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1992년 롯데 염종석(17승 9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2.33 WAR 8.4)
혜성처럼 등장한 고졸신인 염종석은 1992시즌의 주인공이 되기 충분했다. 공을 던진 후 몸을 대(大)자로 뻗는 특이한 투구폼과 선동열에 견줘도 손색이 없었던 슬라이더는 한국야구를 강타했다.
특히 선동열(당시 해태)이 "슬라이더만큼은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염종석을 보고 내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고 극찬할 정도로 명품 슬라이더를 보유하고 있었다. 선동열은 85년부터 93년까지 평균자책점 1위를 독점했지만 염종석이 등장한 92년, 유일하게 타이틀을 지켜내지 못했다.
실제로 염종석은 직구와 슬라이더 단 2개의 구종만 가지고 그해 17승 9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2.33을 기록, 다승 3위 평균자책점 1위에 올랐다. 이 가운데 리그에서 4번째로 많은 204.2이닝을 소화했고, 13번의 완투와 2번의 완봉승을 따냈다.
무엇보다 이 겁 없던 신인의 무서움은 포스트시즌까지 이어졌다.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 선발 등판한 염종석은 9이닝 동안 고작 5개의 안타만 허용하며 완봉승의 괴력을 뽐냈다. 이후 해태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홀로 2승을 챙겼고, 빙그레와의 한국시리즈에서도 구원승을 따내며 롯데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우승을 이끌었다.
② 1993년 삼성 양준혁(타율 0.341 23홈런 90타점 WAR 6.85)
'염종석 센세이션'이 휘몰아친 프로야구는 이듬해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를 맞이하게 된다. 바로 삼성의 유니폼을 입기 위해 대학졸업 후 군입대까지 마다하지 않은 양준혁이 그 주인공이다.
양준혁은 데뷔 첫 해 타율과 출루율, 장타율 등 비율 스탯 부문을 모두 싹쓸이했다. 특히 신인 타격왕은 양준혁이 처음이며, 2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나오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양준혁은 신인 첫 20홈런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이기도 했다.
데뷔전에서 5타수 5안타로 화려하게 등장한 양준혁은 삼성의 3번 타자 자리를 단숨에 꿰찼다. 시즌 내내 절정의 타격감을 유지, 20경기나 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홈런(23개)과 타점(90개)은 나란히 2위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1993시즌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치열한 신인왕 경쟁이 펼쳐진 해이기도 했다. 바로 또 다른 천재 이종범(해태)이 동시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종범은 타율 0.280 16홈런 53타점 73도루의 신인답지 않은 활약을 펼쳤지만 끝내 양준혁에게 밀렸고, 한국시리즈 MVP로 위안을 삼았다.
최초의 기록을 다수 보유하며 프로생활을 시작한 양준혁은 은퇴를 선언했을 때, 최고의 기록을 7개나 보유한 레전드로 팬들 곁을 떠났다.
③ 1996년 현대 박재홍(타율 0.295 30홈런 108타점 36도루 WAR 7.5)
역대 최초의 30-30클럽(30홈런-30도루)이 '괴물신인' 박재홍의 손과 발에서 시작됐다. 프로야구 역사의 새 지평을 연 박재홍의 활약에 당시 언론과 팬들은 '호타준족'의 수식어를 붙이는데 큰 이견을 달지 않았다.
사실 박재홍의 프로 입단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광주일고 출신인 그는 이미 해태로부터 1차 지명을 받았지만 연세대 졸업 당시 태평양을 인수한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기로 하며 계약파동의 중심에 섰다.
우여곡절 끝에 양 구단은 트레이드 형식으로 계약을 마무리 지었고, 마침내 아마추어 시절부터 '리틀 쿠바'로 명성을 날린 특급 유망주의 프로 데뷔가 이뤄졌다. 그리고 박재홍은 데뷔하자마자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전혀 다른 야구를 선보였다.
물론 이전에도 파워와 스피드를 동시에 갖춘 선수들이 있긴 있었다. 하지만 박재홍의 레벨과는 엄연히 하늘과 땅 차이였다. 작고 당당한 체구였던 박재홍은 몸집과 어울리지 않게 파워가 넘쳤고, 특히 발이 빨랐다. 그의 모습을 보기 위해 야구장은 연일 관중들로 넘쳐났다.
당시 당돌한 신인선수가 리그를 지배하자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타격폼에 대한 딴지였다. 대부분의 타자들이 최대한 뒤로 물러나는 것과 달리 박재홍은 타석 가장 앞자리에서 공격적으로 배트를 휘둘렀다. 따라서 박재홍은 타격 시 타석을 자주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재홍은 시즌 전경기를 소화하며 30-30 클럽 가입에 성공했고, 홈런왕과 타점왕 등극까지 함께 이뤘다. 박재홍은 지금까지도 프로야구 유일의 신인 홈런왕이며, 만장일치로 신인왕에 선정된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④ 2006년 한화 류현진(18승 6패 평균자책점 2.23 204탈삼진 WAR 7.78)
류현진은 입단 당시만 해도 크게 주목받는 신인이 아니었다. 팬들의 시선은 프로야구 역대 최고 계약금을 거머쥔 '10억팔' 한기주(KIA)에게 쏠려있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대선배 구대성으로부터 써클체인지업을 전수받은 류현진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류현진은 LG와의 데뷔전에서 7.1이닝 무실점을 기록, '괴물 투수'의 탄생을 알렸다. 특히 10개의 탈삼진은 신인 데뷔전 최다 기록이기도 했다.
이후 류현진은 입단 동기들뿐만 아니라 기라성 같은 선배들까지 압도했다. 시즌 내내 계속된 '괴물투'는 신인 최다승 타이기록(18승)을 이끌어냈고, 최연소 200이닝과 200탈삼진 돌파도 함께 이뤘다. 또한 류현진은 역대 8번째 한 시즌 200탈삼진을 기록한 선수이기도 했다.
류현진의 활약은 포스트시즌에서도 이어졌다. 류현진은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서 크게 힘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는 3경기(선발 2경기)에 등판해 12이닝을 책임지며 평균자책점 2.25를 기록했다. 비록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신인답지 않은 두둑한 배짱이 인상적이었다.
결국 선동열 이후 15년 만에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류현진은 그해 신인왕은 물론 시즌 MVP까지 싹쓸이하며 최고 자리에 우뚝 섰다.
이 외에도
박정현
38경기(5위) 25선발 242⅔이닝(2위) 17완투(2위) 4완봉승(2위)
19승(2위) 10패 2세이브 116탈삼진(5위), 평균자책점 2.15(2위), 승률 0.655(5위)
조규제
49경기(2위) 4선발 142⅓이닝
9승 7패 27세이브 34세이브포인트 133탈삼진(5위), 평균자책점 1.64(2위)
오승환
61경기 0선발 99이닝
10승 1패 11홀드 16세이브 115탈삼진(5위), 평균자책점 1.18, 승률 0.909
등이 있음
첫댓글 오승환 기록도 말이 안되지 ㅋㅋㅋ 개사기
빵형이랑 류딸이 개미쳤음 ㅋㅋ 데뷔 첫해 30-30/ 데뷔 첫 MVP, 신인왕 둘다 먹었으니 ㅋㅋ
류딸은 저때 경기수도 지금보다 적었는데 신인이 200이닝 200탈삼진ㅋㅋㅋㅋㅋㅋㅋ
오승환이 세운 10 10 10 은 다시 나올까 싶음 ㅋㅋㅋㅋ
아부지가 아직도 ‘니 염종석 못봤제’ 하면서 놀리는게…
배영수도 살발하지않았나?
신인왕이 기준이라서욥
본문 속 기록들은 다 1군 데뷔 첫 해에 낸 거
염종석 아저씨 어깨 갈아서 우승은 진짜
류현진 ㄹㅈㄷ네
아맞다 이종범이 당연히 있겠지 했는데 양신이 있었지ㅋㅋㅋ
ㅋㅋㅋㅋ역대급
류현진 지린다 진짜
93양신 wRC+ 212 ㄷㄷ
류현진은 진짜 말이안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