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살아 가시는 국민들이여!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를 잊지 마소서!!■■
1. 사건과정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일본 제국의 전 총리이자 제1대 조선통감이었던 추밀원 의장 이토 히로부미는 러시아의 재무상 블라디미르 코콥초프(Vladimir Kokovtsov)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 역에 도착을 했다.
이토가 오전 9시 15분 하얼빈 역에 도착해 차내에서 약 25분 정도 코콥초프와 대화한 후, 그의 권유에 따라 명예 사령관으로서 러시아 수비병을 사열하기 위해 열차에서 내렸다. 그가 수행원의 안내를 받으며 러시아 군대 앞을 막 지나가는 순간, 안중근이 총알을 발사하여 이토를 명중시켰다. 그 중 두발은 복부에 맞았다. 안중근은 혹시 이토 히로부미가 아닐 것을 대비해 다시 3발로 주위의 수행비서관 모리 다이지로, 하얼빈 주제 일본 제국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 (川上俊彦), 만주 철도의 이사 다나카 세이타로를 쏘았으며, 안중근을 죽이려들며 해를 끼치자 일본군 장교 1명을 사살했다. 블라디미르 코콥초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눈앞에서 일어난 사고에 당황하지 않고 쓰러진 이토를 부축했으며 이토는 그의 품에 쓰러졌다.
수행원인 무로다(室田義文), 나카무라(中村是公) 등도 다급하게 이토를 껴안아 보호했다.
이때 안중근은 러시아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2. 안중근의사 사형선고 소식을 들은
어머니 조마리아 (조성녀) 여사는
안중근 의사가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後 안의사에게 보낸 편지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日帝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 라고 하면서 수의를 지어 보냈답니다.
이것이 안중근이라는 영웅을 낳은
어머니의 바램이었다.
단호하고 거룩한 바램...
3. 안중근義士 사형집행
안중근은 만주 뤼순(여순) 감옥에 갇혀 재판을 받아 사형을, 함께 거사했던 우덕순은 3년 형, 조도선과 유동하는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거사를 배후에서 도운 재 러시아 갑부인 교포 최재형은 러시아인 변호사를 준비시켰으나 일본은 러시아인 변호사의 접근을 금지했다. 안중근은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에 교수형을 당했다.
4. 안중근義士 출생 및 가문
안중근 의사는 본관은 순흥이고, 아명은 응칠(應七)이며, 천주교 세례명은 토마스(도마)이다.
본관은 순흥(順興)이며,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태어났다. 가슴과 배에 7개의 점이 있어 북두칠성의 기운에 응하여 태어났다는 뜻으로 아명(兒名)을 응칠(應七)이라 지었으며, 자라서는 자(字)로 사용하였다. 아버지는 진사를 지낸 안태훈이며 할아버지는 안인수로 진해현감을 지냈다. 할아버지가 미곡상을 하여 집안은 부유하였다. 안중근은 어려서부터 한학(漢學)을 배웠으나 성장하면서 무술에 더 열중하였다.
안중근의 집안은 전형적인 향반(鄕班) 지주였다. 즉, 고려말 대유학자 안향(安珦)의 후예로 조부 안인수(安仁壽)는 진해현감, 부친 안태훈(安泰勳)은 소과에 합격한 진사로 수천석 지기의 대지주였던 것이다.
5. 안중근義士 명언
* 100번 참는 집안에는 평안과 화목이 있다.
* 자기 자신을 보배처럼 사랑하라.
*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마라,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
* 가난하되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되 교만하지 않는다.
* 눈 앞의 사사로운 이익보단 외로움을 먼저 생각하고 조국이 위기에 처하거든 목숨을 바쳐라.
* 먼 곳을 향하는 생각이 없다면 큰 일을 이루어 내기가 어렵다.
* 뿌리 없는 나무가 어디에서 날 것이며, 나라 없는 백성이 어디서 살 것인가.
*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오. 대한 독립의 함성이 천국까지 들려오면 나는 기꺼이 춤을 추면서 만세를 부를 것이오.
* 천당의 복은 영원한 즐거움이다.
* 황금 백만냥도 지식 하나 가르침만 못하다
* 장부가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은
쇠와 같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이를지라도 기운이 구름같도다.
* 궂은 옷, 밥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더불어 의논할 수 없다.
* 스스로 잘난체 하는 것보다 더 외로운 것은 없다.
*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못하면 큰 일을 이루기 어렵다.
* 나라위해 몸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청춘은 다시 오지 않는다.
* 위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6. 안중근의사 기념관
1909년 10월 만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정신과 뜻을 추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70년에 준공을 하여 592㎡ 규모의 석조와즙 1동을 건립하였고, 높이 3m의 안중근 의사 동상을 세웠다.
2010년 10월 26일에는 안중근 의사 의거 101주년을 기념하여 옛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철거하고 3층 규모의 새 기념관을 개관했다. 대지 5,772㎡, 연면적 3,759㎡의 규모의 새 기념관은 안중근 의사의 출생과 성장과정은 물론 단지동맹 등 독립운동 활동, 하얼빈 의거, 옥중투쟁과 재판, 순국, 유언 등 의사의 행적을 보여주는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소장품으로는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뜻의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 등 유묵, <국가안위노심초사> 외 휘호, <안중근 의사 공판기> 등이 있다.
서울특별시 중구 소월로91 (남대문로5가 471-2번지) 에 위치해 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