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로마서 13:11~14)
1992년에 개봉한 <흐르는 강물처럼>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전 시카고대학 교수인 노먼 맥클레인(1902~1990)이 자신의 가족사를 토대로 1976년에
시카고대학 출판부에서 펴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나, 영화는 그다지 크게 흥행하지 못했습니다.
1900년대 초, 스코틀랜드 출신 장로교 목사인 리버런드 맥클레인은 몬타주 강가의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아내와 두 아들 노먼과 폴과 함께 강에서 플라이낚시를 즐기며 삽니다. 신중하고
지적인 노먼과 동적이고 자유분방한 폴은 어린 시절부터 기질이 다릅니다. 영화는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족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줍니다. 후에 작은아들 폴이 불의의 사고로 죽고,
가족은 슬픔에 잠깁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노먼은 강물처럼 흘러간 세월과 함께 흘러온
가족사를 회상하며 깊은 상념에 잠깁니다.
시간은 흐르는 강물과 같습니다. 인생도 시간과 함께 흐릅니다. 인생은 시간과 함께 그 모습이
끊임없이 변해갑니다. 아기가 어린이가 되고, 어린이가 청소년이 되고, 그 후 청년, 중장년을 거쳐
하류인 노년기를 맞습니다. 그 후엔 바다라고 할 하나님의 품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바쁘게 살면서 시간의 흐름을 잊기 쉽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예민하게 깨닫고 반응하는 데 인생의
지혜가 있습니다. 모세는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편 90:12)라고 기도했습니다.
우선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즉 시간의 포착이 중요합니다.
시간의 흐름은 눈에 보이지 않는듯 하지만 종종 그 흐름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주일 1부 예배부터 찬양 예배까지 드리는 동안 강단 꽃을 통해 시간을 느낍니다.
1부 예배 때는 봉오리였던 꽃이 3부 예배 즈음에는 약간 벌어지더니, 찬양 예배 시간에는 상당히
벌어집니다. 그러다가 수요기도회 무렵에 활짝 피어있던 꽃은 금요기도회 때면 이미 시들어갑니다
꽃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봅니다.
시간의 흐름을 포착하는 것은 경건한 긴장을 가져옵니다. 그 흐름은 언젠가 우리를 마지막 시간
앞에 세울 것입니다. 인생의 유한함과 그 소중함을 깨닫게합니다. 그래서 스쳐가는 순간이
눈물겹도록 귀합니다. 다윗은 시편 144편 4절에서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라고 했는데, 유대인들은 이 그림자를 '새의 그림자'라고 했습니다. 새가 날아가면서 남기는
그림자는 얼마나 순간적일까요 인생이 그렇다는 말이겠습니다.
또 시간은 해석을 요구합니다. 시간은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눈을 떠서 새벽임을 알았다면,
그다음에는 해석이 필요합니다. 즉, 새벽이 요구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새벽은 새로운 날이
되었으니 일어나라고 속삭입니다. 이게 해석입니다. 해가 중천에 떠도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다면
시간을 잘못 해석하는 것입니다. 청년일 때, 중년일 때, 노년일 때,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는지에 따라 인생의 내용이 결정됩니다.
지난 2천여 년의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걸출한 그리스도인 중 한 명인 아우구스티누스(354~430)
는 영혼의 갈등이 심하던 어느 날 아이들의 노랫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들어서 읽으라, 들어서
읽으라, tole lege! tole lege!"라는 노래 가사를 듣고 충동적으로 집에 들어가 펼쳐진 책을
읽었는데, 그 말씀이 로마서 13장 11절 이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그는
자신이 깰 때가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이 일로 인해 깊은 영혼의 잠에서 깨어 일어나 하나님의
아들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2024년도 거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몇달을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볼 때입니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늠해 볼 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현재라는 시간을 해석해야
합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흐르는 시간을 포착하는 일, 그리고 해석하는 일에
실패한다면, 결국에는 인생을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시간은 행동을 촉구합니다. 깰 때가 되었다는 해석을 얻었다면, 이젠 떨쳐 일어나야 합니다.
아름다운 결단과 행동은 시간을 빛나게 만들 것이고, 인생도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고, 하루하루를 의미 있는 날로 살길 원합니다.
- 김운성 위임목사님, 영락교회 발간 월간 ‘만남’ 24년 6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