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
우선 조금 고상틱한 이야기부터 한자락. 금단의 열매 선악과를 꿀꺽한 우리 최초의 조상 야그는 다양한 해석과 함께 심심찮은 철학적 문제를 제시한다. 에덴동산을 마련한 창조주, 그 수령님은 천국에서 만만세세 자손을 번식시키고 행복을 누리는 은혜를 베푸시었다. 이 은덕에 감지덕지, 순종해야 하거늘 어느날 뱀의 꾐에 빠져 금단의 열매를 꿀꺽한 그 인류의 후예가 우리들이다.
왜 금단의 열매일까? 두 당사자의 변은 이렇다.
1) 여호와가 금단의 열매로 지정한 이유는 사망이라는 업보를 남긴다는 것.
2) 하와를 꼬드긴 뱀은 열매를 먹는 즉시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지혜로운 존재가 된다는 것.(뱀은 사망의 업보란 건 겁주기에 불과한 술수라 꼬드김. 역시 인간은 유혹에 취약한 동물인갑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1), 2)번 다 맞다. 이 두가지 명제는 각기 상충적인 문제가 남는다.
1)의 경우: 사망의 업보가 없다면 만만세세 자손을 번성시킬 길이 없다. 지금도 80억 인구 쓰레기로(지구적 관점에서 보면) 지구가 힘에 겨워 거의 질식사할 지경이다. 죽음이 없다면 새 생명(자손)도 없다.
2)의 경우: 뱀의 말도 맞았다. 이름하야 선악과를 먹는 즉시,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지혜로운 인간) 종으로 편입했다.
지혜를 얻은 우리 시조새는 서로 벗은 몸을 보고 으뜸 부끄럼꼴과 버금 부끄럼꼴을 잽싸게 가렸다. 지혜의 댓가로 수치심을 알게 되었다. 수치심을 안다는 건 죄를 인식할 수 있다는 야그. 그러니 공자도 이를 알고 선은 부끄러움에서 출발한다고 복창한 게다. 지혜는 선과 악을 구별하는 기능에서 출발한다.
좀 더 살펴보면, 1)과 2)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 선악과를 먹음으로해서 사망을 낳았고, 지혜로운 인간이 되었다. 인간이 지혜롭지 않다면 뭇 생명체와 다를 게 없다. 존재의 이유를 알 턱이 없고, 그러니 삶도 죽음도 무의미하다. 결국 죽음조차 인식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선악과를 먹음으로 경험하지도 않은 죽음의 공포를 알았다. 사망의 업보.(살아서 인식할 때 죽음이 있는 것이지, 죽음 이후는 죽음도 없다.)
호모 사피엔스의 비극
인간이 지혜를 가진 것은 행인가 불행인가. 선악과라는 이름이 암시하듯이 지혜는 곧 선과 악을 구별하는 능력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허상에 매달린 인간은 그 허상에서 희로애락을 느낀다. 옳고, 그름을 넘어 아름답고, 추하고, 더럽고 깨끗하고… 하여간 별별 같잖은 것 가지고 까탈부리며 먹잘 것 없는 허상에 목숨 건다.
눈이 밝아진 인간은 교만이 움튼다. 자신의 눈(시각)을 과신하며 세상 오만 것을 평가한다. 이게 옳고 저게 그르고…
죽음이라는 형벌이 기다리고 있는 인간이기에 스스로의 평가에 불안이 감돈다. 내 평가를 남들에게 보이고 확신받으려 한다. 자신과 같은 시각을 가진 종자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성경적 언어로 고상틱하게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이지 개뿔, 패싸움에 다름 아니다. 내로남불은 인류가 갖는 영원불멸의 속성이고, 정치인 박아무개가 창시한 불멸의 띵언이다.
점점 확증편향에 빠지고, 자신과 다른 시각에 배타적이 된다. 이름하여 신념의 충돌, 좀 더 거창하게 표현하면 문명의 충돌, 단순하게 표현하면 종교전쟁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패거리짓는 모든 충돌은 정치 투쟁이고 종교 전쟁이 된다.(정치와 종교는 한 뿌리에서 자란 다른 열매)
짝퉁 중도
에덴동산 같았던 역이민카페에 점점 선악과를 득템한 회원들이 출몰했다. 아니 우리 모두 호모 사피엔스 종임을 잠시 착각했다. 우리가 잠시 에덴동산을 거닐었던 것은 착각이었고, 우리는 에덴의 동쪽에 있었다. 우리를 착각에 빠지게 한 건 헌신적인 두 인물 덕이었다. 두 인물이 충돌을 일으켰다.
나는 착각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 손쉬운 방법은 바로 중도라는 애매모호한 지대에 자리하는 것. 두 사람 사이에서 누구편을 들지 않으려, 짐짓 나와는 큰 상관 없는 해프닝으로 여기려 했다. 가치 중립지대, 이 얼마나 안온한 장소인가. 이 DMZ 속에서 양쪽진영을 화해시켜 평화의 사도 중 한 일원으로 우아하게 존재하려 했다.
이 달콤하고 화려한 한여름 밤의 꿈은 서서히 꺼져가고 있다. 가능하면 깊이 들어가지 말고 멀리서 관음증 환자가 되어 석가처럼 “중도의 득”으로 즐기려 했다. 착각에는 번짓수가 없듯이 나는 길잃은 돗단배임을 알았다. 마치 내가 석가를 흉내내는 일은 하루살이가 봉황처럼 착각하는 것과 진배없다. 일개 불초소생, 별볼일 없는 이민자 늙다리가 부처 흉내를 낸다고? 가당찮은 일이다.
나 역시 아담의 후예. 쓸데없이 눈이 밝아진 나는 점점 관음증이 깊어져 카페의 동향을 살핀다. 중도는 개뿔, 서서히 눈이 밝아진다. 사태의 진상이 가슴 깊이 새겨진다. 괴롭다. 내가 택한 중도는 부처가 득한 해탈의 경지가 아니라 속인이 흔히 취하는 비겁의 산물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중도를 득한다”는 성인의 말씀을 차용해 우아하고 고고한 중도에 머무르려는 비겁함이 이기심을 자극했던 것이다.
발을 담구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한동안 어느곳에서건 쓰잘데기 없는 글을 올리고 싶지 않았다. 더우기 험악한 우리 카페에서 화력도 시원찮은 내 에너지를 소비하고 싶지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오프라인에서 정을 나누었던 회원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그들의 인격을 평하고 싶지 않았다.
이 카페에서 개인적인 정분(?)을 나눈 사람들과 각을 이룬다는 건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다. 창조주처럼 지혜롭지 못한 내가 그들을 평하는 행위는 이전투구에 다름 없다. 하지만 소수일지라도 나의 글을 읽고 소통했던 회원들에게 최소한의 표현을 해야할 의무감이 서서히 자리 잡는다.
선과 악이 내 눈에 비친다. 떠그랄, 판단하지 말랬는데 교만의 불길 속에 판단의 물이 끓기 시작한다. 아아, 식어라 식어라. 나는 주문을 한다. 그러나 점점 비등점에 다다르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나도 한마리 개임에 불과하다. 이제 진흙탕 속으로 발을 담궈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것이 문제로다.
P.S: 양진영 사이에 다움의 규정에 대한 논쟁으로 또다른 전선이 시작되었다. 이같은 디테일 싸움이야말로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카페를 잠기게 하는 하책 중의 하책이라 생각한다. 대도무문, 일도양단의 해결책이 있다. 사태 해결의 키는 전적으로 지기에게 달려있고 그만큼 책임도 중하다.
첫댓글 역시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전 이제 발을 뺄까 하는데 담글까를 고민하시는 걸 보니 혹시 맘고생이 커지지 않으실까 저어됩니다.
전문용어로 "먹물 근성"이라고 하던가요 ㅎㅎ 그런 저에겐 온라인 카페가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거리에 나가 으쌰으쌰 하지 않아도 되고 책상머리에서 이렇게 글이나 끄적거리며 잘난척 좀 하는게 전부니까요.
그것도 청하님처럼 잘 쓰지도 못하면서요.
청하님의 고충 잘 압니다. 그래서 그 모임 중에 한 분은 조용히 카페를 탈퇴하셨나 봅니다.
뭐든 청하님 위치에서 하실 일이 있지 않을까요. 그냥 맘가는대로 맘편히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모암 중의 한 분이 정말 조용히? 탈퇴했네요. 청하. 나어디에, 스폰지 세사람 역이민과 자격없어 다음모임이 마지막이라고 조용히 카페에 글 올렸고(불과 며칠 전에도 만나서 우리들 우정 오랜동안 잘 유지해 왔고 앞으로도 자주 만나자
하며 며칠 뒤 연말쯤 그분 한국 가는 송별회 하자 약속도 했었는데) 댓글을 쓴 원글을 내리는 바람에 우리는 그런 사실도 어느분이 알려줘서 알게 되고, 해서 , 마지막이라 했으니 만나면 뭔 말 있겠다 싶었더니 아무말 없이 지나갔고(나중에 청하님 말씀으론 어색한 분위기 될까봐 카페얘기 피했다고).그러고 그 후 또 아무말 없이 동부 단톡방에서 나가버려(
앞으로도 카페와 상관없이 맴버들과의 만남은 가능하다 하며) 우린 다시 그걸 나간 후 글로 알게되고.
다른 두 분은 그겻이 개인의 성향이라 생각하며 카페와 인연은 별개로 삼자로.
저는 옆집 사람들도 떠날때는 인사라도 하고 가는데 이 두번의 처신은 10년 가까이 속 털어놓고 지내왔던 사람에 대한 (카페의 이견과 탈퇴 자체는 이해 하지만)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것으로 생각.
두분은 여전히 제겐 친구지만 지기님과 각별한 청하님 입장에 마음이 쓰입니다..
저도 청하님 입장이었다가, 진행 되는 과정에 불골평을 느끼는게 제어 하지 못할 정도가 되어서 발을 담갔네요. 사실 누가 , 카페가 어찌되건 그리 관심이 없었는데 말이지요. 한가지 배운점은 어느 누구가 나하고는 상종을 못할 사람이란걸 배웠습니다...
네 가지의 상황에 있을 수 있지요:
1. 관조자의 눈에는 모두가 부질없다.
2. 구경꾼의 재미로만 본다.
3. 구경꾼에 속하지만, 중도라며 어느 편에 서기도 한다.
4. 진흙탕에서 함께 뒹군다.
세상을 살면서 주로 1, 2, 3에 속하기를 바라지만, 때로는 자의로, 또 때로는 타의로 4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자못 '심각'합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4에 속하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맞습니다. 죽고 살 일은 아니지요. 또 결국에는 다 죽지요. 왜, 이럴까? 생각해 봅니다.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명분을 문패에 걸었어요. 이게 그야말로, '명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합니다. 그러나 저도 그저 일개의 '개"일 뿐입니다.ㅎ
존경하는 청하님의 좋은 글을 읽고, 또 에릭손님이나 평화를 바라는 님들의 글을 읽고 이런 생각이 났습니다.
제 생각엔 추조님 아톰님 두분이 물러나야 카페가 정상화됩니다.
추조님이 그대로 카페지기를 하면 아톰님은 끝까지 제기할 것이고 조용해지긴 어려울 것입니다. 그 다음 수순은요?
카페가 추조님의 재산이라고 가정하면 아톰님도 기여도가 상당한 정도의 지분을 갖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럴 경우 두 분이 빠지고 제3자가 운영권을 갖는 것이 평화로 가는 지름길이죠.
그것도 추조님과 가까운 앤드류님이니 추조님도 편안하실거 같은데요 아닌가요?
추조님은 앤드류님과 의논해서 맘에 맞는 운영자 추천하셔요 되구요.
회오리바람 지난 얼마 후에 다시 카페 양도 받아도 되구요.
그때는 투표같은 거 하지 말고 싸인해서 평화롭게 양도받으세요,
자신이 원하는 최선이 안될때는 차선으로 가는게 차악으로 가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아톰님은 이미 차악을 선택하셨어요. 추조님이 차선을 선택하시면 아톰님은 최선이나 차선을 선택하시겠지요.
맞습니다! 저는 1년 전에 운영자에서 자진 사퇴룰 했습니다.
어느 쪽으로 든지 발을 담가주시면 그길을 따르겠습니다 - 청하님 팬 :)
사태해결의 키는 전적으로 지기에게 달려있다,,,
청하님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런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청하님의 고뇌가 읽혀집니다. 글을 잘쓰지만 회원들의 글은 잘 읽지 않는다고 고백했던 지기님이 청하님의 글은 읽으시겠지요. 잘 새겨 읽어서 좋은 결심을 하기 바랍니다.
다음투표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건 또다른 아수라의 시작이 될겁니다.그렇게 되면 이 카페는 또다른 지옥문의 2막을 열게 됩니다.추조님은 그런 예견된 상황을 원하십니까?
사태해결의 키는 전적으로 지기에게 달려있고 그만큼 책임도 중하다는 존경하는 청하님의 말씀에 깊은 공감을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