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장인과 사위
금씨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이름을 알리고 나서 군유명 쪽 여섯 명의 고수들 역시 군유명에 의해서 하나하나 상대방에게 소개 되었다.
소개가 끝나자 금괴는 군유명의 쪽으로 다가와 그의 팔짱을 끼고는 매우 다정하게 어깨를 나란히 해서 선족애 쪽으로 걸어가게 되었고 나머지의 사람들은 줄레줄레 그 뒤를 따라서 걸었다.
금괴는 한편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겨 놓으면서 시원스럽게 말했다.
『며칠 전 노부는 딸년의 친필로 쓴 서찰을 받고 읽어본 끝에 실로 속으로 그 애를 위해 식은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소. 이 계집애가 아주 대담하게스리 소형(少兄)의 위엄을 거스르게 될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소. 만약에 소형이 너그러운 아량을 베풀어주지 않았더라면 그 계집애가 지금까지 어떻게 그 작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겠소? 정말 멍청하고 진정으로 황당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구려!』
군유명은 겸손한 얼굴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당가께서는 지나친 걱정이십니다. 당가의 천금으로 말하면 인물이 빼어날 뿐만 아니라 안으로 슬기가 가득 찬가 하면 총명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오. 다만 일시 살피지 못하고 간악한 사람들에게 속임을 당하고 교사를 받은 나머지 경솔하게 그와 같이 되먹지 못한 행동을 하게 되었고 불초와 오해를 빚게 된 것이죠. 그러나 그와 같은 매듭을 풀어놓기만 한다면 모두들 더욱더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되지요…』
금괴는 껄껄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솔직히 말해서 저 애에게는 어느 정도 장기가 있다오. 오직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그 애는 하늘이 얼마나 높고 땅이 얼마나 두터운지를 모르고 마구 방자하게 날뛸 뿐만 아니라 금씨 집안의 자제들이 천하무적인 줄 알고 있소이다. 그러나 그 애는 금씨 집안의 기둥이 제아무리 튼튼하다고 해도 천하의 영웅인 마존 군유명과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천지차이가 나는 것이 확연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소이다.』
군유명은 미미하게 허리를 구부렸다.
『그와 같이 높이 사주시니 불초는 정말 감당하기가 어렵소이다. 당가, 불초는 아직까지 따님이 집으로 보낸 서찰 안에 그와 같은 자질구레한 일들을 언급했는지 모르고 있었지요. 지나간 것은 이미 과거사가 되었는데 기억할 필요가 어디 있겠소이까?』
금괴는 고개를 끄덕이며 옆으로 군유명을 바라보면서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군 소형, 우리들은 피차 모두 다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오. 모두들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솔직히 말하는 것이 좋겠구려. 금미라는 저 애가 노부에게 쓴 편지에 이미 그 애가 어떻게 해서 군 소형에게 죄를 지었으며 군 소형이 어떻게 그 애를 용서했는지 간단히 언급했을 뿐이오. 자세하게 좀 모두 상세히 이야기해 주시구려. 노부는 한편으로 편지를 보면서 또 한편으로 솜털이 곤두서는 듯했소. 소형, 소형이 강호 도상에서 그야말로 심보가 매섭고 수법이 악독하며 적을 칠 때에는 무자비할 정도로 사정을 두지 않는다고 이름이 나 있소. 노부의 저 애가 그렇게 소형의 위엄을 거슬렸는데도 소형은 여전히 그 애를 용서해 주었으니 그 은혜를 소형, 비단 저 애 혼자만 영원히 잊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우리 금씨 집안의 늙고 젊은 주종들도 한평생 틀림없이 고마워할 것이오!』
그는 군유명이 입을 여는 것을 막고는 다시 말했다.
『이번과 같은 깊은 원한을, 소형, 노부 자신이라고 하더라도 정말 참고 견딜 수가 없는 시련을 당하고 모든 간악한 도배들과 도적들을 한 칼 한 칼에 주살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외다. 그런데도 소형은 최후의 순간에 이르러 금미의 한 목숨을 살려주었으니 그와같은 품도와 그와같은 마음 씀씀이에 대해서 노부 역시 뒤따르지 못한다고 부끄럽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구려!』
재차 그는 함축된 시선으로 군유명을 한 번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소형, 그와 같은 작풍은 결코 소형의 평소의 방법 같지는 않더구려!』
군유명은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따지고 보면 매우 간단한 것이지요. 당가, 따님이 그 좀도적들과 달랐기 때문이지요.』
금괴는 짙은 눈썹을 가볍게 치켜올리며 의아한 어조로 물었다.
『무엇이 다르다는 것이오?』
군유명은 한 쪽에서 따라오는 금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마침 금미 역시도 정히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네 개의 시선이 마주치게 되었을 적에 군유명은 입술을 다물고 씩 웃어보였고 금미는 기뻐하면서도 여전히 부끄러운 듯 얼굴을 푹 숙였다.
이 모든 광경을 세상 일에 대해서 환하고 온갖 풍상을 겪은 금괴는 자연히 보고 분명히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짐짓 알아차리지 못한 표정을 하고는 다시 다그치듯 물었다.
『소형, 어떤 점이 다르다는 말이오?』
군유명은 탄성을 발하며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 당가, 따님은 충간(忠奸)의 구분할 줄 알고 시비(是非)를 가릴 줄 알았으며 흑백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알았죠. 뿐만 아니라 양심이 남아 있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그 흉악한 자들과 비교해 볼 때 똑같이 논할 수가 없었지요. 그녀가 일시 실수하여 잘못을 저질렀다 해서 어찌 차마 한 칼로 죽여 없앨 수가 있겠소이까.』
금괴는 왁 하니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이곳에서 소형, 노부는 소형이 내 딸의 한 목숨을 살려준 데 대해 다시 감사를 드리는 바이오. 그리고 저 애로 하여금 소형의 가르침을 한 번쯤 받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외다. 저 멍청한 애는 너무나 황당한 생각을 하고는 이 바닥에서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는 분의 머리 위로 기어오르려고 했으니, 그런 풋내기 녀석은 말할 것도 없고 설사 노부라 하더라도 소형과 길고 짧은 것을 대어보려고 했다가는 아마도 콧잔등에 재만 뿌리는 결과가 될 것이외다.』
군유명은 연신 입을 열었다.
『감당할 수 없소이다. 감당할 수 없소이다.』
옆쪽 한켠에서 바라보고 있던 금미는 가볍게 그녀 부친을 살짝 꼬집더니 짐짓 뾰루퉁한 어조로 말했다.
『아버님, 아버님께서는 그래도 웃음이 나오셔요? 나는 편지를 보낸 지가 그토록 오래되었는데도 이제야 달려오시다니 정말 초조해서 죽을 뻔했다구요…』
금괴는 손을 뻗쳐서는 사랑하는 딸을 얼싸 안 듯하고는 귀엽고 착하다는 듯 말했다.
『착하지, 너는 이 애비를 원망할 수 없다. 네가 보낸 사람이 네 편지를 가지고 집에 도착하게 된 그 날에 아비는 정히 한 가지의 볼일 때문에 밖에서 분주히 오락가락하고 있었으며 이 애비가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적에 너의 어머니가 마음이 초조해진 나머지 눈물마저 흘리더구나. 이 애비는 편지를 보자마자 거의 의자에 깔아 놓은 방석이 따뜻해지기도 전에 즉시 사람을 데리고 달려온 것이란다. 처음에 네가 말하던 건계포에 가서 그 양곡상을 하는 가계에 가서 수소문을 해 보았더니 너희들은 이미 이틀 전에 동성으로 갔다더구나. 이 애비는 혹시나 잘못이 있을까봐 즉시 주마가편으로 이곳으로 달려와 성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적에야 가까스로 어젯밤 그 성 안에서 크게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이 애비는 정히 초조하여 너희들을 어디로 가서 찾아야 할지 모르게 되었을 때 담 노제가 우리들을 알아보고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다가와서 어떻게 된 일인가를 이야기해 주고 안내를 해 주었지. 정말 어디로 가서 너희들을 찾아야 할지 모를 뻔했단다.』
거기까지 말한 그는 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음성을 낮추어 다시 말을 이었다.
『이번에 너는 정말 멍청하기 이를 데 없는 짓을 했구나. 금은재보(金銀財寶)는 사람마다 손에 넣으려고 하는 것이지만 어떻게 손에 넣어야 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인의(仁義)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손에 넣지 말아야 하며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너와 마백수 등이 단짝을 이루어 그와 같은 머리를 쓴 것은 실로 너무나 고명하지 못한 머리를 쓴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 일의 보수는 그럴싸하여 사람이 놀라울 정도로 엄청 하다만, 그것 자체가 역시 사람이 놀랄 정도로 비열하고 치사하여 근본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마존을 적으로 하다니? 너도 자신을 생각해 보고 자기 자신의 무게를 저울질하여 너에게 그만한 무게가 나가는지 안 나가는지 따져보아야 할 것이 아니냐? 얘야, 이 애비는 네가 이미 충분히 이 세상의 살아가는 이치를 알고 활약할 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여전히 모자라도 한참이나 모자라는구나.…』
금미는 누가를 살짝 붉히며 입술을 꼭 깨물면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얼굴을 했다.
『제가 이미 잘못을 인정했지 않아요. 그런데 아버님은 여전히 거론을 하시다니… 이번 사고를 치기 전에 아버님, 이 딸은 어쩌면 아버님의 얼굴이나 체면에 손상 가는 일을 하지는 않았어요.…』
금괴는 껄껄 웃고는 재빨리 위로의 말을 했다.
『하하하, 좋다. 좋아. 이 애비가 더는 말하지 않기로 하지. 물론이다. 이 세상이라는 것은 넓고 넓지만 그 누가 이 애비에게 너와 같이 자랑스러운 딸이 있다는 것을 모르겠느냐?』
금미는 울려다가 얼굴에 환히 미소를 짓고는 겸연쩍게 얼굴을 부친의 어깨에 갖다 대고 끊임없이 손으로 그녀 아버지에 겨드랑이를 간지럽혔다.
금괴는 크게 껄껄 소리 내어 웃으며 옆으로 얼굴을 돌리며 군유명에게 말했다.
『소형, 아무쪼록 웃지 마시오. 이 애는 어릴 적부터 노부가 너무 총애한 나머지 버릇을 잘못 가르쳐 지금까지 좀처럼 다스릴 수가 없구려. 걸핏하면 어리광을 부려대니 그야말로 체통이 서지 않는구려.』
군유명은 빙그레 웃었다.
『부녀간의 지고한 사랑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니겠소이까? 당가.』
금괴는 흐뭇한 듯 말했다.
『정말 훌륭하오. 소형, 노부는 소형이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을 좋아하오!』
그는 더 가깝게 다가서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이번에 누부를 따라 달려온 사람은 모두 금씨 집안의 일류 인물들이오. 다시 말해서 이 금씨 집안의 정예들 대부분이 이곳에 있는 것이오. 소형, 아무쪼록 소형을 위해 힘을 바칠 때까지 될 수 있으면 좀 더 많은 일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오.』
군유명은 정직하고도 감격한 어조로 말했다.
『커다란 은덕은 고맙다는 인사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소이다, 당가. 불초는 정말 여러분들에게 수고를 끼치는구려.』
금괴는 정색을 했다.
『소형, 소형과 내가 성실로서 사귀게 되고 의리로서 맺어져야 하며 이후 내왕할 시간도 친히 아무쪼록 소형은 너무나 예의를 차리지 않도록 하시구려. 노부의 위인은 가장 번문욕절(繁文縟節)을 싫어한다오. 소형이 만약에 예의를 차리게 된다면 노부는 더욱더 구속을 느끼게 될 것이요. 친구를 사귐에 있어서는 활달한 사내다워야 하고 솔직한 남아다워야 하지 않겠소?』
군유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가의 말씀이 옳소이다.』
금괴는 웃었다.
『오늘 밤엔 우리들이 한 쌍의 옛 친구처럼 그렇게 친숙하고 다정하게 대합시다. 실제에 있어서 우리들은 정말로 일견여고(一見如故)한 것이 아니겠소?』
그들이 매우 융합되고 다정한 농담을 나누는 가운데 그들 일행은 어느덧 선족애 원래의 장소로 되돌아 올 수 있었다.
모두 무림에 몸담고 있는 호걸들이고 강호의 고인들이라 그렇게 사양하고 인사치레를 하지 않고 각자 스스로 자리를 찾거나 바위 위에 걸터앉게 되었다.
금미는 이미 뒷쪽의 집안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한담을 나누고 그간의 지나온 이야기들을 나누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그와 같이 신이 나서 조잘대는 모습은 조금도 꾸밈이 없었고 또한 조금도 앙증스러운 데가 없었다.
그녀는 그토록 순진하고 그토록 솔직했으며 또 그토록 명랑했다. 그녀의 그와같은 태도는 마치 집안 사람에 둘러싸여서 마음껏 히히덕거리며 일상적인 한담을 나누고 있는 어떤 처녀와도 다를 바가 전혀 없었으며 털끝만치도 강호에서 파다하게 소문이 난 홍갈의 그와같이 악독한 냄새도 풍기지 않았다.
또 다른 한 편에서는 군유명의 수하 몇 분 심복이 되는 형제들 역시 이미 금씨 집안의 사람들과 어울려 있었다.
그들은 모두 다 툭 터 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진솔하게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이 두 패거리의, 평소 서로 알지 못하던 강호의 강자들은 만나보자마자 물과 젖처럼 얽히게 되고 조금도 벌어진 사이를 느낄 수 없는 친밀한 관계를 이룬 것 같았다.
물론 이것은 쌍방이 서로 경앙하고 상대방의 인품을 아껴주기 때문이지만 또한 일종의 연분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군유명과 금괴는 마주앉아 있었다.
금괴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주위를 돌아보며 습관적으로 아직도 수염을 기르지 않은 아래턱을 어루만지며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소형, 노부의 집안사람들이 소형의 형제들과 매우 의기투합하는 것 같구려…』
군유명은 웃었다.
『아마 그런 것 같군요.』
금괴는 시선을 거두어들이고 나직하고도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어젯밤 동성의 일전에 관해서 노부는 길을 안내한 두 분의 귀 속하에게 들은 말인데 소인 등이 전승을 거두었다는구려?』
군유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이 방비하지 않는 틈을 타서 공격했기 때문에 요행이 승리를 할 수가 있었지요.』
금괴는 다시 생각해 보더니 입을 열고 물었다.
『금후의 행동은 어떻게 할 참이오?』
군유명의 그윽한 눈동자에 불빛과 같은 원한의 광채가 번뜩했고 그의 입에서는 꿋꿋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곧장 장안으로 쳐들어가 철위부를 되찾고 그 한 떼의 간악하기 이를 데 없는 도당들을 추살하는 것이지요!』
금괴는 무릎을 탁, 쳤다.
『옳소. 속전속결로 매서운 공격과 재빠리 죽여 없애는 것만이 치욕을 씻고 한을 푸는 데 있어서 으뜸한 중요한 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오!』
군유명은 빙그레 웃었다.
『당가께서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 불초와 지극히 비슷하군요.』
금괴는 껄껄 소리 내어 웃더니 의연히 말했다.
『그래서 소형과 노부는 모두 다 강산(江山)을 개척하고 패업(覇業)을 일으켜세운 인물이 아니겠소. 만약 소형이나 노부의 위인 됨이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일반 속된 무리와 다를 바가 없이 우물쭈물하고 망설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이 사람 저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앞걱정 뒷걱정에 구애받게 된다면 소형 역시도 마존이 될 수가 없었겠지만 노부 역시도 대금룡이라고 일컬음을 받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오!』
군유명은 두 손을 맞잡아 보였다.
『당가, 불초는 당가의 말씀이 도리에 합당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금괴는 아래턱을 어루만지며 입을 열었다.
『기실, 어느 정도 솜씨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의 작풍이나 수법이 종종 여러 사람들과 다른 점이 없지 않아 있소. 이것은 일종의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오…』
거기까지 말한 그는 다시 화제를 본론으로 되돌려서 물었다.
『소형, 지기지피(知己知彼)하면 백 번을 싸워서 한 번도 지지 않는다고 했소이다. 이제 소형은 동가쪽에 어떤 솜씨가 매서운 인물들이 동가를 돕고 있는지 알아보셨소?』
군유명은 간단명료하게 조돈력으로부터 얻어들은 소식을 금괴에게 설명했다. 끝으로 보충하듯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이와같은 상황으로 미루어볼 때 틀림없이 동강은 이미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오. 더군다나 그는 이미 가장 나쁜 쪽으로 계산을 하고 있을 겁니다. 자세히 말한다면 우리가 이후의 행동에 있어서는 힘겨웁고 또한 어려워질 것이며 장차 한동안 피로 물들게 될 뿐만 아니라 또 한동안 한 걸음 한 걸음 칼끝에서 놀아나야 할 판이지요.』
금괴는 깊이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소형, 강호에 있어 나날이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니겠소? 피비린내를 맡으면서 생활을 하게 되고 칼날로 강약을 따지지요. 그리고 만약에 원한을 짊어지게 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었다면 해결하는 방법 역시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상대하는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외다. 이것은 하나의 규칙이 안배되어 정해진 길과 같은 것이오. 우리가 일단 뛰어들게 된다면 그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거외다.』
군유명은 쓰디쓰게 웃었다.
『맞았소이다. 그 도리를 저도 역시 이미 꿰뚫어보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공허하게 느껴지고 담담해지는 심정일 때가 있지요.』
금괴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합시다. 소형, 조금 전 말씀한 그 적들 가운데 두 사람이 유난히 상대하기 어려운데…』
군유명은 즉시 그 말을 받았다.
『당가께서는 혹시 피구대 포양과 백발은미 관채를 말하는 것이 아닌지요?』
금괴는 투명한 눈빛을 반짝하고 빛냈다.
『바로 그 두 명의 괴물들이오.』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들 두 사람을 관해서 소형은 알고 있으시오?』
군유명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약간은 알고 있지만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불초는 옛날 피구대 포양과 한 번 만나본 일이 있지요. 그 사람의 체구는 왜소하고 수척하며 뾰쪽한 입에 볼이 쑥 들어갔으며 머리에는 한 줌의 노랗고 드문드문한 잔털을 기르고 있지요. 그리고 평소에는 잿빛의 무명베로 만들어진 장삼을 즐겨 입는데 그 모양은 무척 형편없어 보이지요. 그러나 그 사람의 공력의 고강함은 불가사의하지요. 소문에 들으니까 그의 일신에 지닌 무공은 모조리 천음동(天陰洞)의 절도(絶道) 청송자(靑松子)로부터 전수받은 것이라 하더군요. 더군다나 한 수의 선찰술(旋擦術)은 더욱더 절정에 도달해 있으며 매서웁기 비할 바가 없다고 하더군요. 포양은 신세가 상당히 처량한 것 같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와 같이 모가 나고 세상을 분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이한 심성으로 알고 있지요…』
금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런데 소형은 말투는 대부분 틀림이 없소.』
군유명은 다시 말했다.
『은발백미 관채에 대해서는 불초가 잘 모른답니다. 다만 그의 재간의 정묘함에 있어서 범상하지 않다는 것과 그가 백발에 한 쌍의 흰 눈썹을 하고 있지만 그 자신이 지극히 젊어 서른 살밖에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얼굴 모습이 매우 준수하고 풍류적이며 멋을 아는 사내인 반면 도리를 아는 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금괴는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소형이 알고 있는 것들은 모두 다 제대로 파악을 한 것이오. 제대로 말하면 포양이라는 사람은 심성이 괴팍하고 이상한 데가 좀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군자라고 할 수 있다오. 일찍이 포혼령(抱魂嶺)의 천음동 밖에서 노부는 그와 만난 적이 있다오. 그날 노부는 마치 한 사람의 원수를 추살하고자 한사코 그 원수의 뒤를 쫓아서 포혼령 위로 뛰어들었는데 멀리서 보니 포혼령의 천음동에서 한 사람의 잿빛 그림자가 나는 듯이 달려오는 것이 아니겠소. 그 사람이 바로 포양이었는데 그 때 그 역시 무슨 중요한 볼일을 보러 가는 모양으로 동굴에서 벗어나자마자 신법을 펼쳐서는 나는 듯이 달리는 것이었소. 정말이지 그 재빠름은 무지개 같다고 할 수가 있었으며 몸을 솟구치게 되었을 적에는 윙하니 없어졌소. 노부는 그 당시까지는 그가 어떤 사람인 줄을 모르고 노부의 원수를 도와서 나를 저지하려고 하는 사람이 아닌가 의심을 했더랬소…』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따라서 노부는 천음동에 살고 있는 사람이 청송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와 같은 순간에 그런 하잘것 없는 일을 따지고 있을 수 없는지라 다짜고짜 냅다 달려오는 사람에게 열 대의 천근장(千斤掌)을 먹여주었소. 그러나 그 사람의 반격은 무척이나 빨라 일장의 간격을 두고서 어느덧 벼락같이 몸을 뒤집으며 달려 나가는 것이었소. 다만 그의 신형이 뒤집어지면서 솟구치는 것만 보았는데 한 자루의 시퍼렇고 반쯤 구부러진 대찰도(大擦刀)가 어느덧 날아드는 것이었소. 그 한 자루의 대찰도는 놀랍게도 한 차례 허공을 후려치게 되었을 적에 번개와 같이 다시 꺾어져서는 재차 떨어지는 것이었소. 진정으로 매서웠소. 노부가 잇달아 세 번이나 피하게 되었을 때야 그 대찰도는 오 장 밖에 있는 아름드리 잣나무를 잘라 땅바닥에 떨어지도록 했소. 그와같이 소란을 피우고서야 간신히 쌍방이 오해였다는 것을 파악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노부는 포양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오. 그의 무공은 정말 고강하고 사나웠었는데 이 몇 년 동안 그는 틀림없이 더욱더 증진되었으리라고 생각되는구려.…』
군유명은 나직하고도 느릿한 어조로 그 말을 받았다.
『소문에 들으니까 이곳에 적지 않은 명성을 떨치고 얼굴이 알려진 인물들이 바로 그의 손에서 곤두박질을 쳤다더군요.』
금괴는 고개를 끄덕였다.
『포양의 그 재간을 두고 말할 때 그와 같은 사실은 결코 뜻밖의 일이라고 할 수가 없소. 그러고 보니 노부가 그와 만난 그 해는 이미 지금으로부터 십팔 년 전의 일이었구려.』
군유명은 생각해 보더니 입을 열었다.
『당가, 포양이 도상에서 떨치는 이름은 대단한 편이며 그야말로 한 지방을 주름잡을 수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그에게 무예를 전수해준 사부인 청송자는 아직도 건재한가요?』
금괴는 생각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청송자는 이미 십오 년 전부터 강호에 얼굴을 디밀지 않고 있소. 그 늙은 우비자(牛鼻子)의 생사가 어떠한지 아직도 잘 알지 못하고 있소. 우리들의 지금 정세를 두고 말할 때에 물론 그가 이미 우화등선하여 죽었으면 가장 좋겠다는 것이 우리들의 바램이기도 하고 따지고 보면 그의 나이는 이미 팔순에 가까웠을 것이오.』
군유명은 나직하고도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당가, 포양이 오늘의 명성을 누리기 위해서 많은 활약을 펼쳤지만 피구대라는 별호를 얻었지요. 당가께서도 아직까지 그는 밤낮없이 허리에 하나의 검은 주머니 모양의 피구대를 달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외다. 그런데 그에게 또다른 어떤 원인이 있어서 그와같은 칭호를 얻은 것인지 잘 모르겠군요.』
금괴는 사색에 잠기는 듯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포양이 피구대라는 칭호를 얻게 된 데 대해서 노부가 아는 바로는 주된 원인이 그가 바로 언제나 허리에 차고 있는 그 검은 주머니 모양의 피구대를 떼어 놓지 않는다는 것이오. 그러나 그는 강호에 나선 이래 그 피구대의 용도가 어디에 있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인 적이 없었소. 그는 오늘날 무림에 있어서의 지위는 전적으로 그 자신이 지니고 있는 능력으로 세운 것이외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그 피구대를 사용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소.』
군유명은 생각에 잠긴 듯 잔잔한 눈길로 금괴를 바라보았다.
『당가의 짐작으로 볼 때, 포양의 그 피구대는 어떤 용도에 쓰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지요?』
금괴는 갑자기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소형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군유명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할 뿐이지 다른 용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금괴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부 역시 그렇게 생각하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피구대로 한 수의 솜씨를 드러내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그 피구대로 도대체 어떤 무서운 재간을 펼칠 수 있으며 또 그 재간이 얼마나 무서운 경지에 도달해 있는지 모르고 있다오.』
군유명은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포양은 아마도 강호에 출두한 후에 한 번도 그로 하여금 피구대를 충분히 운용하도록 다그치는 강적을 만나보지 못한 모양이외다. 그에게 좌절을 당한 인물들은 포양의 부분적인 재간도 당해 내지 못한 것이지요. 포양은 전력을 쏟아낼 정도의 강적을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다고 보아야 되겠지요. 당가, 당가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는지요.』
금괴는 신중하게 말했다.
『만약에 그렇다면 그의 진정코 뛰어난 무공은 아마도 역시 그 피구대에 있다고 할 수 있겠구려?』
군유명은 엄정하고도 굳센 어조로 말했다.
『그는 피구대를 반드시 한 번 펼쳐보이지 않을 수가 없을 겝니다.』
금괴는 껄껄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노부가 볼 때 그는 틀림없이 그러리라고 생각이 드는구려.』
군유명은 그 말을 받아 물었다.
『은발백미 관채라는 사람에 대해서 당가는 비교적 잘 알고 계신지요?』
금괴는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관채에 대해서 말한다면 노부는 그야말로 소상히 알고 있소. 그의 나이는 정확히 말해서 겨우 삼십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오. 이 사람의 외관은 준수하고 밝으며 성격 또한 소탈한 편이오. 생각하는 것이 치밀하고 이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도 꼼꼼하다오. 하지만 마음이 악독하고 손이 매서울 뿐만 아니라 일단 적과 맞서게 된다면 끝까지 쫓아가 죽여 놓는 무자비함으로 정평이 나 있소. 그밖에 또 그에게는 하나의 별호가 붙어 있는데 최명부(崔命符)라고 하는 것이외다. 그러니까 구 년 전 그가 약관(弱冠)의 나이에 접어들게 되었을 적에 단인필마(單人匹馬)로 조정에 모반의 깃발을 든 진숭문(陳崇文)의 머리를 자른 일이 있다오. 진숭문은 평소의 자질구레한 일로 원한을 사게 되고 간격이 벌어진 그의 주장(主將)인 하호(何浩)를 암살해 버렸소. 그리고 난 후 그가 거느리고 있는 사람들 천여 명을 인솔하고 말을 탄 채 기몽산(沂蒙山) 구역 안으로 들어가 산채를 세우고 도적이 되려는 뜻을 품고 있었소. 따라서 관가에서는 중상을 내걸고 그의 수급을 사겠다고 현상금을 걸게 되었는데 관채라는 녀석은 그야말로 하늘이 무색할 정도로 담이 컸소. 진숭문의 휘하에 천여 명이나 되는 병사들은 북쪽지방의 대한들로 하나같이 용강하고 싸움에 능했으며 사납기 이를 데 없는 자들이었소. 그러나 그와 같은 날쌘 군사들 가운데 그 어느 누구도 관채 한 사람을 저지할 수 없었소.…』
그는 한숨 쉬듯 숨을 내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바로 대군이 에워싸고 칼과 창이 숲을 이루는 듯한 상황에서 그는 놀랍게도 혈로(血路)를 뚫고 곧장 안으로 들어가 진숭문의 머리통을 잘라든 후 천여 명이나 되는 군사들을 헤치고 유유히 달려 나왔던 것이오. 그야말로 그는 무인지경처럼 군사들을 해치웠던 것인데 바로 이 때문에 관채는 일개 강호 초망(草莽)의 신분으로서는 파천황(破天荒:처음)으로 조정의 상금과 포상을 받게 되었소. 뿐만 아니라 조정에서는 그에게 천 냥이라는 문은(紋銀)까지 내렸다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지만 그 일은 그 당시 사방에 알려지게 되고 강호는 그야말로 물 끓듯 했으며 사람들은 차나 술을 마신 이후에 흥미진진하게도 몇 년 동안 그의 이야기를 즐겨 지껄여댔소. 그 바람에 관채의 명성은 그 때부터 높다랗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소.…』
군유명은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불초 역시 그 때 약간 소문을 들은 적이 있지요.』
금괴는 다시 입을 열고 말했다.
『관채의 걸작은 그로서 끝난 것이 아니었소. 그는 혼자의 힘으로 자우방(紫雨幇) 스물두 곳의 산채를 공격한 바가 있고, 장풍교(長風敎)의 총단(總壇)을 짓밟아 평지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단자문(丹子門)의 장문인 소해객(嘯海客) 호오랑(胡五浪)에게도 쓴 맛을 보여주었다오. 어찌 되었든 간에 관채라는 이 녀석은 정말이지 억세고도 매서운 물건이라 할 수 있소. 그와 피구대 포양이라는 이 한 쌍의 괴물은, 솔직히 말해서 사양하거나 미룰 수 없는 원인이 아니라면 무림에서 그 누구도 건드리려고 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외다.』
군유명은 빙그레 웃었다.
『이로 미루어볼 때 동강의 요상한 수단이 정말 빼어난 것을 알 수 있군요. 그렇지 않을 때 그가 어떻게 그와 같은 무서운 인물들이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도록 매수할 수가 있었겠소이까.』
금괴 역시 껄껄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노부는 줄곧 하나의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규약을 만들어 지켜왔소. 이 규약이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때가 아니면 몇 명 되지 않는 강적들과 맞닥뜨리지 않는다는 것이오.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 미루어볼 때 아무래도 그 규약을 어겨야 할 것만 같소.』
군유명은 나직하고도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당가, 당가께서 그토록 의리를 중시하시니 불초는 오히려 불안해지는군요.』
금괴는 손을 내저었다.
『또 그러는군. 소형, 자네는 또 예의를 지키려고 하는군 그래!』
군유명은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고 물었다.
『당가, 옛날에 포양과 몇 수 교환한 점을 미루어볼 때 당가께서는 그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금괴는 아래턱을 어루만지며 웃었다.
『그건 노부가 정말 답하기 곤란하구려. 만약에 노부가 그를 이길 수 있다고 스스로 인정한다면 약간 허풍을 치고 자기 자랑을… 제미럴, 면할 수 없을 것 같군. 만약에 노부가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고 한다면 노부로서는 그야말로 달갑게 인정할 수 없구려.』
그러더니 군유명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말한다면 피구대라고 하는 그 자가 한 지방의 영웅호걸이지만 이 대금룡 금괴 역시 남의 장단에 춤이나 추는 못난 놈이 아니외다. 만약, 정말 끝까지 싸운다면 허허… 금씨 집안의 늙은이가 그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을 것이오.』
물론, 군유명은 금괴의 말 속에 숨어 있는 뜻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상대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말이었다.
다시 말해서 금괴의 위풍 역시 포양보다는 윗자리에 올려져야 하고 결코 포양의 아래가 아니라는 말이기도 했다.
군유명은 빙긋 웃었다.
『그렇다면 양산파와 독룡교, 그리고 대비방의 한 떼 방흉(幇兇)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역시 조심을 기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이 사람들 가운데도 퍽이나 뛰어난 사람이 있으니까요.』
금괴는 천천히 그 말을 받았다.
『그들 가운데 어떤 매서운 자들이 있다는 거요? 소형이 얻어들은 소식과 견문에서 과연 강적이 있다는 것이오?』
군유명은 속으로 웃었으나 겉으로는 여전히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 점에 있어서 불초 역시 개괄적인 것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 가운데 몇 명의 고수들이 있는지는 우선 젖혀두고 중요한 것은 그 세 패거리의 적들 속에 형세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빼어난 고수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들의 우두머리 몇 명을 제거하거나 제압하게 된다면 그들의 수하들이 어떻게 할 바를 모르게 될지도 모르지요.』
금괴는 잠시 생각을 해 보더니 물었다.
『소형이 볼 때 그 패거리의 사람들 가운데 몇 명이나 형세를 좌지우지하는 지위에 있을 것 같소? 또 몇 명이 포양이나 관채 두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겠소?』
군유명은 빙그레 웃었다.
『기껏해야 독룡교의 교주와 양산파의 장문인, 그리고 대비방의 방주 세 사람에 지나지 않겠지요. 그들 수하 가운데 어쩌면 몇 명의 매서운 인물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우두머리보다 뛰어날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걱정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지요.』
금괴는 정색하고 말했다.
『소형, 그들 세 패거리 가운데 지용(智勇)을 겸비한 도배들이 없지 않을 것이오. 물론 그들 세 패거리 가운데 소형이나 노부와 겨룰 만한 고수는 오직 그들의 우두머리밖에 없을 것이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수하들이 전혀 쓸모없는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오. 우리들이 그들의 그 한 떼 수하들을 안중에 두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들로서는 명심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들의 부하들도 무예가 결코 우리들처럼 정심(精深)하지 않다는 것이오. 노부의 뜻은 역시 걸음걸음마다 조심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것이오.』
군유명은 나직이 소리 내어 웃었다.
『불초 역시 그와 같은 이치는 알고 있지요. 당가, 불초는 다만 중점을 비교적 상대방의 몇 명 우두머리에게 두고 있다는 것이지요. 뱀을 때릴 때 먼저 머리를 때리라는 말이 있지요.』
금괴는 정중히 말했다.
『말은 옳은 말이오만 노부는 언제나 전면적인 공격과 일거에 적을 섬멸할 것을 주장하여 왔소. 적은 크든 작든 간에 모두 다 가볍게 놓아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오.』
군유명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당가께서는 안심하십시오. 그 때 가서 불초도 그렇게 할 결심입니다. 당가께서 적을 대함에 있어서 조금도 용서가 없지만 불초 역시 그들을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란 말이지요.』
금괴는 손뼉을 치며 웃었다.
『노부는 물론 위명이 혁혁한 마존이 오늘날의 솜씨를 기르는 데는 그동안 반드시 온갖 시련과 간난을 겪었으리라는 것을 믿는 바이오.』
군유명은 엄숙한 어조로 그 말을 받았다.
『당가의 말씀이 옳소이다. 천하의 대업 가운데 수월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지요.』
그는 흰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정말 그렇습니다.』
금괴는 동감이라는 듯 소리내어 웃더니 헤벌쭉 입을 벌리고 눈썹을 치켜올리고 입을 열었다.
『바로 그렇소. 바로 그런 것이오, 하하하…』
금괴의 웃음소리에 그의 보배 같은 딸인 금미가 어느덧 저쪽에서 나비처럼 두둥실 춤추듯 하면서 이쪽으로 달려왔다.
그녀는 이곳에 이르기 전에 그토록 간드러지고 달콤한 음성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어마, 아버님은 정말 기쁘신가 봐? 아버님이 입이 찢어져라 웃으시는 것 좀 보시라구요. 우리의 군 공자가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 아버님을 그렇게 기분 좋게 만드시는지 모르겠군요.』
금괴는 자상하고도 귀여워서 못 견디겠다는 시선으로 자기의 딸을 바라보고 웃으며 꾸짖었다.
『이 계집애가 점점 갈수록 예의를 차릴 줄 모르는구나. 말을 함부로 하다니, 어른도 아이도 분간을 못하는 것 같군. 네 하는 양을 좀 보아라. 모두 다 네 어미가 너무나 총애한 끝에 버려놨구나.』
금미는 깔깔 웃으면서 엿가락처럼 금괴의 품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마구 간질이대기 시작했다.
그 덕택에 금씨 집안의 주인인 금괴는 그만 온 전신이 쩌릿쩌릿해지게 되어서는 그녀를 안은 채 끊임없이 그만하라고 빌 정도였다.
한참만에야 금미는 손을 멈추었다. 금괴는 껄껄 소래 내어 웃으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이제는 정말이지 미친 할망구와 하는 짓이 똑같구나.』
금미는 다시 코 먹은 소리를 내며 간드러지게 짐짓 쀼루퉁한 얼굴을 했다.
『아버님, 아버님은 또다시 남을 욕하는군요. 그렇다면 더더욱 간지러드릴 테예요.』
금괴는 두 손을 높히 번쩍 쳐들고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듯 말했다.
『안 된다. 안 돼. 이 애비가 항복을 하마. 너 이 녀석은 그저 애비에게 까불 줄만 알았지 이곳이 어떤 곳인지 살펴보지도 않는구나. 너의 군 숙부가 이곳에 계신데도…』
순간의 금미의 두 눈썹이 상큼 치켜올려지게 되고 두 눈알이 가볍게 움직이는 듯했다.
그녀는 약간 어리둥절해지는 표정이었으나 곧 웃음을 지었는데 그 웃음이 매우 이상야릇하고 사람에게 골탕을 먹이려는 그런 빛이 서려 있는 표정이요 미소였다.
그녀는 이어 자기 부친의 가슴팍에 기대면서 얼굴을 돌리고 군유명을 향해 입을 열었다.
『군 공자, 당신은 들었나요? 저의 아버님께서는 대뜸 당신을 한 배분 더 높여 놓았어요. 하지만 당신이 웃어른이시니 오늘 호칭이 바뀐 마당에 이 질녀는 어찌 됐든 간에 상견례라는 선물을 받아도 되겠지요?』
군유명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
『금 당가께서 그렇게 높이 추켜올려주시는 것은 고맙지만 나로서는 부끄러워 감히 받아들일 수가 없구려. 금 소저, 우리들은 역시 다리는 다리로 인정을 하고 길을 길로서 인정하듯이 각자가 제각기 나름대로 따지는 것이 좋겠군.』
금미는 짓궂은 웃음을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군 공자, 아니, 군 숙부님, 당신은 그렇게 겸허하실 필요가 어디 있나요? 이 질녀는 이제 당신에게 인사를 올리겠어요.』
군유명은 연신 손을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감당할 수 없소. 금미, 우리들이 친척이라면 친척 관계를 따져야 되겠지만 친척이 아니니 친분으로 따집시다. 그리고 친척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라면 일반상식으로 따지도록 합시다. 당신과 나는 먼저 알게 되었소. 그 때 나와 영존은 아무런 관계가 없었고 지금 영존을 뵙게 되었다 해서 그 칭호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이오. 강호에서는 명위(名位)가 물론 중요하지만 실제에 있어서의 정의(情誼)와 나이의 차별 또한 중요한 것이오. 따라서 지금 우리는 별 수 없이 제각기 제 나름대로 칭호를 하고 각자가 따로따로 따지기로 합시다.』
금괴는 속으로 웃었다.
(이 녀석 봐라. 제법 말을 그럴싸하게 둘러대며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야말로 팔방미인처럼 모든 것이 옳게만 느껴지도록 하는 설득력이 있구나. 하지만 이 녀석이 나의 귀여운 딸과 주고받는 눈초리를 보아, 얼마 되지 않아서 이 노부가 네 녀석에게 호칭을 바꾸라고 하지 않아도 네 녀석은 한 배분 낮추겠다고 부탁을 해올 것이다.)
무림에서는 명분이나 서열을 따지는 것을 지극히 중시했다. 조금도 얼버무릴 수가 없었으며 배분을 따지는 근거는 혈통관계 뿐만 아니라 나이와 사승(師承), 심지어 강호의 출도한 시기까지 따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그 사람의 강호상에 있어서의 성위(聲威)와 성취를 보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혈통관계가 없고 사승의 연원관계가 없으면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남의 윗사람으로서 대접을 받을 수 없고, 상대방의 명성이나 덕망이 자신을 능가하게 되었을 적에는 설사 상대방이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적어도 존경하게 되는 것이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혈통이나 사승의 연대관계가 없을 적에 아래 위와 존귀의 구분은 연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위세에 있는 것이었다.
지금 눈앞의 상황을 두고 볼 때 금괴는 비록 나이에 있어서 군유명보다 훨씬 많은 편이었지만 그는 군유명과 아무런 혈통관계나 연원이 없기 때문에 두 사람의 강호상에 있어서의 명성과 역량으로 따질 때는 군유명이 그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더 있다고 할 수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군유명은 그를 웃어른으로 모실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금괴 역시 스스로 자기의 신가(身價)를 낮출 수도 없는 노릇이고 보니 두 사람은 같은 배분으로 사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군유명은 금괴의 딸과 먼저 알게 되었고 그가 금미와 사귀게 된 처지나 환경으로 말할 때,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아주 적기 때문에 군유명은 금미보다 윗사람이라고 자처할 수 없었다.
군유명은 자기의 신분에 어긋나게 스스로 금괴의 후배라고 인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미 알게 된 금미의 배분을 낮추어서 질녀 정도나 후배로 대할 수 없기 때문에 부득이 각자 제각기 명분을 따지자며 다리와 길을 예로 들어 설명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