리막길에 작은 능선봉 하나를 거쳐서 안부로 내렸다가 3분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청풍명월 대장님과 일행님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얼려온 파인애플 한쪽을 내미시길래 입에 넣었더니 얼마나 시원하던지? 건네주시는 한쪽 더 받아 입에 넣고는 한발 앞서 진행한다.(11;10)
이어서 3분정도 능선을 걷다 우측 숲 뒤에서 사람소리가 나기에 "누구십니까?" 했더니 "누구세요?" 대답 대신 되물어 오시기에 "박꽃향깁니다." 그곳에서 식사를 하신 모양이다. 잠시 들려가라 하시기에 둘러보았더니 지나온 길이 훤히 조망되는 바위전망대이다. 아직 확실하게 닉을 다 익히지 못하여 불러드리지는 못하지만 반가운 마음에 기념사진 한컷씩 나눈다.(11;13)
카메라를 먼저 건네기가 쑥스러웠는데 먼저 달라하시니 편한 마음으로 지나온 길을 배경으로 한 컷하고..
지나온 능선 저 너머로 천왕봉이 보였는데 금방 구름에 휩싸인다.
지나온 능선과 천왕봉을 배경으로 줌하여 본.. 우측 구병산에서 시작하여 좌측으로 이동하며 속리산 주릉을 거쳐 서북능선으로 이어지는 충북알프스를 한눈에 조망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빽빽하게 들어찬 여름숲이 원망스럽다. 순간 겨울산이 그리워지면서 눈 덮인 충북알프스의 파노라마를 한눈에 그려본다.
울 청풍명월 대장님도..
잠시 후 545m봉에 닿고..(11;17) 이곳에서는 우측 정상방향 내리막길로 이어간다. 직진하였다가는 능선 좋다고 크게 알바할 수 있음. 정상이란 어떤 정상을 이르는 건지? 후에 나타나는 이동통신기기가 있는 봉우리를 말함인가? 아니면 그 이후의 531m봉을 이르는 것인가? 이름 있는 산봉우리가 없으니 차라리 말티재라 표기 해주면 훨씬 이해하기가 쉬울 것을.. <알바주의지점>
뒤돌아본 545m봉..
545m봉에서 내려 안부를 거쳐서 오르막을 한번 치고 오르면 능선봉 정상엔 큰 바위 하나가 있고 등로는 좌측으로 우회하여 나간다.(11;22) 그후 2분이면 통신시설이 있는 봉우리를 지나게 된다.(11;24)
통신시설이 있는 능선봉에 서면 가야할 531m봉이 보이고 마루금이 우측으로 이어져 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관리 하시는 분이 영리한 분이시군요? 자물쇠가 녹스는 걸 막아보겠다고 빈 pet병 중간을 도려내어 비 맞는 걸 막아놓았다. 산길에서 얻어가는 지혜 하나!
이동통신 기기가 있는 봉우리에서 남서쪽방향에 펼쳐지는 조망이다. 장재리 일대가 시원스럽게 펼쳐지고 장재저수지와 말치재자연휴양림 방향의 조망도..
뒤돌아 보는 이동통신 기기.. (구조목 No.말티재 A-6)
4분후 말티재로 내리는 급우틀봉인 531m봉에 오른다. 좌측으로는 휴양림방향으로 내리는 길이고 정맥은 북쪽으로 우틀하여 내린다.(11;29)
531m봉에서 뒤돌아보는 속리산방향의 풍경이다.(펌) 지나온 한남정맥길과 천왕봉에서 문장대까지 이어지는 속리산주릉의 백두대간길 선명하다. 그 옆으로는 충북알프스의 서북릉이 거칠게 이어지고.. 바위전망대에서 보고싶어하던 속리산 일대의 파노라마를 좀 더 확실하게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531m봉에서는 말티재방향으로 조금은 거칠고 급하게 내리는 내리막길로 향한다.
말티재로 내리면서 말티재에서 올라야할 정맥길을 건너다 본다. 좌측부터 580봉, 가운데 능선봉 두개를 거쳐 우측에 있는 봉우리가 차양막울타리가 북쪽으로 돌아나가는 지점의 봉우리인 592m봉 오른쪽으로 급하게 내리는 내리막길을 거쳐서 새목이재로 내렸다가 다시 591m봉으로 오르게 된다.
531m봉에서 7분 진행하여 내린 곳에 묘지를 지나고..(11;36)
살짝 내렸다가 다시 오른 작은 능선봉을 지나는데 이곳에는 콘크리트 구조물의 잔해가 남아있다. 흔적으로 보아 산불감시초소나 송신탑 같은 것이 서있던 곳이 아닐까?
이후 갑자기 급경사로 내리는 내리막길을 내려서..
출입금지 표지판이 서있는 곳을 돌아나가면 말티재이다.
방금 앞서 내려온 일행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말티재에서 보은읍 방향의 모습..
방금 돌아내려온 출입금지판..
함께 내려온 일행들이 없었다면 말티재에 산책 나온 강아지 주인한테 사진을 부탁할 뻔 했다. 비는 내리기 시작하는데 어렵게 얻은 인증샷..
토속신앙의 대표적인 상징물이었던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 이곳엔 대리석으로 빚어져있다. 뭐니뭐니해도 이런 건 나무로 깎아 세워야 제격인데 볼품은 있어 보인다만?
말티재(430m)는 보은군 외속리면과 내속리면을 잇는 고개로 보은읍과 속리산면간 37번 국도가 지난다. 이제는 터널이 뚫려 차량통행이 많지 않아 보이고 대리석을 깍아 만든 장승과 말티재의 내력을 새겨 놓은 기념비가 말티재 상징물로 자리하고 있다. 한때 속리산을 가려면 보은을 지나 속리산의 관문인 말티재를 넘어야 했다. 보은읍에서 해발 400m의 꼬불꼬불한 열두구비나 되는 가파른 고갯길을 올라서면 속리산 방향으로는 비교적 완만한 내륙고원 분지로 이루어져 있다. 속리산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고개는 처음 고려 태조 대왕께서 속리산에 올 때 닦은 길이라 하며 또 조선 세조 대왕께서 올 때 얇은 돌을 깔았다고 하는데 1966년 도로포장공사를 할 때 옛날의 흔적이 보였다 한다. 그래서 또 다른 이름으로는 박석(薄石)고개라고도 불린다. 세조대왕께서 속리산에 오실 때 외속리면 장재리에서 연으로 고갯길을 넘을 수 없어 말로 바꾸어 타고 고개를 넘었다고 하며, 내속리면 갈목리 부락에 닿아서는 다시 연으로 바꾸어 탔다고 한다. 하여 말티고개란 이름이 유래되었다.
말티재에서 구티재방향의 들입목엔 정자가 서있고 그 앞에는 속리산 도로개통기념비가 서있다. 도로개통비 옆에는 말티재 도로개통의 내력이 적혀있는데 "고개 이름은 말재요, 처음 넘은 이는 누구였던지. 다만, 여기 생각나는 사람 신라 때 의신대사가 인도에서 돌아와 흰 노새 등에 불경을 싣고 속리산으로 들어가 법주사를 세울 적에 헐떡이며 이 재를 넘어가던 모습이 눈에 보인다. 다시 그 뒤에 고려 태조가 여기 이 길에 엷은 돌들을 깔았다하니 길의 형국은 아마 그것이 처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길이 험하고 가파르기 때문에 언제나 모두들 긴 탄식을 거듭하더니 천년이 지난 뒤 1923년에 이르러 우마차가 다닐 수 있는 새 길을 열었고, 1935년엔 자동차 길을 닦았으나 그 마저도 불편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중략) … 우리 군과 미군의 장비 지원을 얻어 여기 폭 넓고 평탄한 큰 길을 닦아내니 이로부터는 수많은 사람과 수레들이 웃으며 넘어가고 웃으며 넘어오리라. 아! 고마워라. 쉽게 넘는 새 길이여! 아! 미더워라. 편히 가는 큰 길이여! - 1966년 11월 1일 노산 이은상 글 -
강아지 한마리가 발밑으로 기어든다. 하마터면 밟을 뻔하여 애써 피하면서 '이녀석 좀 봐라!' 하였더니 주인아저씨가 얼른 다가서며 '그 눔이 원래 사람 발뿌리에 잘 채인다'며 당황해 하는 날 외려 위로한다. 말티재에서는 정자있는 곳에서 좌측방향 오르막길로 오른다.
3분정도 오르니 좌측으로 장재저수지가 우거진 숲 사이로 잠시 보이고..(11;56)
3분 후엔 580m봉 오르는 길 중간에 암릉이 가로막는다. 직벽에 가까운 바위절벽을 기어오른다.
암릉을 통과하여 뒤돌아 본 지나온 길..(11;59)
솔숲 너머로는 말티재로 내리기 직전의 지나온 능선이 조망되고.. 580m봉을 오르자 갑자기 앞에 나타나는 차양막.. 좌측으로 표지기가 많이 걸려있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이곳은 산양산삼재배지로 그 규모가 얼마나 크던지 이곳에서부터 592m봉까지 1시간을 넘게 검은망 울타리를 따라 걷게 된다.(12;10)
580m봉에서 진행해야 할 좌측방향의 길..
우측방향으로는..
580m봉에서 내려오며 뒤돌아 본 580m봉 정상..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많은 비가 내리기 전에 간단하게 요기도 하고 뒤에 처진 일행들이 올라올 때까지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5분정도 쉬어서 뒤에 일행들 오르는 소리가 들리기에 내리막길로 향한다. <점심식사>
580m봉에서 내려와 첫번째 안부를 지난다.
길게 이어져 오르는 차양막 울타리를 따라 3분 오르니 좌측으로 우회로가 나있다. 표지기 여럿 걸려있는 것으로 보아 정상방향으로 오를 필요가 없을 것으로 보여 좌측으로 우회한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비닐끈으로 막아놓았다.(12;19)
2분후엔 정상을 돌아내려오는 차양막 울타리와 다시 만나고..(12;21)
좌틀하여 지나는 길엔 오래되어 떼를 벗은 합장묘(김천이씨)가 나온다. 합장한 것으로 보아 이장된 묘가 아닐까 생각을 하면서 가야할 방향의 마루금을 바라본다.
두번째 안부로 내리는 내리막길 끝에선 또 하나의 무명묘를 만나게 된다.(12;25)
2번째 안부에서 2분정도 오르며 올려다 본 진행방향의 산양산삼 울타리..(12;28)
5분간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 능선봉에 이르니 일행들 모습이 보인다. 후미 몇분이 점심식사 중인 능선봉을 지나..(12;33)
이곳정상 직전 등로 좌측으로 걸려있던 표지기들..
이후 살짝 안부로 내렸다가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 위에는 산양산삼재배지 안으로 작은 쪽문이 나있고 좌측으로는 장재저수지가 바로 아래 조망된다..(12;45)
이어서 7분정도 더 오르면 울타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산양산삼 재배지는 우측으로 울타리를 따라 경계를 이루며 이어진다. 이후 한남금북정맥도 이 울타리를 따르면 된다. 이 지점에 오르니 사람들 소리가 들린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는가 보다'하며 정상으로 오르니 산들애님이 기다리고 계시다가 맞아주신다. 이 봉우리가 592m봉이다.(12;52)
592m봉에서는 정상을 지나지 않고 정맥은 우측으로 약간 비껴서 급하게 우틀하여 내린다. 592m봉에서 직진방향으로는 오봉단맥이 흐르고..
592m봉에서 9분정도를 급경사길로 내려서면 안부에는 차양막 울타리에 또 하나의 쪽문이 보인다.(13;01)
이후 3분간 오르막길을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592m봉에서 이어지는 오봉단맥으로 보이는 능선이 조망된다. 자동차 소리가 들리는 듯 하기에 이 근방이 새목이재가 아닐까 하여 뒤쫓아 오르신 산들애님을 잠시 서보시라 하고..(13;04)
5분 후 완만하게 내려선 안부엔 다시 울타리에 쪽문이 보이고, 이 이후엔 오름길이 길게 이어진다. 이 안부가 새목이재로 보이며 밑으로는 속리터널이 지난다. 좌측 아래에서는 자동차 지나는 소리가 요란하고 위로는 오봉단백 능선이 보인다.(13;09) 새목이재는 보은군 속리산면 중판리와 보은읍 성족리를 이어주던 작은 고개로 지금은 고개 밑으로 속리터널이 뚫려있고 37번 국도가 지난다. 지금은 산양산삼재배단지가 막고 있어 고개의 기능을 상실하고 옛고개의 이름만이 남아있다.
이후 길게 이어지는 오름막을 오른다. 11분쯤 뒤엔 산초가 자생하는 지대를 지나고,(13;20)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길을 3분정도 더 올라 정상 조금 못미쳐까지 오르니 좌측으로 정상을 우회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이 봉우리가 개념도상 591m봉으로 보이며 작은 공터를 이룬 이 갈림봉엔 좌측방향으로 은빛대장님의 유도지가 놓여있다. 좌틀하여 나가는 입구엔 많은 표지기들이 걸려있고..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기 시작한다. 마음이 급하기는 하나 너무 인증샷을 못하고 지나왔기에 산들애님께 카메라를 건넨다. 마음이 급한데 거기에다 카메라까지 또 다시 속을 썩인다. 안경 꺼내 쓸 경황이 없어 육안으로 작은 글씨를 겨우 읽어낸다. 메모리 부족이란다. 비상용으로 1기가의 칩을 넣어놨던 내 불찰이다. 갈목재에서 오르면서 작동이 안되던 카메라에서 4기가의 메모리 카드를 꺼내 교체하는 동안 뒤처졌던 후미 일행들 몇분이 올라와 선다.
겨우 이렇게 인증샷을 끝내고..(13;27)
이 봉우리(591m봉)에서 구룡치로 내리는 길은 상당한 급경사로 내리게 된다. 빗길인데다 낙엽이 쌓여 급경사를 이룬 내리막길은 여간 조심스러운 길이 아니다. 어렵게 안부까지 내려와 다시 오르막길을 오르고 576m봉, 586m봉을 거쳐서 560m봉에 오르는데는 25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구룡치에서 576m봉, 586m봉을 지나고 560m봉 정상에 오르는데 폭우가 쏟기 시작한다. 한발 앞서 오른 후미 일행들이 우비를 꺼내 입기 위해 멈춰서 있다. 박꽃향기는 오늘 산행 시작하면서 비맞을 각오를 이미 했던 터라 동요 없이 그대로 진행하기로 작정을 한다. 이 봉우리에서 선두는 점심식사를 한 듯 보인다. (13;53)
560m봉에서 내리는 급경사길은 장맛비까지 합세하여 위험천만한 길로 변하고.. 번들번들 물비늘을 둘러쓴 급경사 내리막길은 흉기를 든 산도적과 같아 그 길을 애써 밟지 않으려 등로를 벗어나 묵은 갈잎이 쌓여 푹푹 빠지는 사면을 돌아 내린다. 밟는대로 무너져 내리는 보드라운 흙은 마치 비오는 해빙기에 눈쌓인 사면을 내리는 것과 같아 차라리 눈길이라면 이보다는 안전할텐데.. 그나마 나무들에 의지하고 겨우겨우 내려서 닿은 안부엔 우측에서 완만하게 들어오는 길이 따르고 좌측으로도 길게 고갯길이 이어진다. 이 안부가 구룡치이다. 안부에서 산들애님이 진행방향의 길을 가리키신다. 좌측으로 길게 이어지는 고갯길 입구엔 표지기들이 주렁주렁 걸려있어 중요한 지점임을 암시해주고..(14;08) 갈목재에서는 4시간 24분이 말티재에서는 2시간 55분이 소요되었다.
560m봉에서 내려와 서면 우측에서 들어오는 길이 능선길과 합류한다. 이 지점에서 구룡치가 시작되는데..
구룡치를 지나며 뒤돌아보는 삼거리의 모습이다. 우리가 내려온 길은 우측이고 좌측길은 위 사진에서 보는 보은군 하판리 방향의 길이다. 보는 바와 같이 구룡치는 다른 곳에서 흔히 보던 십자로 안부의 고갯길이 아니다. 구불구불 용이 용트림을 하듯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이 능선을 이룬 특이한 모습의 고갯길이다. 좌측으로 편평한 고갯길을 좀 더 따르다 보면 능선이 완만하게 이어 오르는 오르막길 입구에 십자로 이뤄진 갈림길이 다시 나온다. 십자안부를 한번 더 거치는 구룡치에서는 완만한 오르막길을 우측으로 길게 돌아나가는 등로를 이어 오르게 된다.
구룡치(九龍峙)는 보은읍 종곡리와 속리산면 하판리를 이어주는 옛 고개로, 구불구불 아홉구비의 용을 닮은 고개라고 하더니, 그래서 그런지 구불구불 용의 몸통처럼 능선을 따라 고갯길이 이어진다. 구룡치에서 십자안부를 지나 505m봉을 넘고 505m봉을 지나며 마루금은 우측으로 휘어나가는데 그 지점에 처음으로 귀천님의 한남금북정맥 표지기 하나가 걸려있다. 이후 10분정도 진행하여 554m봉(수철봉)에 오른다. 수철봉이라고도 불리는 554m봉을 지나면서부터는 보은읍과 이별을 하게 되고 이후엔 산외면을 만나 걷게 되는데 이 봉우리 역시도 삼면봉과 다름이 없다. 이후 빗물이 흘러 계곡을 방불케 하는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오다 주저앉는 바람에 박꽃향기 뒷태는 엉망이 되어버리고 두 남자의 괜찮냐는 걱정을 들으면서 수철령에 도착한다.
수철령(水鐵嶺)은 보은군 종남리에서 내속리면 북암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나무가 없다'하여 "무수목(無樹木) " 이라 불리던 것이 "무쇠목"으로 변천되고 한자화되면서 "수철령"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수철령은 구룡치와 함께 예전에 동학군들이 피신하던 통로이며 보은읍과 속리산면 주민들이 오가던 고개다. 무쇠령이라고도 하는 이 고갯마루는 크게 눈에 띄는 점은 없으나 좌측으로 갈림길이 뚜렷하고 우측 능선방향으로 은빛대장님의 방향지가 깔려있는 것을 보고 오른다. 방향지는 내리쏟는 빗줄기가 강타하여 너덜너덜 하여졌고 그래도 흐트러지기 직전이라 겨우 화살표는 살아있다. 고개에서 능선으로 오르는 입구에 표지기 몇개 걸려있는 것이 보인다. 좌측으로 움푹 패인 길의 방향은 종곡리로 내리는 길이다. 거센 빗줄기 때문에 우측으로 내리는 길까지는 확인하지 못한 채 오르막을 오른다. 고갯마루에만이라도 이정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지난다. 속리산이 국립공원이라고는 하지만 그쪽과는 너무 비교가 되는 행정이다. 이런 고갯마루를 파악하고 지난 산꾼들이 얼마나 될까 의문을 남기며.. 이후 535.9m봉에 올랐다가
정상에서 빠져나와 우측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에서 앞이 시원하게 트이는 묘지터가 나온다. 오래된 묘지로 보이는 2기의 묘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지점에서 진행방향에 600m봉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거센 빗줄기 사이로 흐릿하게 보이면서..
535.9m봉을 내려서는 능선에서는 우측으로 시야가 트이면서 속리산 천왕봉에서 문장대로 이어지는 주릉과 서북능선 관음봉으로 이어지는 파노라마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오늘은 폭우속에서 그냥 마음속으로만 그려보며 지나는 길이다.(사진 펌)
그후 530m봉 하나를 좌측으로 우회하고 안부를 거쳐서..
긴 오르막길을 오르며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여 더욱 거센 폭우가 쏟아진다. 530m봉에서 안부를 거쳐 25분정도 걸려서 무덤 한기가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는 봉우리에 오른다. 지도상에는 갈림길로 표시되어 있는 곳도 있고 당구장 표시가 되어 있는 것도 있다. 아무튼 중요한 지점임에는 틀림 없는 듯 하다. 이 지점이 600m봉으로 오늘 구간에서는 최고 높이의 산봉우리이다. 우측으로 '광대수산'이란 횟집 간판에서나 만나볼 듯한 이미지의 산으로 갈리는 갈림지점이다. 광대수산까지는 100m거리라는 건 알고 왔지만 오늘 형편으로는 언감생심 꿈도 못꾸고 지날 일이다. 구티재까지 무사히 완주할 수 있기만을 바라며 600m봉인 광대수산갈림지점을 지난다. 비바람에 휘날리던 표지기들이 왜 그리도 반갑던지? 특색없는 봉우리들을 폭우속에 뇌성번개에 놀라면서 잔뜩 움츠린 채 오르내리면서 그야말로 오래간만에 눈에 띄는 목표지점에 도달하니 반갑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이곳에서는 지금까지 진행해온 산외면과 속리산면의 경계에서 속리산면을 버리고 온전히 산외면으로 들어가게 된다. 지도상으로 보면 광대수산을 지나 이어지는 줄기는 태봉, 잣고개로 이어지면서 남한강의 지류인 달천으로 잠기게 된다. 600m봉에서 한동안 고도를 낮추면서 꽤나 거친 길을 내려오다 보면 농로를 만나게 된다. 농로를 잠시 따르다가 논둑길을 따라 백석리로 내려서서 다시 포장임도를 따르게 되는데, 내리막길에 두어번 넘어졌더니 차림새가 가히 봐줄만 할 것 같아 대장님과 산들애님을 앞서 보내드리고 임도 옆 도랑으로 뛰어들어 거센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처럼 물 흐르는 반대방향으로 잠수하여 첨벙첨벙 대며 멱을 감고.. 이후 백석리로 내려서서 우측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백석마을로 들어선다.
백석리 마을은 산외면 지역으로 흰 돌이 많이 있어서 흰돌리라 하던 것을 흔들 또는 백석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장갑리 일부를 병합하여 백석리라 하였다. 백석리 마을길로 잠시 진행하다 보면 맞은 편 422m봉과 이어지는 지점에 목축농가가 보이고 좌측으로 축사가 보인다. 이 지점에서 정맥은 축사를 지나 맞은 편 422m봉으로 가로질러야 될 것으로 보인다. 흔히들 우측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주황색 지붕 축산농가에서 계속 우측으로 진행하면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주황색 지붕의 백석리 농산물집하장 건물을 끼고 좌틀하여 8번 군도가 지나는 백석리고개로 이어가지만, 축사를 지나 마루금을 밟는다는 이야기도 있기에 빨간 지붕의 농가에서 좌측으로 축사를 향해 들어가 조용히 기웃거려 본다. 축사로 들어가니 우측으로 돌아나가는 임도가 나있다. 임도가 고개로 이어지려는가 보다 하고 잠시 진행하다 보니 길은 축사를 지나며 끝이 나고 그 이후는 밭으로 이어진다. 축사의 임도는 그냥 축사관리를 위해 만들어진 길로 보인다. 되돌아 나갈까 하다가 이왕 들어와진 김에 백석고개로 질러 내려가 볼까 생각하고 밭둑을 따라 내려서서 오른쪽으로 들깨밭의 가장자리를 밟고 서니 그 밑에는 다시 콩밭으로 이어진다. 밭과 밭 사이 두둑의 높이가 꽤 되어 보이기에 밭둑을 질러내리는 길의 흔적을 찾아본다. 수풀이 우거진 높은 밭둑으로 그래도 누군가 지나다닌 길의 흔적이 보여 되돌아오르지 않아도 되었기에 쑥대를 한웅쿰 휘어잡고는 겨우 도로 옆 콩밭을 빠져나가 백석고개로 오른다. 포장도로로 내려서서 빗물이 줄줄 흐르는 고갯마루로 올라 두개의 반사경이 있는 곳에서 예습하였던 대로 비스듬히 이어져 오르는 절개지의 사면길을 따라 오른다.
마루금이 조금 빗나가기는 하지만 오른쪽으로 마을길을 따르다
빨간지붕의 농산물간이집하장 있는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우회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마루금을 따르겠다고 굳이 길이 나있지 않은 사유지의 축사를 질러가는 일은 답사한 바로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을 것으로 사료된다.
백석고개에서 진행은 반사경이 있는 곳에서 축대를 밟고 올라 절개지로 오르는 사면길을 쫓아 비스듬히 올라서서 황토색 건물의 민가를 지나 시멘트포장임도에 합류한다.
잠시후 포장임도 삼거리에서는 우측으로 422m봉을 향해 진행하다 다음 삼거리에서 우틀하여 능선방향으로 오른다. 사진은 백석리고개를 지나며 뒤돌아 본 600m봉과 지나온 백석리마을..
우측으로 담배밭을 돌아오르는 삼거리 축대밑에서 직진길을 버리고 우측길을 따른다.
갈림길에서 우틀하여 진행하면 잠시 후 우측으로는 잘 가꿔진 종중묘가 나오고
꽤 규모가 있어 보이는 종중제단을 우측으로 두고 422m봉을 돌아나가는 임도 좌측으로는 422m봉으로 오르는 능선길이 열려있다. 표지기 몇개 걸려있어 능선으로 향하는 길임을 알 수 있다.
이어서 잠시 오르면 정면에 비석묘와 맞닥드린다. 이곳에서는 묘지로 오르지 말고 우측으로 꺾어 급하게 오르는 능선길로 오른다. 이후 급경사길을 몇분간 올라 422m봉에서는 표지기들이 걸려있는 방향으로 급좌틀한다.(16;08)
8분정도 혼자 한적한 길을 완만하게 내리자니 숲을 뚫고 멀리 탁주봉과 못골 풍경이 시야에 든다. 숲의 터널을 지나 내리다가 우측방향으로 잠시 조망이 트이기에..(16;16)
그후 내리는 길은 급경사길로 빗물이 흘러내려 질척거리는 80도 각도는 되어 보이는 수직에 가까운 흙길을 내린다.
숲의 터널에서 빠져나오니 저것이 웬 풍경인가? 앞도 안보이는 폭우속을 취청거리며 걸어왔기에 모처럼 대하는 운무에 취한 산의 풍경이 신비롭기까지 하였는데..? 탁주봉(정맥마루금)에서 좌측방향의 풍경이다.(16;18)
이어져 내리는 하산길은 마을을 지키는 구렁이가 미끄럼을 즐기다 갔는지 등로인지 개천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길의 형태를 이루고.. 앞서 내린 우리님들은 빗물이 시내를 이룬 강물을 따라 내렸을 것으로 생각되었는데..? 어렵게 등로 가장자리의 풀숲을 밟고 내려서 보니 좌측으로 돌아내린 발자국의 흔적이 보인다.
앞은 잡목과 수풀에 막혀있어 우측을 보니 수풀을 헤치고 이어지는 길의 흔적이 보여 우측방향으로 향해가는데..
마루금이 볼록 튀어오른 지점 옆에는 산꾼들의 표지기 몇개가 비를 맞고 축 늘어져 있다.
이후 못골로 내려서서는 우측으로 못골마을과 탁주봉을 바라보며 좌측으로 능선을 잡아 진행한다. 진행방향 등로 옆엔 생활쓰레기가 보이고..
좌측으로 이어지는 공터 밤나무 가지엔 병화님 표지기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아이고 병화님~~! 불러도 대답 없는 그 이름, 낙동정맥에나 가야 그 모습 볼 수 있을라나?ㅋㅋ..(16;20)
이후에는 묘지를 우측으로 두고 내리다가 좌측 숲으로 다시 능선을 잡아 들어간다.(16;21)
5분정도 숲을 지나다 보면 작은 안부를 거치게 되는데 십자안부이다. 숲 사이로 못골마을이 내다 보이는 이 작은 안부에서 야트막한 능선봉 하나를 넘는다.(16;26)
4분 후엔 탁주봉과 구티재로 이어지는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406m지점인 능선안부에 닿는다. 갈림지점인 이 삼거리에서는 직진방향으로 향하지 않고 우측으로 급틀하여 내리막길로 진행한다. 직진방향엔 수많은 표지기들이 걸려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쪽 방향이 진행방향인 것으로 자칫 오해하기 쉽다.(16;30) <알바주의 지점>
이 안부에서는 직진방향으로 능선이 이어지기에 자칫 잘못하면 직진하여 능선을 따르기 쉽다. 능선 안부에서 진행방향은 우측으로 급틀하여 내리막길로 향한다.(16;30)
마루금 우측이 벌목지대로 변한 벌목지대의 이 능선엔 새로 식재된 튤립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잡목과 섞여 등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거져 있다. 진행하면서도 이 길이 맞나?
비는 그쳐가고 있으나 허리를 적셔오는 나뭇잎의 빗방울들이 허리쌕에 자꾸 흘러들기에 못골 들어오면서 비닐봉투를 벗겨버린 것을 금방 후회하지만 한치 앞의 산길은 알 수 없는 의문의 길이어서 아쉬운 대로 길을 메운 수풀을 스틱으로 헤치며 355m봉을 향해 오른다. 마무리라도 확실하게 하자고 게으름을 물리치고 사진 한 컷이라도 더 찍어보려 부지런히 두 손을 놀려보지만 오늘 찍은 사진들 중 몇장이나 건질 수 있을까 걱정도 되면서..?
355m봉 오르는 길에 우측 못골 너머로 속리산 서북능선이 조망되고..
뒤돌아보는 지나온 길 뒤쪽엔 422m봉이 솟아보인다.
16;34, 355m봉을 넘으면서,
우측 아래로 펼쳐지는 못골마을을 내려다 본다. 한적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전형적인 산골마을, "저 마을에 가서 하룻밤 유하고 싶다~~" 빗물에 녹아들고 흙탕물에 절어버린 내 영혼을 달래면서..?
이후 얕은 봉우리 두개를 넘고 정맥은 다시 좌측 숲으로 꺾어 내렸다가 10분정도 진행후 통신탑이 있는 마지막 봉우리를 지나 구티재로 내려서게 된다.
갈림길이 있는 이 지점에서는 능선으로 직진하면 동화리로 가게 된다. 이후 능선은 우측으로 돌아 동화리로 향해 내리게 되고 정맥은 능선갈림길에서 급좌틀하여 내리게 되는데..(16;36)
10분정도 진행하여 급경사로 오르는 능선봉엔 통신탑이 서있다. 하단에 LG로그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LG이동통신중계탑으로 보인다.(16;46)
뒤돌아서서 올려 본 이동통신중계탑..
이후 3-4분 후엔 촛대석과 제단이 갖추어진 묘 1기를 지나 내리면서 곧 구티재에 도착한다.(16;52)
구티재로 내리면서 북쪽방향으로 바라본 동화리방향 조망이다. 멀리 속리산 서북릉이 구름에 끊겼다 이었다를 반복하며 이어지고 있다.
구티재에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식사하는 장면이 눈앞에 보이면서..
구티재유래비 앞에 지스키님의 모습을 끝으로 한남정맥 2구간 산행을 종료하며..
아침에 산행길을 나설 때는 비맞을 각오를 했었으나 갑자기 뇌성 번개를 동반한 폭우속에 산길을 오르내리면서 가슴을 조였던 6시간의 산행시간이 다른 어느 때 보다 길고 지루하게 생각되었던 하루다. 힘든 가운데도 후미에 청풍명월대장님과 산들애님이 함께 해주셔서 서두르지 않고 무사히 날머리까지 안전하게 산행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두분 큰 비를 맞으면서도 후미를 지켜주신데 대하여 감사드리면서.. 두발로 걷는 당일의 산행길도 힘들었지만 중간에 폭우가 쏟아지던 몇시간의 산행길이 사진 기록이 충분하지 못하여 그 후 여러날에 걸쳐서 그날의 기억을 되살리며 마음으로 걷고 또 걸어서 겨우 오늘에서야 진정한 산행의 기쁨을 맛본다. 그러다보니 3구간 산행일이 내일로 다가왔네요?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기를 바라면서..^^ 2013년 8월 10일 매곡당 김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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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박수 박수 박수......,
직접 뵙고서야 어느분이신지 알게 되었네요.
하모니님 감사합니다~~^^
꾸준히 산행하시는 모습에 배울점이 많습니다..가벼이 산행하는 제 자세가 부끄러워지는 박꽃향기님이십니다..
담 구간에서 뵙겠습니다.
누구나 다 그럴 겁니다.
정맥길이 그리 호락한 길이 아니니..
걷다보면 지치고 지겨워
어서 날머리에 닿고 싶은 게 정맥인들의 심리일 겁니다.
예타님 감사드리고 다음 구간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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