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퇴직한 남편은 뭘 하면 좋을지 반년 동안 고민하더니 직업 훈련원에서 약 7개월 동안 용접하는 걸 배웠다. 이론은 3, 4일가량 배우고 남은 기간 내내 기술을 익히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사람이 주변머리가 없어 사전 지식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자주 텔레비전에서 <극한직업>을 보더니 앞뒤 재지 않고 덜컥 그것을 선택한 것이다. 불꽃이 튀는 작업장과 땀을 흘리며 뭔가를 완성해가는 과정이 멋있었나 보다.
이 직업 훈련은 여러 가지로 꿈에 부풀게 했다. 정부의 보조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전액 무료다. 훈련 과정을 마치면 특수 용접기능사 자격증을 딸 수 있다. 인력이 부족하여 용접 기술이 있으면 귀하게 대접받는다는 말도 들었다. 한 번 익힌 기술은 쉽게 사라지지도 않고, 정년도 없으니 참 좋을 것이다. 잘 하면 취업해서 돈을 벌 수 있고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가용 정도는 할 수 있을 테니 잘 배워 두기만 한다면야 손해 볼 것이 없었다. 다만 남편은 뚜렷한 목적이 없어 취업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미안했고 적어도 15년 아래 까마득한 후배뿐이어서 조금 풀이 죽긴 했다. 스물여섯 살인 옆집 아들까지 있어 체면 차리기도 불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열심히 배우려는 열정과 막연한 청사진으로 그것이 어려운 길이란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교육은 매일 아홉시에 시작해서 오후 네시 30분까지 빠듯하게 진행되었다. 보안면을 쓰고 3천 도가 넘는 불 앞에서 종일 용접하는 기술을 익혔다. 퇴근할 때 보면 불꽃이 두꺼운 옷을 파고들어 구멍이 숭숭 뚫리고 손목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제일 걱정되는 건 시력이었다. 보안면이 열과 빛을 완전히 막아주지 못해서 더 나빠졌다. 그는 평소에 운동도 잘하지 않고 타고난 체력도 약하다. 만날 허리 아픈 것은 지병이 되어 버렸다. 안 쓰던 근육을 쓰느라 고단했다. 동떨어진 세계에서 살던 사람들과 어울리느라 애쓰기도 했다. 체면 따위 겉치레를 벗어 두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결코 쉽지 않은 길이란 걸 시간이 흐르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도 결석하지 않고 나가는 이유가 있는 듯했다. 물론 겉으로야 시작했으니 마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용접하는 일에 몰두하다 보면 불멍이라도 하듯이 세상 근심 걱정을 땜질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평생 말하는 직업에 시달렸는데 그렇지 않고도 하루를 보낼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었으리라.
그는 평소에 정말 말이 없다. 특히 자세하게 설명하는 일, 목적 없는 말을 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수다 떠는 사람들이 있으면 멀리 피해 다녔다.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말만 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실없는 말도, 분위기를 살리려고 억지 개그를 할 때도 있건만 그는 곧이곧대로라 재미없고 딱딱하기만 하다. 대신 험담이나 욕설 같은 나쁜 말을 하지 않아 참 다행이다. 오랜 세월 동안 그것에 길들어 말 많은 사람 곁에 있으면 쉬이 피곤해진다. 그런 사람이 학생들 지도하느라 억지로 말을 많이 해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퇴직 후에야 그의 직장 생활을 톺아보니 안쓰러웠다. 하기 싫은 말을 억지로 해야 하는 곤혹이 이해되었다. 그래서 직업 훈련을 전폭 지지해 주었다. 둘만 있으면 적막강산이었는데 오늘은 어땠는지 이야기 나눌 수 있어 괜찮았다.
시작은 좋았다. 이론 시험을 아주 쉽게 통과했다. 그런데 실기는 아무리 연습해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용접을 잘하려면 스파크가 일어날 때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여 땜질해야 한다. 너무 가까이 대면 용접봉이 철판에 붙어 버리고 너무 떨어지면 스파크가 일어나지 않으며 간격을 유지하지 않으면 울퉁불퉁해져서 엉망이 된다고 한다. 마구 튀는 불꽃 덩이 속에서도 철판과 용접봉 간격이 2밀리미터 정도 유지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숙련해야 한다. 고도의 집중력과 감각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런데 눈도 잘 보이지 않고 손이 떨려서 비드(bead) 모양이나 두께 등의 기준을 맞출 수 없었단다. 그는 교육이 끝나도록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
사는 일이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아니라고 말했던 어떤 이의 말은 위로가 된다. 종일 낚시하고서도 빈 바구니로 돌아올 수 있잖은가. 고기잡이에 실패했거나 그저 멍하니 있었더라도 그것이 사는 일이니 고귀하다. 그래서 아쉬움은 있지만 낙담스럽지는 않다. 인생 1막이 그랬듯이 2막도 지내놓고 보면 무엇이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다.
첫댓글 문우님이 직업 훈련원에서 용접을 배우며 쓴 것처럼 생생하네요.
어려운 일에 선뜻 뛰어들었네요. 어렵게 익힌 기술이 보람있게 쓰이길 바랍니다.
퇴직 후에 남편이 택시 운전사 일을 하니 엄청 용기있다고 하대요.
남편분도 보통 사람들이 엄청 하기 힘든 선택을 하셨네요.
이왕이면 자격증까지 손에 넣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거기까지 하신 것만으로도 박수를 보냅니다.
오래 전 글에 썼던 <빛나리와 금니>에서 빛나리 초등 동창도 용접했지요.
누구보다 그 일을 잘하는데 학벌이 짧아서 외국으로 일하러 갈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본인이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정말 어려운 과정이었군요.
그런 도전을 했다는 것 만으로 대단하고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자격증까지 얻었으면 금상첨화지만 그게 대숩니까? 우리 남편 같았으면 "나 못하네!"했을 거예요.
자격증은 얻지 못했지만 무엇을 시도하는 자체만으로만 삶의 활력이 되었을 거예요.
인생 2막은 오롯이 자기 자신이 추구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야 해요,
저도 용접을 배웠는데, 소질이 없다는 걸 깨달았답니다. 퇴직하고 나서 새로운 일을 찾으려고 노력하시는 사장님의 성공을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