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단편소설
날은 날에게 말하고···…
정 연 희(소설가)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傳하니-
그의 등 뒤에서 철꺽 잠기는 서민아파트의 현관 문 소리는, 그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는 신호처럼 써늘하다. 배웅할 사람도 없고, 기다려 줄 사람도 없는 빈 집의 문 닫히는 소리는 늘 그렇게 등덜미를 차갑게 떠밀어낸다. 거리로 나서는 11월 하순의 밤은 이미 겨울. 그는 전철의 막차 시간을 놓지 지 않을 만큼 여유를 두고 집을 나섰다. 방한복에 장갑까지 중무장을 하고 나섰으나 육십을 넘긴 사내에게 달려드는 추위는 나이를 알아본 듯 지레 움츠러들게 했다. 시내 쪽으로 나가는 막차 전철은 휘휘할 만큼 썰렁하다. 지방으로 들어오는 전동차에는 귀가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각양각색으로 늘어져 있기 예사이지만, 서울 중심가를 관통하는 막차에는 승객도 별로 없고, 들어오는 차에서 흔히 보는 취객도 별로 눈에 띠지 않는다. 승객이 빡빡할 때의 전동차의 흔들림은 묵직한데, 승객 없는 전동차는 헛헛한 소리를 질러대듯 공허한 굉음을 질러가며 달린다.
객석이 거의 비어있는 훼뎅그런 전동차에 흔들리면서 그는 눈을 감았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남자 육십 평생의 삶 속에서, 날이 날에게 말하는 것을 들은 것은 무엇이었으며. 밤이 밤에게 전하는 지식을 얻어 가진 것은 또 무엇이라는 말인가.
방송국이 있는 여의도에 도착하는 시간은 대개 자정. 방송국 앞에는 관광버스가 예 닐 곱대 늘어서 있고, 버스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우줄 우줄 모여 든다.
“우씨 나오셨군요.”
키가 작달막한 같은 또래의 사내가 어둠 속에서 그를 알아보고 반색이다. 전철에서 내려, 강바람이 휘몰아치는 방송국 거리를 걷는 동안 추위에 오그라들었던 얼굴 위로 잠간 스쳐가는 온기溫氣, 이런 자리에서도 인사가 오가는구나. 서로 성姓만 알고 있는 두 사람은 그나마 어석버석한 밤 시간에 의지가지가 되는 것을 반긴다. 오늘은 이 행보가 허탕이나 되지 않을는지···… 오리털 파카를 입고 있어 동글동글해 보이는 최의 눈이 불안해한다. 그 불안을 애써 감추려는 듯 최는 약간 들뜬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벌써 겨울입니다. 이번 겨울은 춥지 말아야 하겠는데···… 우씨는 추위를 안타시는 모양이지요? 늘 꼿꼿해 뵈니 말입니다 ”
그 동안 낯을 익힌 사람끼리 서너 명씩 모여 서성거리면서 더러 웃기도 하고 큰 소리로 주고받는 말이 어둠과 추위를 약간 느슨하게 만들었다. 여자들도 끼리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서성거리며 잡담이다. 침묵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두려워하듯 거의 모두가 지절대고 있다. 자정을 넘기면서 얼굴이 얼얼하게 얼기 시작했다. 자정을 넘긴 그 자리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안락한 침소寢所를 반납한 사람들. 모두들 한 밤의 수면을 팔아 돈을 만들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다.
최는 대답 없는 그를 향하여 다시 말을 건넸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동안 찬찬히 본 바로는 아무래도 우씨가 예삿 사람 같지 않은데 말입니다. 도무지 누구하고 어울려 잡담하는 것을 본 일이 없으니 말입니다, 아무리 지루해도 그저 혼자 책을 읽거나 팔짱끼고 한번 눈을 감으면 다시는 뜨는 일 없이 묵묵하게 견디는 걸 보면 아무래도 예삿 분 같지 않다는 말이지요.”
그때, 최의 수다스러움에 순을 지르듯, 인원 점검을 맡은 담당자가 나타났다. 그의 손에서 흔들리는 허연 종이 다발이, 그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는다. 고속촬영의 스톱모션이 걸린 것처럼 좌중을 압도했다. 오늘 밤의 저승사자 염라대왕이다. <한국문화영화 임시고용배우 회사>의 부장. 방송사에서 요구하는 엑스트라가 300명이라면, 회사에서는 결원을 대비하여 늘 일할을 더 불러, 그날 모여드는 사람은 330명이 넘는다. 명단에 들어 있어도 일이 생겨서 출석을 못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그 날 하루에 목을 걸고 찾아오는 사람들이라 인원 점검에서 탈락을 하면 군말 없이 돌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1할割이다. 담당자는 가차 없이 잘라내어야 하는 탈락자들의 이름부터 부른다. 그날 일에서 목이 잘리는 사람, 담당자가 부르는 이름은 죽은 하루를 짊어지고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다. 임시고용배우 회사에 일단 등록을 했어도, 나이 들어 비리비리해 보이는 사람이거나 더러 비위에 거슬리는 분위기를 드러내는 사람을 잘도 냄새 맡고 무 자르듯 잘라내는 것이 부장이 하는 일이다. 한사람, 한사람 이름이 불려 질 때마다 최는 자라목이 되었다가 몸을 흔들기도 하면서 좌불안석이다. 최가 우씨라고 부른 그나 최도, 그 중에서 늙다리에 속하는 인물들이니 언제나 아슬아슬한 경계 선상에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는 형편이다.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집을 나서서 다음날 저역 7시까지 꼬박 열아홉 시간을 버텨내야 하는 엑스트라의 하루벌이 날공전工錢 5만 8천원. 그나마 매일 있는 일도 아니다. 방송사가 전쟁 장면이나 시장市場통 장면, 아니면 국회의원 유세 장면 등 군중을 필요로 하는 장면이 있는 날에, 회사 측에서 연락을 보내오면 그때, 자정이 다 된 시간에 기웃기웃 찾아오는 군상들이다. 대체로 역사극 속에서 농민, 졸병, 대사 없는 대신大臣, 내시, 궁녀, 무수리로 쓰일, 잠깐 스쳐가는 장면을 위하여 등장하는 이름 없는 인간들이다. 그런데 그렇게 허위단심 찾아온 사람들을 되돌려 보내다니. 그 벌이나마 놓지 게 되는 사람들은, 도대체 자정을 넘긴 그 시간에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인지. 이 겨울 늦은 밤에 허위허위 찾아 나섰다가 “너는 안 돼! 너는 퇴짜야! 너는 자격 없어!” 이름 한번 불려 하루를 간단히 지우개로 지우는 처사를 겪는 그들은 누구인가.
임시고용회사에 등록을 한 사람 중에는,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PD나 감독의 눈에 띄어 단역端役이라도 얻어 가질 목적을 품고 달려든, 비교적 젊은 층도 있지만, 그날 목이 잘리는 사람들은 대개 버스 값조차 여의치 않아서 전전긍긍하는 숨겨진 빈민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잘라내는, 이 대도시 한 구석에서 벌어지는 잔혹사殘酷史 는 어느 기록에 남겨지게 될 것인가.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자본주의 종주먹이 휘두르는 몽둥이에 얻어맞는 이 참혹한 인간사人間事의 단면을 누가 어디에 기록할 것인가. 저승사자에게 이름을 불린 사람들은 어께를 무겁게 느리고 유령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져간다.
자정이 넘은 방송사 앞에서 벌어지는 이 장면은, 영상 매체가 여러 개로 늘면서 각 방송사가 수없이 경쟁 속으로 만들어 내는 연속극을 위하여, 저녁을 뚝 떠먹고 나서 밤이 이슥토록 텔레비전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시민을 위하여, 그들이 넋을 놓고 얼마든지 생각 없이 시간을 죽이도록 만들어 주는 연속극을 만드느라고, 한 편에 수십억을 들여 연속극을 만들고, 어마어마한 전파료를 삭혀가며 시민들의 얼이 빠지게 만드는 연속극을 제작하는데 필요한 엑스트라를 고용하는 장면이다.
그는 버스 값에 목을 맬 정도로 핍절하지도 않고, 더러 당일 밤, 목이 잘리는 일이 있어도 서울 장안에 살고 있는 여동생의 아파트로 찾아갈 수 있어, 몸살 날만큼 전전긍긍할 일은 없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3년, 아내의 병 수발로 퇴직금을 다 써버렸지만, 무자식 팔자로 사는 동안 목구멍에 거미줄 치도록 궁핍하게 지내지 않아도 될 만큼 돈에 관해서는 여유로웠다. 공무원으로 일하던 동안 소설가라는 문패를 얻어, 잘 팔리고 유명한 작가가 되리라는 기대는 애 저녁에 접었지만, 그럭저럭 문학지에 글도 넘겨가며, 더러는 자서전 대필을 맡아 목돈을 챙길 수도 있어, 나름대로 살아가는 일에 불안해 할 일은 없었다. 소설가라는 문패는 얻었지만, 역시 천부天賦는 따로 있다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 글을 쓰기는 쓰면서도 늘 무엇을 몰래 훔치고 있다는 느낌에서 벗어 날 수가 없었다. 아파트를 질색하는 아내를 따라 항상 마당 있는 집에 살면서 나무와 꽃들과 함께 푸성귀를 가꾸기도 했었다. 아내가 떠난 뒤에 아파트로 옮기고 나니 하루하루가 너무 질기고도 길었다. 직업을 접고 홀로 있으면 소설이 무진장으로 써질 것 같던 것도 허황된 꿈이었다. 머리맡에도 책 무더기, 변소에도 책 더미, 식탁 위에도 늘 책이 쌓여 있어 손만 뻗으면 책을 읽을 수 있어 숨 쉬듯 책을 읽었지만, 머리에 남는 것은 거의 없었다.
더러 친구들의 모임에 가기 위하여 전철을 타면, 이제는 늙은이들이 태반. 아침 뚝 떠먹으면 그 길로 들고 나서는지, 이른 아침부터 전철에서는 마주치느니 늙은이다. 2009년 통계청 발표로, 농촌과 어촌은 이미 초 고령 사회에 진입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농촌 인구의 고령화 34.2%로 전년 보다 0.9% 포인트 상승이라 나- 그는 전철을 탈 때마다 면구스러워서 노인 석 가까이에 가질 않는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대중교통 수단이 잘 되어있기도 하거니와, 65세 이상이 돈 내지 않고 거저 탈 수 있는 천국(?)이니 늙은이들이 들고 나서지 못할 이유가 없지- 환승역 곳곳에서는 술잔이나 걸친 할배들이 저마다 목청 돋우어 손짓발짓 다해가며 떠드는 모양새가 눈살 찌푸릴 일인데다가, 노약자 자리에 처박혀 모주 썩는 냄새를 풍겨가며 골아 떨어 진 꼴도 자괴감에 빠지게 만들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침침한, 색채色彩없는 세상이다. 눈 줄 곳이 없어진 세상. 아내는 세상의 채색을 모조리 걷어 간 듯, 남아있는 남편의 삶은 재 빛 이었다.
엑스트라 회사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하구 헌 날 홀로 지새우는 밤을 면할 수 있는 일이다 싶어 대뜸 솔깃해서 찾아갔었다. 담당자가 흘깃 바라보더니 찜찜한 표정을 지었다.
“연세가···…” 하다가 “적잖이 고생스러운 일인데요···… 그렇게 쉽게 볼 일이 아니라구요. 굳이 이런 일을 하셔야 할 만큼 궁해 보이지도 않는 어르신이···… ”
끝내 탐탁치 않아하면서 등록을 받아주었다. 그랬던가, 그나마 저런 사람의 눈에도 궁기가 끼어 있는 늙은이로는 보이지 않는다니, 그는 잠간 마음을 놓고 속으로 웃었다.
그날 밤, 회사의 염라대왕이 들고 나선 명단위에 그대로 살아남아서 버스에 오른 사람들은 한숨 돌리고 자리를 잡는다. 다행스럽게 살아남은 최는 서둘러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고는 설레발이다.
“우씨! 우씨! 여기 자리 잡았소. 히터 나오는 자리를 잡았으니 조금 있으면 따뜻해질게요.”
그는 최의 호의를 거절 할 수 없었지만 고맙지 않았다. 될 수 있으면 남과 함께 앉지 않고 빈자리에 홀로 앉아 눈이라도 붙이고 싶었는데, 최의 옆자리라면 가는 동안 내내 영양가 없는 잡담에 대구를 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 지레 피곤해졌다. 서로 어울려서 찾아 온 친구들이 아니면, 엑스트라들끼리는 되도록 서로 알은체를 하지 않는다. 더러 어울려서 등록을 한 여자들끼리는 히히덕거리는 수다가 끊이지 않기도 하지만, 남자들 사이에서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하루살이처럼 달려든 일용직日傭職을, 누구도 드러내기 원치 않는다.
새벽 한시가 넘어서야 나타난 버스 기사는 기계적으로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살아남은 자들의 안도가 버스 실내를 금방 훈훈하게 만들었다. 덜컹 버스가 움직이자 누구의 입에서 터지는 한숨인지 기나긴 한숨소리가 엔진 소리보다 컸다. 그는 몇 번 만난 최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궁금할 일도 아니어서 물어 본 일도 없었고 할 수 있으면 말을 줄이고 싶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최는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거 우씨는 자식 농사를 어떻게 지었습니까? 우리네는 샌드위치 세대지요. 아직 어머니가 살아계신데 치매가 심해서 요양원에 맡겼지요, 자식 놈 둘을 두었는데, 큰놈은 하는 일마다 쭈그러들어서 우리 늙은이들이 살겠다고 장만했던 집까지 날린 데다 가, 작은 놈은 애 어멈이 아예 집을 나가서, 죄 없는 늙은 할매가 아이 둘을 맡아가지고 씨름입니다 그려. 요즘은 그저 새끼가 원수라는 생각뿐이지요. 오죽하면 이 짓을 하겠다고 나섰겠습니까? 나도 한 때는 사람대접 받아가며 사는 것처럼 살았던 때가 있었어요.”
늙은이들의 사설辭說은 대개 비슷하다. 그는 대구 없이, 버스 의자 등받이를 뒤로 미루고 눕듯이 기댔다. 최도 눈치를 채었는지 더는 떠들지 않고 낑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눕혔다.
감았던 눈을 뜨면 속도를 올린 차창으로 명멸하는 고혹적인 불빛이 아름답게 스쳐지나간다. 모두들 어디를 그리 쏘다니는지, 거리에는 질주하는 차들이 그들먹하다. 저들은 무엇을 위하여 수면을 반납하고 저리 치달리는가. 밤도 낮도 따로 없이 헤갈을 하고 치닫는 자동차와 하늘을 헤집고 다니는 수 십 만대의 비행기는 지구를 보호하고 있는 오존층에 구멍을 내고도 모자라서 지구 곳곳을 쑤석거려 석유를 뽑아내느라고 지구를 벌집처럼 만들지 않았는가. 1차 2차 세계대전은 지구의 자원과 거기서 생산되는 부富를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한, 소유所有가 목적인 전쟁이 아니었던가. 20세기와 21세기로 들어서면서 인류는 쓰레기를 만들기 위해서 살고 있는 괴물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버스의 진동에 몸을 맡긴 그는 숨을 쉬고 있는 자신이 괴물처럼 느껴졌다.
문명? 산업혁명?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이룩한 삶의 현장, 그 종점이 이곳이라는 말인가. 가난과 불편을 벗어나면 사람답게 살 길이 열린다고 믿었던 자들의 골수骨髓에서 빼어낸 꾀와 땀과 피 값으로 얻어낸 산업혁명이라는, 인간의 편에 세워진 그럴듯한 가면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쾌락이라는 중독을 안겨 준 셈이다. 인류가 목적을 소유에 두고 살아가게 만든 산업혁명은 인간 각자에게 쾌락이라는 눈먼 우상을 안겨 주었다.
등 뒤에 자리를 잡은 여자 둘이,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럽게 소근 대고 있었지만 대화내용은 고스란히 그의 귀로 스며들었다. 떠나기 전, 방송사 정문 뒤에 나란히 서 있던 사십대 중반의 여자들이다.
“얘, 우리 언제까지 이 짓을 하게 될까? 이거 뭐 파출부 보다 낳을게 없는 노동이잖어?”
“그래도 파출부 보다야 낫다고 해야겠지. 남의 집 쓰레질이며 설거지며 빨래하는 것 보다야 낫지 않니? 그리고 멋진 탤런트 남자들 구경도 할 수 있고 말이야”
“치이, 그 잘난 사람들 기고만장 하는 꼴 보면서 뭘 얻겠다고? 그림의 떡이지. 어떻게 하다가 그들은 운 좋게 주인공이 되어, 한번 출연에 천오백 여만원이 넘는 출연료를 받아가며 세상을 지배 할 듯이 살아가는데, 우리는 고작 그들의 발치에서 이름 없는 궁녀 아니면 무수리, 그리고 장터거리의 행인 노릇이나 하고 있는데”
“그래도 그런 펄펄 나는 탤런트한테서 기氣라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좋던데?”
“객 적은 소리 그만해라. 요즘, 지방 소도시에는 남성 전용 발 마사지 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는데, 마사지 한 번에 7만원이라더라. 아마 시간이라야 한 시간이나 그 정도겠지. 전에는 이발소가 그 짓을 해서, 단속이다 무어다 난리를 쳤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한술 더 떠서 남성 전용발마사지라니- 그래도 거기서 일하는 여자들 벌이가, 주인한테……주인이라야 포주겠지, 어찌 되었건 그 진드기들한테 뜯기고도 하루에 20만원 벌이야 안 되겠어? 우리가 밤을 패어가며 하루 열아홉 시간을 시달리다가 받는 오만 팔천 원···… 하기는 죽으면 썩어질 몸, 어떻게 쓰던 실컷 부려 먹으라지! 어쩌면 그네들이 용감한 결단을 낸 건지도 모르지. 그렇게 몸둥이 하나 들고 나선 여자들도 오죽하면 그리 나섰겠니? 처량하다 처량해! 이눔의 세상이 어떻게 망하려고 이러는지 원!”
“그렇다고 우리가 남성 전용마사지 가게를 열 돈도 없고, 또 남이 벌린 가게에 얼굴을 들이 밀어 보아야 써 주지도 않을 걸? 우리보고 할머니! 왜 왔어요? 그럴게다”
그리고 그들은 키들 키들 웃었다. 그러다가 훨씬 심술궂은 목소리의 여자가 한숨 섞어 말했다.
“한 십년만 젊었어도!”
“왜? 십년만 젊었으면 그 길로 나가게? 죽으면 썩어질 몸이니 까짓것 한번 죽는 몸, 써먹겠다는 게야?”
“길만 있으면···… 들고 나서겠다”
“빈 말이라도 그러지 말아라. 몸둥이는 숨 끊어진 뒤에 썩어서 흙이 되겠지만, 우리 육신 속에서 뿌리를 내린 영혼은 어디로 가라고?”
“영혼? 영혼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지금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이렇게 한심한 짓에 끌려 다니고 있는데, 나중에 지옥 불에 떨어질망정 지금 당장 좀 편하게 살고 싶은 게 인지 상정 아니니?”
“그래도···… 우리네 생이 금생今生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고 믿어져서, 나는 생각조차 함부로 하고 싶지 않구나”
“거룩하시네! 살아가는 일에 진저리가 나서 온통 심통만 치받혀 살고 있는 나는 네 치마꼬리 붙잡고 천당으로 가야 되겠구나?”
“그러지 말고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자”
등 뒤에까지 신산辛酸이 있구나. 그는 여인들의 대화에 가슴이 아렸다. 산다는 게 무언지-
고속도로로 들어서자, 대도회의 어지러운 불빛을 등진 어둠이 친근하다. 최는 잠이 들었는지 잠잠하다가 얕은 코를 골았다. 잠이 들다니 단순하고 순한 사람인가 보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지구 곳곳의 도회지마다 계속해서 착실하게 밤을 죽여 가는 것이 문명이다. 이제 그 죽어가는 밤에게서 무슨 지식을 얻을 수 있겠는가.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한다 했는데, 그때의 그 지식은 어떤 것이었을까.
세트 촬영장에 도착한 것은 새벽 세시가 다 된 시간. 촬영장은 숨을 죽이고 있는 것처럼 고즈넉하다. 실물보다도 더 크고 어마어마하게 지어 놓은 궁궐에는 드문드문 불이 밝혀져 있다. 집합 지시가 있으려면 아직 한 시간이 더 남았다.
“도착했는가요?”
최가 얼굴을 부시시 들고 묻는다.
“아직 세시도 안 되었어요. 더 쉬시지요.”
기사는 버스에서 대기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래도 히터를 끄지 않고 내린다. 버스가 도착하자 여기저기서 부스럭거리며 손목시계를 보던 가 휴대폰의 폴더를 열어 시간을 확인하던 사람들이 ‘아직 멀었군···…’ 하는 얼굴로 다시 좌석에다 전신을 쑤셔 박는다. 저렇게라도 풋잠을 잘 수 있는 사람들은 한낮을 견디기가 훨씬 수월하련만, 그는 이 행보마다 각성제를 먹은 것처럼 머리가 차가웠다. 버스의 히터를 틀어 놓았다고는 하나 기분부터 얼얼한 새벽은 대기자들 모두를 추위에 웅크리게 만들었다.
잠을 청해도 소용없는 그는 눈을 감고 아내를 생각한다. 기연奇緣이지. 기연이야. 백혈병이 아내를 덮치기 전, 어느 가을. 그들 내외는 연고도 없는 이곳을 찾아왔었다. 아내는 남편의 차에 실려 이곳저곳 낯선 지역 찾아다니는 것을 최상의 즐거움으로 알았다. 그날, 그 근처 새로 개장한 식물원엘 들렸다가 돌아가는 길에, 촬영장 예정지인 그 골자기를 찾아갔었다. 식물원 가까운 곳에 노인 요양원도 있어, 그곳을 둘러 볼 겸 두루 다니다가 어느 방송사 촬영장이 들어서게 된다는 부지敷地를 둘러 본 것이다. 방송사마다 역사극이 유행인지 깊은 산골에다 어마어마한 궁월을 지었다. 아내는 아무것도 없는 빈터에 <○○ 방송사 촬영장 예정지>라는 팻말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이미 국영 방송사가 시작을 한 일이지만, 방송사마다 이렇게 궁궐터를 넓히고 있으니 이제 왕도 왕비도 많이 생기겠네.” 그러면서 웃었다.
아내의 병명이 밝혀졌을 때 아내는 눈물을 보이지 않고 남편을 위로했다.
“여보 나 당신 남겨두고 먼저 떠나지 않아요. 정말 그렇게는 안 할 거에요. 당신에게 혈육 한 점 남겨드리지 못한 내가 당신을 이 세상에 혼자 남겨두고 어떻게 염치없이 떠나겠어요?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내가 잘 견디고 일어나 당신 노후를 보살펴 드릴거에요 하나님은 착하고 성실한 당신을 보셔서라도 나를 버리시지 않을 거에요.”
하지만 아내가 다섯 차례 째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남편으로서는, 너무도 애처로워, 저런 고통을 당하느니 차라리 떠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여섯 차례 째 항암치료를 받았던 그 봄에,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내가 식물원 이야기를 꺼냈다.
“그곳 봄꽃이 가을 보다 더 좋을 텐데···…”
그는 아내를 안고 다닐 작정을 하고 차를 몰아 식물원으로 갔다. 아내는 검불처럼 가벼웠다. 아내는 남편의 품에 안겨, 갖가지 빛깔로 식물원 정원을 현란하게 장식한 꽃들을 보다가, 꺼져가는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천국은 이 보다 더 아름답겠지···…”
발병 초에 남편을 위로하던 씩씩함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식물원을 둘러보고 떠날 무렵, 아내는 문득 생각 난 듯, 말했다.
“참···… 그 방송사 촬영지가 이제는 완성이 되었을까?”
“궁금하면 들려서 가지 뭐”
그렇게 그는 아내를 싣고 그 골짜기엘 들렸었다. 실개천을 끼고 늘어선 왕 벚꽃이 눈부신 구름처럼 활짝 핀 길을 달리면서 그는 아내 몰래 눈물지었다. 결국에는 떠나고 말 사람. 함께 살아 온 사십년이 이렇게 한 줌 재보다 가볍다니- 아내가 그리도 애절하게 섬기던 주님은 어디 계신가. 이토록 처절한 고통을 겪고 있는 딸의, 이 고통이 그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토록 눈부시고 아름다운 봄의 찬란함이 아내의 처참한 몰골을 비웃는 것 같기도 하여 그는 아내 몰래 이를 악물었다. 방송사 촬영지 골짜기는 깊었다. 뒤로 충충한 산을 두르고 택지를 넓게 잡은 자리는, 큰길을 두고 한참 들어가자 어마어마한 궁궐 지붕을 드러냈다. 숨을 몰아쉬면서 그곳을 바라보던 아내가 차를 세워 달라했다.
“내리려고? 그러면 앉아 있어, 내가 안아서 내려 줄 테니”
“아니에요. 내가 내려가서 좀 서 있으려고요”
그는 아내가 내리는 것을 도우려고 다가갔으나 아내는 안간힘을 써가며 홀로 내려서 길 위에 섰다. 지나가는 바람에도 쓰러질 것만 같은 아내는 꽃구름 벚꽃 그늘, 아스팔트 길 옆으로 새파랗게 솟아오른 풀 위에 서서 아득한 시선을 멀리 던졌다. 아내가 바라보는 곳은 멀리 바라보이는 어마어마한 궁궐이었다. 한동안 말없이 그곳을 바라보고 있는 아내의 눈이 맑고 청청했다.
“저기 저 궁궐···…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실물보다 더 웅장하고 크게 잘 지었을까. 우리가 들렸던 것이 재작년이던가요? 그사이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저렇게 턱하니 자리를 잡았네!”
“요즘 세상에 방송사들은 돈더미 위에서 일 하는 사람들인데, 땅을 마련하면 건물 짓는 것이야 힘들이지 않고 했겠지”
“여보, 우리가 다녀갈 때, 저 곳은 빈터였잖아요. 이곳이 앞으로 방송사 촬영지가 될 자리다. 그렇게 팻말 하나 멋없이 꽂혀 있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버젓하게 역사극을 촬영하는 궁궐을 지었네요.”
“그렇게 신기해? 그렇게도?”
아내의 눈길은 다시 아득해지면서 잦아드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람 세상에서 약조한 일도 이렇게 이루어지는데···… 산그늘, 아무것도 없던 허허 빈터에 저렇게 웅장한 대궐이 세워졌는데···…우리는, 우리는···… 그분, 예수께서 약속하신 그 말씀을 믿고 있는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고 너희에게 말했겠느냐?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내가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나에게로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겠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그렇게 약속을 하셨는데, 우리는···… 나는···… 그 약속을 그저 문자文字로만 알고 있었어···…. 지금 저 궁궐을 보니, 나를 데리고 가실 그곳, 그분이 마련해 주시겠다고 하신 그곳이 환하게 보이네.”
아내의 말을 들으며 그는 그저 무연히 궁궐지붕을 바라보았다. 이제 이승을 떠나야 할 아내가 자신의 구원자, 구세주, 그분이 약속해 주셨다는 그 말씀이 약속의 말씀으로 믿어진다니, 아니 그분이 데려다 주신다고 하신 그 곳이 환하게 보인다니, 고마울 뿐이었지만, 아내의 감추어진 갈등을 남편은 알고 있었다. 항암 치료를 다섯 번째 받을 무렵이었던가. 병실을 지키다가 집으로 돌아온 그날 밤, 남편은 우연히 아내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조금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노트를 펼쳤다. 훔쳐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세상을 떠나게 될 아내의 심경을 알아두고 싶어서였다. 단정하던 아내의 글씨가 흐트러져 있는 것을 보면 고통 중에 힘겹게 쓴 것이 역역했다. <재앙이 흙에서 일어나는 법도 없고, 고난이 땅에서 솟는 법도 없다. 인간이 고난을 타고 태어나는 것은, 불티가 위로 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욥기 5장 6절 7절)> 눈물을 흘린 자국인지 노트 모서리가 얼룩져 있었다. <인생이 땅 위에서 산다는 것이, 고된 종살이와 다른 것이 무엇이냐? 그의 평생이 품꾼의 나날과 같지 않으냐? 저물기를 몹시 기다리는 종과도 같고, 수고한 삯을 애타게 바라는 품꾼과도 같다···… 괴로운 밤은 꼬리를 물고 이어갔다. 눕기만 하면, 언제 깰까, 언제 날이 샐까 마음 졸이며, 새벽가지 내내 뒤척였구나···… 내 생명이 한낱 바람임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내가 다시는 좋은 세월을 못 볼 것입니다. (욥기 7장 1절로 7절)> <차라리 숨이라도 막혀버리면 좋겠습니다. 뼈만 앙상하게 살아있기 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겟습니다. 나는 이제 사는 것이 지겹습니다. 영원히 살 것도 아닌데, 제발, 나를 혼자 있게 내버려 두십시오. 내 나날이 허무할 따름입니다.
(욥기 7장 15절로 16절)> <재난과 고통이, 공격할 준비가 다 된 왕처럼 공포 속으로 몰아 넣고 칠 것인가 (욥기 15“24)> <내가 희망을 둘 곳이 달리 더 있는가? 내가 희망을 둘 곳이 달리 어디 있는지, ···…내가 죽은 자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 갈 때에, 희망이 나와 함께 내려가지 못할 것이다(욥기 17:15-16)>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으면 욥기의 구절구절을 베끼고 있었을까. 남편은 아내의 노트를 움켜쥐고 통곡했다.
아내는 고통 중에 홀로 외로운 갈등을 계속했지만 촬영지를 다녀간 후로 통증을 덜 느꼈고, 항암치료에도 덜 괴로워했다. 아홉 번의 항암치료도 소용없이 고생 끝에 끝내 눈을 감았지만, 숨을 거둔 아내의 얼굴은 아름답고 편안했다. 임종을 지키는 남편에게 아내는 미소를 띄우고 힘들게 입술을 움직였다. 얼굴과 얼굴을 포개듯이 귀를 바싹 갖다 댔다. “여보,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처소處所를 마련하러 가신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그분이 계신 곳에서 우리를 영접迎接하여 함께 있게 하시겠다고 하셨어요. 제가 먼저 가 있을게요. 그리고 당신을 기다릴게요. 적적하고 외로우시면, 그리고 당신을 믿고 따르는 여성이 있으면, 외로워하지 말고 그이와 함께 잘 지내다가 오셔요. 외로움을 억지로 참지 말아요. 부탁이에요. 당신에게 염치없고 미안해요. 자식을 두지 못한 것이 내 탓 같아서···… 하지만 당신은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었어요. 저는 세상에 없이 당신의 보호를 받아가며 누구보다 행복했어요.”
아내는 조용하게 숨을 가두었다. 그는 장사를 치르는 동안 울지 않았다. 눈물은, 아내가 고통을 당하던 동안 몰래 몰래 다 쏟았다.
지난여름에 엑스트라를 모집하는 회사가 있다는 정보를 얻은 뒤에, 허실수로 찾아갔다가 등록이 되고, 첫 날 자정이 넘어 새벽 세시 경 촬영장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뜨거운 열기가 그의 전신을 감쌌다. 아내의 체온이었다. 그 순간 그의 몸이 유체이탈有體離脫, 이승이 아닌 곳에서 아내를 만났다. 그를 그곳으로 인도한 것은 아내였다.
“집합!”
갑자기 새벽어둠을 쥐어뜯는 명령이 떨어지자 버스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목을 움츠리고 유령처럼 우줄우줄 내려왔다. 새벽 네 시다. 방송사 직원을 따라 엑스트라들이 우르르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일사불란하게 배역이 할당된다. 호명, 배역분배, 이리 몰리고 저리 몰려가며 배당 된 배역끼리 뭉쳐 돌아가면, 다음에는 배역에 따라 의상이 지급되고, 다음에는 지급된 의상을 입느라고 한동안 법석이다. 그렇게 분주를 떨고 나면 다음에는 분장실에서 기다리는 여러 명의 분장사들이 분장을 시작한다.
내시 역을 받은 최는 옆에서 히물히물 복권에 당첨 된 듯 즐거운 얼굴이다.
“아이고! 오늘은 얼굴에 수염을 붙이지 않아도 되니 복 터 졌네 복 터졌어!”
대신이나 장군 역을 받으면 얼굴에다 본드인지 무언지 냄새 지독하고 끈적끈적하기 이를 데 없는 접착제를 바르고 수염을 붙여야 한다. 잠깐 비치다가 마는 허무한 한 장면을 위하여 수염을 붙이고 종일 대기해야 한다. 그것도 대신이면 대신, 장군이면 장군 한 가지 역할이 아니고, 오전 중에 장군 역을 끝내고 나면, 오후에는 대신역을 맡게 되어, 모양이 다른 수염을 붙여야 한다. 수염을 떼어 낼 때는 솜에다 휘발유를 묻혀 접착제를 지워내는데, 그렇게 수염을 붙였다 떼었다 하고 나면 며칠 동안 뺨이며 턱이 터지거나 벌겋게 들고 일어나기 예사였다. 엑스트라 보급 회사에서는 되도록 인건비를 아껴 사람을 덜 쓰고 방송사가 요구하는 촬영에 충당할 꾀를 내어, 한번 데려간 엑스트라에게 병사兵士 역도 주었다가 농민 옷도 입혔다가, 대신의 수염을 붙여 주기도 하면서 알뜰하게 부려먹는다. 처덕처덕 본드를 쳐 발라 붙인 수염도 때로는 잘 떨어지기도 하여 애를 먹이고, 밥을 먹을 때면 국그릇에 수염이 잠기거나 한 올 두올 빠지기도 하여 영 기분 더럽게 만드는 것이 수염 분장이다.
그는 싱글벙글 웃는 최를 놀리기로 하고 찬물 끼얹는 소리를 했다.
“아침에 내시였다가 오후에 대신이 될는지 모를 일에 그렇게 미리 좋아 할 것 없잖소?”
“어떻던 우선 수염 붙일 일이 없으니 좋다는 게지요. 그런데 우씨는 관복에 관디冠帶를 띠고 수염을 붙이면 영락없는 대신입디다. 아주 그럴듯해요. 원래 귀티가 나는 사람이니 그런 의상도 제격으로 보입니다 그려”
그는 공연히 실없는 농담 한마디 건넸다가 거북하기 짝이 없는 말을 듣게 된 것에 다소 짜증이 났다. 여자들은 궁녀 옷을 입기도 하고 무수리와 마을 아낙 옷을 입기도 하면서 그래도 분장사들에게 잘 부탁 한다면서, 어떻게 하면 화면에서 잠깐이라도 눈에 뜨일 수 있을까 조바심치는 모양이 제각이었다. 엑스트라를 벗어나, 한 두 마디라도 대사가 얻어 걸리면, 그것은 단역端役으로 올라서는 것이고 그때는 임금이 곱절로 올라간다. 엑스트라들의 목표는 어떻게 해서라도 단역이 되는 것, 어떻게 해서라도 PD의 눈에 뜨여, 남자든 여자든 운을 얻어 단역으로 올라서면, 그것은 다시 조연助演을 바라볼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수선스럽게 의상을 입고 분장을 하고 그렇게 두어 시간 분주를 떨고 나면, 촬영 팀이 촬영기사技師, 조명담당, 음향 담당 등을 거느리고 도착하는 시간이 새벽 여섯 시경이다. 그리고 아침 해가 이드막이 올라 온 일곱 시 반 경, 번쩍거리는 승용차를 몰고 일급 탤런트들이 도착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어찌 그리 당당한가. 선택받은 자들의 여유로움과 , 두려움 없는 활달함이 눈부실 정도다. 기름지고, 나름대로 육향肉香이 풍기는 향기를 지니고 있다.
자정이 다 되어 차출된 뒤에, 버스에서 한 밤을 밝힌 엑스트라들에게 아침밥은 제공 되지 않는다. 촬영장 산골에는 가게는커녕 인가도 없다. 저마다 궁색하게 빵 쪼가리며 우유 등 꾸려가지고 온 사람들은 그나마도 드러내어 먹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우물우물 요기를 한다. 언제부터인가. 촬영장 사정을 어떻게 알았는지, 트럭에다 간단한 조리 기구를 설치하고 라면이며 어묵을 끓여 파는 장사치가 생겨서 그리 달라붙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나마 돈이 아까워서 선 듯 나서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정확하게 여덟시에는 촬영이 시작되고, 엑스트라들은 저들에게 해당 되는 장면이 언제가 될는지 감감한 상태에서 마냥 기다린다.
그에게 대감의 수염을 붙여주는 분장사는 느물느물 느물거려가며 일을 했다.
“선생님은 이런 일 하실 분 같지 않은데, 왜 굳이 따라나서시는지요? 혹시 글 쓰시는 분 아니시던가요? 아무래도 이곳을 착실하게 경험하신 뒤에 소설 쓰시려고 오시는 것 같은데····그렇지요? 맞지요?”
“그런 거 아니오. 수염이나 잘 붙여요. 떨어지지 않도록”
분장사들은 기계적으로 손을 놀려 한사람, 한사람 거뜬하게 분장을 끝내 주지만, 분장실을 이용하는 출연자들이 적지 않을 때면 난장을 이룬다. 엑스트라 분장이라야 주연급이나 조연급 분장에 비하여 대충대충 넘어가지만, 더러 여자들 중에는, 분장사에게 요모조모 부탁하는 일이 적지 않다. 여자 엑스트라 하나가 코에 걸린 소리로 분장을 받고 있는데, 나이 든 주연급 배우가 큰 소리를 치며 들어선다. “어이! 내가 말이야, 오늘 얼굴이 좀 부은 것 같은데, 뺨에다 도랑을 더 발라야겠어! 눈 불알도 좀 죽여주구!”
거울 앞에 앉아 수염을 붙이고 있던 그는 거울 속으로 그 ‘너스레’를 건너다보았다. 국민배우라고 할 만큼 유명한 그는 시골 중학교 한 반 위 선배다. 학교 다닐 때부터 넉살 좋기로 이름났고, 선생에게 며 선배들에게 너스레를 잘 떨어, 어디에고 감초처럼 끼어드는 그를 학교에서는 ‘너스레’ 라는 별명을 붙여 불렀다. 너스레가, 후배인 그를 알아볼 리는 없었다. 알아보았어도 ‘너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되었니? ‘ 무안을 줄 것이 번한 노릇이었을 텐데, 그를 못 알아보고 거드럭거리는 그 꼬락서니를 익명이라는 안경 너머로 구경할 수 있어 여유로웠다. 너스레가 배우가 되어 브라운관에 나타났을 때,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너무도 당연한 순서를 바라보는 맛에 오히려 신선함을 잃을 정도였다. 유명해지면서 연기는 늘었고, 천연덕스러운 그의 연기는 인기의 그라프를 승승장구 계속 치켜 올렸다. 물론 돈이 따랐고 그렇게 부富를 축적하면서, 그는 무소불위 권위의 맛까지 누리려 했다. 그 정도에 이르면 누구라도 안하무인이 되는가. 세상이 온통 영상매체에 놀아나는 추세가 되고 보니, 너스레는 한 때 정치판에도 끼어들고, 여기 저기 외국 여행을 다닐 때면 대단한 상전 노릇을 했다. 언제든가. 아내와 친척들이 어울려 필리핀 어느 섬으로 여행을 갔을 때, 며칠을 함께 어울리던 젊은 한국인 현지 가이드가, 얼마간 익숙해져서 안심이 되었는지 쓰디쓴 하소연을 해댔다. “그 탤런트요 이제는 나이도 지긋해 졌는데, 여기 오기만 하면 당연하게 여자를 사겠다고 덤벼드는데, 그거야 자신이 알아서 할 일이지만, 화대를 깎자고 하지 않나, 실컷 관광 안내를 시켜 놓고 맨 입으로 그냥 돌아서지를 않나, 갖가지 뻔뻔스러운 추태를 아무렇지도 않게 부리는 겁니다. 멀쩡하게 생겨 가지고, 온갖 호강은 다 하면서 이런데 와서 아주 고약하게 인색을 떠는 꼴이라니, 한국에서야 그 인간이 그런 인간인 줄 누가 알겠어요?” 가이드가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듣는 사람들은 그 배우가 누구라는 것을 다 알았다. 그뿐 아니라, 그가 뉴욕에 살고 있는 처남에게 들렸을 때, 처남에게서도 지린내가 나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남은 ‘너스레’의 대학 후배였다. “아이고 형님, 그 너스레 말입니다. 여기만 오면 오입이 당연한 순서에요. 올 때마다 당연하게 여기 저기 데려다 달라고 나를 부려 먹는 것은 그렇다 치고, 언제인가는 맨하탄 호텔에서 그 짓을 해 놓고, 황급하게 나를 불러 신신당부하기를 야, 야, 마누라가 왔는데 말이야, 나 며칠 너희 집에서 묵었다고 해 주라. 알았어? 알았어? 엉구럭을 치는 겁니다. 그 치, 이곳에 들리기만 하면 이 여자 저 여자 맛보느라고 무척 바쁜 인간이에요. 시청자들이야 그 인간이 그런 인간인 줄 어떻게 알겠어요?” 그러나 너스레의 인기와 수명은 길었다. 누구도 그의 그러한 이면裏面을 알 필요 없이 그저 그가 브라운관에서 잘 놀아만 주면 좋았다.
돈과 인기, 아니면 권력을 틀어쥐고 있으면 인간이 그리 되는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복권에 당첨 되듯 돈을 벌고, 인기를 얻고 권력 잡을 기회만 있으면 인간은 얼마든지 뻔뻔스러워져도 되는 것인가. 돈이 그 사람인가. 인기가 그 사람인가. 권력이 그 사람인가. 그들이 틀어 쥔 그 소유가 사람인가? ‘에리히 프롬’이든가, 산업주의의 경제적모순은 차치하고라도, 위대한 약속의 실패를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자기중심주의, 이기주의, 탐욕은 자본주의 체계가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용납이 되어야하고, 그것이 자본주의가 조화를 이루고 평화를 누리는 길이다” 그러나 그 위대한 약속은 윤리 및 인간적 가치관을 송두리 채 뭉개버리지 않았는가.
소유를 향한 인간의 열정은 이웃을 볼 수 있는 눈을 멀게 했다. 영상매체는 아무것도 남기는 것 없이 인간의 영혼을 시들게 했다. 그렇게 열광적으로 불나비처럼 달려들어 인기를 얻는 배우들은 문명의 광대놀이로 부富를 쌓고, 시청자들은 소유의 광대놀이를 바라보며 시간을 죽인다. 에리히 프름은 “소유를 향한 열정은 결코 끝나지 않는 계급전쟁을 불러오고,
그 체제가 계급을 철폐 하는 것으로 계급 전쟁을 종식 시킬 것이라는 광산주의자들의 구실
은 허구에 불과하다” 고 단언하지 않았는가.
왕의 거동처럼 당당한 ‘너스레’의 현신을 바라보며, 연극 속에서의 배역配役이 아니라 인생의 배역을 누가 정해주는 것인지 잠깐 쓰라린 생각이 스쳐갔다. 타고난 성정性情이 개차반 같던 인간도, 기회를 포착하는 재주만 있으면 돈과 명예와 권력을 한꺼번에 틀어 쥘 수 있는 것이 자본주의의 생리인가. 인기 탤런트라고 처음부터 호강을 누리며 지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 중 초장에 쓰라린 가난과 구박을 겪지 않은 자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인기 탤런트 중에도 사람의 향기가 짙은 사람도 없는 것은 아니다. 더러 이웃을 위하여 목숨 같은 시간과 돈을 희사하며 천사처럼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탤런트도 있다. 하지만 어떻던 지금, 극중劇中 배역뿐 아니라 인생 배역에서 흥청망청 살아가고 있는 저들과, 잠깐 스쳐지나가는 장면 하나를 촬영하기 위하여 열아홉 시간을 매달려 있다가 파김치처럼 늘어져 돌아가면서, 겨우 6만원도 안 되는 일당을 받아야 하는 이 인생의 격차는 누가 만들었다는 말인가.
연속극, 영화 속에는 천 가지 만 가지 인간이 등장한다. 배역도 천 가지 만 가지가 있다. 잘난 얼굴의 주인공역도 많이 생겼지만, 조연 중에 더러는 한심한 외모를 들고 나온 자도 수두룩하다. 개성個性과 인내가 출세의 열쇠였다. 감독과 선배들에게 온갖 지청구를 받아가면서도 죽은 듯이 참고 참다가, 단역 배우가 되고 다시 조연을 잘 해내다가 이제는 그가 끼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입지를 굳힌 배우들도 적지 않다. 더러는, 죽어도 연기가 늘지 않아, 보는 사람이 숨 막히게 만드는 작자도 있는데 그래도 계속 팔리는 것을 보면 요지경 중에 요지경이 방송사라는 곳이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상식은 위대함을 잃은 지 오래다.
도대체, 하나님 그분이 흡족해 하시는 주인공은 누구여야 하는가?
그는 턱에 붙여진 뻑뻑한 수염을 달고 분장실을 나왔다. 방송사에다 엑스트라를 대주는 회사나 방송사 사람들의 눈에 엑스트라로 뽑혀온 사람들은 사람들로 보이지 않는다. 단 한 씬을 위하여 십여 시간씩 기다려야 할 경우에, 정해진 시간도 없이 그저 막연하게 얼마든지 기다려야 하는 엑스트라들은 궁둥이를 붙일 자리 한 군데도 얻을 수가 없다. 여름이면 건물 그늘이나 나무 그늘에라도 앉아서 잠깐씩 쉰다지만, 겨울에는 걸터앉을 자리 하나 없이 이곳저곳 기웃거려가며 서성거릴 수밖에 없다. 그래도 어느 면에서 여름 더위보다는 겨울 추위가 낫다고 여겨질 때도 있는 것은, 여름에 사극 속 병사 역이 배당되어 갑옷을 입게 되면, 육신은 갑 옷 속에서 땀을 쏟고 흘리다 못해 나중에는 살이 뭉그러질 더위를 겪어야 한다. 전신에 어디라 할 것 없이 땀띠가 솟고, 짓물러 터진 사타구니며 겨드랑에서는 줄곧 진물이 흘렀다.
언제 소집 명령이 떨어질는지 모르니 아무 곳으로나 돌아다니며 서성거리는 것도 조심스럽다. 그는 대궐 뒷마당으로 가다가 누가 읽다가 던져 둔 조간신문을 집어 들었다. 충격적인 일면 톱기사. 중남미 어느 나라에 지진이 일어나 2십여만 명이 목숨을 잃고 도시 전체가 무너졌다는 보도. 2십 만 명···· 인간 이십만 명이 한 순간 참사로 목숨을 잃었다. 아비규환의 사진은 지옥이었다. 거리에 쓰레기처럼 쓰러져 있는 사람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무너진 건물들, 지옥도地獄圖가 따로 없었다. 인간 이십만 명이 일시에 목숨을 잃었다···· 모든 것이 일그러지고 모든 것이 깨어졌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가루가 되었다. 그 어떤 것도 회복될 길이 보이지 않는다.
아내는 어느 날 병상에서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재난의 시작이라 고, 말세의 징조에 대해서 여쭈어본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아프리카의 기근 소식을 영상 뉴스로 늘 보고 있으면서도, 기름진 음식으로 배불리는 사람들은 그림책 보는 정도로 스쳐지나가지요. 지진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지만 이제 머지않아 훨씬 대규모의 심각한 지진이 발생할거에요. 당신, 내가 떠나더라도 교회에 열심히 다니시고 마지막 때를 준비하세요. 그리고 우리가 주님이 예비해주신 그곳에서 만나야지요. 약속해 주세요 네?
그는 지금까지 부정도 긍정도 아닌, 안개의 바다 같은 회의懷疑속을 헤매고 있다. 2004년 말, 수마트라 섬의 상단, 풍요롭고 아름다운 해안 ‘반다 아체’ 지역에, 바다가 뒤집어진 것 같은 쓰나미가 덮쳤다. 바다가 거꾸로 뒤집히고 하늘도 뒤집어졌다. 순간에 처참한 폐허가 되었다. 바닷가에서 평화롭게 놀고 있던 사람들과, 해안 마을에서 태평하게 하루를 살고 있던 사람들이 뒤집어진 바다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그렇게 목숨을 잃은 사람 삼십여 만 명. 그때 하나님은 어디서 무엇을 보고 계셨는가. 천벌天罰처럼 보이는 그 사태로 수십만 명씩 목숨을 잃는 그 사태는 도대체 무엇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말인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다는 인간이, 몇 십만 명씩 파리보다 가볍게 떼죽음을 하는 이 장면을, 신앙의 어느 대목에서 답을 찾아야 하겠는? 눈물이 눈물을 알고 아픔이 아픔을 안다고 하지만 저 떼죽음을, 살아 숨 쉬고 있는 인간이 어떻게 헤아릴 수 있다는 말인가.
그는 신문을 들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태어남. 어느 지역에 무엇으로 태어나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다가 죽어 가는가. 신문에는 아프리카 수단의 내전內戰과 물 부족으로 시달리고 있는 현지 사진이 실려 있었다. 흙탕 물 한 병 얻기 위해서 십리 길을 걸어가는 아이들의 사진이다. 가난. 가난, 배고픔, 목마름, 죽음 이외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처절한 현실. 문명국이라고 자처하는 지역에서, 잠깐 씹다가 뱉는 껌 한 개로 아프리카 사람들이 한 주일을 살아갈 수 있다는 공익광고는 그저 흘러가는 그림일 뿐, 기름진 음식 먹어가며 비단 이부자리에서 잠드는 자들은 자기들이 누리는 복지福祉는 영원히 보장된다고 믿고 있다. 불가해不可解, 세상에서 가장 난해한 의문. 끊임없이 고통을 받는 자와, 재난을 교묘하게 피해 가는 자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인지-
점심때가 되기까지도 촬영 감독은 엑스트라들을 부르지 않았다. 아무리 무명의 엑스트라지만 점심까지 굶길 수는 없는지, 밥을 싣고 온 차가 도착하자 삼백여 명의 떼거리들에게 밥을 나누어 주시 시작했다. 어제 자정에 방송사에 도착한 뒤로 줄곧 버스에서 밤을 지내고, 아침이라야 각자 꿍쳐 가지고 온 빵 쪼가리로 요기를 했으니, 점심까지 무료하게 기다리던 떼거리들에게는 무엇보다 반가운 복음福音이었다. 회사에서는 지출을 줄이려고 깎고 또 깍은 점심일 것이니, 반찬이라야 뻣뻣한 김치 쪽에 두부하고 싸구려 어묵으로 양을 채운 그렇고 그런 도시락이었다. 된장국물이라고 일회용 컵에 한 국자씩 발발 떨며 퍼주는 양으로는 밥 두어 술에 바닥이 나고, 회사 측에서는 뜨거운 물 정도의 아량도 베풀지 않았다.
모두들 게눈 감치듯 점심을 먹고, 또 부지하세월로 집합 명령만 기다리며 서성거렸다.
한식경이나 지나 대사 없는 대감 역으로 불려가, 어전회의 장면을 찍느라고 한동안이 걸렸는데, 그 장면 촬영이 끝나자, 조감독이 달려와 소리쳤다.
“이 봐요! 전쟁 장면 촬영이 곧 있을 테니 대감 수염 빨리 띠고 장군 따라다니는 부관의 수염으로 갈아 붙이시요! 빨리! 빨리!”
그는 다시 분장 실로 달려가 대감의 관복을 벗은 뒤에 서둘러 분장사 앞에 앉았다. 아침에 대감 수염을 붙여주던 분장사가 싱글싱글 웃어가며 농을 걸었다. 저도 꽤나 심심했던 모양.
“아이구, 아저씨! 인기 대단하시네요! 대감에, 장군 부관에! 조금 있으면 무어라도 한자리 하시겠는데요?”
그는 편하게 농을 받아쳤다.
“아, 알렉산더 대왕이나 나폴레옹도 때가 되니까 죽고 말던데, 이 그림자놀이에 지나지 않는 아우성 속에서 황제가 되어본들 달라질게 있는가?”
“오호라, 그래서 아저씨는 남다르게 여유가 있어 뵈던걸요. 폭탄이 터져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분처럼 보이던 걸요. 하지만요, 아저씨를 처음 뵈었을 때요, 아 저런 분이 일찌감치 탤런트로 나섰더라면 지금쯤 그 누구보다도 유명한 자리를 차지했을 텐 데···… 하는 느낌이 들었던 걸요. 인물이 좀 좋으셔요? 젊었을 때는 여자들 속께나 태웠겠는걸요?”
“글쎄, 왜 그렇게 잘 보아 주었을까, 내 주머니에는 껌 한개 들어 있지 않은데”
“저희들도요, 이러고 살아가는 게 때로는 지겨워서 죽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아저씨의 표정은 무기물無機物같아요. 무위자연無爲自然 그대로처럼 보일 때가있어요. 어느 때는 아저씨가 아무도 모르게 무엇을 탐색하러 와 있는 하늘나라의 첩자같이 느껴질 때도 있어요.”
“칭찬이오? 놀리는 거요?”
“사람들이 이렇게 방송사 연속극에나 매달려 살아가는 우리를 아주 건달이나 알맹이 없는 인간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알고 있지요. 하지만 우리라고 혼도 생각도 없는 놈이겠습니까? 때때로 이 자본주의 제도가 아니꼽고 더러워서 딱 접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이 줄에 목을 매고 있을 뿐, 여자가 한때 달콤해서 천방지축 장가들어 놓고 보니 아내도 간수看守요 자식은 더 무서운 간수가 되어 나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있으니, 삶의 현장이 감옥이라고 느껴질 때도 없지 않네요.”
저쪽에서 여자들의 분장을 맡아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있는 여자 분장사들은 끊임없이 새새거려가며 수다스럽게 쫑알대는데, 이 중년의 사내는 왜 이리 처졌을까. 이 각박한 현장 어디서 위로의 말 한마디를 찾아 낼 수 있을까. 하기는 허구헌날 남의 얼굴, 그것도 배역 따라 천의 얼굴을 만들어야 하는 이 짓이 때로는 지겨울 때도 있으리라.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출연자 핑계로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한 장면 촬영을 위하여 하루 종일 기다리는 경우도 많았는데, 오늘은 배역이 두 가지나 주어지니 그나마 지루함이 덜했다. 전쟁 장면에서는 쏘고 찌르고 자빠지고 쓰러지는 아수라장을 찍느라고, 세 번 네 번 다시 찍고 또 다시 찍느라고 체력 소모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총을 쏘거나 활을 당기고, 포화의 연기煙氣 속에서 아우성을 쳐야하는데, 엑스트라들은 한풀이 때를 만난 듯, 천대 받아가며 이름도 없이 얻어맞고 짓밟히는 장면에서 마음껏 악을 쓰고 마음껏 소리 지른다. 더러 죽는 시늉을 하는 자는 참으로 그 자리에서 그렇게 죽어 자빠지기를 열망하는 인간처럼 그렇게 장렬? 하게 쓰러진 뒤에 촬영이 끝나도 일어나려 하지 않는 인간도 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부터 시작된 전쟁. 인류 역사가 이어지는 동안 결코 끝나지 않을 살육. 대왕이라 일컬어지는 알렉산더, 유럽 전역을 피로 물들이고도, 영웅처럼 회자되고 있는 나폴레옹, 희대의 악마 히틀러와 스탈린, 모택동, 그리고 김일성에게 이끌려 이 땅에서 죽어간 이름 없는 병사들···… 지금까지 지구에 태어났다가 세상을 떠난 인류의 숫자 940억이라는데 그 중에서 전쟁에 끌려가 왜 죽는지도 모르면서 죽어간 전쟁의 엑스트라는 얼마가 되겠는가. 도대체, 신神이 계시다면 신이 지명한 진정한 주인공은 누구라는 말인가? 알렉산더? 나폴레옹? 그렇게도 턱없이 떼죽음으로 몰고 간 전쟁에서 도대체 주인
공은 누구라는 말인가? 턱없이 떼죽음을 한 그들은 신이 정한 엑스트라인가? 하나님의 엑스트라인가? 그는 감독의 지시에 따라 장군의 뒤를 이리 저리 따라 옮겨 다니고, 쓰러진 군병들을 걷어차 가며 숨차게 달리면서, 인류가 디뎌 온 처절한 역사를 돌아보았다. ‘악惡을 짓기를 물 마심 같이 하는 가증可憎하고 부패한 인간···…(욥기 15“16)’ 가증하고 부패한 인간이 가는 길이, 주인공이든, 엑스트라이건 그 끝장은 같은 것인가. 알렉산더나 나폴레옹처럼 이름이 남겨졌으니 주인공인가? 그러면 역사 속 전쟁에서 그 헤아릴 길 없는 병사들의 죽음은 누가 받아들이는가? 그들 모두는 정녕 신神의 엑스트라인가?
대개는 아수라장 전쟁 장면을 댓 차례 촬영한다. 그 중에서 제일 잘되었다고 여겨지는 것을 골라서 쓰기 위해서다. 전쟁 장면을 댓 차례 연기하고나면 젊은이들도 대개는 지쳐 늘어진다. 더구나 여름에 무거운 갑옷을 입고 하루 종일 기다리다가, 같은 장면을 네 번 다섯 번 되풀이하여 연기를 하고나면 젊고 늙고 가 따로 없이 파김치가 되어 싸운 사람들처럼 퉁퉁 부어서 촬영의상을 벗는다.
오늘은 그나마 득득 얼어붙는 한겨울 추위는 아니어서 전쟁 장면 다섯 차례의 촬영에 엑스트라들이 덜 지쳐 보였다.
“어이 당신! 오늘 야간 촬영 있는데 할 수 있겠소?”
조감독을 따라온 반장이 몇 사람에게 야간 형편을 묻는다. 어제 자정 넘어 새벽 한 시에 서울을 떠나 열아홉 시간을 어정거리다가. 장면 하나 찍히고 돌아서던 엑스트라는 귀가 번쩍 뜨인다. 하루 일정이 대개 저녁 일곱 시서 여덟시에 끝나는데, 야간 촬영에 뽑히면 밤을 새워야 한다. 현장에서 소모되는 인건비를 아끼느라고, 하루 종일 대기하다가 한 장면을 찍히고 돌아가는 엑스트라를 그들은 다시 그렇게 꼬득인다. 그렇게 한 밤을 새우는 철야 촬영 수당 11만 2천원. 엑스트라 수급需給회사에서는 철야 촬영을 위하여 새재비로 엑스트라를 데려오는 비용을 절감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기왕 온 김에 밤을 새우고 수당을 더 받아간다면 그것으로도 횡재! 라고 여기는 엑스트라의 감지덕지를 그들은 그렇게 간단하게 이용했다.
그럭저럭 날씨가 부조를 해주어서 전쟁 장면 촬영에 추위로 고생을 하지는 않았다.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는 오후 일곱 시부터 대기하고 있다. 11월의 하루는 너무 허무하게 해가 떨어져 산속은 벌써 한밤중이다.
최가 어디서 그를 발견했는지 강동강동 뛰어 따라붙으며 불평이다.
“에이!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무명의 대용물로 살아야 하는지-”
최는 버스에서도 그의 옆자리에 냉큼 올라앉았다. 아닌 게 아니라 최의 몰골은 어제 자정에 보았을 때보다 훨씬 초췌해 하루 사이에 폭 늙어 보였다.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측은지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리 자괴감에만 빠질 일이 아니지요. 엑스트라 하루 벌이 육만 원도 안 되는 사람이나, 연속극 한 회 출연료 1천 오백만원이 넘는 일급 스타나, 돈 가지고 따질 일이 아니라, 진정 무엇으로 살고 잇느냐가 문제 아니겠습니까? 남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그들이나 엑스트라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유명하면 유명 할수록, 잘 팔리면 잘 팔릴수록, 그들은 자신의 삶을 제쳐두고, 남의 인생을 살아야 하는 고달픔이 엑스트라 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을 겁니다. 아전인수나 자기 위로를 하재서가 아닙니다. 일급배우들이 돈이야 지천으로 번다지만, 그들에게 자기 생활이 얼마나 있겠어요? 조용하게 자신을 성찰 할 시간이 어디에 있겠어요? 쉬고 싶을 때 마음 놓고 쉬겠습니까? 아무 생각 없이 놀고 싶을 때 마음 놓고 빈들거릴 수가 있겠습니까? 노상 가상현실 속의 남의 인생을 살아야 하는 그들이 겪는 허무가 더 심각할걸요? 화려한 삶? 남의 시선 속에서 허우적거려야 하는 삶? 엑스트라에게는 자유
나 있지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자유 말입니다. 그들은 한번 목이 매이 면 빠져나갈 수 없는 올가미에 옭혀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를 고마워하며, 고단 할 텐데 눈이나 붙이고 갑시다.”
“우씨가 하는 말씀은 구구절절 지당한 말씀이기야 하지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멋있는 이론이 아니거든요, 어제 자정을 거쳐 이 시간까지 열아홉 시간 아닙니까? 그렇게 턱을 까불러가며 천대를 받고 겨우 오만 팔천 원이라니,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기로서니 이건 차라리! ”
최가 해 던지는 말을 그는 뼈가 저릴 만큼 알아들었다. 그렇다고 맞장구를 칠 일은 아니지 싶어 그는 껄껄 웃음 섞어 대구했다.
“보시오 최선생, 이 지구상에 말입니다. 단 1불, 우리 돈으로 천 원 한 장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자그만치 15억이나 된다는데, 우리는 그에 비하면 양반이지요. 그렇게 알고 지냅시다 그려”
“글쎄 우씨는 내 사정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지요. 생판 살아가는 형편이 다르고 서야 누가누구에게 위로를 해 준다는 것도 허사지요, 허사 고 말고 요.”
하기는···…더 이야기를 해 보아야 피차가 허공을 치는 일.
점심 때 준 식당 밥이라야 슬슬 얹어준 밥에다 반찬이라고 몇 젓갈 들고나면 바닥이 나는 허술한 것이었으니, 버스가 산골 촬영장을 떠날 무렵에는 허리가 꺾일 만큼 배가 고팠다. 서울 도착 시간이 웬만하면 이 자를 데리고 대포집에라도 가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으나, 그럴 만큼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오늘은 일찌감치 들어가 쉬고만 싶어서 다음날로 미루고 눈을 감았다.
버스가 서울로 진입하자 다시 불야성의 도성都城. 소돔성에 쏟아지던 유황불 비를 기다리는 요기妖氣의 불빛. 그 유황불 비는 언제 쏟아지려는가.
여의도 방송사 앞에 도착한 시간은 밤 아홉시가 넘은 시각. 버스에서 내리는 엑스트라들은 다시 볼 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뒤도 돌아보는 일 없이 찬바람을 일으키며 제 갈 길로 흩어졌다. 전철에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문득 코에서 단내가 풍겼다. 이제···… 나이를 속일 수가 없나보다···…
집에 도착하여 아파트 현관문에 열쇠를 꽂으며 한숨을 쉬었다. 이대로 모든 것을 끝내고만 싶었다. 현관에 들어서서 구두를 벗고 두꺼운 점퍼를 벗는데, 갑자기 전화기가 자지러진다. 배가 너무 고픈 탓인지 만사가 귀찮아 전화를 받지 않고 부엌으로 갔다. 정 요긴한 전화라면 나중에 다시 걸려오겠지- 무어라도 먹고 기운을 차려보자. 냉장고를 여는데 이번에는 휴대폰이 소리쳐 주인을 부른다.
폴더를 열어보니 엑스트라 회사다.
“우씨, 내일 촬영 일정 잽혔어요!”
시계를 보니 전철 막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 무단히 가지 않으면 회사는 다시 그를 부르지 않을 것이다. 엑스트라에게는 정해진 시간이라는 것이 없다. 그는 먹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현관으로 나갔다.
정연희
1936년 서울 출생. 1957년 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 3학년 재학 중 동아일보 신춘문예소설부문 당선. 1958년 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 졸업. 장편으로『석녀(石女』『목마른 나무들』『고죄(告罪)』『난지도』『양화진(揚花津』등 다수. 창작집으로 『백조의 행진 갇힌 자유』『꽃을 먹는 하얀소』『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등 다수. 에세이집『나를 만나러 가는 길』『한낮에 촛불을 켜고』등 다수. 묵상시집 『외로우시리』. 한국소설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대한민국문학상, 윤동주문학상, 김동리문학상, 유주현문학상 등 수상. 소설가협회 이사장 역임.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