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588m의 달음산은 기장 8경중에 제1경이며, 기장군의 2대 명산 중의 하나이다. 달음산 정상에 거대한 바위가 있어 독수리처럼 굽어본다 하여 취봉 또는 수리봉으로 불린다. 달음산 자연휴양림은 달음산 서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부산광역시 최초의 국립자연휴양림으로 산과 바다를 모두 보고 즐길 수 있는 최적의 휴양림이다. 발아래 철썩대는 바닷물을 볼 수 있는 한국의 삼대 관음 성지중의 한곳인 해동용궁사를 비롯해 일광해수욕장, 기장대변 멸치축제 등 접근성과 편의성을 두루 갖추고 있는 최적의 휴양림이다.
달음산 서쪽 자락에는 달음산 자연휴양림이 위치 하고 있다,
정상에는 주봉인 취봉을 비롯해 좌우의 문래봉과 옥녀봉 등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널따란 반석이 자리하고 있으며, 정상에서 보는 동해바다는 풍경이 뛰어나며 정상 아래 암릉 지대의 암석이 볼만하다.
북쪽 산록에서는 좌광천과 남쪽으로는 일광천이 발원한다.
산지는 전체적으로 남으로는 완만하며, 북쪽으로는 병풍을 두른 듯 깎아지른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부산 기장군의 제8경 중 불광산과 더불어 기장군의 2대 명산으로 꼽힌다.
옥정사(玉井寺)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원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11교구 본사 말사.
옥정사(玉井寺)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원리의 달음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기장을 대표하는 산인 달음산은 기장 팔경 중 한 곳이며 동해 일출의 햇살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닿는 산으로 유명하다.
1907년에 승려 박긍해(朴亘海)가 고향에 1835년(헌종1)에 창건된 옛 절터가 방치되어 있는 것을 찾아 다시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당시 박긍해는 본동 원리 마을의 친구였던 영천 이희조에게 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원리 산95번지 8,413㎡ 을 사찰부지로 희사받아 작은 초가집과 토굴을 만들어 여러 곳의 선승들을 찾아오게 하였다.
그 후 1922년 상좌 수진과 함께 회상을 마련하고 직접 화주로 나서 불자들과 지역 유지들의 도움으로 1923년 건평 82㎡의 세 칸 목조 팔작지붕 기와집의 법당을 지었으며, 산신각과 요사채와 한 동의 창고를 건립하였다. 1971년 66㎡ 규모의 대웅전을 건립 낙성하였다.
1982년 범종각을 세우기 시작하였고 1983년 6월 범종, 북, 운판, 목어 불사를 하였다.
1986년 설법 보전과 식당을 증축·개축하였고, 칠성각을 중수하였으며, 옛 용왕전을 헐고 약왕각을 지어 미륵보살을 봉안함과 동시에 용화회상(龍華會上)을 염원하는 꿈을 담은 감로 수각을 설치하였다.
1992년 봄에 동편 계곡이 홍수에 허물어져 석축을 쌓고 개울을 메워 옥정교를 설치하고, 7m 높이의 약사여래불 입상을 조성하였다.
1994년에는 스리랑카에서 부처의 진신 사리를 가져와서 이듬해 삼층 석탑에 봉안하였다.
2002년 지장전을 건립하였고, 2004년 2월 24일까지 설법 보전을 보수 완료하여 1층은 후원 식당으로 2층은 요사채로 개조하였으며, 2008년에 주차장과 사찰 진입도로를 완공하였다.
♣ 활동 사항
2006년 8월 31일 옥정사 창건 100주년을 맞아 지장전 낙성 및 지장보살 봉안식을 봉행하였다.
이날 낙성 법회에서는 기장군수를 비롯한 1300여 명의 대중이 참석하여 축하하였으며 옥정사에서 대한불교청년회 부산지회 청공 남성 중창단 등의 참여로 ‘달음산 옥정사 창건 100주년 기념 음악회’가 열렸다.
2008년 옥정사의 주지 초삼은 기장군 사암연합회 제9대 회장에 취임하여 “기장이 불교 수도 부산에서 가장 변방에 있지만, 불심과 포교 면에서 으뜸가는 고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쉼 없이 정진하였다.
그동안 기장 지역 신행 단체들의 신행 활동은 극히 부진하였으며 특히 문화 포교 역시 미약하였다.
우선 기장 지역을 대표하는 신행 모임을 결성, 이웃을 위한 나눔과 포교를 실천하겠다.”고 다짐하고 향후 옥정사가 기장 지역 불교 부흥에 앞장설 것을 예고하였다.
♣ 현황(조직, 시설 현황 포함)
현재 옥정사 내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설법 보전, 약왕각, 지장전, 칠성각, 산신각, 범종각 등의 전각이 있으며, 진신 사리를 모신 삼층 석탑과 약사여래불 입상이 세워져 있다.
♣ 옥정사의 유래
부산광역시 기장군 달음산 서쪽에 취정사에 머물고 있던 원효 대사가 경주로 가기 위해 옥녀봉을 넘어 동쪽 산기슭에 이르러 문득 목이 말랐다.
그때 마침 옥녀 같은 처녀가 옹달샘에서 샘물을 긷고 있었는데, 원효 대사가 물을 청하자 표주박 가득히 샘물 을 떠 주었다.
그 물을 마신 원효 대사는 온몸이 시원해지면서 무거운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원효 대사는 그 물을 세 번이나 받아 마시고는 처녀에게 고마움의 인사로 “나무 관세음보살”을 읊었다.
그러자 그 처녀는 몸이 굳어지면서 돌로 변하여 관세음보살상이 되었다.
원효 대사는 그 처녀가 관세음보살의 화신이었음을 알고 오체투지의 예를 올렸다.
그런 뒤 그곳에서 초막을 짓고 잠시 머물다가 동해 용왕에게 옥샘을 지켜 주기를 당부하고 경주로 떠났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동해 용왕이 지켜 주는 옥샘과 관세음보살상이 있는 그곳에 암자를 짓고 옥천사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 옥천사가 퇴락하자 근처에 있던 큰절에 관세음보살상을 모셨는데,
그 큰절도 퇴락하여 관세음보살상을 다시 이곳으로 모셔 오면서 샘이 있던 자리에 암자를 짓고 옥정사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산행 초입은 옥정사 입구 오른쪽 정자 뒤의 소각장 옆으로 돌계단 을 올라서면 등산로가 나온다.
♣ 개설
옥정사는 삼국 시대에 원효 대사(元曉大師)가 취정사(鷲井寺)에 머물다가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옥녀봉에서 관음보살의 현신을 보고 창건하였다고 하며, 이후 달음산 기슭에 취정사와 옥정사가 양대 거찰로서 양립하고 있었다.
♣ 변천
『기장현읍지(機張縣邑誌)』에는 선여사, 취정사, 안적사, 장안사라는 4대 사찰이 기록되어 있는데, 옥정사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차성가(車城歌)」에 “옥정사 깊은 골의 춘경(春景)을 구경하고”라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꽤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는 사찰임을 알 수 있다.
옥정사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신라 시대 취봉산[달음산] 서쪽에 있는 취정사에 머물고 있던 원효 대사는 왕도[경주]로 가려고 옥녀봉을 넘어 동쪽 산기슭에 이르러 동해에서 떠오르는 찬란한 서광을 바라보다가 문득 갈증을 느꼈다.
조선 왕조가 개창되면서 숭유 억불 정책 때문에 취정사도 퇴락하고 옥천사도 퇴락하였는데, 큰 절에 있던 돌부처를 이곳에 모시면서 다시 암자를 짓고 옥정사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달음산은 물이 없는 산이지만 기묘하게도 취봉산에 취정(鷲井)이 있고 옥녀봉에 옥정(玉井)이 있으며 이 두 곳에 모두 사찰이 입지하고 있다.
현재의 옥정사는 1923년 10월 10일 박선해 선사가 옛 옥정사 터전을 찾아서 새로 창건한 것이다.
1954년경 박한봉 스님이 많은 불사를 하였는데, 불사 중에 관음보살이 이곳에서 세 번이나 현몽하였다고 전한다. 그리고 1969년 12월 대웅전 중건, 1970년 산신각 중수, 1983년 6월 종각, 범종, 북, 운판, 목어 불사, 1986년 1월 요사 중건, 1986년 7월 칠성각 중수, 1986년 7월 용왕전(龍王殿)을 신축하였다.
♣ 의의와 평가
옥정사 터는 신라 통일기 무렵 기장군 지역으로 불교가 유입되는 과정을 잘 보여 주는 절터로 역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 🎵 🎶 music
1. 세월아
2. 청춘 응원가
3. 밤 열차
첫댓글 달음산과 옥정사의 해설과 함께
동영상을제작 오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명절 잘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받으세요.
청주 산사랑 수요일산악회 회원여러분 반갑습니다
多事多難 했던 壬寅年도 이제 뒤로하고
새해 를 맞이하는군요
癸卯年 새해에는 더욱더 건강하시고 소원성취하는 한해되세요
항상 즐겁고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