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제를 해결하는 데는 간단한 몇 가지 방식이 있다. 거꾸로 뒤집거나 순서를 뒤섞는 것은 좋은 해결 방안이다. 창조경제, 창조경제 하는데 그 실제는 뒤집고 섞는 데 있다. 시야를 확대하는 것도 또 다른 해법이 된다. 좁은 구역에서 해결이 안 나면 좀 더 넓은 지역으로 눈을 돌려보면 실마리가 보일 수도 있다.
지도를 거꾸로 뒤집어 보라. 부산은 바다로 향하는 최전선에 있다. 글로벌화 시대는 곧 해양의 시대를 말한다. 그러니 부산을 빼놓고 21세기를 논하는 것은 공허하다. 시야를 넓히면 부산은 중국 일본 북한 러시아 등 극동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지리적 중심, 이건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이들 나라를 잘만 엮으면 번영이 보장되는 것이다.
한 달 전에 열린 '부산, 통일시대 환동해 경제중심도시 비전구현 세미나'는 그래서 눈길이 갔다. "동해안의 핵심 거점인 부산은 나진·선봉지구 등 북한 동해안 지역 개발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한국산업연구원 이석기(국제산업협력실) 선임연구위원의 역설은 수긍이 간다. 나진·선봉지구 등 두만강 하구는 환동해권의 전략적 거점이 될 수 있다.
북극항로가 열리면 중간 기착지로 효용성이 적지 않다. 중국의 동북 3성, 극동 러시아의 물류를 모으면 효율성은 극대화된다. "북방경제 주요 거점지역 투자와 건설은 결국 부산항으로 그 경제력을 집중시킬 수 밖에 없다." 중국 푸단대 이창주(외교학 박사) 교수도 그렇게 강조했다. 한중 FTA는 역외가공을 인정하고 있다. 나진·선봉에서 가공된 제품이 중국 동북3성으로 들어가거나 부산항을 통해 남중국으로 오갈 수 있다. 어째 구미가 확 당기지 않는가.
'위대한 여정, 새로운 도약'. 부산시가 세미나에 내건 캐치프레이즈다. 짧은 문구지만 부산이 나아갈 방향이 잘 담겨 있다. 부산이 극동의 중심으로 올라서는 건 말 그대로 위대한 여정이다. 그 여정을 따라가면 도약은 약속된 길이나 다름이 없다. 뜻도 좋고 방향도 옳은데 왜 여태 시행을 못했느냐는 아쉬움은 있다. 부산시는 이미 '글로벌 환동해 경제중심도시'로서의 기반구축사업에 돌입했어야 했다.
물론 역대 부산시장들이 나름의 도시발전 성과를 올리긴 했다. 하지만 좀 더 국제적인 시야를 넓혀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정부에만 의존하기보다 부산시가 경협에 돌파구를 마련한다면 의외의 효과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고 본다.
사실 부산시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 금강산 성화 채화와 북한 선수단, 응원단 참여로 히트를 쳤다. 북한은 최대 규모의 선수단을 파견하고 수백 명의 미녀응원단을 보내 대회의 열기를 더했다. 북한팀 서포터즈로 나선 시민 수백 명도 북한 선수를 한가족처럼 응원했으니 남북화합을 부산이 주도했다고 봐야 한다. 북한 선수·임원, 응원단이 다대포항에서 뱃머리를 돌릴 때 그 진한 아쉬움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엔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후 부정기 화물선이 부산 감천항에 딱 한 번 온 게 유일한 교류였다. 그만큼 남북관계 개선은 어려운 작업이다.
이제라도 부산시가 나서야 한다. 세미나에서 언급된 것처럼 부산이 지리 경제 해운·항공물류 측면에서 동북아의 거점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우선 큰 틀에서 전략적인 목표를 세워야 한다. 밑그림을 크게 그리고, 멀리 내다보며 추진기구도 제대로 구성할 필요가 있다. 추진 조직은 부산시와 대한민국, 남북관계, 극동의 경제 활성화에 사명감을 가진 인재들로 구성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제해운항공물류 분야 전문가를 영입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별조직이 구성되면 '된다. 된다, 잘된다, 더 잘된다'는 긍정의 사고로 북한 중국 러시아 측과 접촉해 최대공약수를 이끌어내야 한다. 나진·선봉지구는 중국과 러시아의 수출입 물동량이 모이는 곳으로 곧 항만개발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더 늦으면 이런 호기를 살릴 수가 없다. 극동 이니셔티브를 쥐려면 당장 시작해야 한다.
중국을 한번 보자. 불과 30년 전만 해도 중국이 빅2로 올라설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했다. 중국은 지난 30여 년간 목표를 숨긴 채 '도광양회' 전략으로 실력을 키우며 세계 속에 우뚝 솟아올랐다.
마찬가지로 부산이 환동해권의 해양물류 허브로 솟지 말라는 법은 없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진다. 먼저 글로벌 인재가 활약할 수 있는 가칭 '환동해 국제해양물류단' 과 같은 특수목적의 조직을 조속히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중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실천방안을 차근차근 진행해야 한다. 지난달 초순 성공적으로 수행한 '부산, 통일시대 환동해 경제중심도시 비전구현' 세미나가 일회성 행사로 끝나서는 절대로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