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할머니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 꿈많은 소녀로 살고 있다면? 올해로 90세를 맞은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그림책 삽화가인 타샤 튜더 할머니는 미국 버몬트 주의 산 속에 18세기 풍의 아담한 농가를 짓고 홀로 전원생활을 하고 있답니다. 56세때 도시생활을 접고 들어왔으니 34년째. 타샤 할머니가 다시 소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맘먹은 대로 살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 가족은 재미 삼아 종교를 하나 만들었어요. 마음에 걱정을 담지 말고 편안하게 생활하자는 뜻에서 ‘스틸워터(고요한 물)’라고 이름 붙였죠.”
스틸워터의 가족이래봤자 염소 세 마리,닭 열 마리,앵무새 한 마리,그리고 ‘웰시 코기’라고 불리는 개가 전부랍니다. 아니,너른 정원에서 피어난 온갖 꽃이 전부 할머니의 식구이므로 할머니는 혼자 살면서도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대가족을 이끌고 있는 셈이죠. 수선화,올드로즈,코스모스,튜울립,패랭이꽃,포인세티아,하늘바라기,할미꽃,덩쿨장미…. 할머니는 하루도 쉼없이 정원을 가꾸고 푸성귀를 길러먹고 맨발 산책을 즐기며 자급자족의 생활을 하고 있답니다. 게다가 정원에 놀러온 이웃 아이들을 모델로 훌륭한 삽화까지 그리고 있으니 안락의자에 앉아 손주의 재롱을 쳐다보기에도 힘든 나이에 타샤 할머니는 청춘과 같은 나날을 살고 있는 것이죠. 3년전인 87세때도 신작 그림책 ‘코기빌에서 가장 즐거운 날’을 펴냈을 정도니까요.
“난 서리가 내릴 때를 짐작할 수 있어요. 맨발로 걸으면 차가워진 대지의 온도가 내 발에 그 소식을 전해주거든요. ”
2남2녀를 두었지만 정원 생활이 좋아 스스로 독립한 후 풀씨를 뿌리고 밭을 갈고 가축을 기르고 나무 인형을 깍으며 살아가는 타샤 할머니로부터 배울 점은 한 두가지가 아니랍니다. 타샤 할머니가 인생을 남들의 두 배로 연장해서 살 수 있는 것은 소녀 시절에 이미 자신이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를 결심했기에 가능한 것이죠. 초상화가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15세때에 정규 학교를 그만두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타샤 할머니는 23세때 첫 그림동화책을 펴냅니다. 동화 삽화를 그려온 세월만도 60년 가까이 된 셈이지만 할머니는 늘 정원 가꾸기가 본업이라고 말합니다.
“그림 그리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 않았다면 지금쯤 난 씨앗 가게 하나를 꾸리고 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맘먹은 대로 산다는 게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죠. 어렸을 때 자신이 평생동안 할 일을 찾은 사람만이 노년이 되서도 흔들림 없이 ‘맘대로의 삶’을 살 수 있답니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이기 때문이죠.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확실하게 아는 사람도 바로 ‘나’죠.”
기르는 닭이 낳은 달걀로 요리를 하고,산양의 젖으로 버터와 치즈를 만들어 먹는 타샤 할머니의 정정한 모습을 대하노라면 정말 소녀가 할머니 안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난 퀼트를 좋아해요. 지금 누비고 있는 이불은 시작한 지가 언제인지 생각이 가물가물할 만큼 오래되었어요. 그러나 내가 천국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는 반드시 완성할 거예요.” 탸사 할머니처럼 ‘맘대로의 삶’을 살고 싶다면 “내가 평생동안 무엇을 하고 살 것인지”를 마음속으로 그려가야 하겠죠(글 타샤 튜더·사진 리차드 W 브라운·천양희 옮김·종이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