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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연구
1. 주제에 대한 개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주제는 어떤 면에서 그의 신성만큼 관심을 받거나 논의되지 않는다. 그것은 언뜻 보기에는 자증할 수 있는 문제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예수가 어떠한 분이건 간에 그가 인간이었던 것 만큼은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예수의 인성은 근본주의자들과 현대 신학자들 사이의 주된 논쟁거리가 되어왔던 예수의 신성에 기울어졌던 만큼 철저하고 광범위한 관심을 받지는 못한다. 논박되지 않는 것은 논의되지 않는 경향이 있음으로 적어도 주된 논쟁거리들만큼의 깊이를 갖지 못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예수의 인성에 관한 주제가 그의 신성에 관한 것만큼 신학적인 대화 속에서는 중요한 역활을 담당하였으며 특히 초기 시대의 교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실질적인 표현으로 그것이 어떤 면에서 정통신학에 대한 거대한 위협으로 드러났다.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소유하셨다는 사실은 기독교가 타종교와는 비교될 수 없는 유일한 진리의 종교라는 것을 반영해 줍니다. 그것은 인간의 죄의 문제를 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셔서 해결해 주셨다는 사실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으로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의 한계를 몸소 겪으시고, 고난과 수모를 당하시며 끝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던 타락 이전의 인간의 모습을 발견케 됩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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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독론, 밀라드 J. 에릭슨, 홍찬혁 역 P. 91.
2. DTP, 교리강해연구2, 성자편, P. 179.
2. 내용 전개
1)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의 중요성
예수의 인성의 중요성은 과대 평가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성육신 안에서 그 문제는 구원론적이어서 우리의 구원에 관계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갖는 문제는 그 자신과 하나님 사이의 간격이다. 그 간격이란 분명히 말하면 존재론적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알기 불가능할 정도로 인간보다 월등하시다. 만약에 그가 인간에게 알려지기를 원하신다면 그 자신을 인간에게 알리기 위해 몇 가지 자발적인 조처를 취하셔야 한다. 그러나 그 문제는 단순히 존재론적이지 만은 않다. 거기에는 인간의 죄로 야기된 인간과 하나님 둘 사이의 영적이고 도덕적인 간격이 또한 존재한다. 인간은 자신의 도덕적인 수고로는 그의 죄에 대항하고 자신을 하나님의 수준으로 끌어 올릴 수 없다. 둘 사이의 교제가 있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연합되어야 한다.
이것이 정통적으로 이해 된 바이며 한 인격안에 신성과 인성이 연합되어 있는 성육신에 의해 성취된 바이다. 그러나 예수가 실제로 우리들 인간 중 하나가 아니라면 인성과 신성과 연합되지 않았을 뿐더러 우리도 구원받을 수 없다. 왜냐 하면 그리스도의 죽음 속에서 성취된 사역의 유효성이 혹은 적어도 우리들 인간에게로의 적용 가능성이 그의 인성의 실재에 의존하기 때문이며 그것은 그 효능이 그의 신성의 진실성에 의존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예수의 중재자로서의 사역은 그의 인성에 의존한다. 만약 그가 진실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시험과 유혹들을 다 겪은 우리들중의 하나라면 그 때 그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겪는 모든 수고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그와 반대로 그가 인간이 아니라면 혹은 단지 불 완전한 인간이라면 자신이 대표하는 모든 사람을 대신해야 하는 제사장으로서의 중재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 3)
예수님 생시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인성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목수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는 고정 관념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초인간적인 신성에 대한 많은 증거를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통하여 그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확신한 제자들이 오순절의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예수의 메시야되심을 증거함으로써 초대 교회는 일찍부터 그리스도의 신성이 강조되었고 일반적으로 믿고 고백되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다가 보니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하여 의심을 품는 자가 나타나게 되었으며 나중에 이단으로 정죄당했다.
오늘날 기독교 과학자들은 물질을 '비존재'라고 보고 예수님은 신체를 갖지 않았다고 계속 주장한다. 우리가 지칫하면 예수님의 신성만 중요하고 그의 인성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이 생각하기 쉽지만 그러나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메시야로서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우리와 동일한 인성을 구비해야 한다.
왜냐하면 법죄한 인간은 천사와 같은 영체가 아니고 육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구원할 계획을 세웠던 영원부터 한 육체를 예비한 것은 참 사람이 되는 것이 메시야의 자격을 갖춤에 있어서 필요 불가결의 요소였기 때문이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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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독론, 밀라드 J. 에릭슨, 홍찬혁 역 P. 92.
4. 기독교 교리개설, 김성린 저, P. 168~169
2) 성경의 증거
(1) 인간적 출생 (Human Birth)
예수님은 처녀 마리아의 몸에(성령으로) 잉태 출산되었다. 그러므로 성격은 예수님의 탄생을 여자의 몸을 통하여 육신으로 나셨다고 하였다. 그런데 육신은 인성을 가리킨다(갈4:4; 마1:18~2:11; 눅1:30~38; 2:1~20). 성령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시고 처녀 마리아의 인성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 출생을 실현시키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독특한 출생방법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독특한 사람 곧 신인(divine - Human)이 되셨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자손(마1:1)이라 하였고,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따라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났다(롬1:3)고 하였다. 바로 이 이유로 누가는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이라고 하였으며(눅3:23), 예수님의 족보를 인류의 시조 아담에게까지 거스려 올라갔다(눅3:23~38). 이 모든 사실들은 예수님은 진정한 사람이었음을 증명한다.
(2) 인간적 몸과 영혼 (Human Boby and Soul)
사람은 물질적 요소와 비물질적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물질적 요소는 육체(살, 뼈, 피)이며, 비물질적 요소는 영혼이다. 예수님은 우리와 꼭 같은 사람이었으므로 육체와 영혼이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사람이라고 불렀다(눅2:52; 마26:38; 요13:21).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 베다니 문둥병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 한 여인이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 예수님의 머리 위에 부었다. 그 후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마26:6~7, 12).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엠마오로 가는 의심많은 제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과 살과 뼈가 없으되 나는 있느니라" (눅24:39)라고 말씀하셨다. 진실로 예수님은 몸과 영혼이 있는 참 사람이시었다.
(3) 인간적 명칭들(Human Names)
예수님의 명칭들 중 특히 예수, 인자(Juses, Son of Man) 등은 예수님의 인성을 나타내는 매우 중요한 단어들이다. 그리스도라는 명칭이 예수님의 신성을 나타내는 명칭이라면 예수님이라는 명칭은 그의 인성을 나타내는 명칭이다. (마1:21; 2:27~28; 눅1:31; 요5:27; 6;27; 51, 63)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인자라는 명칭을 약 80번 이상 즐겨 사용하였다. 인자라는 명칭은 그의 비하(Humiliation = 낮아지심)와 인성을 나타낸다(마8:20). 세례 요한, 사도 요한, 사도 바울, 사도 베드로 등도 예수님을 그의 인성으로는 한 유태인 사람이라고 불렀다(요1:30; 4:9; 7:27; 9:29; 10:33; 행13:38). 예수님은 인성을 소유하신 사람이었으므로 사람의 이름들을 소유하셨고, 자신은 물론 사도들을 위시한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사람으로 인식하였다.
(4) 인간적 성질들 (Human Natures)
예수님은 처녀 마리아를 통하여 인간의 성질을 이어 받았으므로 그의 인성으로는 인간의 성질과 제한성이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배고프셨으며(마4:2), 목마르셨으며(요19:28), 피곤하셨으며(요4:6~7), 주무셨으며(눅8:23), 고난받으셨으며(마27:46), 십자가상에서 못박혀 돌아가실 때 양옆구리는 창에 찔려 피와 물이 쏟아져 나왔으며(눅22:44, 요19:30,34), 영혼이 육체에서 떠났다(요19:30).
감정적으로 기뻐하시고, 슬퍼하시고, 울기도 하시고, 사랑도 하시고, 불쌍히 여기시기도 하시고, 시험도 받으셨다(마9:36;, 요11:35; 히2:18; 4:15; 약1:13).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에 관하여 상기와 같은 그리스도의 인간적 경험을 묘사하여 이르기를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셨다"(히2:17)고 하였다. 예수님은 참으로 사람이셨다.
(5) 신체적 성장 (Physical Growth)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신체적 발전의 통상법칙에 순종하였다.
사람은 어린아이로 태어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라나는 것같이 예수님도 "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었다"(눅2:40, 52).
"자라나며 강하여지고" (ԑԑԒՇՕՎՁՍԽՍ ՊՁԿ ԽՊՑՁՔՁՉՏՕՔՏ ԝ= grew and became strong) 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육체적 성장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육체가 자라나며 튼튼하여졌다. 예수님은 음식을 잡수시므로 정상적으로 신체가 성장하였다.
"지혜가 충족하며" ( ՋՇՑՏՕՌԽՍՏՍ ՓՏՖԿՁ = being filled with wisdom) 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정신적 성장 (mental growth) 을 가리킨다.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 (ԷՁՑՉՒ ՈԽՏՕ ՇՍ ԽՐ ՁՕՔՏ = grace of God was upon him)는 말씀은 예수님의 영적 성장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성장은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균형을 이룬 성장을 2하였다.
예수님의 신체적 성장은 예수님의 인성을 증명한다.
(6) 고난, 죽으심, 장사 (Suffering, Death and Burial)
예수님은 고난 받으시고, 죽으셨고, 장사지낸바 되셨다(고전 15:3-; 요19:30; 눅23:46). 예수님은 全人의 장기적 고난을 받으시되 특히 그의 생애 말기에는 형언할 수 없는 더욱 심한 고난을 받으셨다. 반역한 제자의 손에 의하여 원수들에게 넘겨졌으며 종교계의 심문들(안나스 앞에서, 헤롯 앞에서 , 다시 빌라도 앞에서)을 다 받으셨다. 그리고 원수들은 예수님께 홍포를 입히고 , 가시관을 씌우고, 오른손에 갈대를 잡게 하고 , 얼굴에 침을 뱉으며, 갈대로 머리를 때리고, 십자가를 지워 골고다 언덕까지 가게 한 후 십자가에 못받아 잔인하게 처형하였다. 아리마데 요셉과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성체를 아리마데 요셉의 소유인 새 무덤에 장사 지냈다.
이상과 같이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시고,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심은 예수님은 분명히 인성을 소유한 사람이었음을 증명한다. 예수님은 우리와 꼭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나 그의 인성에는 신성이 공존하였으며, 인간의 성질은 있으나 죄의 성질은 결코 완전하고 참된 사람이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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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독론, 조영엽, P. 43~47.
3) 학자들의 증명
(1) 박형용 박사 :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의 증거로 다음의 내용을 제시했다
* 구약의 증언, 자칭과 타칭(他稱), 신체와 영혼 인적 발전, 인적 경험, 인적 유한성
(2) 하문호 박사
① 구약의 증인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창3:15)
아브라함의 씨로 오실 메시야 (창22:15~18)
다윗의 혈통에서 나실 메시야 (삼하7:12~13)
아기로 탄생하실 메시야 (사9:6, 7:14)
② 예수님의 자의식 (요8:39~40)
③ 신약 저자들과 사도들의 증언 (마1:1~17; 눅3:23~38; 롬5:15; 고전15:21)
④ 예수님의 육체와 영혼을 말하는 성구
* 육체 : 요1:14, 딤전3:16, 요일4:2~3
* 영혼 : 마27:50, 눅 23:46
⑤ 심신의 성장 (눅2:40, 52; 히5:8)
⑥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경험들을 하심 (마4:2, 8:24, 9:36; 막3:5, 4:6,; 요 11:35; 눅22:44)
⑦ 인간적 제약을 받으심 (마24:36; 눅7:9)
(3) 찰스 라이리(Chatles Ryrie)교수
① 그는 육신을 가졌다 (눅2:52; 요8:40)
② 그는 인간의 영혼을 가졌다 (마26:28)
③ 그는 인간의 특성을 나타내셨다.
④ 인간의 이름으로 불려 졌다 (딤전2;5).
* Hungry (마4:2) , Thirsty (요19:28) , He grew weary (요4:6)
He experienced love and conpassion (마9:36) He wept (요11:35)
He was tested (히4:15)
(4) 스토롱 (A. Strong) 교수
① Reality
a. 사람으로 불려지다 (요8:4; 행2:22; 롬5:15; 고전15:21; 딤전2:5)
b. 합리적 영혼과 물질적 육체의 소유 (마26:38; 요11:33; 마26:26~28; 눅 24:39; 히2:14; 요일1:1)
c. 너무나 인간적인 삶, 감정, 능력 (마4:2; 요19:28, 4:6; 마8:24; 막 14:23).
d. 정상적인 발달 (눅2:44,46,49,; 히5:8).
e. 고난을 받으시고 사망 (눅22:44; 요19;30, 34).
② Integrity
a. 초자연적 잉태
b. 원죄와 실제적 죄로부터의 완전 자유
c. 이상적 인간 본성 소유
d. 신성의 연합에 의한 인격
e. 본원적 자기 교통의 능력
(5) 이반스(William Evans) 교수
①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가 증거 :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예수는 출생
( 마1:18, 2:11, 12:47, 13:55; 요1:14, 2:1; 행13:23; 롬1:3; 갈4:4; 눅1:35 )
② 인간의 정상적인 발달과정을 거친 그의 성장과정 (눅2:40, 52, 46)
③ 사람의 모습을 분명히 유지
(요4:9; 눅24:13; 요20:15, 21:4~5; 막7:34, 15:34; 행7:56; 딤전2:5)
④ 인간의 육신적 본성 소유
(요1:14; 히2:14; 마26:12; 눅23:46, 24:39)
⑤ 무죄하나 인간의 연약성에 복종
(마4:2; 요19:28, 4:6 , 19:30, 11:35; 마8;24, 23:37, 26:36, 40; 히4:15; 시 51:5)
⑥ 자신과 타인으로부터 인간의 이름이 부여
(눅19:10; 마1:21; 행2:22; 딤전2:5; 요1:49~50; 마26:63~64)
4) 종합적 증명
(1) 정상적인 출생과정이 인성을 증명한다. (마1:14; 눅2:16; 롬1:3; 마1:1)
(2) 정상적인 성장과정이 인성을 증명한다. (요7:15; 눅2:41; 히5:8, 4:15)
(3) 인간 본성의 요소들이 인성을 증명한다.
(4) 인간적 호칭의 통용이 인성을 증명한다.
(5) 무죄하나 인간의 연약성의 노출이 인성을 증명한다.
(6) 사람으로 인지된 사실이 인성을 증명한다. ( 요1:30; 행2:22; 딤전2: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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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김장진 교수, 강의 내용 중 4-82~86
5) 예수 그리스도의 양성(神性과 人性)에 대한 고대의 異說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잘못된 개념들을 주장하는 이단설들이 주후1세기로부터 4세기에 이르기까지 발산되었으며 이 이단설들을 여러 형태의 이단종파들을 통하여 금일에 이르기까지 유포되어오고 있다. 잘못된 이단설들을 고찰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정통교리를 정립할 것이다.
(1) 도케테파 (Docetism) : 그리스도의 인성(Humanity) 부인
도케테주의란 도케오(ՄՏՊԽՙ, to seem, to appear : 보여진다, 나타난다)라는 동사에서 인출된 명칭이다(눅10:36, 행17:18 등).
이 단어의 중심사상은 예수님이 참사람은 아니고 다만 사람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인간적인 존재라기보다는 유령과 같은 하나의 幻影이라는 것이다 ( J.F.Bethune Baker, An Introduction to the Early History of Christian Doctrine 〈 London: Methuen, 1903〉, p. 80).
1세기 후반기에 말시온파, 2세기의 그노시스파, 3세기의 마니교들은 주장하기를 " 그리스도는 실제적 사람이 아니라, 헬라의 신화에서와 같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것 뿐이다"라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적 실체의 실재성 즉 인성을 부인하였다.
그 이유는 물질은 고유적으로 악하다는 헬라인들의 이원론적 철학사상에 기인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개념이란 하나님이 볼 수 있는 형태로 나타나셨다는 것을 의미하며, 영과 육신의 직접적인 접촉을 반대하였다.
또한 도케테파는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를 통하여 태어나되 오직 하나의 운송수단 뿐이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마리아의 복중에 9개월 동안 임신하였다면 그 동안 마리아에게 어떠한 물질적 공급을 받았을 것이며 그럴 경우에는 신성이 지닌 도덕성을 타락시키는 일이 될 것이 되기 때문이라고 반대하였다(Bethune - Baker., p.81).
에비온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한 반면에 도케테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 즉 도성인신의 실재성을 부인하였다. 사도 요한은 그들의 거짓 교훈을 요한일서 4:1~3에서 지적하고 책망하였으며 2세기 초 교부 익나시우스와 이레네우스도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도케테파의 이단설을 반대하였다.
(2) 아폴리내리안파(Apollinarism): 그리스도의 인성의 완전성 부인
4세기의 젊은 아폴리내리스는 아리안주의의 그리스도의 신성의 완전성 부인에 강력히 반대한 나머지 그 반동으로 그리스도의 인성의 완전성을 부인하게 되었다.
그는 가르치기를 그리스도는 신체와 영혼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영을 대신하여 로고스를 가지고 있는데 이 로고스가 인간의 몸과 혼을 주관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또 주장하되 그리스도는 신체는 가지셨으나 그 신체는 어떤 방식으로 매우 승화되어 거의 사람의 신체가 아니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그는 사람의 몸, 혼 , 영의 3요소로 구성되었다고 하는 이방 헬라인들의 3분설의 개념을 수용하여 그리스도의 인성을 축소하였다. 아폴리내리안파는 도케테파만큼 예수님의 인성을 전면 부인하지는 않았으나 실제상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의 이단설은 A.D.381년 콘스탄티노플회의(The Council of Constantinople)에서 정죄되었다.
(3) 네스토리안파(Nestorianism): 그리스도의 2성분리
네스토리안파 이단은 그리스도를 2성(deity and humanity)으로 분리하였다. 네스토리우스는 설명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는 2성 연합의 형태 또는 나타남(form or appearance)이라고 하였다. 즉 신인의 그리스도(divine - human Christ)로 만드는 대신에 신과 인(divine and human)의 그리스도로 만들었다.
네스토리안파는 초기 아리안주의(그리스도의 신성의 완전성 부인)를 반대하고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변호하되 그의 참된 인성을 부인함없이 하려는 노력에서 그리스도는 실제로 神人 2위라는 교리로 발전되었다. 네스토리안파는 신성과 인성의 연합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연합보다는 연결(conjunction)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A.B.B.ruce, The Humiliation of Christ in its Physical and Official Aspects, pp.50-51). 그리하여 네스토리안파는 그리스도 안에 2성의 진정한 연합을 부인하였다. 네스토리우스 콘스탄티노플 대감독은 A.D.431년 에베소 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받았다. 그와 같은 결정을 하게게 된 것은 알렉산드리아의 시릴의 영향이 컸다 (Kelly, Early Christian Doctrines, p. 311).
(4) 에비온파(Ebionism): 예수의 신성(Deity) 부인
2세기의 이 이단은 예수는 요셉과 마리아의 자연적 육신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주장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그리고 그의 신성과 선재를 부인하였다. 그들은 또 주장하기를 예수는 모세의 율법을 완전히 성취하였음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메시야로 선택하였다. 그런데 메시야적 양심은 그가 세례를 받을 때 동시에 성령을 받을 때 임하였다고 하면서 세례는 예수의 생애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한다.
에비온파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로서 유일신주의 곧 단일신론(monotheism)를 주장하였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게 되었다. 도케테파가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한 반면에 에비온파는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였다.
(5) 아리안파(Arianism): 그리스도의 신성의 완전성 부인
4세기 알렉산더의 사제인 아리우스(Arius, A.D. 336)와 초대교부 아타나시우스 사이에는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질 인가, 아니면 유사인가? 라는 중요한 교리적 논쟁이 일어났다. 아리우스는 주장하기를 예수가 태어난 이상 시작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예수의 신성은 하나님과 유사하나 동질은 아니라고 하였다. 그들은 또한 그리스도는 하나님도 아니요, 반면에 사람도 아닌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위치한 사람으로 지음을 받은 자들 중에는 가장 위대한 피조물이라고 하였다. 아리안파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성, 신성의 완전성을 부인하였다. 아리안파는 예수 그리스도의 도성인신의 진리를 바로 깨닫지 못한고로 그와 같은 이단설을 주장하였다.
니케아 회의와 콘스탄티노플회의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서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same essence)을 가지셨다고 결의하고 아리우스의 이단설을 정죄하였다.
(6) 유티키안파(Eutychianism): 이성의 혼합을 주장
유티키안파(378-454)는 네스토리안파를 반대하여 그리스도 안에 오로지 일성만이 있다고 가르쳤다. 즉 신성이 완전한 신성이 아니며, 인성도 완전한 인성이 아니라, 신인혼합의 단일성이라는 것이다. 유티키안파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신성에 흡수시켜 이성을 일성으로 만들었다. 즉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고 신성만을 강조하였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이성의 연합을 부인하는 단일성의 오류를 범한 것이다. 유티키안파는 A.D. 451년 칼세톤회의에서 정죄되었다.
(7) 칼세돈회의(The Council of Chalcedon): 정통적 교리확립
네스토리안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한 나머지 二性의 연합을 부인하고 신인으로 분리하였고, 유티키안파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한 나머지 인성을 신성에 흡수시켜 일성(신성)으로 만들었다.
이와 같은 기독론의 역사적 논쟁들을 종식시키고 정통교리를 확립할 목적으로 황제 데오도시우스 2세는 A.D. 451년 칼세돈에서 제 4차 세계 교회회의를 소집하고 네스토리안파와 유티키안파의 이단적 견해들을 모두 정죄하고 기독론에 대한 정통교리를 확립하였다.
칼세돈 회의에서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하여 결의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는 진정 완전한 하나님(perfect God) 이시다. 그리스도는 영원세계에서 성부에게서 독생하였다. 그러므로 신성에 관한한 성부와 동일한 본질을 가지셨다. 그리스도는 완전 무죄한 사람(innocent person)이다. 시간세계에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 인성에 관한한 죄를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으시다. 즉 합리적인 영혼과 육체를 소유하셨다. 그리스도는 일체(one body)를 소유하셨다. 그리스도는 일체(한 몸)에 신성과 인성을 소유하셨다(Philip Schaff, The Creeds of Christendom〈New York : Harper and Brothers, 1919〉,Ⅱ,p. 6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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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기독론, 조영엽, P.47~51.
6) 예수의 인성에 대한 최근의 경시들
우리는 처음에 예수의 인성에 대한 공공연한 이론적 부인이 최근 들어 거의 드물다는 것을 보았다. 사실 벨리는 '도케티즘의 끝'을 말한다. (Donald Baillie, God as in Christ (New York: Scribner, 1948),pp.11~20).
그러나 한면 혹은 다른 면에서 예수의 인성의 중요성을 축소하려는 기독론들이 존재한다.
(1) 칼 바르트
그의 『교회론』(Church Dogmatics)에서 발전된 바같이 칼 바르트 의 기독론은 케에르케고르의 믿음을 위한 역사의 역할에 대한 이해 뿐 아니라 계시에 대한 이해와도 연관되어 있다. 키에르케고르는 기독교 신앙의 입장에서 본다면 실제로 예수와 동시 대인들은 그를 보았던 목격자들이 아니라 그를 믿는 자들이라고 주장했다.
(바르트가 그의 후기 저작에서 하나님의 초월성에 대한 그의 좀 극단적인 견해를 일부 수정하였음을 주목해야 한다. The Humanoty of God 〈Richmond: John Knox,1960〉, p 47. )
따라서 예수께서 무엇을 행하시고 무엇을 말하였는지에 대한 증인이 되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 케에르케고르는 '숨겨진 신'이라 하여 그리스도의 신성이 철저하게 인성 속에 숨기어져 있음을 의미하였다. 결과적으로 인간 예수와 그리고 그가 행하고 말한 것에 대한 관찰 심지어 그에 대한 상세한 묘사조차도 그의 신성을 드러 내지는 않는다.
바르트는 그가 비록 예수의 인성에 대해 독특한 만한 어떤 것을 못하고 있을지라도 그의 인성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실상 나사렛의 랍비이며 역사적으로 그에 관한 자료를 얻기가 어렵다.
바르트에 따르면 우리가 예수께서 말하시고 행하신 모든 것을 올바르게 확인할 수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 가지고 하나님을 알 수는 없다. 몇 유명한 형태의 변증론들은 예수가 행하신 이적들과 행위 그리고 이상한 가르침으로부터 그가 하나님이 틀림없음을 주장하려는 시도를 한다. 만약 어떤 이가 그 증거들을 조사하지 않고 사용하려 한다면 이들 항목들은 그의 신성에 대한 논란을 여지도 없는 증거들로 제시된다. 그렇지만 바르트의 견해로는 예수의 생애의 완전한 연대기가 만들어 질지라도 명백하기보다는 더욱 불명료할 것이다. 이 증거는 예수 자신의 생애 안에 나타난다.
베드로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계시한 것은 혈과 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였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역사적인 예수에 대한 지식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는 없는 것이다.
(2) 루돌프 불트만
믿음을 위하여 지상에서의 예수에 대한 역사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하여는 루돌프 볼트만(Rudolf Bultmarm)의 생각이 바르트의 그것보다 더 급진적이다. 마르틴 켈러의 모범에 따르면 불트만은 예수의 역사를 히스토리에 와 게쉬흐테로 구분하고 있다.
불트만은 정상적인 사료 편찬 방법을 사용해 히스토리에로 돌아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그것이 실제로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원초적으로 사물들의 속성인 우주론이나 역사에 대한 일반적인 의미인 실제적으로 발생된 사건들과 관련되지 않기 때문이다.
바르트와 불트만의 견해는 서로를 구분할 수 있는 특징적인 모습들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함께 동의하는 바는 인간 예수의 지상에서의 삶의 역사적 사실들이 믿음을 위해서는 중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믿음을 위해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결정적이가? 바르트는 초자연적 계시라고 말하고 불트만은 초대 교회 설교의 실존적인 내용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바르트의 기독론이 이 점에서 그의 계시에 관한 교리에서와 같은 난점들로 인해 고통받음을 주목해야 한다. 기본적인 비평은 잘 알려져 있으며 이 연구의 처음 장들 중에서 요약되었다. 이해하기 쉬운 객관적인 표현으로 말하자면 바르트의 기독론에는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경험에 관련된 문제들이 존재한다.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윌의 지식과 경험에 관련된 문제들이 존재한다. 더구나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라는 표현의 강조가 극도로 축소되어 있다.
불트만의 경우, 성경적 견지에서 거의 정당화될 것 같지 않은 히스토리에와 게쉬흐테를 분리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과 그 충격에 관련된 바울의 언급들은 특별히 지적될 만하다(고전 15:12~19). 그리고 불트만과 바르트 모두는 예수의 인성에 대해 직접적 관심을 요구하시는 예수의 부활 이후 진술들을 무시하고 있다(눅24:36~43, 요20:24~2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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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기독론, 밀라드 J. 에릭슨, 홍찬혁 역, P.107~112.
7) 참되고 완전한 人性 및 無罪性의 증명
고대에도 그리스도의 인성의 진정성과 (도케데주의와 노스틱주의에 의해) 완전성이 (아폴리내리안 주의에 의해) 부정되던 때가 있었으며, 후대에도 이런 부정은 종종 나타났다. 그리스도의 진정한 인성에만 일방적으로 치중하는 것이 현대의 경향이다. 이 현대적 경향은 그리스도의 신성에만 일방적으로 치중하여 그의 인성의 진정성과 완전성을 가리웠던 과거적 경향에 대한 항의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성의 일방적 강조나 인성의 일방적 강조의 결과로 그의 二性中 어느 하나를 가리우는 것은 옳치 않다. 그리스도의 신성의 실재성과 완전성을 강조하는 것 만치, 그의 인성의 실재성과 완전성을 강조할 때, 신인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신앙고백이 되는 것이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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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조직신학 강의, 송용조 저, P. 223.
聖經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밝히 證言하고 있으되, 또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되고 완전한 인간, 그러나 무죄한 인간임을 밝히 가르쳐 주고 있다. 이 사실에 대한 성경의 증거를 2단계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참되고 완전한 인성의 증명
구약의 증언
구약에서 「메시야」를 예언한 성구들을 찾아보면 그 메시야 인간으로 오실 메시야로 표현되어 있다.
*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 (창3:15)
* 아브라함의 씨로 오실 메시야 (창22:15~18)
* 다윗의 혈통에서 나실 메시야 (삼하7:12, 13)
* 아기로 탄생하실 메시야 (사9:6 ; 사7:14)
예수님의 自意識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의식하시는 동시에 또한 자신이 사람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계셨다. (요8:39, 40)
신약 저자들과 사도들의 증언
신약 저자들과 사도들도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만 인식한 것이 아니라 또한 동시에 인간으로 인식하고 또 그렇게 불렀다.
* 마태와 누가의 인식 :
복음서의 기록자인 마태와 누가는 예수 그리스도가 분명히 다윗의 혈통으로 말미암은 인간이었음을 인식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예수님의 족보를 마1:1~17과 눅 3:23~38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 바울의 증언 :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사람」으로 불렀다.
"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롬5:15).
鱁. 예수님의 육체와 영혼을 말하는 성구
* 肉疜 (요1:14; 딤전3:16; 요일4:2,3)
* 靈魂 (마27:50; 눅23:46)
심신의 성장
예수님은 그 심신이 보통 인간들과 똑같은 성장의 과정을 밟으셨다는 사실에서도 그의 인성이 증명된다. (눅2:40; 2:52; 히5:8)
ꑁ. 인간만이 가질수 있는 경험들을 하심
예수님은 인간이 아니라면 가질 수 없는 배고픔과 피곤을 느끼셨고 또 주무시기도 하셨으며 喜怒哀樂의 감정을 가지셨고 기도도 하셨다. (마4:2; 8:24; 9:36; 막3:5)
인간적 제약을 받으심
예수님에게도 알지 못하는 것이 있었고 이상하게 여기시는 일도 있었다. (마24:36; 눅7:9)
(2) 무죄한 인성의 증명
위에서 본 대로 예수님은 참되고 완전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 분은 도덕적 완전성, 즉 무죄성을 지니셨다. 성경은 다음 여러가지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무죄성을 증언한다.
* 성령으로 잉태 :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에게 잉태됨으로서 인간의 유전적 부패로부터 보호를 받게 되었다. 눅1:35의 "하나님의 아들"이라 한 말은 그리스도의 성령 잉태와 아울러 그로 말미암은 무죄성을 증명해 주는 말이다.
* 죄 의식이 없으심 :
그리스도에게 있어서는 죄 의식이나 그로 인한 고통을 느끼신 일이 없다. 스트롱 교수는 이에 대하여 말하기를 "예수님은 유전적 부패와 실제적 범죄로부터 자유로웠으니 이러한 사실을 그가 결코 犧牲祭나 赦罪를 위한 기도를 드리지 아니한 사실과 또 자신의 重生의 필요를 전혀 가르치지 아니한 사실과 단 하나의 죄에 대하여도 도전을 받지 아니한 사실에서 증명된다"고 하였다(눅23:34; 요3:3,5; 요 8:46).
* 罪 없으심을 직접 말하는 성구 : 고후5:21; 히4:15; 벧전2:22; 요일3: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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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기초교의 신학, 하문호 저, P. 56~62.
(3) 무죄한 인성에 관한 성경의 증거
우리는 그리스도께 자연적 완전성뿐 아니라 도덕적 완전성 즉 무죄성도 돌린다. 이 말은 그리스도께서 범죄를 피할실 수 있었고 실제로 피하셨을 뿐 아니라 인성과 신성의 근본적 결속으로 인해 범죄하실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사법적으로는 죄로 삼은 바 되셨지만 윤리적으로는 유전적 부패와 자범죄로부터 자유로우셨다. 심지어 성경은 그를 이상적 인간의 구현체로 묘사하고 있다(히2:8,9; 고전15:45; 고전15:45; 고후3:18; 빌3:21).
더욱이 예수께서 애용하신 '인자'라는 명칭은 그가 인성의 완전한 이상에 부합되는 분임을 암시한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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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루이스 벌코프 저, 권수경,이상원 역, 벌코프 조직신학 下, P. 548.
(4) 예수의 무죄성
예수의 인성에 관련된 더욱 중요한 한가지 논점은 그가 죄를 지었는가 혹은 정말 그가 죄를 지을 수 있었는가 하는 물음이다. 교훈적인 문장들(didactic passages)과 설화 자료들(narrative matetive materials)속에서 성경은 이 문제에 있어 상당히 명확하다.
교훈적이거나 직접적으로 선언하는 구절들은 상당히 많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께서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4;15)고 말한다.
예수는 "대제사장이요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되신 자"이며(7:26) "흠 없는 자"(9:14)로 기록되고 있다. 예수를 잘 알고 있던 베드로는 그를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요6:69)로 선언했고 예수께서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며"(벧전2:22)라고 가르쳤다.
예수는 자신도 때로는 분명하게 때로는 암시적으로 자신의 의로우심을 주장하셨다. 그는 그의 청중들에게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는냐?" (요8:46)라고 물으셨으며 아무도 대답지 아니했다. 그가 성전에 들어가셨지만 우리는 그가 자신과 그의 죄를 위해 희생 제사를 드린 기록을 볼 수 없다. 신성 모독이란 것 이외에 그에 대한 아무런 죄의 고소도 없었는데 그것은 물론 만일 그가 하나님이시라면 그 때는 그가 행하신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아닌 것이 된다. 예수의 무죄함에 대한 절대적 증거는 없지만 그가 십자가에 못박혀야 했던 그 고소에 대하여는 그의 무죄를 증명할 충분한 증거들이 있다. 빌라도의 아내가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마27:19)라고 경고 했고 십자가에 달린 한 강도는 "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눅23:41)고 했다.
예수의 무죄함은 복음서들의 기록 속에서 증명된다. 그를 유혹한 기록은 있지만 그가 범죄하였다는 기록은 없다. 그에 대해 아무런 기록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된 선과 악에 대한 법과 상충된다. 그가 행한 모든 것은 아버지와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직접적인 확증과 특별한 부분에서의 침묵 모두를 기반으로 우리는 성경이 예수의 무죄함을 한결같이 증거하고 있다고 결론지어야 한다. 12)
테일러(A.E. Taylor)는 직접적으로 "만약 어떤 이가 특정한 죄를 범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가 전혀 죄의 유혹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13)
그러나 이것이 정말 그러한가? 그 밑에 깔린 가정은 만약에 어떤 것이라도 가능성을 지닌다면 그것은 반드시 실제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을 바꿔 말하면 결코 발생하지도 그리고 결코 실제화하지 않는 어떤 것은 반드시 실제화에 대한 가능성도 가지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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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Christ and the christion(New,York:Hanrper and Row, 1958), pp. 110~114.
13. A.E.Taylor, in Asking them Questions, ed. Ronard Seby Wright (London:Oxford University, 1936), p.94.
그러나 우리는 예수는 참으로 모든 면에서 우리처럼 유혹을 당하셨다는 히브리서 기자의 진술을 가지고 있다(4:15). 그러나 예수께서 죄를 지을 수 있었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악을 행치도 않으시고 시험당하시지도 않으신다(약1:13)고 말한다.
레온 모리스는 테일러의 주장의 역은 참이라고 주장한다. 유혹에 저항하며 이기는 자가 유혹의 강도를 안다. 무죄하다는 것은 그 강도가 약한 유혹보다 더욱 강력한 유혹이 있음을 가리킨다. 한 특정한 유혹에 굴복하는 자는 그 유혹의 힘의 전부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유혹이 아직 그 힘을 다 드러내지 못할 때에 이미 굴복 했다. 그 특별한 시험과 관련된 것처럼 오직 유혹에 굴복하지 않는 자만이 죄가 없으며 그 유혹의 완전한 세력을 안다. 14)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진실된 인성은 우리들 경우에는 더럽혀지고 타락했다. 오직 세명의 순수한 인간이 있었을 뿐이다. 즉 (타락 하기 전의) 아담과 이브, 그리고 예수, 우리들 나머지 모두는 깨어지고 더럽혀진 인성의 각색판이다. 예수는 우리들과 같은 인간일 뿐 아니라 더욱 완전한 인간다운 인간이다. 우리의 인성은 우리가 그의 인성을 측량하는 그 기준이 아니다. 그의 참되고 순수한 인성은 우리가 그것에 의해 측량되어져야 하는 기준인 것이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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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Morris, Lord form Heaven, pp. 51~52.
15. 기독론, 밀라드 J. 에릭슨, 홍찬혁 역 P. 112~116.
3. 주제에 대한 견해
1) 그리스도의 二性의 必要
우리는 지금까지 그리스도 안에는 참되고 완전한 神性과 人性이 있음을 보아왔다. 그런데 여기에 한가지 중요한 교리적인 질문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왜 신성과 인성을 지녀야만 하였는가라는 문제이다. 이제 그 이유를 살펴 보자.
(1) 人性의 필요성
그리스도는 球束事役에 있어서 죄인을 대표하기 위하여는 반드시 인류의 한 사람이 되어야만 하셨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형벌을 담당하기 위하여 :
형벌은 인간이 범한 죄의 댓가인고로 인간이 받아야만 했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이 형벌을 대신 받기 위하여 인간이셔야만 하였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인간의 몸을 입고 마음의 고통과 육신의 피 흘림으로 구성되는 형벌을 받으셨다. (히2:14;,15; 9:22)
* 시험받는 자의 救助를 위하여 :
그리스도는 인성을 취하실 뿐만 아니라 범죄 후에 떨어진 인간의 비참한 상태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시는 것이 필요하였다. 그리하여 그 분은 모든 일에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시었다. 이는 그가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기 위함이다.
* 죄의 代贖을 위하여 :
동시에 그는 죄 없는 사람이어야 하였으니, 이는 죄
있는 사람으로서는 다른 사람의 죄를 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히7:26).
(2) 人性의 의미
교회가 생겨난 지 처음 몇 세기 동안 그리스도의 참인성을 부인하는 집단들이 일어났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상황은 정반대이다. 최근 2세기 동안 자유주의 신학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줄기차게 부인해 왔다. 그러나, 루이스(C. S. Lewis)는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하여 몇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그리스도가 자신에 관해 언급하신 엄청난 주장들을 살펴보면, 그는 단순히 "선한 선생님"이라 불릴 수 없다. 그는 자신을 선생 이상의 분으로 선포하였다.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은 그를 단순히 "하나님 같은" 분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인격 면에서나 행적 면에서나 절대적으로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시다. 그리스도는 전혀 손상이 없으신 신이시다.
빌립보서 2:6에 있는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라는 구절을 주석하면서, 워필드는 이렇게 말했다. "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서의 모든 것, 즉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모든 속성들을 충만히 소유하셨다고 선포된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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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폴 엔스, 최치남 역, 신학핸드북, P. 287.
(3) 人性의 필요성
그러나 또 한 편으로 우리의 구속자가 되려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셔야 했으니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무한한 가치의 제사와 율법의 완전 순종을 위하여 :
그리스도가 무한한 가치의 제사 다시 말해서 영원한 속죄의 효력을 가지는 제사를 단번에 드리기 위하여 또 모든 피택자들의 모든 죄를 赦하는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그는 하나님이셔야만 했다. 또한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 순종을 하기 위하여서도 역시 하나님이셔야 했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런 제사와 순종을 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진노에 대처하기 위하여 :
인간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생긴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의 어떤 행위와 보상으로도 무마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하여서 仲보者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셔야 했다. 그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에 대면하여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27:46) 라고 한 부르짖음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를 가라앉히는 무한한 가치를 발휘한 것이다.
* 구속의 효과를 적용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구속을 완성하시고 부활 승천하시어 보혜사 성령을 보내심으로 그가 완성하신 구속의 효과를 각 개인에게 적용하신다. 만일 그가 부활 승천하지 못하셨다면, 보혜사 성령도 오시지 아니하셨을 것이며(요16:7), 보혜사 성령이 오시지 아니하였다면, 구원의 적용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가 사망이 권세를 이기고 부활 승천하여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기 위하여는 하나님이셔야 했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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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기초교의신학, 하문호 저, P. 62~64.
(4) 예수의 인성이 암시하는 것들
예수의 완전한 인성에 대한 교리는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신학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① 예수의 대속적 죽음은 참으로 우리에게 유익될 수 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이는 인류와 상관없는 이방인이 아니다. 그는 우리들 중 하나이며 따라서 우리들을 대신해서 참된 희생 제사를 드릴 수 있었다. 구약의 제사작처럼 동일하게 그의 백성을 대신해 희생 제사를 드렸던 한 분이다.
② 예수는 참으로 우리들을 동정하실 수 있고 우리를 위해 중보자가 되실 수 있다. 그는 우리가 겪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겪으셨다. 우리가 배고프고 지치고 외로울 때 그는 충분히 동감하신다. 왜냐하면 그도 그 모든 것을 스스로 체험하셨기 때문이다(히4:15).
③ 예수는 참된 인성의 본질을 드러내신다. 때때로 우리가 우리들의 귀납적인 조사와 우리 주위에 있는 것들로부터 인성이 무엇인가라는 결론들을 내리지만 이것들은 인성의 불완전한 경우들일 뿐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한 인성이란 무엇인가를 말씀하셨고 그것을 보여주셨다.
④ 예수는 우리의 본보기가 되신다. 그는 어떤 하늘의 초능력적 인간(superstar)이 아니며 우리가 사는 곳에서 사셨던 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그리스도인의 삶의 한 모델로 여긴다. 우리가 수행하기 어려운 것처럼 느껴지는 인간 행위에 대한 성경의 기준들은 인간이 따르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것이 예수 안에서 드러나 보인다.
⑤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 우리가 본래부터 어느 정도 악하다거나 혹은 적어
도 영적이고 정신적인 것에 열등한 것으로 여기는 인간의 육체적인 본질과 관련해서 금욕주의로 흐르려고 할 때, 예수께서 우리 모든 인간의 본질을 스스로 취하셨다는 사실을 통해서 인간이란 악한 것이 아니요, 선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⑥ 하나님은 완전히 초월하신 것은 아니다. 그는 인류로부터 아주 멀리 계시지 않는다. 만약 그가 실제의 인간으로서 한 순간 동안 우리와 함께 실제 생활하셨다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간의 영역 안에서 활동하실 수 있으며 하고 계신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요한과 더불어 우리는 성육신이 실제적이며 완전하다는 사실에 즐거워한다(요1:14). 18)
.................................................
18. 기독론, 밀라드 J. 에릭슨, 홍찬혁 역, P.116~117.
2) 강해연구
(1) 인간의 몸을 가지심
★ 본문 ★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마1:23)"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은 그의 신성과 함께 인성을 구명함으로써 그 이해에 도
달할 수 있습니다. 그는 본래 '말씀'으로서 영원 전에 하나님 안에 선재해 계셨으나 하나님의 때가 이르매 성령으로 처녀의 몸에 잉태되심으로써 마침내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참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참 인간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의 아들이십니다.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상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① 인간의 몸을 가지신 예수
육신으로 태어나심 (갈4:4)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빌2:7,8). 예수 그리스도는 그가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역사적인 인물이 되셨습니다. 그가 인간으로서 역사 안에 들어오신 것은 만세 전부터 감취어 있던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을 나타내기 위해서였습니다(고전2:7,8).
인간은 하나님을 직접 만나거나 이해할 수가 없으므로 하나님은 반드시 그 아들을 통하여 당신을 인간들에게 계시하십니다. 구약 시대에는 율법과 예언으로 계시하시던 하나님이 때가 차매 그 아들이신 '말씀'을 육신이 되게 하심으로써 당신의 계시를 인간으로 구체화하신 것입니다(요1:14; 갈4:4).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인간을 만나시고, 인간들은 하나님을 만나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심
마1:18~25, 눅1:26~28에는 그리스도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탄생하신 기사가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물론 구약의 예언 대로입니다(사7:14). 특히 381년의 니케아신조, 451년의 칼케톤 종교회의에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라는 오늘날의 사도신경 고백을 완결지었습니다.
* 동정녀 탄생의 영적인 의미
동정녀 탄생의 진리는 무엇이 중요합니까? 바로 '완전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셨음을 강조하려는데 있습니다. 일단 인간 마리아의 몸을 빌려 오신 그리스도는 환상으로나 꿈으로 오신 '환영'이 아니라는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증언은 영지주의자들의 이단 사역을 막는데 필요한 진리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의 몸이 '환상'뿐이었다면 그분은 율법의 정죄하에 있는 우리 인생들의 죄를 실제로 담당하고 해결해 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속죄 행위도 진정한 '피흘림'이 없었으니 우리의 구원도 거짓된 것이요, 또 그리스도의 몸의 부활도 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고전15:12,13).
육신으로 성장하심
눅2:52에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으로 태어나셨기 때문에 보통 인간들과 똑같은 성장 과정을 거치셨습니다. 지혜도 자라고 키도 자랐습니다. 그는 이제 시간 안에 오신 분이므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성장)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성장기에 대한 성경의 증언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전해 줍니다.
① 그리스도 예수는 허구적이거나 신화적인 인물이 아니라 이 지상에 실 존했었던 역사적 인물이라는 것
② 그 생활이 한 인간으로서 흠잡을 데 없는 모범생이라는 것.
③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해 볼 때, 그리스도의 육신적인 성장과 생활은 바 로 율법을 온전히 이루는 생활을 했다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자 합니 다.
인간이 보고 만짐(요일1:1)
요한 사도는 '생명'을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고 했습니다. '생명'은 곧 '하나님'이요(요1:1~3), 이 하나님께서 우리 육신으로 목도할 수 있도록 오실 분이 그리스도라는 의미입니다.
* 인류에게 하나님을 알리고자 오심
요1:18에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바로 육신적인 우리 인생들에게 영이신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보여 주신 최고 계시 행위입니다.
* 인생을 체험하시고자 오심
요한 사도가 표현하는 '알고, 보고, 만지고'라는 말은 '사귐'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요일1:3). 히4:15에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이니 능히 우리 인생들, 특히 성도들의 애로를 도울 수 있으신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인간의 몸으로 오신 이유는 바로 우리 인생들의 문제에 동참하고 우리와 사귀기 위해 오셨음을 기억합시다.
* 그리스도는 인간이 볼 수 있는 몸을 가지셨음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히10:5).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히2:14). ' 이 여자가 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마26:12). 이와 같은 말씀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볼 수 있는 실재적인 몸을 가지셨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가지셨다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요소를 가졌다는 것으로서 그가 인성을 가지고 계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는 인간이 만질 수 있는 몸을 가지셨음
사도 요한은 본문을 통해 자신이 친히 예수 그리스도를 손으로 만져 보았다고 증거함으로 그 당시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면에만 치중하는 이단자들에게 그의 실재적인 몸을 증거했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그는 매우 피곤하셨기 때문에 깊이 잠드셨으며 그는 육신을 가지셨기에 육체의 한계를 경험하셨으며 음식을 섭취하셔야만 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그가 보통 인간들과 같은 몸을 가지셨다는 사실을 증거하며 그는 인간 중의 인간으로서 또 죄가 없으신 완전한 인간이셨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2) 인성으로서의 한계를 가지심
* 본문 *
"오히려 자기를 입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2:7,8).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으로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을 경험하시고 사셨습니다. 그는 인간이셨으므로 인격을 가지고 계셨으며 그의 지식과 감정과 의지는 보통 사람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보통 사람과 같이 되심으로써 완전한 인간이셨던 것입니다.
① 육체의 본능적 욕구를 가지심
기갈을 느끼심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마21:18).
예수께서는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 욕구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음식을 먹지 않으면 시장하시고 갈증을 느끼셨습니다(요4:7). 그것은 건강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극히 당연한 생리적 욕구입니다. 더구나 예수께서는 30세의 젊은 청년이셨으므로 이러한 욕구는 왕성했을 것입니다.
'굶주림'에 따른 문제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자 삶의 비극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40일을 금식하신 이유중 하나는 한 인간으로서 인생들의 굶주림의 고통을 친히 체득하시고자 하심이었습니다(히5:15,16).
* 육체적인 굶주림
의학적으로 볼 때 인간음 물만 마시면 사람에 따라 70일간은 생존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40일간을 굶으면 문자 그대로 탈진 상태가 됩니다. 신약성경에는 그리스도께서 먹을 식량이 없으셔서 굶주리셨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사탄에게 시험받고자 40일을 금식하셨다는 기록만이 있을 뿐입니다.
* 정신적인 갈망감
심리학자 '에슬로'는 인간의 가장 저급한 욕구가 육체적인 배고픔을 채우려는 '식욕'이라 했고, 또 인간으로서 고등한 욕구는 바로 '사랑 욕구'라고 했습니다. 즉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정신적인 갈망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역시 한 인간이셨기에 그와 같은 정신적인 갈망 욕구가 있으셨습니다. 제자들이 당신을 구세주로 믿어 주기를 원하셨고, 그 믿음을 갈망하셨으며, 반대로 배신을 당하셨을 때는 슬퍼하셨으며, 유대인들이 끝내 당신을 몰라 주자 예루살렘에서 울기도 하셨습니다.(눅19:41~42). 그러나 그리스도의 갈망감은 어디까지나 이기적인 욕구에서 기인된 것이 아니라, 오직 구세주로서 인생들에게 '믿음'을 요구하는 거룩한 갈망감임을 기억합시다.
피곤을 느끼심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요4:6). 예수께서는 유대에서 갈릴리로 돌아가시기 위하여 사마리아 사막을 걸어서 여행하셨습니다. 육신을 가지고 계셨으므로 피곤을 느끼셨습니다. 노동은 피곤을 가져 오고 피곤은 휴식의 즐거움을 줍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결코 피곤치도 않으시고 곤비치도 않으시는 전능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으로 오신 성자 하나님께서는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피곤'함을 느끼시고 또 토로하신 사실이 있음을 신약성경은 증거해 줍니다.
* 육체적인 피곤을 느끼심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온종일 유태에서 사마리아로 보행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정오쯤에 도착하셨는데 피곤함을 느끼셨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피로는 최대의 베개다'라 했는데, 그리스도께서는 피곤하셨기에 야곱의 우물 곁에서 쉬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노스틱주의자(영지주의)들처럼 그리스도께서 환상적인 육체로써 이 세상에서 활동하셨다고 믿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는 육체적인 피곤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음을 기억합시다.
* 정신적인 피로감을 느끼심
사람이 피곤함을 절실하게 느끼는 이유는 육체적인 피로보다도 사실을 정신적인 이유 때문일 경유가 많습니다. 이 심리적인 피로감으로 인하여 육체의 저항력이 쇠태하게 되어 병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 역시 한 인간의 몸으로 오신 자라 정신적인 피로감을 나타내신 증거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피곤함을 오직 거룩하신 인내심과 기도로써 해결하셨음을 기억합시다. 심신의 피로 때문에 사랑을 잃거나 사명심을 잃은 예가 단 한번도 없었다는 것을 유념합시다.
잠을 주무심
마8:24에 풍랑이 이는 배 가운데에서도 주무신 것을 보면 상당히 피곤한 생활을 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인간은 필요한 만큼 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고통을 받으심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혹은 손바닥으로 때리며'(마26:67).
예수께서는 메시야로서의 사역을 감당하시기 위하여 수치와 능욕과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고통을 통하여 우리의 질병을 고치시고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사53:5).
* 정신적인 고통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38절).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정신적인 고통을 제자들에게 토로하신 적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거대한 악의 세력과 인생으로서의 죽음을 앞에 놓고 심리적인 큰 고통을 겪으신 것입니다. 도 지상 생활 중에서 온 갖 비방, 모략, 오해, 협박, 배신의 고통도 당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모든 인생의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그것을 또한 이기셨기에 우리 성도들의 시험과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심을 기억합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다음과 같은 성경의 권고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5,16)
* 육체적인 고통
성경 특히 요한복음은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고통을 강조합니다.
그 당시 영지주의가 교회에 깊숙히 침투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받으시되 '허상'이 아닌 한 육체를 가지신 인간으로서 고통을 받으셨음을 증언합니다. '내가 목마르다'(요19:28)는 말씀은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육체를 지닌 분이시기에 십자가에 못박힘으로 물과 피를 쏟은 '탈진 상태'가 되어 극한 갈증을 느끼신 것입니다. 이렇듯 참몸으로 오신 분이시기에 그리스도의 고난이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고통과 고난이 한낱 하나님의 'SHOW'행위라는 영지주의의 주장대로라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고통과 질병을 담당하셨다는 성경의 증언도 참된 것이 아닐 것입니다.(사53:4,5).
죽음을 당하심
예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실 것을 알고 계셨으며 이를 제자들에게 간간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는 인간이셨으므로 죽음을 경험치 않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자기 죄의 대가로 죽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신 죽음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들의 죄를 구속하셔야만 하셨기에 그는 완전한 인성을 취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셔야 했습니다. 그런즉 그리스도의 본질에 관한 문제는 단순히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실제적인 문제입니다. 이제 그의 죽음으로 나타난 인성으로서의 한계에 대하여 상고해 보겠습니다.
* 그의 죽으심으로서의 고난의 한계를 증거합니다.
인성으로서의 한계로 받으신 십자가의 고난은 육체적인 고난만이 아니라 영혼에 이르기까지의 완전한 고난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의 '내가 목마르다'(요17:18).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니이까'(마27:46)라는 그의 고난의 외침들이 이 사실을 증거합니다.
* 그의 죽으심은 부활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형벌적인 의무들을 면제하기 위해서 우주의 주권적 지배자의 위엄,. 곧 그의 신적 위엄을 포기하시고 종의 형체로 인성을 취하셨다는 그 자체는 , 인성을 취하신 그 순간부터 인간에게 숙명적으로 다가오는 죽음 역시도 예수께 적용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의 죽으심은 인간들과 같은 자연적인 죽음이나 돌발적인 죽음이 아닌 인류구원의 대과업을 이루시기 위한 일시적 '제한'으로서 그 죽음은 부활의 한 과정일 뿐이다.
② 지식의 한계를 갖고 계심
성자로서의 지적 한계를 가지심
재림의 때와 세상 종말의 때는 성부의 지적 영역에 속한 것으로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이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지적 한계를 가지심
예수께서는 시장하셨으므로 무화과 열매를 따먹기 위하여 무화과나무를 접근하셨으나, 그 때는 무화과열매가 맺힐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열매를 얻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인간으로서 완전하셨기 때문에 이러한 지적 한계점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인간들의 생각과(마9:4; 눅6:8; 요1:47,48), 과거, 현재, 미래의 일들(요3:3; 4:16~19; 21:6)을 아시는 통찰력을 가지고 계셨으나 모든 것에 전지하신 것은 아닙니다(막5:25~34).
③ 감정이 풍부하심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심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특히 세리와 창기와 같이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특별히 관심을 가지시고 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마11:19). 그는 많은 병자들을 보시면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 주셨습니다.(마9:35,36).
사랑과 긍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입니다.
근심하고 슬퍼하심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막3:5).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보시고 안타까이 여기셔서 근심하시고 때로는 분노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멸망할 예루살렘 성을 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셨고(눅19:41), 그는 자신의 죽음을 앞에 놓고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셨습니다.
④ 의지적 활동을 하심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발적인 의지에 의하여 언제나 충성스럽게 순종하셨습니다. 그의 생애는 인간들을 위한 봉사와 대속제물이 되기 위한 메시야적 의지로 일관된 삶이었습니다(막10:45). 그의 생애는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를 향해 흔들림이 없이 전진한 의지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는 알파와 오메가입니다(계1:8).
(3) 칭호에 나타난 인성
* 본문 *
"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 ( 마1:21)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은 그의 생애와 칭호 속에 뚜렷이 나타납니다. 보통 인간과 같이 제한을 받기도 하고 때론 목마르며 피곤하기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완전한 것이었듯이 인성 또한 부분적이 아닌 온전한 것이었음을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만을 바라보게 되면 그의 구속 사역이 인간과는 관계가 없는 신적 사역으로 남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죄는 인간이 그 값을 치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인성을 가지시고 이 세상에 오셔야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하여 깨닫게 될 때 우리의 신앙은 더욱 진지하고 겸허한 신앙으로 성숙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① 인자
인자란 명칭은 주님께서 자신을 언급하실 때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마8:20)고 한 내용 속에서 육체를 지닌 예수 그리스도의 곤고함을 느끼게 됩니다.
육체를 지닌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 거처가 없다고 하신 예수는 메마른 성도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게 합니다. 인자라는 칭호는 육체를 지니신 온전한 인성의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줌과 동시에 보통 사람의 인자란 말과는 좀더 차원 높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단17:13).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의 초자연적 실재임과 같이 인간 실재의 인성을 지니셨습니다.
본문의 '인자'라는 명칭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통상적인 자칭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명칭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빈번히 사용되었습니다. 그의 가장 일반적인 자칭이었던 '인자'라는 칭호를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자'라는 칭호는 그의 인성을 증거함
지상적 활동에 있어서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의존성을 강조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칭호를 사용하신 이유는 그의 인성을 직접적으로 증거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6:53)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이 사실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인자'라는 칭호는 그의 고난받는 종의 신분을 증거함
그리스도께서 '인자'라는 칭호를 그의 메시야성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했을 때,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용어를 정치적 군사적인 의미로 그릇되게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난받는 종'으로서 인간의 몸을 가지시고 십자가에서 자기 백성들의 대속을 위하여 고난 받으셔야만 했습니다. 이와 같이 '인자'라는 칭호는 그의 신적 본질에 대해 증거할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대속적 죽음을 맞이하는 그의 인성에 대해서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눅19:10).
② 예수
예수(Jesus)라는 칭호는 그와 유사한 헬라어 '예수스'(ԩՇՓՏՕՒ)에서 온 라틴어이며, 이것은 '여호수아'(수1:1; 슥3:1)의 단축형인 히브리어 '여호수아'의 헬라화된 형태입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의 의미이며 단축화된 '예수아'는 강조점이 동사위에 놓여 있어 그 의미는 분명히 ' 그가 확실히 구원하시리라'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된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물론 그는 죄가 없으십니다. 그러나 죄를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인간과 같은 분이십니다. 그 안에 있는 신성이 인성 위에 넘치고 그것을 채우며 애워싸고 있으나 인성은 파괴되지 않으며 신성과 완전한 조화를 이룹니다.
'예수'라는 칭호가 '그리스도'라는 칭호보다 앞서 나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먼저 인간으로서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속하심으로 저희를 구원하신 후에야 효과적인 그의 신적 지배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 예수'라는 이름이 부여하는 그의 사명이 이것을 입증합니다.
③ 다윗의 자손
인간의 역사는 계보의 역사이며 인간은 조상이라는 뿌리를 벗어 날 수 없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다윗의 자손'(마1:1; 막10:47)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칭호는 역사 속에 실존하는 예수의 인성을 대변하여 주는 칭호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왕국의 뛰어난 왕이었듯이 예수 그리스도 또한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왕권을 지니신 분임을 가리키는 칭호인 것입니다. 요컨대 다윗의 자손 예수는 누구나 부르고 구원 얻을 가장 인간적인 구원의 이름입니다(요일3:23).
하나님의 선개적 아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신성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옴이 없이 육신을 입으시고 '다윗의 자손'으로 이땅에 오셨습니다. 인간들은 누구든지 세상에 태어났다가 본향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선조가 있고 족보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인간적 조상의 가계를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은(마1:1), 다시 말해서 그의 칭호대호 그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은(마21:9) 그의 인성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④ 사람
예수의 인성을 설명할 때 제일 구체적인 표현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2:5).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만의 예수가 아닙니다. 또 헬라인이나 로마인들만의 예수도 아닙니다.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로서 온 인류와 함꼐 계십니다.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잘 알기에 죽으심으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위엄은 그의 참된 인성을 간과하는 데까지 강조되어서는 안됩니다. 그의 인성의 실재성과 위엄성이 인정될 때, 그의 신적 위엄은 올바르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사람'으로 자칭하셨으며 또한 그의 제자들과 다른 사람들에 의해 '사람'이라 불리우셨습니다(요1:30; 8:40; 행2:22; 빌2:8).
이와 같이 예수께서 '사람'으로 호칭되었다는 것은 분명히 그가 진정한 인성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해 주는 것입니다. 그는 '사람'으로서 이 땅에 오셔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백성의 형벌의 보상은 '사람'만이 담당 할 수 있는 것으로 옛사람 아담으로부터 기인된 죄가를 '사람'이신 예수께서 치루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철저하게 인간들에게 사람으로 인식되어졌다는 사실은 그의 진정한 인성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사람으로 인식되어졌다 할지라도 그는 죄와는 무관한 온전한 인간이셨습니다.
3) 주제 관주 (용어해설)
① 예수의 육신을 보고 만진 자들
동방 박사들(마2:11), 세례 요한(마3;14), 갈릴리의 한 손 마른 자(막 3:1~5), 나다나엘(요1:47~49), 도마(요20:26~28), 베드로의 장모(마8:14~17)
② 죽음
* 죽음의 원인 : 늙음으로, 하나님의 징계로, 때가 차매, 병으로, 굶 어서, 죄로 인해, 스스로
* 그리스도의 죽음 : 우리를 위하여 - 대속물 (마20:28) 자기의 속전을 지불 (딤전2:6) 사망을 패하기 위해 (고전15:25,26)
③ 인자
* 인간으로서의 인자 : 세리와 죄인의 친구(마11:19) 안식일의 주인 (마12:8)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마16:16) 사흘을 땅 속에 계신 분 (마12:40)
* 권능자로서의 인자 : 왕권을 가지고 오시는 자 (마16:28)
죽은 자들 속에서 살아나실 자 (마17:9) 죄를 사하시는 자 (마9:6)
④ 예수
* 정해진 이름 : 그리스도라 칭하는 이 (마1:16)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의 이름 (마1:21) 동침 없이 출생한 이의 이름 (마1;25)
* 예수라는 이름의 문자적인 의미 : 눈의 아들 여호수아의 이름
(민13;8) 여호수아의 이전 이름 (민13:16)
- '구원'이란 의미의 히브리어에서 나왔음
- 히브리어 '호세아'를 헬라어로 음역함.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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