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을 쓰면서
계간문예 작가회 부회장 정인호 作 2022년 1월 8일
한국전쟁이 막 끝난 1956년쯤이다. 전쟁피해로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되어 민생은 말이 아닐 때 대구역 광장은 서민의 아픔을 모른 체 칼바람은 세차게 불었다. 책보타리를 멘 초등학교 5학년인 내가 안동에서 대구역전 시외버스 종점까지 무단가출로 집을 뛰쳐나왔다는 것을 육십 성상도 더 된 일이지만 이를 뉘우치며 반성문을 쓴다.
나는 불확실한 미래를 스스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종가 집 8대종손이다. 새싹처럼 사랑을 받으며 자랐는데도 암팡스럽게 엄청난 물결 속으로 뛰어들었다. 내 인생은 오직 내가 개척해야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을 보면 천재적인 기질이 있어서가 아니라 앞뒤를 모르고 천방지축 깨춤을 춘 것이다.
증조할아버지께서 거처하시던 사랑 방 벽장에 갈무리해둔 대추 한 자루를 몰래 꺼내 오일장에 내다 팔았다. 지폐 다섯 장을 받아 속옷에 깊이 감추고 난생처음 대구에 도착하니 휘황찬란한 전등이 시골 아이의 기를 죽인다. 그때 반가班家의 대추는 천금보다 귀했다. 나의 오입悟入 자금을 그렇게 마련했다.
오입이란 불교에서는 도를 깨달아 실상의 세계로 들어감을 뜻한다지만 내 고향 안동에서는 무단가출을 그렇게 유식하게 색을 칠했다. 기껏 구구단을 달달 외우는 것을 보고 집안 어른들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인물이 태어났다고 기대하면서도 한편 문중회의까지 열었다는 후문이다.
그때 대구역 근처에는 ‘해방 골목’이라는 유흥가가 있었다. 대추를 판 지폐 다섯 장 중, 석 장을 직장 얻는데 소개비로 주고 얼떨결에 방이 다닥다닥 붙은 창녀촌에 취직이 되어 곧바로 시가지 영업을 나갔다. 지나가는 남자를 데리고 오면 기본급 외에 성과급을 얹어 준다고 눈에 핏발이 벌겋게 선 주인 아주머니로부터 약속 받았다. 영하 20도가 넘는 새벽에도 대구역 광장에 나가 손님을 모시고 온다면 세계최고 갑부가 된다는 생각으로 추위를 느낄 틈이 없었다. 나의 성공은 시간문제였다.
근무수칙 제1호가 그들에게 다가가 “자고 가소”라고 해야 한다. 그랬더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내뱉는 이가 있는가하면 구둣발로 종아리를 사정없이 차기도 했다. 그 정도 시련쯤이야 참고 견딜 자신이 있었다. 대구역 앞을 지나다니는 수많은 행인 중에 남자만 데리고 오고 여자는 안 되는 이유를 몰랐던 것이 가장 힘들었다. 고향으로 송금해 드릴 생각하니 가슴은 왜 그리도 뛰던지….
근무 중에 어려움도 많았다. 나를 따라 온 남자 손님이 100환煥을 내고 밤새도록 자고 간다면 long time이라고 가르쳐주었다. 50환을 내고 잠시 쉬고 가면 short time이라는 것을 직장 선배이고 키 큰 아이들이 ‘짝짝’ 껌을 씹으면서 나를 숙달시키려고 애썼지만 금방 잊고 말았다. 난생처음 듣는 영어 단어인지라 집안 어른들로부터 천재소리를 들었다 해도 쉽게 저장되지 못했다.
어렵사리 섭외한 고객이 퀴퀴한 냄새 풍기는 방에서 잠을 자고 나갈 때는 하나같이 얼굴이 부스스 부어올라 있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양쪽 눈이 다 푸석푸석한 손님은 ‘롱 타임’, 한쪽 눈만 부스스 하다면 ‘숏 타임’이라는 걸 기억했으니 가히 신동은 신동인 것 같아 어깨가 으쓱 했다.
집을 떠나 취직하고 일주일째였다. 대구역에서 그리 멀지 않는 동인동에 살았다는 이모가 천신만고 끝에 나를 찾아왔다. 세수를 한지 근 일주일이 넘어 땟국으로 꼬질꼬질한 내 손을 잡더니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셨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들이 요구하는 거액을 즉석에서 물어주고 엄청난 옵션을 간신히 풀어주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으면 이럴 때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손뼉을 치지 않을까.
이모님 손에 이끌려 고향 집에 도착했을 때,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문중 어른들이 근엄한 표정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조상님 신주를 대청마루 제상 위에 모시고는 8대 종손이 돌아왔다며 차가운 마룻바닥에 한 줄로 엎드려 큰 절을 시작했다. 제사가 끝나면 길고 긴 꾸중에다 훈계가 시작되겠구나. 매 맞을 각오를 단단히 했다.
아! 매는커녕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고 나무라지도 않았다. 오히려 어른들 책임이 크다는 뜻으로 조상님께 사죄하는 자리가 틀림없었다. 모름지기 어른들 기대에 따르지 못한 것이 이즈음에 이르러 회한으로 남았다. 굴곡진 내 의식 저 아래 눌러 붙은 기억을 퍼 올리면서 장문의 반성문을 쓴다.(끝)
첫댓글
소설을 쓰신 게 아니라
진정한 반성문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