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을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나에게 상을 줄 만한 일을 했는가. 일본어를 시작한 것은 잘했다. 잘하고 못하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시작했다는 것으로 점수를 줬다. 남을 위한 일을 했는가. 남에게 감동을 준 일이 있는가. 받은 것만 많다. 1월 일본여행을 다녀올 때 눈이 많이 내렸다. 익산역에서 택시를 잡지 못했다. 눈이 쌓이고 자정이 가까운 시간인데다 기온까지 뚝 떨어져 택시가 다니지 않았다. 눈이 쌓여 캐리어가 끌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길이 미끄러워 발을 띄기도 힘들었다. 이런 식이라면 집까지 두 시간은 걸릴 것 같았다. 그때 전혀 모르는 사람이 차를 세워 태워주었다. 타고 오며 얘기를 하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것을 알았고 집까지 편안하게 올 수 있었다. 운수대통 했다. 9월 포도수확이 한창일 때다. 우리 밭 밑에서 논농사를 짓는 아저씨가 많이 도와주었다. 매일 논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포도밭에 와서 박스가 부족하면 박스를 접어주고, 포장을 해 놓으면 띠지를 붙여주고, 박스숫자를 세어 차에 실어주고, 아주머니들이 포장하기 쉽게 포도를 날라주는 등 자질구레한 일들을 해 주었다. 위아래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한 가지 이유로 자원봉사를 해 주신 것이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남편이 지치면 안 된다고 방앗간에서 막 도정한 밥맛 좋은 쌀을 한 포대 주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계룡에 사는 남편의 ROTC동기가 집에 있으면 오겠다고 했다. 고추장을 담았는데 맛이 좋아 생각이 났단다. 고추장 한 단지를 들고 부부가 같이 왔다. 나는 고추장을 담아 본 적도 없고 담을 줄도 모른다.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사먹는 장류에 익숙해졌다. 이런 내 형편을 아는 그녀가 내 생각을 한 것이다. 논어의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 나이가 되면 더구나 세밑이면 친구가, 옛것이, 피붙이가 그리운 법이다. 전화만 해줘도 고마운데 이렇게 찾아 까지 와주니 얼마나 감사하고 반가운지 모르겠다. 군인 가족은 여자들끼리는 지금도 남편이름의 가족으로 산다. 이름도 모르면서 만나면 반갑고 때때로 보고 싶고 그네 가족들이 잘되길 빌어주고 그들이 곁에 있어 든든한 사이로 지낸다. 젊은 시절을, 불편하고 가난했던 생활을, 전방이라는, 조금은 사회와 떨어진 생활을 버텨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포도밭에 올 때도 맛있는 호박말이찰떡을 해가지고 왔다. 남편이 아침 일찍 밭으로 출근하기에 식사를 못하고 나갈 것 같아 아침식사 대용으로 준비해 왔다고 했다. 하나하나 포장이 되어 있어 저녁에 냉동실에서 꺼내 놓으면 아침에 먹고 가는데 지장이 없을 거라는 설명까지. 농사지은 포도를 나눠 먹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이렇게 챙겨준다. 우리가 건강해야 자기들이 행복하다고. 여러 사람들에게 받기만 했다. 이래가지고 어찌 나에게 상을 줄 수 있을까. 부랴부랴 친정 식구들에게 연말에 밥이나 같이 먹자고 전화를 했다. 힘이 들고 번잡해도 집에서 하기로 했다. 큰언니에게 전화를 하니 장담을 못 하겠단다. 형부가 항문 주위에 종기 같은 것이 났는데 앉지도 잘 못하고 많이 아파한단다. 두어 달 전에도 항문 안쪽으로 염증이 생겨 대수술을 했다. 형부는 약을 많이 복용하는 관계로 조그만 것도 대학병원 신세를 져야한다. 작은 언니도 못 온다고 한다. 형부가 수술하고 퇴원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았다. 허파에 종양이 생겼는데 위치가 좋지 않아 일부를 잘라냈다. 다행히 악성은 아니다. 수술 후유증인지 식사를 하면 거의 다 토한다고 한다. 먹는 것이 없으니 변비도 생기고. 퇴직하고 벌써 몇 번째 수술을 하는지 모르겠다. 언니들이고 형부고 칠십을 넘기니 이래저래 아픈 곳이 생긴다. 날을 잡고 먹을 만한 것을 만들고 식구들이 모였다. 큰언니도 왔다. 형부는 우선한데 언니가 감기기가 있다고 큰방에 누웠다. 밥도 조금 있다 먹겠단다. 형부는 술도 커피도 끊었다. 형부는 동서들과 처남들과 처갓집에서 술 한 잔 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하셨는데. 연말에 만나자고 하면 무조건이었는데. 큰언니가 식사가 거의 끝나갈 때 방에서 나왔다. 밥은 안 먹고 과일만 먹겠단다. 걸음걸이도 편치 않고 앉으면서 끙끙 앓는다. 언제 이렇게 늙었는지 서러움이 와락 몰려왔다. 큰 형부는 술 한 잔도 못하시지, 작은 형부는 수술해서 오시지도 못했지 동기간의 모임이 떠들썩해야 하는데 말소리가 가라앉는다. 그나마 동생들이 건강하게 버텨줘서 고맙다. 종합 비타민을 내놓았다. 우울한 마음을 돌리기 위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똑같은 영양제에 이름을 붙였다. 큰언니에겐 항상 건강하라고 ‘건강상’을, 제랑에게는 자기 의견을 강조할 때는 거짓말이 아니라를 넣어 말하는 버릇이 있어 ‘거짓말이 아니라 상’을, 남동생에게는 객지에 사는 누나들이 종그래기 부리듯 심부름을 시켜 ‘종그래기 상’을, 막내에게는 올케들에게 아가씨 소리를 듣는 사람은 막내 밖에 없어 ‘아가씨 상’을 줬는데 자기가 정말 아가씨 같아 주는 줄 알고 좋아했다. 막내가 어느새 오십 중반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일본어를 시작한 것이 대견해 ‘시작이 반이다 상’을 주었다. 형제들이 나이를 먹어간다. 그러니 올해가 그래도 젊은 것이다. 현금이 소중하니, 황금이 중요하니, 백금이 중하니, 소금이 되라느니 해도 가장 귀중한 것은 지금이다. 큰언니가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도 건배 제의를 해 분위기를 살려줬다. 그렇게 2016년이 갔다. 2017년이 시작됐다. 소소한 일을 즐기고 거기서 행복을 찾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남에게서 감동 받기만 하지 말고 나도 줄 수 있어야 할 텐데.
(윤복순 님의 수필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