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지(蘭芝)생명길 절두산(切頭山)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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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친구와 함께 서울시 마포구(麻浦區) 난지 새생명길 2코스 절두산(切頭山) 산행을 한다.
난지도(蘭芝島)는 북한산 남서쪽 에서 흘러내리는 불광천 과 남동쪽 에에서 흘러 내린 홍제천의 물줄기가
퇴적물을 형성 해서 만들어진 섬 이다. 섬 이름은 오리가 물에 떠 있는 모습과 비슷 하다 하여 오리섬 또는
압도(鴨島)로 불리어 왔으며 난초(蘭草)와 지초(芝草)가 지천으로 난지도(蘭芝島)라 불려졌던 이름처럼
철따라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수많은 철새들이 찾아오는 생태의 보고였다.
이처럼 아름다웠던 난지도는 지금 우리 머리에 각인된 이미지와는 너무나 차이 나는 곳이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섬은 한강 변에 둑을 쌓고 1978년 서울의 쓰레기 매립장으로 지정된 이후 15년간
무려 9,200만 톤의 쓰레기가 쌓여 높이 100m에 가까운 거대한 두 개의 산으로 변모하였다.
쓰레기의 반입이 중단되고 메탄 가스와 침출수 등으로 환경이 악화되면서 난지도 매립지는 생물이 살 수 없는
곳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자 점차 생태계가 살아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난지도 매립지에서는
환경오염 방지를 위한 안정화공사가 2020년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난지 생명길은 쓰레기 매립장 자리 라는 오명을 벗고 도심속 생태공원 으로 조성하고 있다. 월드컵 공원으로
불리는 생태공원은 평화의 공원ㆍ난지천공원ㆍ난지한강공원ㆍ노을공원ㆍ하늘공원 등의 테마 공원으로 조성
되고 있으며, 이중 난지도 매립지에 해당하는 부분은 노을공원과 하늘공원이다.
마포 난지 생명길'은 지난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 사업'에 응모해 선정이
되었다. 두 코스로 나눠졌으며 월드컵 공원 일대를 비롯하여 한강 공원을 중심으로 짜였다.
1코스는 월드컵 경기장을 시작으로 월드컵공원, 매봉산을 거쳐 되돌아오는 15.8㎞ 구간이다. 공원을 오르
내리는 과정이 이어지는 때문에 산책 그 이상의 체력과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환경과 입지가 좋은 편이다.
2코스는 한강변을 따라 양화진 나루터, 절두산 성지, 밤섬, 삼개포구, 토정 이지함 생가터, 마포종점 으로
이어지는 6.5㎞ 구간 으로'외국인 선교사 묘지'와 '절두산 가톨릭 성지'에서는 우리나라 근세의 역사를 배울
수 있고, 한강을 따라 걷는 길에서 아름다운 서울의 모습을 감상하는 것은 물론, 지금의 여러 다리가 놓이기
전 존재했던 많은 나루터들과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마포는 옛날 수상교통의 요충지로 삼남지방에서 올라오는 곡물을 저장하는 수많은 창고가 있었고 일찍부터
어촌이 발달되었었다. 일찍이 삼포(三浦. 3개의 포구)라고 불렀던 포구 이름을 한자명으로 옮겨 적어 지금의
마포{麻浦)라고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만큼 한강을 요충지로 했던 마포의 역사와 문화를 한강변을 따라
거닐어 보며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매력의 길이다.
산행 사진이 이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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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역 8번 출구 나와 망원 한강 공원 망원정터 방향 으로 산행을 시작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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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정몽주 선생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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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 사거리 한강 소공원
우리는 지하철 2호선,6호선 합정역 8번 출구 에서 09:30 만나 한강 망원공원 정몽주 선생 동상을 지나
망원 사거리 한강소공원 에서 좌측 한강 방향으로 산행을 시작 한다.
합정동(合井洞)은 마포구 합정동에 있던 마을로서, 조개 우물이 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조개우물(蛤井)은 지금의 절두산 순교기념관이 세워진 근방에 있었다. 처형장이던 이곳에서 망나니들이
사형도구로 쓰는 칼을 갈고 물을 품기 위해서 팠던 우물이다.우물바닥에 조개껍질이 많아서 조개우물로
불렀다. 역명(驛名)은 동명에 따라 지하철 개통 때 합정역(合井驛)으로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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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정 마당 진입 전 보호수
망원정 마당 에서 좌측 망원정 으로 진입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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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정 앞이 도로와 접해 있어 마치 정자 뒤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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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로쪽 전면 처마 아래 에는 '먼 경치도 잘 볼 수 있다'는 뜻으로 망원정(望遠亭) 현판을.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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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내부 에는 희우정(喜雨亭)현판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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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정 (희우정)에 올라 바라본 한강변 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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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정 (희우정)에 올라 바라본 한강변 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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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정 전면이 강북로와 바로 접해 있어 건물뒤 뒤 협문을 세워 출입 통로로 활용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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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정 뒤편에 위치한 관리 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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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정 (희우정)을 돌아 보고 망원정 마당 으로 다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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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정(望遠亭)에 도착 한다.망원정(望遠亭)은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망원정 자리는 원래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세종 6년(1424)에 별서(別墅)를 마련하고 약간의
농사도 지으며 강상(江上)의 물결을 즐기던 곳이었다.
세종7년(1425) 가뭄이 계속되자 농민의 삶을 살피기 위해 세종이 마포 효령대군의 새 정자에 올랐는데,
때마침 비가 내려 온 들판을 흡족하게 적시니 매우 기뻐하며 정자 이름을 '희우정(喜雨亭)'이라고 지어
주었다고 한다. 세종은 그 후로도 수차 희우정에 들러 서교(西郊)에서 벌이는 군사들의 방포· 말타기·
활쏘기 등 훈련을 친히 사열하고, 시를 짓고 그림도 그리게 하였다.
그 후 성종 15년(1484) 성종의 형 월산대군이 퇴락한 희우정을 효령대군으로부터 얻어 고쳐 짓자 성종이
망원정(望遠亭)'으로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망원정은 정자에 오르면 멀리 산과 강을 잇는 경치를
잘 바라 볼 수 있음을 뜻한다.
망원정(望遠亭)은 1925년(을축년) 대홍수로 유실되었고. 망원정지(望遠亭址)는 지금 강변북로가 되었으며,
주변 일대에는 주택가가 조성되었다. 서울시에서는 1987년 정자터를 발굴하고,1989년 7월 정자를 재건했다.
경사진 언덕에 선 이 정자는 전면은 장초석(長礎石/긴 추춧돌),후면은 일반 초석(礎石/보통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원기둥을 세우고, 누각(樓閣)형식으로 재건 팔작지붕에 단청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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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 배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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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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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정을 돌아 나와 망원원정 마당 에서 욍단 보도를 건너 망원 배수문을 지나 망원 한강 공원 으로
산행을 이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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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 한강 공원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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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민의 대표적인 휴식공간인 한강시민공원 중 망원한강공원은 원효대교와 성산대교 사이
강변북단에 있으며 마포구와 인접하고 있다.둔치에는 잔디밭과 산책로 등의 휴식공간이 잘 조성되어
있으며, 월드컵경기장이 있는 부근과 함께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고수부지의 폭이 넓은 편으로
자전거도로, 야외수영장 등의 시민들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과 운동시설이 마련되었다. 수상에서는
요트를 비롯한 수상스키, 모터보트 등 수상레져를 즐길 수 있는 선착장이 있다. 또한, 망원한강공원
주변에는 망원정(望遠亭), 절두산 성지(切頭山 聖地) 등의 문화유적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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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수변길 따라 양화대교 방향 으로 산행을 이어 간다.양화대교를 도보로 건너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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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 대교 위에서 바라본 망원 한강 공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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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 대교 위에서 바라본 잠두봉 절두산 복자 기념 성당 종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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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 대교 위에서 바라본 성산 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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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 대교 위에서 바라본 서울 선유도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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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 대교 위에서 바라본 당산 철교 뒤 잠두봉 절두산 복자 기념 성당
양화대교(楊花大橋)는 마포구 합정동 과 영등포구 당산동을 연결하는 한강상의 다리이다. 서울도심에서
서부지역으로의 교통량이 증가하면서 한강대교만으로는 교통량을 감당하기 어려워 한강 하류에 다리를
가설하고 제2한강교라고 하였다.
이후 한강종합개발계획이 시행될 때 다리 이름을 변경하였는데, 조선시대 양화나루가 있었기 때문에
양화대교라고 하였다. 폭 17m, 길이 1,048m 경간 수 42개로 1962년 6월 20일 착공하여 1965년 1월 25일
(주)현대건설과 삼부토건이 준공하였다.
1979년 1월에 이르러 양화대교의 극심한 교통량을 해소하기 위하여 신교의 가설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 결과 1982년 2월 25일 원래 있는 양화대교에서 한강 상류쪽으로 양화대교 신교를 가설하였다.
다리 이름은 새로 짓지 않고 기존의 양화대교와 붙어 있어 그대로 양화대교라고 하였다. 폭 16.25m,
길이 1,053m, 경간 수 36개로 (주)현대건설과 삼부토건에 의해 가설되었다. 기존 양화대교는 노후화되어
안전진단을 거쳐 2000년 6월 25일 성능을 개선하였다. 그후 2002년 8월 14일 보수 보강공사를 실시하였다.
합정동 에서 당산동 방향으로 건너니 서울 선유도 공원 이다.선유도 공원 입구 에서 되돌아 합정동 으로
되돌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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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동 쪽 양화 대교 망원 한강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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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두봉 선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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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 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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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楊花津)에 도착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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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楊花津) 나루터에서 올려 본 절두산 점두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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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철교 밑 절두산 점두봉 복자 기념 성당 입구
양화나루 또는 양화진(楊花津)에 도착 한다.양화대교 북단에 있던 나루터로서, 양화도(楊花渡)라고도
하였는데, 조선 시대 삼진(三鎭)의 하나였던 양화진(楊花鎭)이 위치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양천(陽川)을 지나 강화로 가는 조선 시대 주요 간선 도로상에 위치하였던 교통의 요지였으며,
삼남 지방에서 한강을 통하여 운송되어 오는 곡식을 저장하던 오강 중의 하나로 농산물의 재분배 기능을
담당하던 중요 지역이었다.
양화도에서 보유한 진선은 10척 내외의 관선과 이와 별도로 사선의 나룻배도 있었다. 양화도 일대 역시
경치가 좋아서 중국의 사신이 오면 종종 이곳에서 선유를 베풀었으며, 사대부들의 별장도 많았다고 한다
당산철교 밑 계단을 통해 절두산 점두봉 복자 기념 성당 으로 산행을 이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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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토릭 순교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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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두산 점두봉 복자 기념 성당 과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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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두산 순교 성지 에 도착 한다.
마포구 양화도 동쪽 한강변에 우뚝 솟은 봉우리로 모양이 누에가 머리를 든 것 같기도 하고 용의 머리
같기도 하다고 해서 점두봉(蠶頭峰) 또는 용두봉(龍頭峰)이라 하였다.이곳은 예로부터 풍류객들이 산수를
즐기고 나룻객들이 그늘을 찾던 한가롭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도성에서 김포에 이르는 나루터 양화진(楊花津)을 끼고 있어 더욱 명승을 이루었던 곳으로,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꼭 유람선을 띄웠다고 전해져 온다.
잠두(蠶頭) 또는 용두(龍頭)로 불리던 서강(西江) 밖의 봉우리가 절두산(切頭山)이 된 데에는 가슴 시린
아픔이 있다.병인년인 1866년 프랑스 함대가 양화진(楊花津)까지 침입해 오자 대원군은 “양이(洋夷)로
더럽혀진 한강 물을 서학(西學)의 무리들의 피로 씻어야 한다며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웠으며 이와 함께
수많은 교인들을 붙잡아 양화진(楊花津)근처의 이 산봉우리에서 목을 잘랐다고 하는 데서 비롯 되었다.
절두산에서 가장 먼저 순교한 사람은 이의송(李義松)으로 1866년 10월 22일 부인·아들과 함께 처형당했다.
그후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까지 헤아려 천주교측에서는 약 1만 명가량의 순교자가 이곳에서 처형당했다고
한다. 특히 선참후계(先斬後啓)즉 ‘먼저 자르고 본다.’는 식으로 무명의 순교자들이 아무런 재판의 형식이나
절차도 없이 광기 어린 칼 아래 머리를 떨구었고, 그래서 29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기록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1966년 10월 병인박해 100주년을 기념해 그 옛날 수많은 순교자들이 목을 떨구었던 바로 그 자리에
병인박해 100주년 기념성당과 순교 기념관(현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건립을 시작해 이듬해 10월
봉헌식을 가졌다. 무심히 흐르는 한강물 속에 애달픈 사연들은 기념관이 서고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머무르면서 오늘날에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
우뚝 솟은 벼랑 위에 3층으로 세워진 기념관은 우리 전통 문화와 순교자들의 고난을 대변해 준다.
접시 모양의 지붕은 옛날 선비들이 전통적으로 의관을 갖출 때 머리에 쓰는 갓을, 구멍을 갖고 있는
수직의 벽은 순교자들의 목에 채워졌던 목칼을, 그리고 지붕 위에서 내려뜨려진 사슬은 족쇄를 상징한다.
절두산 순교자 기념성당 지하의 성해실. 27위의 성인과 1위의 무명 순교자 유해가 모셔져 있다.웅장하게
세워진 절두산 기념관은 순례성당과 순교 성인 27위와 1위의 무명 순교자 유해를 모신 지하 성해실, 그리고
한국 교회의 발자취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수많은 자료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관이 있다.
절두산 점두봉 복자 기념 성당 과 성지를 둘러 보고 당인리 발전소 방향 으로 산행을 이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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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인리 화력 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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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인리 발전소 옆을 지난다.
서울화력발전소(火力發電所, Seoul Power Station)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당인동에 있는 화력 발전소로,
한국중부발전에서 운영하고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화력 발전소라는 데에 의의가 있으며, 2013년에는
세계 최초로 지하화 공사에 착공하였다. 이 발전소의 수송을 위해 당인리선이라는 철도 노선이 생기기도
했으나, 지금은 폐지되었다.
서울화력발전소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화력발전소로 수도권 전력보급과 근대산업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발전소로 보존가치가 있음을 인정받아 2013년 서울 미래유산으로 등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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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섬과 여의도 사이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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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너 여의도 앞으로 길게 밤섬이 모습을 드러 낸다
밤섬은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과 마포구 당인동 사이의 한강에 있는 섬으로 섬의 형세가 마치
밤알을 까놓은 것처럼 생겼다 하여 밤섬 한자어로는 율도(栗島)로 표기되는 섬 이다.
기반암은 단단한 바위층이고, 섬의 동부와 서부의 하식애(河蝕崖;하천의 침식작용 등으로 인하여
생긴 절벽은 소금강, 즉 '작은 해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경관이 아름다웠다고 한다. 이 섬은 1968년
폭파되었으나 그 후 한강의 퇴적물에 의하여 현재와 같은 철새도래지가 되었다고 한다.
"동국여지비고" 기록에 의하면. 율주(栗州)와 나의주(羅衣洲)로 기록되어 있다. 율주는 밤섬이고,
나의주는 여의도이다.
율주(栗州)를 율도(栗島)라고도 하며. 마포 남쪽에 있고 나라 소유유의 뽕밭이 있는데 내의원(內醫院;/
조선시대 궁중의 의약을 맡은 관청)에 속한다.
나의주(羅衣洲))는 잉화도(仍火島)라고도 하며 도성 서쪽 15리에 있는데, 서강 남쪽이다. 밤섬과 서로
잇닿아 있는데, 장마가 되면 끊어져 둘이 된다. 옛날에는 목장이 있어서, 감독하는 관원을 보냈으나 후에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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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 나들목 앞 삼개포구 이다.
삼개포구는 용호(龍湖) 서호(西湖) 마호(麻湖)의 옛이름이다.삼개는 섬개를 말한다.섬개는
섬이 있는 갯벌 이라는 뜻 이다.서울의 중서부 한강연안에 위치하여 안산에서 갈라진 와우산
구릉산맥과 노고산 구릉산맥, 용산 구릉산맥이 한강으로 뻗어 세 산맥연안에 호수처럼 발달한
서호, 마포, 용호가 있었는데, 이 세 호를 삼개(三浦·3개의 포구)라고 불렀고, 삼개중 지금의
마포를 마포강, 마포항 등으로 불렀다.
마포(麻浦)는 삼밭이 있었던 강가라 해서 붙혀진 이름이다. 마포는 단순히 나루터로서의 생활
문화가 아닌 향략과 무속(巫俗)문화까지 지녔던 곳이다. 한강에는 여러 나루가 많았으나 그중
마포가 왕궁이 있는 장안 중심과 가깝고 운반로도 편리 해서 전국에서 몰려온 많은 물산들이
이 나루에 하역되었다.
예로 부터 삼남지방에서 올라오는 곡물들을 실은 수상교통의 요지인지라 이를 저장하는
경창 (京倉)있었고, 조기, 새우젓을 비롯한 수산물의 주거래처로 이용되었다.
마포는 조선전기부터 수상교통의 요지로서 서울로 들어오는 세곡은 조운에 의하여 운반하였는데
삼남지방의 세곡은 남해나 황해를 거쳐 한강을 거슬러 올라와서 마포, 서강, 용산 등에 산재한 창고에
보관하였다.
또한, 마포는 전국의 농수산물의 집산지였으며 수백척의 어염상선으로 붐벼 항상 활기를 띠었고 포구
문화가 번성했던 고장이다.특히, 마포강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강변경치를 가져 조선초부터 풍류시객이
몰려들었고 마포강을 이름하여 마호(麻湖) 또는 삼호(三湖)라 부르기도 했다.
서울시에서는 89년도에 자연석 화강암으로 된 "삼개포구"라는 기념표석을 토정동 용강아파트 앞에
세웠는데 비문에 "황해를 거쳐 서울로 들어오던 문화집산의 포구"라고 새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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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 나들목을 통과 왼쪽 방향 아파트 단지 어린 놀이터 에 토정 이지함 생가터기 있다.
이지함(李之函)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다. 본관은 한산이며, 호는 토정(土亭)·수산(水山)이다.
출생지는 보령이다. 사헌부 감찰, 우봉현령을 지낸 이치의 아들이며, 친형 성암 이지번의 문인이다.
'토정(土亭)·'이라는 호는 그가 마포 나루에 자기가 사는 집을 흙으로 쌓고 그 위를 평평하게 해서
정자를 지은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선생 집터 마포나루의 토정길에 토정 이지함선생의 동상이 있다.
이 곳은 옛날 이지함이 마포 강변 이였던 이 근방 흙담 움막집에서 청빈하게 생애의 대부분을 지내며
뭇 백성들과 아픔을 이 하였던 곳이라고 한다.
이지함은 맏형인 이지번과 개성의 서경덕으로부터도 글을 배웠다고 한다.
이지함은 토정비결과 평생에 걸쳐 전국의 산천을 두루 다니며 명당과 길지를 점지하였으며 ‘농아집’을
저술하여 어진자에게 전하여 난을 구제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당대 성리학의 대가 조식이 마포로 찾아와 그를 도연명에 비유하였다는 이야기도 유명하다. 이런 역사의
이야기와 얼이 살아 숨쉬는 이곳엔 선생의 생가터가 지금은 아파트 단지내에 조그마한 비석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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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에서 전차가 들어오던 종점이다.옛 노랫말 과는 너무도 많이 변했다.아파트로 꽉 들어차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옛 마포종점 터를 모르고 있다.지금은 마포종점 표석과 노래비만
남아 있을 분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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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종점 에서 마포역 으로 이동 마포역 1번 출구 앞 마포갈비 원조 식당에 들려 마포 갈비에
소주 한잔과 식사를 하고 귀가길을 재촉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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