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규의 國運風水] 윤홍근 올림픽 선수단장이 산수화 ‘천리강산도’를 들여다보는 이유
조선일보 2022.01.15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과 중국인들의 길상(吉祥) 풍수
베이징올림픽 조직위원회가 1월초 발표한 세 가지 시상식 복장. /바이두
‘길상(吉祥)’이란 단어를 중국인들은 즐겨 쓴다. ‘좋은 일에는 상서로운 조짐이 있다[길사유상·吉事有祥]’의 줄인 말이다(주역). 풍수에도 아예 ‘길상풍수’가 있다. ‘믿거나 말거나!’가 아니다. 길상풍수에 어긋나는 터, 건축물, 색상, 숫자, 꽃, 상징물 등을 꺼린다. 중국 사업가들에게 ‘풍수를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더 이상 대화하지 말자’는 것과 같은 뜻이다.
2월 4일 개최되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우리나라 선수단장인 윤홍근 빙상연맹 회장(제너시스BBQ 회장)은 바쁘다. 주 임무는 선수들을 지원하는 것이지만, 여느 올림픽과 다른 어려움이 있다. 미국 중심의 외교적 보이콧과 코로나19가 그것이다. 조심스러운 일이다. 주최국 관계자들과의 만남 또한 한국 선수단장으로서 소홀히 할 수 없다. 오랫동안 사업차 중국과 교류한 경험으로, 중국인들의 길상 문화가 무엇인지를 잘 아는 윤 단장은 동계올림픽에 등장하는 길상 상징물에도 관심을 갖고 챙긴다.
우선 중국 옥(玉) 문화에 대해서다. 이번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메달 이미지는 고대 동심원 모양인 ‘현문옥벽(弦纹玉璧)’에서 취했다. 그 모양이 ‘하늘과 땅이 만나고, 인심이 하나 됨[天地合, 人心同]’을 상징하여 올림픽 정신에 부합한다는 표면적 이유이지만, 풍수가 근저에 자리한다. 중국인들은 옥을 영성이 깃든 신기(神器)로 여겼다. “사람이 옥을 3년 패용하면, 옥은 그 사람 일생을 키워준다[人養玉三年 玉養人一生]”는 말이 있을 정도다. 따라서 옥을 원재료로 하는 다양한 풍수 소품이 생겨났다.
중국 산수화 '천리강산도' 일부. 베이징올림픽 조직위원회는 1월 초 시상식 복장을 발표하면서 이 그림에서 이미지를 취했다고 밝혔다. /바이두
이보다 윤 단장이 틈틈이 들여다보는 것은 중국 산수화 ‘천리강산도(千里江山圖)’다. 20세에 요절한 중국 송나라 천재 화가 왕희맹(王希孟) 작품으로 51.5x1191.5cm, 거의 12m 길이의 대작이다. 제목이 말해주듯 천 리에 걸친 중국 산하를 그린 그림이지만 단순히 산하를 그린 것이 아니다.
‘산수의 정신[山水之神]’이 구현되어 그 그림만 보아도 정신을 체화할 수 있는 이른바 ‘전신(傳神)’이 가능하다. ‘전신’론은 1600년 전의 화가 왕미(王微·415~453)의 주장으로, 이후 중국 산수화의 일관된 철학이다. ‘천리강산도’ 역시 왕미의 요구조건이 충족된 명화다. 직접 가보지 않고도 그 땅의 정신이 제대로 그려진 그림을 보면 그 땅의 기운을 받을 수 있다는 ‘전신론’은 풍수의 동기감응론과 일치한다.
‘천리강산도’는 천 리에 이르는 강산 가운데 ‘노닐 만하고 살 만한 곳[가유가거·可游可居]’을 그려냄으로써, 중국의 우주관·자연관·산수관·심미관이 구현된 결정체다. 14년 전인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개막식에 이 그림이 동영상으로 소개되고, 작년 10월 스위스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회담장 벽에도 이 그림이 걸린 이유다.
‘천리강산도’를 윤 회장이 꼼꼼히 관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1월 초 베이징올림픽 조직위원회가 공식 웨이보 계정을 통해 3가지 시상식 복장을 발표하면서, ‘천리강산도’에서 이미지를 취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 이미지를 조직위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사자성어로 표현한다.
서설상운(瑞雪祥雲: 상서로운 눈과 길한 기운을 가져오는 구름), 홍운산수(鴻運山水: 왕성한 운이 산하에 가득 참), 당화비설(唐花飛雪: 당나라 꽃, 즉 찬란한 중국 문화가 눈처럼 흩날림).
이 3가지 이미지가 상징화된 복장들은 경기장과 시상식 각종 행사에 등장할 예정이다. 서설상운·홍운산수·당화비설! 참으로 좋은 기운이 가득 담긴 길상어(吉祥語)다. 상서로운 기운을 받아 우리 선수단에 좋은 일 있기를 기원한다. 길사유상(吉事有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