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은 많은 독일 유학생들의 마음의 고향입니다.
왜냐하면 전혜린이 공부 했던 곳이기 때문이죠.
뮌헨 슈바빈을 거닐었던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의 전혜린을
통해 유학오기전 독일이라는 나라를 꿈꾸었고,
생활하는 동안에도 힘든 여정을 견뎌나가는 지침이 됩니다.
독일이나 유럽에 있는 아시아 인들은
청나라 말기 19기 후반부터 유럽에 노예로 끌려온 중국계 난민와
보트피플로 독일의 꽃시장을 장악한 베트남계
이미 2차대전 이전에 독일과 학문적 성과를 나란히 하던 일본인들
(전 세계 문학평론가의 또다른 우상인 발터 벤야민은 일본 학계의 재해석을 통해 독일로 다시 유입된 특이한 경우)
등등 교류가 있었지만,
동양계 학생들은 80년대 이후 유학 자유화 열풍이 불기전에는 극히 드물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독일사람들이 항상 먼저 묻는 물음
어디서 왔어요? 는
일본 강점기에서 나라가 없이 지내고
해방이후에
한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거치지 못한 전혜린에게는
차마 바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겠지요.
"영원한 물음
'당신은 어디서부터 왔는가?
(Woher sind Sie?)에서 도망하고 싶엇고
황색 비전을 나는 좇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에 묘사된
독일에 첫발을 내디딜 때의 회색하늘과 저기압으로 인해 항상 커피를 마셔주어야 하는 일상은
유학생들이 누구나 거쳐가는 도정이 됩니다.
저 역시 98년 유학을 떠나
북 독일 뮌스터 아주 늦은 밤에 도착했을 때,
이슬인지 비인지 모를 정도로 축축한 날씨와
창을 열자 바로 마주 보는 까마귀의 붉은 눈은
독일 유학생들이 짊어지는
새로운 정착지 일수도 없고, 그렇다고 포기하고 떠날 수도 없는
독일이라는 나라를 겪어나가는 데 있어 이미지로 각인됩니다.
"낮이나 밤이나 우울한 회색과 안개비와 백일몽의 연속이었다.
악몽처럼 혼자라는 생각이 나를 따라 다녔고
절망적인 '고국까지의 거리감(Pathos der Distanz)'에
나는 앓고 있었다."
유학 온 어떤 친한 형은 한국에서 미술공부하고, 저녁에 아르바이트 하며
잠 3시간 자면서 학비를 마련해 독일로 왔답니다.
하지만 북독의 혹독한 날씨에 아침에 눈을 떴지만, 기운이 없어 일어나지 못해
그저 천정만 바라본 채 3시간을 그냥 누워 있었다는 얘기는
북쪽 독일의 날씨에서 살아보았다면 누구나 웃으며 공감하는 얘기입니다.
독일을 기억할 때
모두 날씨를 얘기하듯이 저 역시 독일에 처음 도착한 가을날씨가 생각납니다.
갑자기 낯설어진 세상을 만나 그때의 심연 속을 헤매던 느낌과
모든 것이 회색이던 인상은
독일 가기 전에 누구나 전혜린 병을 앓으며 이미 감염되었던 것 같습니다.
학문에 대한 열렬한 몰두와
지식을 파악해 나가는
활자 사이에서 부딪히며 느껴지는 그 순간에 대한 탐닉과 열광
그리고
정체모를 불안과
20대 초반 입속에 달고 다니던 '절망'이란 단어
모두 전혜린의 글에서 동경과 호기심과 더불어 자라와
부전공을 꼭 해야하는 독일에서 독문학과 비교문학을 아무 꺼리낌 없이 선택하게 됩니다.
뮌헨의 마지막 날,
전혜린이 살고 공부했다는 슈바빈 지역의 영국 공원과 뮌헨 대학을 가보기로 합니다.
어제, 눈보라 치던 날씨와는 달리 화창해서
숙소에서 시내 구경도 할 겸 40분 정도 걸어 가기로 합니다.
마리엔 광장 주변에 상설된 시장 Viktualenmarkt 에는
소세지 가게들이 많네요.
가게의 눈길을 끌기 위해 만들어둔 목각 돼지 인형들이 너무 귀엽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생선을 못먹거나 안먹는 사람들이 많은데
요리법도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Nordsee 라는 생선까스 전문점이 전국에 퍼져
생선까스 버거랑 청어 버거, 정말 새우가 끼워져 있는 바케트, 생선과 감자 등등을 파는 곳이 있는데,
여기 뮌헨은 규모가 워낙 커서, 랍스터와 같은 비싼 종류도 여기서 파네요.
독일에서는 애완견은 큰개도 많이 키우지만, 작은 개는 시추나 푸들, 치와와은 잘 안키우고
주로 테리라 불리는 상체는 푸들인데, 다리가 아주 짧은 개를 많이 키웁니다.
정말 귀엽긴 한데, 좀 멍청하다고 하더라구요 ㅎㅎ
한국의 똥개는 거의 보기 힘든데 저도 벼룩시장에서 터키인들이 데리고 온 걸 딱 한번 본적이 있네요.
<귀여운 테리의 윗태 ㅋ>
낮에 본 마리엔 광장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으로 기대하는 유럽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독일관광지가 주로 뮌헨과 하이델베르크 라
스위스 알프스나 오스트리아 빈으로 넘어가기전에 잠깐 들르는 정착지로
한국인 관광객을 다른 도시와는 달리 흔하게 볼 수 있네요.
마리엔광장 북쪽에 있는 뮌헨 국립 극장을 향해 가는 거리입니다.
중심가에 있는 독일 가게나 식당들은 대개 11시 정도 부터 문을 열어
아직 한산한 편입니다.
국립극장 뒷편부터 영국정원의 남쪽 부분이 시작되는 바이에른 주정부 관청이 있는 호프가르텐입니다.
요즘에 동상 따라 찍기 같은것이 유행하는지 ㅋㅋ
관광객들이 모여 사자흉내내며 웅크리고 중간에 동상처럼 저렇게 팔을 펼쳐든다든지,
말탄 장수의 흉내를 내기 위해 여자애들이 서로 업어주는데 밑에 있는 애가 힘이 없어 자꾸 넘어지는 걸 보고
웃겨 죽는 줄 알았습니다. ㅋㅋㅋ
영국공원 옆 미술관을 지나는데, 왠지 춤을 주제로한 현대미술이 전시된 거 같아 잽싸게 들어가 보기로 합니다.
로만 심슨 이라고 흑인 여성의 사회적 정체성을 주제로 한 작가와
멕시코 하층민들의 삶을 형상화 하기 위해
일상에서 쓰는 폐품들로 작품을 만든 아브라함 크르스비예가스 입니다.
아브라함은 2012년 광주 비엔날레 영예상과 양현 미술상도 받았을 정도로 국제적인 활동과
사회적 참여가 많은 작가네요.
근대의 관념적인 이성과 사고를 벗어나 현대의 사상적 흐름은 몸입니다.
몸철학 연구회가 따로 있을 정도로 감성과 육체에 관한 담론은
과거 이성을 맹신해 세계 대전과 산업화의 폐해를 겪었던 과거에 대한 극복을 말하고 있죠.
평론 한번 해볼까요?
우리의 임무는 현실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될 수 없지만 생각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암시들을 창안해 내는 것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리오타르)
현대예술은 레비스트로스의 구조 인류학과 기호학의 영향에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에 의하면 인류의 여러 종족들이 가지고 있는 신화의 특성은 예술에 있어 구현되며
그 예술의 내용을 통해서는 특이한 반복의 원형을 제공한다는데 있습니다.
<원형이란 전형적 또는 반복적 이미지이다. 필자가 뜻하는 원형은 하나의 문학작품을 다른 문학작품과 연결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문학경험을 통일하고 통합하는 상징이다. 그리고 원형은 전달이 가능한 상징이기 때문에, 원형비평은 주로 사회적 사실로서의 그리고 전달의 양식으로서의 문학에 관심을 가진다>. - 노드롭 프라이
노드롭 프라이가 자신의 저서 ‘비평의 해부’에서 원형적이라고 말하듯이 신화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복합적 관념입니다. 신화의 의미와 상징은 잠재된 형식으로서 정치이론으로까지 승화될 수 있는 사회적 계약과 같은 성격을 지니며,
집단의식을 구성하고 한정지우고 있죠.
로만 심슨에게 있어서 흑인의 몸이란 더이상 사회적으로 열등한 것으로 바라봐 지는 것이 아니라,
몸은 금색의 이미지와 어울려 가꾸고 찬양되어지는 존재로 상승됩니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 <한없이 투명한 블루>에서 류와 릴리의 동료들은 흑인들을 불러 함께 노는 장면이 나오는 것처럼,
흑인의 몸은 자연이 준 선물로 많은 작가들에게나 로만심슨 스스로에게도 큰 의미가 부여됩니다.
사회에서 이탈된 모습과 어떤 진정함으로써의 자유를 보여주기 위해
발레의 점프라는 '도약'의 이미지로
로만 심슨에게 나타납니다.
이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새를 죽여야 하지만 한순간에 투명해져 버리는 그런 우아한 곡선을 가진 새를 류는 항상 바라고 있었던 것처럼요.
"나는 지면에 엎드려 새를 기다렸다. 새가 날아와서 따뜻한 빛이 이곳까지 와닿으면 길게 뻗은 나의 그림자가 그 회색빛 새와 파인애플을 감쌀 것이리라."
포스트 모던적 사고에서는 자아를 억압과 소외로부터 해방되기를 기대하는
내적본질로 규정하는 본질주의적인 해방의 모델을 거부합니다.
여러 포스트모던의 이론가들이 제시하는 것은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행위자와
구속하는 사회적인 영역사이의 변증법안에서
기존의 윤리적 질서의 억압구조를 드러내는 것이며,
여기에서 어떤 드러나지 않은
새로운 윤리구조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도약의 이미지는
로만 심슨의 농구하는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업에서도 이어집니다.
하지만 단순히 보여지는 타자가 아닌
사진안에 구도를 드러내는 또 다른 액자를 만듬으로써
이 자체가 의도된 것이라는 것
보는 주체와 보여지는 객체의 관계가 아니라
보여지는 객체가 의도적으로 드러내었기에
또다른 주체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죠.
신이나 사회와 같은 주체가 없어지고, 구조적이면서도,
때로는 무의식적이라고 해석되는 탈인간적인 새로운 인식공간이 나타나면서
비결정적, 변형적, 생산적이라는 새로운 신체를 중심으로 한 자아의 정체성이 구성된 것입니다.
흑인의 성공을 드러내는 농구라는 상징과 원형의 기본적 틀들마저도
하나의 자본주의와 백인들의 단일한 입장이라는 깨우침을 가지고,
새로이 구성된 자아의식으로 흑인들의 감추어진 역사와 사회를 구체화시키려는 것,
깊이 파묻혀 있는 자아의 진리를 해석적으로 추구한다는 점이
포스트모던의 사고에서 근본적인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죠.
“나는 찾으면서 쓴다. 가능한 한 진실되게 가능한 한 정확히 함으로서 이런 찾음이 확실히 지탱되어지게 된다.”
- 크리스타 볼프
여성적 예술은 한 개인의 행위로 읽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에 대한 것을 벗어나서
남성적 권력관계에 사로잡힌 현 사회 구조 너머를 말하는
일종의 진행과정적이며,
그 서술적 주체를 벗어나
그 근원을 드러내는 신화적 진리를 가집니다.
로만 심슨의 머리모양을 장식한 이 그림은
자아적 예술의 장점은 서사라는 체계에 얽매어 있지 않은 채로
여성적 소외나 자기 현실화의 한계와 같은 의식에 관한 주제들이 구체적으로 다루어진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
배경이 없이 진행되고 있는 흐름과 완결되지 않은 여백이 오히려 미래의 여백을 메워나가는 관객과의 주체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지요.
흑인들의 머리카락은 자랄 수록 꼬불어져, 두피를 파고 들어 정말 아프다고 하죠.
그래서 남자들은 머리를 아예 밀어버리거나 여자들은 머리를 땋아 다니는 데
퍼머 같은 걸 해도 워낙 머리결이 강해 하루만 지나면 다 풀어진다고 하죠.
미장원 비용이 비싼 외국에서는
전형적인 머리 말고 자신만의 머리를 가꾸는 것은
흑인들의 꿈이되는데 이를 형상화한 것이죠.
해체는 단지 분열과 파열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이루어나가는 일시적인 퍼트려짐과 구성적 창조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자아의 해체
자아의 창조성과 해체는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구조는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이 삶이 가지고 있는 힘에 의해서
동시에 연결되어지며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포스트모던에서는
이러한 창조나 새로운 가치 발견의 가능성을 여성성에서 찾고 있습니다.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말하고 있듯이
여성성은 의미부여의 과정 속에서 생성되는 것이죠.
그녀에 따르면 여성성이란 모든 육체적 감각을 이루는 모든 표상, 심상과 지각의 벗어남에 있으며,
그러므로 언어로서는 이름지울 수 없으므로, 단지 상징으로 밖에는 나타낼 수 없습니다.
이런 여성성의 표상은 그러기에
그녀의 이론은 이미 고착된 구조주의와 라깡의 정신분석학과 구분됩니다.
이런 상징계는 전혀 멈춰있는 체계가 아니라,
상이한 부분들을 서로 연결하는 과정속에 있고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생물학적 차이에서 오는 결과이자
가부장적 사회로부터의 소외로부터 우연히 여성적 동일성이 형성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로만 심슨의 체스를 두는 본인의 모습을 여러각도에서 해체하여 그려놓은 것은
이런 소외를 같이 겪는 흑인들도 이런 여성성을 공유할 수 있는 생물학적 차이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여성성이 신체적 징후이외에도
음악과 같이 추상화된 채로 미지의 것으로 재해석되어야 하는
남성이 연주하는 재즈 현대음악과도 같이
함께 고민해야 하는 주관성의 형태를 지니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주관성의 발견은
사회 안에서의 상징의 형태와 권력, 언어와의 관계 안에 있습니다.
여성성에 관한 구체적인 적용은
항상 성적인 것과 상징적인 것의 연결에서
결코 전제주의적인 남성성 안에는 녹아들 수 없는 관계 속에서 놀이하는 것이며,
이는 나아가,
특정한 여성성 그리고 결국에는 각각 개별적인 여성들에서 알려지는 것이 되죠.
그러므로 이 남성주의 사회에서 여성이고자 하는 것은
남성중심의 기호와는 것과는 달리 모호하고,
기괴하게 되어지는 것을 믿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암실에서 오랜 시간 체스를 두고 째즈 음악을 듣는 시간과도 같이
기다림과 인내안에서 내 귀와 몸이 반응하는 느낌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는 다는 거죠.
반면 아브라함 크르스비예가스의 작품은 너무나 서민적입니다.
본인의 과거의 기억을 모든 사진을 좋은 액자에 담아 드러내는 로만심슨과 달리
벽에 붙은 흰종이는 액자도 없을 뿐더러
크기만 다를 뿐이지만, 뒷면을 봐야만 사진이 들어 가 있습니다.
이는
감추고 싶어하는 어렵고 동일한 삶을 사는 하층민들의 애환을 그리고 있습니다.
폐가구의 조합으로 그들이 사는 공간과 여유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죠.
레비 스트로스가 말하는 '신화적 사고'와 그 신화적 사고를 사용하는 '손재주꾼'은
시골목수의 작업과 비슷합니다.
신화적 사고의 첫걸음은
'문명된 사회 신화들(구조들)'인 지배하고 다스리는 이데올로기를 사용하여
이미 있던 이데올로기들의 비틀기를 시도합니다.
타자란 일종의 감추어진 세계관이기에 명확히 무엇이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심지어는 맑시즘이나 언어학같은 사회사상이나 학문마저도 이런 조형이 가지는 상징성 앞에서는
그저 이데올로기로서 타자의 역할을 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이렇게 예술에서의 타자, 아브라함 크루스비예가스가 형성화한 낯설지만, 우리에게 친근한 재료들의 조합은
베르그송이 말하는 일종의 직관에 대한 해설을 그대로 보는 듯 합니다.
마치 로빈슨크루소가
섬을 영국식으로 식민지화 하기 위해
가축을 기르고 성을 축조하며
헌법을 만드는 등의 일련의 질서 지우기를 하듯이
새롭게 주체에 의한,
하층민들만의 인식과 미적 공간을 이루어 나갑니다.
하지만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리디 태평양의 끝>에 나오는 로빈슨처럼
우연히 섬안에서 시간을 지배하던 물시계가 멈추어 버림으로써
과학과 기술, 노동과 사회적 야망을 상징하는 세계는 문을 닫아버려
자신만의 세계의 갇혀 버리는 위험에 속할 수도 있기에,
자전거를 끌고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 취재하는 것처럼
사람과의 대화와 공간을 담을려고 하는
아브라함 크루스비예가스의 작업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다.
"어두운 방안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촛불 하나가 어떤 물체는 밝게 비추고 다른 물체들은 어둠 속에 남겨둔다. 그것들은 잠시동안 빛을 받아서 어둠 속에서 솟아났다가 다시 어둠 속으로 녹아든다. 그런데 그들이 빛을 받아 밝아지건 않건 간에 그들의 본질이나 존재는 변함이 없다. 그것들은 빛살이 그들 위에 던져지기 이전에도 그러했고 빛이 비쳐지는 동안이나 그 후에도 여전히 그러할 것이다."
이렇게 소박하게 존재하던 사물들의 움직임은 계속 될 것입니다.
섬에 갇힌 로빈슨에게 스페란자(무인도 이름, 희망이라는 뜻)에 있는
모든 식물들과
모래, 태양들은 대상의 위치에서 벗어나 각각 그에 해당하는 주체를 가지듯이
결국 세계는 송두리째 '나의 영혼속에 흡수되'듯이 새로운 조망을 펼쳐놓습니다.
이렇게 버려진 사물들의 새로운 조합은
더 이상 사물이 아니라 영혼을 가진 여인으로서 그 내밀함을 드러내ㅗ,
이런 결합을 축복해주는 또 다른 타자가 되어 우리를 감싸게 됩니다.
"이정도의 깊이에서는 스페란자의 여성적 본질에는 모성(母性)의 모든 속성이 깃들여 있었다."
"나를 그대 가슴위에 도장처럼 찍으시라.
그대 팔 위에 도장처럼 찍으시라.
사랑은 죽음처럼 강한 것이기에!"
그곳에 사는 인디언들인 아로캉족의 희생제물이 될 뻔하다가
로빈슨의 실수로 목숨을 구하여 그의 노예가 된 방드르디(영어로 프라이데이, 금요일)는 로빈슨이 인식하지 못한 모든 신비를 가진 자연의 화신이 되는 것처럼,
아브라함 크루스비예가스의 작업도 자본주의 굴레에서 만난 이런 찌꺼기들의 조합들에서
아직은 우리가 알아야할 인간적인 도구와 자연의 활용, 즉 죽음과 재생을 그 모티브로 고스란히 가지고 있습니다.
구조주의에서는 역사의 발전보다는 순환과 원형의 발견을 하고있죠.
아브라함 크루스바이예스의 작업도 서민들이 쓰는 사물안에 담겨진 미적 원형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의 큰 냄비는 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어떤 사람도 그 속에 어떤 것을 첨가할 수 없는 것이다”
영국식의 정원은 같은 섬나라 라서 그런지 몰라도
대륙적인 광활함이나 탁 트임 보다는 아기자기한 일본식 정원을 닮아 있습니다.
라이프니츠와 같은 기하학적으로 꽉 짜여진 프랑스식 정원에 비하여
원래 흄이나 베이컨과 같은 경험론자들의 나라인 영국에서는
자연의 지형을 중시하여 연못, 수목의 불규칙 ∙ 비대칭적인 배치를 합니다.
우리 안에 기쁨, 슬픔, 공포, 질투 등이 섞여 있어
언제든 이런 감정이 되살아나와 또다른 나가 되는 것처럼
드문드문 서있는 자연적인 수목,
불규칙한 곡선의 윤곽을 드러내며 휘감아 흐르는 호수(사펜타인이라 함)를 배치해서
영국인이 이상으로 하는 자연을 가장 인간다운 경험이 담겨지도록 표현하는 것이죠.
공원은 비슷한 길이 몇군데나 있어
어딘가 모르게 차이를 만들어내는 우리의 마음의 구조를 닮아 있습니다.
20대에 봤던 가장 인상깊은 영화 중 하나인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
가장 구조주의 적인 영화라고도 일컫는 그 영화는
건축사가 집안의 재산을 노리는 모녀와 관계를 가지지만,
결국 다른 친척 귀족들에게 살해당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습니다.
건축사가 그리는 그림들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이 그렇게 분할 될 수 있고,
건축사를 이용해 아기를 가져서, 죽은 백작의 재산을 독차지 하려 하지만,
모녀 모두 정상적으로 임신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은 인간의 모습이 상실됨을 상징합니다.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대칭적 구도와
등장 귀족들이 모두 가발과 멋진 옷들을 입고서 등장하는 것
미로와 같이 얽혀 있는 영국식 정원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진정한 인간의 내면을 본다기 보다는
철저히 구조적인 원형안에서 움직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바로 가상이 현실이 되는 세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죽음이죠.
영화처럼
여기 여름에는 숲이 꽤나 울창해져서 곳곳에 FKK (나체촌) 도 형성된다고 합니다.
여름에 다시 와야 ㅋ
백인들은 아시아 사람들이랑 피부가 달라서, 햇빛을 쐬어주지 않으면 금방 피부병이 생기는 체질이라,
이런 문화도 생긴데요.
영국 정원을 나와 슈바빙 주변 거리를 걷기 시작합니다.
가난한 학생들 거리라는 옛날 글과는 달리
로펌과 회계법인이 몰려 있고
예쁜 카페와 고급주택가처럼 큰 집이 많습니다.
어셔가처럼 쓰러져 가는 전혜린이 살았던 집은 재개발 들어가 지금은 새집으로 바뀌었나 봅니다. ㅋ
대학 건물바로 옆에 있는 싼 카페 전문점이 있는 골목길입니다.
가게나 백화점 회사 등등 너무 상업화 되었다는 느낌이 강해 실망하며 걷고 있었는데..그나마 대학가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네요.
슈바빙 거리의 상징인 하얀 거대 철조물과 좌우로 늘어선 길이
유명한 문화 예술의 거리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 형형색색의 슈바빙의 족속은 근본적으로 보아서 한 오해 또는 참된 예술의 어떤 캐리커처일 것이다. 그러나 사무실과 공장과 스케줄과 실험실 속에서 6일과 8일을 보내는 시민들에게 특이한 것에의 예감, 자유의 향기와 같은 것을 가져다 주는 것이 종종 기괴한 이방인들, 피에로 방랑인, 집시 등인 것처럼, 슈바빙 가의 무위와 허영과 천재연한 태도 속에서도 거부할 수 없이 풍기며
평상인에게도 향수를 느끼게 하는 것은 바로 ‘자유’인 것 같다.
그들의 속과 주위에는 무제한한 자유가 있다. 무위에의 자유, 천재적 착상과 인스피레이션에의 자유, 그리고 돈과 기차 시간표, 착한 시민 근성, 인습과 타협으로부터의 자유가 그것이다.
슈바빙 가는 아마 마지막의 개인주의자이며 생활예술가인 것 같다. 사람들이 많이 얘기만 하고 있는 ‘정신의 자유’를 그들은 맨주먹으로 강행해 보고 있는 것이다.
–전혜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852년에 세워진 개선문입니다 대학 건물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죠.
꼭대기에 뮌헨 왕가의 상징인 사자가 보입니다.
튀빙엔도 그런 곳이 있는데, 2차대전 중 폭격 맞은 곳을 완전히 복구하지 않고
전쟁의 상처를 기억하자는 의미로 내버려 두고 있다네요.
뮌헨 대학 건물은 두개로 크게 나누어 집니다.
2차대전 당시 반 나치 운동에 참여한 숄 오누이와 그들을 후원한 교수인 후버 교수의 이름을 따서
숄 광장과 후버 교수 광장 으로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습니다.
후버교수 쪽 건물은 주로 법대가 쓰고
숄 건물은 다른 인문사회학과들이 나누어 쓰고 있습니다.
독일대학은 평준화 되어 사실 랭킹을 따지는게 무의미 하긴 하지만,
그래도 학생들의 취업률이나 교수의 명성, 학교의 지원이나 학생의 공부역량 등등을 고려했을 때
뮌헨대학은 항상 5위권안에 드는 명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학생수도 6만명 정도로 엄청 많네요.
지금은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뮌헨대학에서는 독문학을 할 때, 외국인도 알짜루 없이
고대, 중세 독일어 시험을 이수해야 해서,
이거 한국가서 써먹지도 못하는데, 유학생들이 몇년씩 고생하는 과목이라도 하더라구요.
암튼 라틴어 시험이나 독일 어학시험도 그렇구
가장 높은 난이도로 출제한다고 소문이 자자한 뮌헨대학입니다.
그래서 졸업하면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다고 인정하는 곳 중 하나입니다.
첫댓글 귀국길이 며칠 안남았네. 물가 비싼 뮌헨에서 밥은 잘 먹고 다니나 몰라. 세계 여기저기 다녀봐도 부에노스 바깥에서는 서울이 탱고 추기로 최상위권에 속한다. 몇년더 지나서 땅게로스들의 토대가 더 튼튼해진다면 정말 최고겠지/
아톰님~ 잘 지내시죠? 눈팅만 하다가 여행기 쓸때 세상 사람들이 댓글을 쓰는 부류와 그렇지 않은 두 부류로 나뉜다는 첫 글에 콕 찔려서 흔적 남겨요. 글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어여 돌아오세요~~^^
기다리던 뮌헨소식!
십여년 전 부푼 꿈을 안고 전혜린병에 걸려 뮌헨을 헤집던, 아시아의 작은 여학생인 제 모습이 기억나네요.
단 며칠이었지만.
책으로 발행하셔되될듯합니다...침밀한 구성...탄탄한 문장력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