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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의상대 홍련암 해안절경
송강 정철(1536~1593)의 관동별곡에 소개된 관동팔경 가운데 하나로 동해 일출경으로 매우 유명하다. 해안 암벽 위에 설치했다는 의상대, 의상대사가 홍련 속의 관음보살을 친견해 설치한 홍련암 등 낙산사의 곳곳에는 의상대사와 관련한 전설이 있다. 주변에 노송(老松)들이 자리하고 있어 동해안의 아름다운 해안 절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떠오르는 일출 경관으로 유명해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는 곳이다.
의상대사와 관련한 이야기는 부석사에도 많이 전해져 오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유홍준님이 쓴 나의문화유산 답사기에 있지요.
낙산사 주차장에서 바로 내게 다가온 절경이 바로 저 모습이다. 작은 바위에 하얀 갈매기들이 떼지어 오손 도손 얘기라도 나누고 있는듯 하다.
우측엔 의상 기념관인데 예전엔 못보았던 양쪽의 건물들이다.
의상대로 가는 길가의 담장이 마치 원통보전의 담벽과 흡사 하다.
의상대앞 해송 사이로 바라보는 홍련암
40대 초반쯤에 두어번 다녀 갔었지만 이곳을 담아간적은 없었다. 오늘은 마음 먹고 제대로 여러 각도에서 이 멋진 해안절경을 담아보고 싶다. 내가 이곳 저곳 사진 담는 사이에 아내와 딸래미는 이미 의상대에 올라 아빠~! 여기요~~!!! 자아~~하나~둘~셋~!!!~~찰카닥^*^
동해의 일출은 정말 불덩이가 솟고 후끈 하지요^*^
줌으로 당겨서 다시한번 담아본 갈매기의 작은섬
지난 그러니까 몇달전인 2010년 6월 23일쯤 명승 제27호인 양양 낙산사 의상대가 새롭게 다시 태어났었다. 지난해 8월 추진한 ‘낙산사 의상대 단청보수 및 의상대~홍련암간 정비’를 10개월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완료 했다고 6월 23일 밝혔다.
군에 따르면 그동안 의상대가 수해로 인해 붕괴위험에 있는 등 보수작업이 요구됨에 따라 문화재보수정비 국고보조사업 및 분권교부세 사업으로 추진해 총 4억6000만원을 들여 의상대 지붕과 기둥 보수, 단청작업, 의상대 주변의 자연석 석축설치 및 암반 사면 보강, 의상대~홍련암간 마사토 포장 등의 작업이 이뤄졌다.
하지만 의상대가 지반침하로 인한 구조적 변이와 해풍으로 인한 기둥 훼손정도가 매우 심한 것으로 공사중 드러나 불가피하게 지난해 12월 의상대를 해체하고, 다시 옛 모습 그대로 복원작업을 거쳐 이번에 완료하게 됐다. 이로 인해 그간 낙산사에는 의상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관람객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특히 일제 때 만들어진 축댓돌도 이번에 모두 없애고 자연석으로 교체함으로써 전통의 미를 더하게 됐다.
양양군 담당자는 “이번 낙산사 의상대 단청보수 및 의상대~홍련암간 정비공사가 완료됨으로써 명승 제27호로서의 면모를 새롭게 갖추게 돼 많은 내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전통의 미와 아름다운 불교문화유적을 보여주게 됐다”고 말했다.
청산 가족과 처가 일행들~~낯익은 모습도 보이지요?*^^
수많은 인파속에서 이사진 하나 담을려고 무지 노력 했습니다. 의상대 바다쪽의 저 소나무가 내게는 압권 입니다.
해송과 동해바다 - 날씨가 조금만 더 맑았으면 작품이 나올뻔 하였는데*^^
이토록 아름다운 해안 절경이 우리 곁에 있는다는 것은 축복이리라~!
각도에 따라서 다방면으로 보아도 아름다운 해송과 의상대
세번째 다시 담은 갈매기 바위섬
저렇듯 절벽위에 세워진 의상대가 있어 이곳이 더욱 빛나 보인다.
홍련암 방향에서 의상대를 배경으로^*^
그사진이 그사진 이고 그사진 아니냐고 하지 마시오~! 조금식 다른 이모습들이 나중엔 청산가곡의 아주 훌륭한 이미지로 쓰일 것이라오^*^
한폭의 그림 같지 않은가 말이우~^*^
동해의 관음기도도량 낙산사 홍련암(落山寺 紅蓮庵)
홍련암(紅蓮庵)은 강원도 양양군 낙산사 경내에 있는 작은 암자로 법당마루 밑으로 동해의출렁이는 바닷물을 볼 수 있게 절벽 위에 세워져 있으며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좌선한지 7일째 되는 날, 바다 속에서 홍련(紅蓮)이 솟아 오르고 홍련속에서 관음보살이 나타나 대사에게 법열을 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낙산사는 관동팔경의 하나로, 김홍도가 그림을 남겼을 정도의 명소였지만, 6·25 한국전쟁때 크게 부서져 현재의 건물들은 대부분 1960년대에 재건된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닷가에 위치한 뛰어난 풍치와 홍련암 의상대를 포함한 넓은 경내, 그리고 창건주 의상대사의 생사를 초탈한 구도의 전설들로 가득찬 곳이다.
홍련암은 바닷가 굴 입구에 있는데 바로 이 굴 안에 관음보살이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의상이 찾아온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의상은 이 바닷가에 의상대사가 이 곳 석굴 앞 갯바위에서 나체로 정좌하고 7일 낮 7일 밤을 지성으로 기도를 드리던 중이었다고 한다.
그 때 동해 바다에서 홀연히 붉은 연꽃이 솟아올랐고 그 속에서 관음보살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로 인하여 의상대사의 기도가 성취되어 큰 깨달음을 얻었으니 그 이후로 홍련암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즉 관음보살의 진신을 직접 뵙게 된 것이다.
관음진신은 의상에게 산 위에 절을 지으라고 했다 한다. 그로서 탄생한 절이 바로 낙산사다. 의상대사가 활동하던 통일신라시대에는 전 국토를 보살들의 거주처로 인식하려는 국토재구성 운동이 한창이었다. 대표적인 곳이 오대산으로 문수보살이 계시는 곳으로 받들여졌다. 문수보살과 함께 가장 중요한 보살인 관세음보살은 동해,남해,서해 각 세곳에서 친견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원래 관세음보살은 동쪽의 보타락가산을 주처로 가지고 있다고 화엄경에 나온다. 낙산사의 절이름도 결국 보타락가산에서 유래한 것이다. 관세음보살 제1의 성지가 동해의 낙산사라면, 제2는 남해의 금산 보리암이고, 제3은 서해 강화 보문사다.
의상이 당나라에서 돌아온 후, 관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하기 위해 동해의 관음굴을 찾아가 간절한 신앙고백과 원을 담은 <백화도량발원문>을 염하면서 참배하고 있었다. 재계 7일만에 8부신중이 나타나 관음굴 속으로 스님을 인도했고 수정염주 하나를 응답의 징표로 쥐어주었다. 그러나 대사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굴 앞 바다 위에 솟아있는 구농석 바위에 앉아 밤낮으로 기도하기를 다시 7일간, 그러나 관세음보살은 나타나지 않았다. 응답이 없음에 대사는 자신의 정성이 부족함을 탓하며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바다 위에 붉은 연꽃이 솟아나 대사를 구해준 것은 물론, 그 속에 드디어 관세음보살이 현신해 친견의 원을 이루게된다.
그 친견의 장소에 지은 법당이 홍련암이고, 홍련암 아래의 암석굴이 바로 관음굴이다. 이처럼 바다 위 절벽에 자리를 잡은 까닭은 수정염주를 바친 바다 속의 8부신중들이 불법을 들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목숨까지 바치려했던 의상의 높은 신심을 기념하기 위해 그 자리에 지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처럼 가파른 벼랑을 골라 그 위에 건물을 짓는 것은 대단한 난공사였다. 일부러 악조건을 감수하며 법당을 짓는 까닭은 그것이 최대의 공덕이기 때문이다.
파랑새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양양 낙산사 홍련암 주변에서 등 부위가 파란색인 새가 이따금 목격되면서 전설 속 파랑새 출현 논란이 일고 있다. 등이 파란색이고 배는 갈색, 꼬리는 검은색을 띤 작은 새가 가끔 목격되고 있다. 신라 문무왕 12년 의상대사가 입산도중 이상한 새를 발견하고 쫓아가자 새는 석굴 속으로 들어가 버렸으며 이를 이상하게 여긴 의상대사가 석굴 앞 바닷가 반석에서 기도를 드리던 중 7일 만에 바닷속에서 관세음보살이 나타났다는 사찰 창건기가 전해지는 낙산사에는 석굴 속으로 사라진 새가 관음조인 파랑새라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낙산사에서는 지난 2004년에도 지역주민이 촬영한 푸른색 새를 놓고 파랑새 출현 논란이 일었었다. 붉은색 부리에 등과 배 모두 파란색인, 흔히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일컫는 '파랑새'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문제의 새는 바다직박구리로 주로 섬이나 바닷가에서 서식하는 조류"라고 설명했다.
이곳에 대한 이야기들은 수도 없이 많을것이다. 그 이야기들 모두 엮자면 청산은 칩거정도 해야만 될것이다^*^
홍련암 볓채도 새로 지어졌는데 그곳의 화단에 있던 고운꽃이다^*^
이제 낙산사 본당으로 가기위해 발길을 옮기고 있는데 비는 멈추었고 흐린 날씨지만 땀방울이 계곡을 이루어 흐르고 있었다.
갈매기 바위섬을 배경으로 큰딸과 함께^*^
하늘은 개일듯 한데 아직은 흐린 날씨지만 그래도 의상대는 담고 또 담아본다.
해송 사이로 담아보는 갈매기 바위섬은 이제 다섯번째 담나 보다^*^
이곳 의상대는 어느곳에서 어떻게 담아도 너무 아름답다.
문수동자상이 있는 연못을 담아 보았다.
이 보타전은 낙산사 석마근 스님과 홍련암 송지홍 스님의 원력으로 1991년 7월에 시작하여 1993년 4월 10일에 준공했다. 도편수는 홍완표 거사이다. 마두관음, 준제관음, 불공견색관음)과 함께 32관음 응신상, 그리고 1천 5백 관음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나무는 백두산 홍송이요, 조각은 자광불교 미술원 김광환, 김광열 형제가 2년에 걸쳐 했다. 그리고 닷집은 박현규 거사의 작품이며, 단청은 주인철, 김재욱 거사가 했다. 특히 벽화는 낙산사를 창건한 해동의 화엄종주 의상대사의 일대기를 송관무, 김용대 두 화공이 그렸다.
7관음상을 봉안하던 날 밤에는 하늘에서 풍악소리가 들리는가 했더니, 청학 다섯 마리가 허공으로 날아올랐고 때를 맞추어 동해 바다는 울음을 그쳤으며, 무지갯빛 서기광명(瑞氣光明)이 우주법계(宇宙法界)에 가득했다.
위 내용은 보타전과 관련한 글을 가져온 것입니다.
보타사에서 조망하는 의상대와 동해의 푸른 물결
사천왕상 문 밖에서 바라본 원통보전과 7층 석탑
원통보전의 담벽 무늬는 예부터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 있었는데 화재후 어떻게 복원 공사를 하였는지 궁금 하기도 하였다.
마당에서 바라본 원통보전(대웅전)과 7층석탑 낙산사 7층 석탑은 조선시대 석탑으로. 보물 제499호. 높이 6.2m. 낙산사의 원통보전 앞에 있는데 부분적인 손상은 있으나 상륜부까지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으며 고려시대 석탑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2단의 층을 이룬 지복석(地覆石) 위에 12잎의 복련(伏蓮)이 조각된 지대석(地臺石)이 있다. 중석(中石)에는 모서리기둥이 없고 그위의 갑석(甲石) 밑에는 부연(附椽)과 2단의 굄이 있다. 탑신부는 옥신석과 옥개석이 각각 1개의 돌로 되어 있는데 옥신석에는 모서리기둥이 없고 밑에 넓은 별석(別石)을 각 층에 삽입한 것이 특이하다. 옥개석은 평평하고 얇으며 추녀 끝은 반전(反轉)되었으며, 받침수는 모두 3단이다.
라마식의 영향이 보이는 상륜부는 별석 받침 위에 노반(露盤)이 있고 그위에 청동제의 복발(覆鉢)·보륜(寶輪)·보주(寶珠) 등이 청동제 찰주(擦柱)에 꽂혀 있다. 탑신에 비해 기단의 폭이 좁고 옥개석의 체감비율도 낮아 전체적으로 고준한 느낌을 준다. 이 탑은 낙산사가 세조(1455~68 재위) 때 크게 중창되면서 함께 건립된 것으로 생각되며, 강릉 신복사지3층석탑(神福寺址三層石塔)과 유사점이 있다. 2005년 4월 5일 양양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로 낙산사가 불에 타며 낙산사 7층석탑의 일부가 손상되었다.
원통보전
원통보전을 나와 해수관음상 방향으로 나가자면 만나는 쪽문이 넘 고웁다^*^
쪽문이 하도 이뻐서 다시 한번^*^
월통보전 방향에서 바라본 해수 관음상
낙산 해수욕장 방향을 조망 하고~
해수 관음상 앞 작은 못 중앙의 연꽃 모양 그릇에 동전을 넣으면 복이 온대나~~해서리^*^
아내와 함께 해수관음상 앞에서~
해수 관음상 위로 갈매기가 환송비행을 한다.
보타사에서 원통보전을 담아본다.
와우~반가운 산목련이 이제야 꽃망울을 튀우고 있다.
의상 기념관쪽 해송
주차장으로 오면서 다시 담아본 의상대
갈매시 섬과 통통배 한척
노우정이 맨 처음엔 의상대인가 할 정도로 이곳도 풍치가 좋다.
해송사이의 작은 항이 마치 그림 같은 한장면 이다.
나의 디카가 있어서 이렇게 많은 모습을 담아올수 있으니 세상은 더욱 더 살맛나지 않는가 말이여~~^*^
해송 한번 더 담아보고서~
바닷물결 출렁이는 낙산 해수욕장 백사장으로 왔다.
우와~~
아이구~시원해~~^*^
자아 ~ 다함께^*^
비가 많이 온 후에 흐려서 그런지 인파는 많지가 않다. 이곳 해수욕장은 아이들이 어릴때 2박 일정으로 왔는데 밤사이에 준비해온 아이스박스안의 모든 음식들이 사라지고 아이스박스도 한참 돌아다닌 후에 겨우 찾았다. 여러가지로 불편하여 그냥 떠나와야 하였는데 함께 간 일행은 그래도 하루를 라면을 사다 끓여들며 더 있다가 왔다고 하였다.
그후엔 아이들이 초등학교쯤 다닐적에 어머님 모시고 일출을 보러 갔었다.
이후에 이웃사촌과 부부동반으로 갔다가 의상대아래 방파제 부근에서 도다리 회한접시에 쐬주 한잔 나누기도 하였었다.
그 이후엔 어느 가을날 일출보러 가서는 즉석 먹거리 한접시에 쐬주한잔하고 오징어회를 신나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엔 나도 여러번 갔었던가 보다. 이젠 숙소로 돌아가 늦게 도착하는 일행을 맞아야 한다. 일행들이 서로 준비해온 먹거리가 흘러 넘쳐서 신나는 저녁 시간이 되었다.
2박 3일간의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 하고 이곳에서 남녘에서 올라온 일행과 헤여져 청산의 바람이 흐르듯이 순조롭게 인천으로 돌아왔다.
2010. 8. 13 금요일
바람부는 산사 - 정목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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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댓글 입니다.
승우님~! 모처럼 동해바다로 나갔는데
3일 내내 비만 퍼붓더니 잠시 개이는 사이에 이곳 저곳 다녀왔습니다.
디카는 조그만 컴팩트 디카인데 풍경 사진은 전문가용 못지않고~~
특히 음악회에서 사진과 동영상 촬영으로 이름을 떨치는 디카 입니다^*^허허허^*^
가족 피서 여행 제대로 즐기고 오셨네요~ 추억의 시간시간들이 너무 행복해 보이십니다^^* 큰따님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사랑 듬뿍 안고 웃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요^^*
산노을님 저는 알지요~ 반갑습니다^*^
앙뚜아님~! 다행히도 이튿날 비가 잠시 주춤하여 많은 사진 담을수가 있었습니다.
작은 애가 없으니 큰애가 귀여움 독차지 하고 있어요^*^
수고하시였습니다
하는 ......
이작품을 위하여 많은 시간이 필요하시였겠습니다
덕분에 불교문화와 관세음보살님의 원력등등 많이 배우옵니다
청산님의 가족과 또 함께하신 산 노을님 가족 모두 모두
세세 생생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사랑이 넘치어 아낌없이 나누는 기쁨을 만끽하시옵소서
바람부는 산사 넘 좋죠
나의 영혼 나의 마음은 어떤색일까
오늘도 행복합니다
유여님~! 예전에 책에서 많이 읽었는데도 기억이 아리송하여
이곳 저곳 많이 알아보고 참고하여 완료 하였습니다^*^
고우신 말씀 주심에 감사 드리며~~
더욱 많은 여행좀 다녀야 겠어요^*^
모두가 좋군요...몇십년이 흘러 지금은 기억이 까마득한데...군에 있을때 이곳에서 몇번의 죽을고비를 넘겼는데...그때는 그저 ...사람은 일이라 하면 싫고 놀이라 하면 좋고.....힘들고 지쳐도 좋고...인간의 간사한 마음을 이제 웃으며 생각케 합니다. 해송도 좋고 갈매기도 좋고 사람들의 웃음도 좋고....정목스님의 바람부는 산사도 좋고 오손도손 가족들의 즐거운 모임도 좋고...이래저래 청산님은 어딜가나 항상 찍가하실려니 바쁘게 움직이시느라 수고만 잔뜩 하고 돌아온듯 합니다. 수고 많이 하셨내요...
사랑과행복님은 이곳에 아득한 추억이 깃든 곳이군요^*^
해송이 있어서 더욱 아름다운 곳인데 그래도 의상대쪽의 소나무들은 화재에 피해가 없었나봐요.
저는 풍경 담는것이 습관이 되어 버려서 찍사노릇 하여도 좋습니다^*^
청산님의 자세한 설명에 또한번 가본 느낌이여요 많이 달라졌지만 해송과 의상대는 여전히 의연한 자태를 보이고있네요 청산님 가족여행 많은 추억만들고 오셔서 반가워요 너무감사히 잘~감상합니다 건강하세요~~
반가운 해정이 어르신도 얼마전 다녀 오셨나봐요.
해송이 의상대 주위에만 있고, 낙산사쪽엔 하나도 안보이더군요.
어여쁘게 봐 주시고 잘 감상하여 주셔서 감사 합니다.
저는 작년에 낙산사 갓을때~화재로 인해 공사가 한참 진행중이던데~ 지금은 다~보수가 끝낫나바요 ~~^*^
덕분에~좋은 구경 합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
누구나님~! 이제 보수공사 모두 끝나고 편안하게 둘러볼수가 있더군요.
참으로 아름다운 명승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