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이종근
혹한에 줄서기 외
일요일 아침에 줄을 선다
용문시장 국밥집 앞, 영하 17도라는 말에도 선거에 나온 예비 후보처럼 어설픈 눈도장을 찍고 서 있다
제법 귀가 따갑고 손발이 시리다
겨울엔 선지를 넣은 뼈다귀해장국이 제격이다
아내도 애써, 유명하고 맛난 국밥집이라는 말에 우랄 블로킹의 매섭게 추운 날씨에 아랑곳없이 오로지 깡다구로
줄을 사수한다
밥하기와 설거지가 귀찮거나 먹을 게 없어 냉장고를 부탁하지 못하는 공휴일 아침에
종교시설의 복지처럼 회개의 기도를 올린다
법정 선거일도 아닌데 이번이 벌써, 두 번째 줄을 굳은 선지처럼 선다
출사의 명함을 나눠주는 게 아니라 국밥집 홍보 명함을 받아오는 일이 전부다
겨울엔 역시 선지를 넣은 뼈다귀해장국이 제격이다
이번이 벌써 두 번째 혹한 속,
이름난 국밥집 간판에 그려진 뼈다귀처럼 불청(不聽)의 줄 서기에 공을 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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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그림 찾기
(1) 스무고개의 절반도 넘지 못하다
제1의 힌트는 공덕역과 용산역 사이 어린이집, 어린아이의 평화로운 자장가입니다
제2의 힌트는 숙명여대와 서강대 사이 젊은이들이 피워대는 흡연 부스 속, 취업의 한탄입니다
제3의 힌트는 한강삼성아파트와 효창공원 사이 백범을 조망하던 애국심이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제4의 힌트는 용문시장과 공덕시장 사이 야식의 대명사인 족발 보쌈과 조식으로 끓여낸 해장국의 비법입니다
제5의 힌트는 서울여고와 성심여고 사이 숨바꼭질처럼 숨은 자원봉사점수입니다
제6의 힌트는 용산전자상가와 강변북로 사이 왕복하는 1711번 시내버스 광고판에 빼곡히 그려진 게임기처럼 숨만 가쁩니다
제7의 힌트는 마포우체국과 한겨레신문 사이 용문동 주민센터, 외국인들이 뽐내며 읽어 내리는 한국어로 된 춘향전 판소리가 얼핏 설핏 전향을 꿈꿉니다
제8의 힌트는 공항철도, 경의 중앙선과 한강의 뱃길 혹은 마포나루 사이 사회정화위원 출신의 터줏대감인 늙은이 둘의 장기판 아래 낡은 지폐로 숨어있을까
여기에서 하나의 힌트는 분명히 X맨입니다
(2) 정답을 에둘러대지 마라
제1의 정답은 72인 성직자, 천국에서의 슬픈 기도와 대한민국 국적을 지닌 어느 사내 1인의 냉담과 면박 없는 면박의 사이겠지만
제2의 정답은 보수와 진보 사이, 정치 지망생의 절대적 권력의 비중과 득실은 알다가도 모를 듯 다들 제각각의 주장과 모욕임을 알게 하는 것을
제3의 정답은
알면서도
그걸 자세히
가르쳐주지 않는 걸까
왜일까?
이종근
2016년 《미네르바》등단. 박종철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