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난하이[南海] 유역 주장강[珠江] 삼각주의 서쪽에 있는 도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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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광동성샹산현[香山縣]에
속해 있었다.
1553년 포르투갈인들은 물에 젖은 화물을 말린다는 구실을 내세워 처음 마카오에 발을 들여 놓은 후
1557년 중국
관리자들에게 뇌물을 주고 마카오반도의 거주권을 획득하였다.
포루투칼은 1553년 대(對)중국
무역권을 획득하는 것과 동시에 마카오의 실질적인 사용권을 인정받고,
광둥의 중국 관리(官吏)로부터
도시건설허가를 얻었다.
1575년 로마 교황이 포르투갈 정부의 후원으로 그 곳에 마카오 관구(管區)를
설립하였다.
그후 마카오는 포르투갈의 대(對)아시아
진출을 위한 거점이 되는 동시에 1841년 영국이
홍콩에 식민지를 개설하기까지 중국과 서양의 유일한 교류기지가 되었다.
마카오를 거쳐 중국으로 전해진 문물은 그리스도교외에
서양에서 발달한 천문학 유클리드 기하학
근대적인 지도투영법, 대포주조기술 등이 있고, 특히 동·서양의 지리적 지식교류에 커다란
역할을
한 마테오리치도 마카오를 거쳐서 중국에 발을 들여놓았다.
아편전쟁으로 홍콩이 영국 식민지가 된 후, 아시아에서의 세력유지에 혈안이 된 포르투갈은
아오먼[澳門]반도
전역과 타이파·콜론 두 섬을 점령하고,
1887년 청(淸)·포르투갈조약을
맺어 그 지역에서 식민지 건설을 합법화하였다.
이후부터 마카오는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되었으나,
1951년 포르투갈의 헌법개정에
따라 해외주(海外州)'로
바뀌어 본국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본국 정부가 임명하는 총독의 통치하로 들어갔다.
1966년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이
일어나 마카오 정청(政廳)과
현지의 중국인간에 분쟁이 일어났다.
1973년 3월 자치령이 되고, 1979년 중국·포르투갈 간에 국교가 수립되어 1986년베이징에서
마카오 반환협정을 체결하고, 1999년 12월 20일 중국은 마카오에 대한 주권을 회복하였다.
1995년 11월에는 홍콩의
카이타크공항과 대체할 수 있는 중국의 관문이 되기 위하여
타이파섬에 신공항을 건설하고 미국·유럽·아시아 각국과 22개의 항공협정을 체결하였다.
한국도 방콕 이원권(以遠權)을
포함한 일괄협정을 체결하였다.
1999년 12월 20일 중국에 정식으로 반환되어 홍콩에 이어 두번째로 중국의 특별행정구가
되었다.
마카오에서도 렌트카를 이용하여 여행을 했다
마카오는 오감을 제대로 만족시켜주는 여행지다.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된 25개 유적지 곳곳에 존재하는 매력들을 쉽게 접할수 있다
한 지역에 여러곳의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얘기해서 유럽풍의 향취가 물씬 풍겨나는 세나도 광장에는 오래된 세나도 빌딩,자애당등
포루투갈풍의 각종 건축물 들을 감상할 수 있고 중국 전통의 저택이나 사원등 독특한 매력을 볼수 있다
(포루투갈 식민 건물)
마카오 소재. 본래 16세기에 스페인의 도미니크 수사에 의해 목조로 건축되었으나
1828년 재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마카오는 이렇듯 한 장소의 관광지에서 짧은 시간에 다양하고 독특한 문화의 접점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마카오 매력의 일부분이다
마카오를 제대로 관광하는것은 세계 최고의 요리를 먹어 보는것과 즐길거리라 말할 수 있다
마카오는 가히 세계요리의 천국이라고 불릴만 한다지만 우리 일행은 그저 김치찌게 생각에
한국식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마카오의 요리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중국식,매캐니즈식(포루투갈식+중국식),포루투갈식이
바로 그것이다
카지노, 개경주,마카오 타워의 스카이 점프,경마등
역시 마카오는 우리 일행을 잠시도 쉬게 하지 않고 붙들지만
유혹을 뿌리치고 황금에는 눈을 뜨지 않고 감아 버렸다
새로 오픈한 샌즈 카지노는
그 화려함과 규모가 아시아에서 최고라 한다지만 사진으로만 남겼다
그레이 하운드 개경주의 독특한 즐거움도 마카오에서만 즐길수 있는 매력이라 하지만 이것 역시 차후로 접어
두었다
2층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그 날은 마카오 그랑프리 자동차 경주가 있는 날이었다
매년 11월 3째주 주말에 하는 연래 행사라고
한다
귀창을 찢어 놓을 듯
굉음 소리에 창밖을 내다보니
총알보다 더 빠르게 자동차가 질주하느라 순식간에 시야에서 벗어난다
(탐쿵 사원)
(성
도미니크 교회)
1587년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로 17세기에 수리 되었다
(마카오 몬테요새)
성 바오로 성당과 동시기에
예수 회신들에 의해 세워진 요새이다.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어 마카오 시내 풍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1622년 네덜란드가 공격해 왔을 때, 그 견고한 요새의 면모를 발휘했다.
지금도 22문의 대포가 남아있다.
(성 바오로 성당)
마카오에서 가장 유명한 이 성당은 시가지 중앙의 높은 언덕 위에 품격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7세기 초 이태리인 예수회 수도사가 설계하고 나가사끼에게 쫓겨온
일본인 기독교인들의 협력으로 완성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성당은 1835년의 태풍때 화재로 소실되고,
현재는 건물 정면의 벽화와 계단벽의 일부만 남아 있으나,
섬세한 조각상으로 장식된 이
정면의 벽에서 당시의 건물 전모를 상상할 수 있다.
마카오에서 심천으로 들어가기 위해 선착장으로 가는 도중
중국 냄새가 물씬 풍긴 건물을 보고 한컷 찍었다
오전 한 나절로 마카오 여행을 마치고 오후에 심천으로
들어갔다
2006/11/18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