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불가여동군(鳥獸不可與同群)
새와 짐승과 무리지어 함께 살 수는 없다는 뜻으로, 사람이 사람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鳥 : 새 조(鳥/0)
獸 : 길짐승 수(犬/15)
不 : 아니 불(一/3)
可 : 옳을 가(口/2)
與 : 더불어 여(𦥑/7)
同 : 같을 동(口/3)
群 : 무리 군(羊/7)
출전 :
논어(論語) 미자(微子)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
공자가 초나라의 섭(葉) 땅을 떠나 채(蔡)나라로 가고 있었는데, 당시 진(陳)나라와 채나라의 대부(大夫)들이 그를 해치려고 하였으므로 이를 피하여 사잇길로 가다가 길을 잃었다.
공자는 밭일을 하고 있는 장저(長沮)와 걸익(桀溺)을 보고는 자로(子路)를 시켜 나루터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도록 하였다.
자로가 장저에게 다가가 나루터가 어디 있는지 묻자, 장저는 수레에 타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자로가 공자라고 말하자, 장저는 공자라면 나루터가 있는 곳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은자(隱者)인 장저의 말에는 뜻을 펴기 위하여 주유열국(周遊列國)하는 공자를 비웃는 뜻이 담겨 있다.
자로는 다시 걸익에게 물었다. 걸익은 자로가 공자의 제자임을 알고는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것이 세상이거늘 누가 그것을 바꿀 수 있겠는가? 그대는 사람을 피하는 인사를 따르지 말고 세상을 피하는 인사를 따르는 것이 좋을 것이오'라고 말한 뒤에 밭일을 계속할 뿐이었다.
자로가 돌아와 그들의 말을 고하였다. 공자는 멍한 모습을 보이면서 '새와 짐승과 더불어 살 수는 없으니, 내가 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누구와 함께하겠는가? 천하에 도가 행해지고 있다면 내가 바꾸려 들지도 않을 것이다(鳥獸不可與同群, 吾非斯人之徒與而誰與. 天下有道, 丘不與易也)'라고 말하였다.
이 고사는 논어(論語)의 미자(微子)편과 사기(史記)의 공자세가(孔子世家)편에 실려 있다.
공자의 말은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명제와 잇닿아 있다. 공자는 장저나 걸익처럼 자신의 깨끗함만을 추구하는 은자의 길을 택하지 않았고, 세상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도가 행해지는 사회를 꿈꾸었던 것이다.
여기서 유래하여 조수불가여동군은 사람이 사람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음 또는 세상을 등지고 사는 것은 선비의 길이 아님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조수불가여동군(鳥獸不可與同群)
새와 짐승과 무리지어 함께 살 수는 없다는 뜻으로, 사람이 사람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공자(孔子)의 말에서 유래되었다.
이 성어는 공자(孔子)가 초나라 현인이 세상을 피해 살라고 하자 대답한 말이다.
공자(孔子)가 초(楚)나라의 섭(葉) 땅을 떠나 채(蔡)나라로 가고 있었는데, 당시 진(陳)나라와 채나라의 대부들이 그를 해치려고 하였으므로 이를 피하여 샛길로 가다가 길을 잃었다.
長沮桀溺耦而耕, 孔子過之, 使子路問津焉.
장저(長沮)와 걸익(桀溺)이 나란히 밭을 갈고 있는 것을 본 공자는 자로(子路)를 시켜 나루터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도록 하였다.
長沮曰 : 夫執輿者爲誰.
장저가 물었다. '저 수레에 타고 있는 사람은 누군가?'
子路曰 : 爲孔丘.
자로가 말했다. '공구(孔丘)입니다.'
長沮曰 : 是魯孔丘與.
장저가 말했다. '노(魯)나라의 공구인가?'
子路曰 : 是也.
자로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長沮曰 : 是知津矣.
장저가 말했다. '그럼 나루터를 알 걸세.'
問於桀溺, 桀溺曰 : 子爲誰.
자로가 걸익에게 묻자 걸익이 물었다. '그대는 누군가?'
子路曰 : 爲仲由.
자로가 말했다. '중유(仲由)입니다.'
桀溺曰 : 是魯孔丘之徒與.
걸익이 물었다. '노나라 공구의 무리인가?'
子路對曰 : 然.
자로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桀溺曰 : 滔滔者天下皆是也, 而誰而易之. 且而與其從辟人之也, 豈若從辟世之士哉.
걸익이 말했다.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것이 세상이거늘, 누가 바꿀 수 있겠는가? 그대는 나쁜 사람을 피하는 인사(人士)를 따르는 것보다는 세상을 피하는 인사를 따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耰而不輟.
그런 뒤 씨앗을 덮는 일을 계속했다.
子路行, 以告.
자로가 돌아와 그들의 말을 고했다.
夫子憮然曰 : 鳥獸不可與同群, 吾非斯人之徒與而誰與. 天下有道, 丘不與易也.
공자는 자못 안타까운 듯이 있다가 말했다. '새나 짐승과는 더불어 살 수 없는 법이다. 내가 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누구와 함께 하겠는가? 천하에 도가 행해지고 있다면 내가 바꾸려 들지도 않을 것이다.'
공자는 장저나 걸익처럼 자신의 깨끗함만을 추구하는 은자의 길을 택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도가 행해지는 사회를 꿈꾸었던 것이다.
여기서 유래하여 조수불가여동군(鳥獸不可與同群)은 사람이 사람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을 비유하거나, 세상을 등지고 사는 것은 선비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사람과 더불지 않고 누구와 살까?
鳥獸不可與同群, 吾非斯人之徒與, 而誰與?
새와 짐승과 더불어 살 수는 없으니, 사람과 더불어 살지 않고 누구와 같이 살겠느냐?
(미자편 6장)
1. 장저와 걸닉
공자 일행이 부함을 떠나 채나라 신채(新蔡)로 가기 위해 회수를 건너는 나루터를 찾다 어느 언덕에서 잠시 쉴 때였다.
문도들은 그곳에서 길을 아는 다른 여행자들을 기다리는 동안 열국을 주유하며 느낀 바와 생각한 바를 서로 이야기하고 토론했다. 제자들에게는 선생님이 선택하신 이 역정의 의미를 반추해 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어리석은 임금이나 고루한 경대부들은 결코 꿈에서도 품어보지 못했을 거대한 이상이 선생님의 가슴속에서 뜨거운 용암처럼 끓고 있음을 제자들은 그간 겪은 고난 속에서 오히려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실로 공자의 제자된 자만이 누리는 기쁨이며 긍지였다.
날씨가 조금씩 흐려지고 있었다. 해가 저물기 전에 강을 건너기는커녕 폭우를 피할 걱정부터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냥 기다리고 있기보다는 직접 길을 찾아보는 것이 현명할 듯했다. '언덕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어디든 나루터로 이어지는 길이 있지 않겠습니까?'
자로와 자공 등이 강 쪽을 바라보며 의논하고 있을 때, 공자가 수레에서 내려와 자로에게 말했다. '유야, 수레 위에서 바라보니 언덕 저편에 두 사람이 밭을 갈고 있더구나. 그들에게 나루터가 어디인지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자로가 말했다. '알았습니다. 제가 직접 가서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자로가 언덕을 내려가면서 나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자로와 내가 언덕을 내려가 얼마쯤 걸어가니 나무 사이로 작은 개간지가 보이고 두 사람이 나란히 밭을 갈고 있었다.
그들은 노인이었는데, 한 사람은 키가 크고 삐쩍 마른 모습이 마치 길다란 흙막대기 같았고, 한 사람은 물에 불은 짧은 통나무 같은 모습이었다. 이런 생김새 때문에 우리는 훗날 그들을 장저(長沮)와 걸익(桀溺)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2. 피인지사(피人之士), 피세지사(피世之士)
자로가 먼저 흙막대기같이 생긴 장저에게 다가가 물었다. '나루터를 찾고 있는데 어딘지 아시오?'
자로의 질문이 다소 퉁명스럽게 들린 것일까? 밭을 갈던 장저가 마뜩찮은 표정으로 자로를 힐끗 쳐다보고는 밭 가는 일을 계속했다.
자로가 재차 물었다. '나루터가 어디인지 알고자 합니다.'
장저는 대답 대신 언덕 위의 공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 언덕 위에서 수레 고삐를 쥐고 서 있는 사람은 누구요(長沮曰 夫執輿者爲誰)?'
자로가 답했다. '누구긴요? 우리 선생님이십니다.'
장저가 말했다. '당신 선생을 내가 어찌 아누? 요즘 세상에 선생을 자처하는 자들이 어디 한둘이어야 말이지.'
뜨악해진 자로가 말했다. '저분이 바로 공구이십니다(子路曰 爲孔丘).'
장저가 말했다. '음, 저자가 바로 그 노나라 공구란 말이지(曰 是魯孔丘與)?'
자로가 말했다. '그렇습니다만(曰 是也).'
장저가 말했다. '그렇다면 나한테 물을 필요가 없네. 그 사람이라면 이미 여기저기 뻔질나게 돌아다니질 않았나? 나루터쯤은 누구보다 자기가 잘 알고 있을걸세(曰 是知津矣).'
노인은 그렇게 비아냥거리더니 다시 밭갈이 일을 계속했다.
자로가 하는 수 없이 옆에 있던 걸익에게 물었다(問於桀溺).
걸익이 대답 대신 반문한다. '그대는 뉘시요(桀溺曰 子爲誰)?'
자로가 말했다. '나는 중유라고 합니다(曰 爲仲由).'
걸익이 말했다. '노나라 공구인가 하는 사람의 무리로군(曰 是魯孔丘之徒與).'
자로가 말했다. '그렇습니다만…(對曰 然).'
그러자 걸익이 안타깝다는 투로 말했다. '보시게, 공구의 문하생, 온 세상에 흙탕물이 흘러 넘쳐 가득한데, 누가 그걸 바꿀 수 있겠소? 그러니 그대는 사람을 피해 다니며 사는 사람(辟人之士)을 따르지 말고, 우리처럼 세상을 피해 사는 사람(辟世之士)을 따르는 게 현명한 처세가 아니겠소?'
그러고는 더 이상 자로를 아는 체하지 않고 써레질을 계속했다.
곁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아차 싶었다. '채나라 망국지사(亡國之士)들이로군.'
자로도 같은 직감을 했는지, 더 이상 묻기를 포기한 채 한동안 어이 없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훗날 신채로 돌아가 들은 이야기를 종합하면 장저와 걸익은 한때 채나라의 저명한 대부들이었다.
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 신세던 채나라는 초나라에 한 차례 멸망을 당했는가 하면, 신흥 강국 오나라에 붙어 초나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다가 조정이 초나라파와 오나라파로 갈리는 바람에 임금이 시해됐다.
망국의 설움도 모자라 내홍의 환란까지 겪은 채나라의 뜻있는 지식인들은 외세와 그 추종자들을 피해 산림으로 은거했다. 그들에게 이 세상은 구정물이 가득 흘러 넘치는 오탁(汚濁)의 세계였다.
더러운 강물에 몸을 담근 채 강물을 정화하겠다고 떠들고 다니다니! 창 한 자루, 전차 한 대 없이 이 세상을 개혁하겠다며 열국을 주유한 공자의 편력은 그들에게는 지독한 위선이거나 공허한 환상으로 비쳐졌을지도 모른다.
당신 선생 공구는 제법 그럴듯한 말로 이 혼탁한 세상을 바꾸어 보겠다고 떠들고 다니지만, 어떻게 더러운 구정물을 뒤집어 쓰지 않고 구정물통을 씻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다가 모르겠소.
그러니 자로 당신만이라도 위선자들의 무리에서 벗어나 우리와 같이 초야에서 자연과 벗하며 사는 것이 어떻소? 그것이 진정한 명철보신(明哲保身)의 삶이 아니겠소.
두 노인의 태도에서 우리는 허무와 초월로 단단하게 쌓아올린 벽을 발견했다. 그래서 나는 '곧 비가 오려나봅니다. 그만 가시지요' 하고, 망연자실한 자로의 소매를 넌지시 잡아 끌었다.
그리고는 '좀 전에 저 언덕 위에서 자로님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 세상을 일깨울 목탁이 바로 우리 선생님이라고. 뱁새가 어찌 봉황의 뜻을 알겠습니까? 한두 번 겪은 일도 아니니 너무 기분 나빠 하지 말고 그냥 돌아갑시다'
3. 사문(斯文)의 길
돌아온 자로에게 두 노인이 한 말을 전해 들은 공자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제자들 사이에서도 침묵이 흘렀다. 두 눈을 지긋이 감은 무연한 표정의 공자가 나는 너무 안타깝고 측은해 보였다.
저런 조롱을 들어야 하는 선생님의 심정은 얼마나 아프실까…
'은자이더냐?'
'그런 듯했습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굽어보는 공자의 표정은 그동안 마주친 숱한 은자들을 떠올리고 있는 듯했다.
나루터쯤은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그렇지. 나는 이미 알고 있지.
내가 사람을 피해 다니는 피인지사라고? 그렇지. 나는 불인(不仁)한 자, 불의(不義)한 자, 부덕(不德)한 자를 싫어하다 여기까지 왔지.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하려고 드는 사람(是知其不可而爲之者與)이라고? 그렇지. 그 고집스러운 이상주의자가 바로 나지.
물이 깊으면 바지를 벗고 건너고, 물이 얕으면 바지를 걷고 건너면 그만인데 왜 그리 비루하게 구는 거냐고? 그렇지. 비에 젖은 채 성문 처마 밑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던 상갓집 개(喪家之拘)가 바로 나, 공구였지.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잔뜩 흐린 하늘에서 마침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들판의 두 노인도 비를 피하려는 듯 이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공자가 이윽고 자로를 향해 돌아앉았다. 제자들도 공자를 향해 마주 섰다. '그렇다면 우리의 길은 우리가 선택해야겠구나. 자로야,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좋겠느냐?'
자로는 언뜻 대답하지 못했다. 선생님의 질문이 길을 묻는 것인지, 길의 의미를 묻는 것인지 순간 헤아릴 수 없었다. 다른 제자들도 표정을 보니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선생님은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선생님의 나루터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의 눈빛에선 그런 의문과 기대가 공존했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선생님의 마음속에 뻗어 있는 길의 실체를 볼 수 있는 순간이 아닐까?
그들은 그 길에서 자기들 행로의 의미를, 이 사연 많은 여정의 끝을 확인하고 싶었다. 짐꾼에 불과하지만, 나 이생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때 공자가 제자들을 둘러보며 미소를 지었다. '제자들아, 나는 인간이라면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걷고 싶구나.'
공자가 수레에서 나와 선 채로 비를 맞으며 말했다. '산림에 숨고 초야에 묻혀 산새들과 더불어 무위(無爲)의 세계에 사는 이들을 나는 존경한다. 그들이 왜 은일의 세계로 침잠할 수밖에 없는지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내 삶의 방식은 그들과 다르다. 나는 사문(斯文③)의 길을 가는 사람이다.'
우리는 모두 귀를 기울였다. 행여 빗소리에 가려 선생님의 말씀을 한 마디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曰 : '혼탁한 세상을 피해 도를 지키는 것보다는 혼탁한 세상 속에 사는 괴로움을 통해 도를 실천하는 길을 나는 가고 싶다.
보라, 저 하늘을 나는 새들과 저 땅을 헤매 도는 짐승들을. 사람이 그들 속에서 나온 뒤 하늘과 땅 사이에 인의와 도덕이 생겼으니, 사람이 또다시 저 무리 속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나는 사람이다. 사람들 속에서 사람의 말을 하며, 사람의 기쁨과 슬픔, 사람의 사랑과 아픔을 함께 나누며 살겠다. 사람이 사람과 더불지 않고 누구와 더불어 사람다운 세상을 이룩하려는가?
이 세상이 이미 사람다운 세상이라면, 내가 구태여 이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로를 비롯한 제자들의 빗물과 눈물로 얼룩진 얼굴에는 형언할 수 없는 희열이 번지고 있었다. 자신들이 왜 스승을 따라 길을 떠났는지, 스승과 자신들이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지 이제서야 알 것만 같았다.
위대한 성자로서 선생님의 실체가 비로소 자신들의 눈앞에 뚜렷이 각인되고 있었다. 나 또한 그 감동의 대열에서 빠질 수 없었다. 나는 벅차 오른 가슴을 주체할 길이 없어 그만 나도 모르게 비가 쏟아지는 들판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저 들판 끝을 향해 자로가 전해 준 한 현자의 말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천하의 도가 사라진 지 오래이니, 하늘이 우리 선생님을 세상의 목탁으로 삼으리라!'
모두 같은 심정일 것만 같았다. 어느덧 감흥의 시간이 끝나자 염유가 말했다. '사문이 우리 선생님에게 있으니, 선생님 가시는 곳이 바로 나루터로 가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공자가 인자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의 말이 고맙구나. 염유 말대로 어디로 가든 나루터로 가는 길은 통할 것이다. 설사 조금 돌아서 가는 길이면 또 어떠냐? 너희들과 내가 함께 하는데.'
제자들이 모두 예를 갖춰 스승을 향해 읍하자 공자가 말했다. '자, 그럼 우리의 향도인 중유가 정한 길로 가자.'
공자가 웃으며 수석제자인 자로를 돌아보자 자로가 '네!' 하고 무인답게 씩씩하게 대답하고는, 마부석으로 몸을 날려 수레 고삐를 낚아채더니 채찍을 힘차게 허공을 향해 돌려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모두 큰 소리로 함께 웃었다. 어느새 빗방울도 잦아들었다. 저 멀리 하늘 끝에는 이미 구름 사이로 햇빛이 세상을 비추기 시작했다.
공자를 태운 수레가 서서히 강변으로 나아가는 길로 접어들 때쯤, 언제 다시 나왔는지 장저와 걸익이 밭두렁에 서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행렬의 맨 뒤에서 두 노인을 향해 작별의 손을 흔들어 주었다.
4. 정의를 향한 열정
공자 일행이 회수를 건너 신채로 향할 때 자로가 다른 일을 보기 위해 나를 데리고 뒤에 처진 일이 있었다.
어느 마을 부근을 지나가다 삼태기를 짊어진 노인과 마주쳤다. '어르신, 혹시 저희 선생님 일행이 이리로 지나가는 걸 보지 못하셨습니까?'
노인이 빈정대듯 말한다. '사지 멀쩡하면서 일하지 않고, 오곡도 분간할 줄 모르는 사람이 선생은 무슨 선생이람?'
노인은 지팡이를 꽂아놓고 김을 매기 시작했다. 자로가 그 노인 또한 채나라 은사임을 직감하고 예를 갖춰 공손하게 인사하고 떠나려 하자, 노인은 그제서야 자로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노인은 자로를 위해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대접하며, 자기 두 아들을 자로에게 인사까지 시켰다.
다음날 공자 일행과 합류한 자로가 노인과 있었던 일을 공자에게 고하자, 공자가 말했다. '은자로구나. 내가 한번 만나볼 수 있을까?'
자로와 나는 온 길을 되돌아가 노인을 찾아갔으나, 노인은 마치 자로가 돌아올 것을 안 사람처럼 어디론가 가버리고 집에 없었다. 자로와 나는 아쉬운 나머지 가족과 마을 사람들에게 그가 간 곳을 물어보았으나, 아무도 알지 못했다.
자로는 탄식하며 노인의 빈 집을 향해 정중하게 읍한 뒤 마치 노인에게 인사하듯 말했다. '은자시여, 저 중유 외람되지만 한 말씀 드리고 떠납니다.
선비된 자로서 세상에 나아가지 않고 정의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어른과 젊은이 사이에 마땅히 있어야 할 예절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나라와 인민 사이의 대의를 버릴 수 있겠습니까?
선비가 되어 세상을 구하는 일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오로지 자기 한 몸을 깨끗이 지키기 위해 큰 윤리의 어지럽혀짐을 외면하는 것일 뿐입니다.
선비가 군자의 몸으로 세상에 나아가고자 하는 것은 끝까지 정의를 실천하고자 함이지, 정의로운 세상이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 이상인지를 몰라서가 아닙니다.'
자로의 당당하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웅변에 나는 힘차게 박수를 쳤다. 마침 오후의 비스듬한 햇살이 그런 자로를 비추었는데, 그 후광으로 인해 마치 자로가 공자의 분신처럼 보였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진심으로 자로에게 아첨을 떨었다. '저, 이생이 공문의 일꾼이 된 이래 오늘처럼 자로님이 멋있어 보인 적이 없습니다.'
'그래? 하하하. 모처럼 선생님 흉내를 제대로 냈나보군. 나, 정말 괜찮았어?'
'그럼요. 그렇고 말고요.'
나는 자로가 짐짓 으스대는 몸짓으로 기뻐해주자 더욱 신바람이 나서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으며 디스코춤을 추었다.
자로가 내 춤을 보더니 껄껄 웃는다. '좀 경박해 보이긴 하지만 재미있군. 조선의 춤인가?'
'조선에서 한때 유행한 춤이죠. 제가 젊었을 때 여러 사람들이 술 한잔 마시고 흥이 나면 모두 함께 손발을 맞춰가며 추었답니다. 자로님도 한번 밟아 보실래요?'
나는 어느 느티나무 아래에 짐을 내려놓고 자로에게 디스코춤을 가르쳐 주었다. 어느새 두 사람은 익숙하게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으며 드넓은 평원의 옥수수밭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낯 선 중국 땅을 헤매다 천운으로 공자 일행을 만나 유랑의 길을 함께 한 이래 그때가 내게는 가장 보람 있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내가 이 사람들과 더불어 살지 않고, 누구와 더불어 살겠느냐. 사람들이 모두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나는 결코 그 길을 포기하지 않으리라.
제자들이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혹은 기뻐서 웃고 혹은 기뻐서 울었다. 스승과 제자가 서로 이끌어주며 기쁘게 행하니 사해 인민이 즐겁게 춤을 춘다.
▶️ 鳥(새 조, 땅 이름 작, 섬 도)는 ❶상형문자로 鸟(조)는 간자(簡字)이다. 새의 모양으로, 나중에 꼬리가 긴 새를 鳥(조), 꼬리가 짧은 새를 새 추(隹; 새)部라고 구별하였으나 본디는 같은 자형(字形)이 두 가지로 나누어진 것이며 어느쪽도 뜻에 구별은 없다. 한자의 부수로서는 새에 관한 뜻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鳥자는 '새'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이미 새를 뜻하는 글자로는 隹(새 추)자가 있지만 鳥자는 모든 새를 총칭한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鳥자의 갑골문을 보면 두꺼운 부리와 큰 눈이 묘사된 새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이 어떤 새를 그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전적으로는 鳥자가 '큰 새'를 뜻하는 것으로 구분하고 있다. 鳥자는 새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부수로 쓰일 때는 대부분이 '새의 종류'나 새와 연관되는 다양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鳥(조)는 ①새, 새의 총칭(總稱) ②봉황(鳳凰) ③나라의 이름 ④벼슬의 이름 ⑤별의 이름, 그리고 ⓐ땅의 이름(작) 그리고 ㉠섬(=島)(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새 금(禽)이다. 용례로는 높은 곳에서 비스듬히 내려다 봄을 조감(鳥瞰), 새의 알을 조란(鳥卵), 새를 넣어 기르는 장을 조롱(鳥籠), 새를 잡는 데 쓰는 그물을 조망(鳥網), 새의 똥을 조분(鳥糞), 겨우 새나 통할 정도의 산속의 좁은 길을 조경(鳥逕), 나는 새도 넘기 어려울 만큼 험한 길을 조도(鳥道), 새를 잡는 그물을 조라(鳥羅), 새의 우는 소리를 조성(鳥聲), 새의 지저귀는 소리를 조어(鳥語), 새의 날개를 조익(鳥翼), 새와 참새 또는 참새 따위 작은 새를 조작(鳥雀), 새의 발자국을 조적(鳥跡), 파충류에서 진화된 것으로 몸은 깃털로 덮이고 날개가 있으며 다리가 둘이고 입이 부리로 되어 있눈 부류를 조류(鳥類), 해조가 많은 곳에 사는 어류를 조어(鳥魚), 텃새로 철을 따라 자리를 옮기지 아니하고 거의 한 지방에서만 사는 새를 유조(留鳥), 가을에 북쪽에서 날아와 겨울을 나고 봄에 다시 북쪽으로 날아가서 번식하는 새를 한조(寒鳥), 철새로 철을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사는 새를 후조(候鳥), 날아 다니는 새를 비조(飛鳥), 나라를 대표하는 새를 국조(國鳥), 길한 일이 생길 때 사람에게 미리 알려 준다고 하는 새를 길조(吉鳥), 평범하고 변변하지 못한 사람을 범조(凡鳥), 새발의 피란 뜻으로 극히 적은 분량을 말함 또는 아주 적어서 비교가 안됨이나 물건이 아주 작은 것을 이르는 말을 조족지혈(鳥足之血), 새의 양 날개라는 뜻으로 꼭 필요한 관계를 일컫는 말을 조지양익(鳥之兩翼), 새가 좋은 먹이를 찾다가 목숨을 잃는다는 뜻으로 욕심 때문에 몸을 망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조위식사(鳥爲食死), 새가 쫓기다가 도망할 곳을 잃으면 도리어 상대방을 부리로 쫀다는 뜻으로 약한 자도 궁지에 빠지면 강적에게 대든다는 말을 조궁즉탁(鳥窮則啄), 까치의 지혜라는 뜻으로 하찮은 지혜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조작지지(鳥鵲之智), 새를 다 잡고 나면 활은 창고에 넣는다는 뜻으로 이용 가치가 없어지면 버림을 받게 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조진궁장(鳥盡弓藏), 한 개의 돌을 던져 두 마리의 새를 맞추어 떨어뜨린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을 해서 두 가지 이익을 얻음을 이르는 말을 일석이조(一石二鳥), 한 번 화살에 놀란 새는 구부러진 나무만 보아도 놀란다는 뜻으로 한번 놀란 사람이 조그만 일에도 겁을 내어 위축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 경궁지조(驚弓之鳥), 까마귀가 새끼 적에 어미가 길러 준 은혜를 갚는 사사로운 애정이라는 뜻으로 자식이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려는 마음을 이르는 말을 오조사정(烏鳥私情), 쫓기던 새가 사람의 품안으로 날아든다는 뜻으로 사람이 궁하면 적에게도 의지한다는 말을 궁조입회(窮鳥入懷),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 자주 날갯짓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배우기를 쉬지 않고 끊임없이 연습하고 익힘을 일컫는 말을 여조삭비(如鳥數飛), 새장에 갇힌 새가 구름을 그리워한다는 뜻으로 몸이 속박당한 사람이 자유를 얻기를 바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농조연운(籠鳥戀雲), 연못의 물고기와 새장 속의 새라는 뜻으로 자유롭지 못한 신세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지어농조(池魚籠鳥), 네 마리 새의 이별이라는 뜻으로 모자의 이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사조지별(四鳥之別) 등에 쓰인다.
▶️ 獸(짐승 수)는 ❶회의문자로 兽(수), 獣(수)의 본자(本字), 兽(수)는 간자(簡字), 嘼(수)는 동자(同字)이다. 嘼(축; 짐승을 잡는 도구; 사냥)와 犬(견; 개)의 합자(合字)이다. 사냥에서 잡힌 것, 짐승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獸자는 '짐승'이나 '가축'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獸자는 嘼(짐승 수)자와 犬(개 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嘼자는 사냥도구를 그린 것으로 '짐승'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러나 獸자의 갑골문을 보면 單(홀 단)자와 犬자가 그려져 있었다. 單자가 사냥도구의 일종을 그린 것이니 이것은 사냥도구로 짐승을 잡는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사실 獸자는 '수렵'이나 '사냥'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사냥의 대상이 된 동물을 일컫게 되면서 지금은 '짐승'이나 '가축'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獸(수)는 ①짐승 ②가축(家畜) ③야만(野蠻) ④하류(下流) ⑤포(脯), 포육(脯肉: 얇게 저미어서 양념을 하여 말린 고기) ⑥짐승같은, 야만스러운 ⑦사냥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짐승 축(畜),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사람 인(人)이다. 용례로는 짐승의 돌림병을 수역(獸疫), 짐승의 모양을 새기어 꾸민 문을 수달(獸闥), 짐승의 형상으로 꾸며 차린 무대를 수대(獸臺), 짐승의 형상과 같이 만든 항로를 수로(獸爐), 짐승의 얼굴 또는 그와 같이 험상궂게 생긴 사람의 얼굴을 수면(獸面), 짐승처럼 사납고 야만적인 마음을 수심(獸心),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짐승의 고기를 수육(獸肉), 가축에게 생기는 여러 가지 질병의 진찰 또는 치료를 맡아보는 의사를 수의(獸醫), 짐승의 가죽을 수피(獸皮), 짐승의 털을 수모(獸毛), 짐승의 성질을 수성(獸性), 맹수의 피해로 인한 근심을 수환(獸患), 짐승을 넣어 기르는 우리를 수함(獸檻), 육식을 주로 하는 매우 사나운 짐승을 맹수(猛獸), 흉악한 짐승을 악수(惡獸), 괴상한 짐승을 괴수(怪獸), 새와 짐승을 조수(鳥獸), 온갖 짐승을 백수(百獸), 들짐승으로 하는 짓이나 성질이 몹시 포악하고 잔인한 사람을 야수(野獸), 짐을 실려서 운반시키는 짐승을 담수(擔獸), 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짐승의 형상을 석수(石獸), 겨울철에 활동하지 않고 가만히 엎드려 있는 짐승을 칩수(蟄獸), 상서로운 징조로 나타나는 짐승을 서수(瑞獸), 짐승이 고통이 극도에 달하면 사람을 문다는 뜻으로 사람도 썩 곤궁해지면 나쁜 짓을 하게 된다는 말을 수궁즉설(獸窮則齧), 새나 짐승의 발자취가 천하에 가득하다는 말을 수제조적(獸蹄鳥跡), 돼지처럼 대하고 짐승처럼 기른다는 뜻으로 사람을 예로써 대우하지 않고 짐승같이 대한다는 말을 시교수축(豕交獸畜), 얼굴은 사람의 모습을 하였으나 마음은 짐승과 같다는 뜻으로 남의 은혜를 모름 또는 마음이 몹시 흉악함을 이르는 말을 인면수심(人面獸心), 짐승을 타고 달리는 기세라는 뜻으로 도중에서 그만두거나 물러설 수 없는 형세를 이르는 말을 기수지세(騎獸之勢)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부적절(不適切),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나 죽여 없애야 할 원수를 일컫는 말을 불구대천(不俱戴天), 묻지 않아도 옳고 그름을 가히 알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불문가지(不問可知),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도 없다는 뜻으로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오묘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사의(不可思議),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일컫는 말을 부정부패(不正腐敗), 지위나 학식이나 나이 따위가 자기보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함을 두고 이르는 말을 불치하문(不恥下問),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는 뜻으로 마흔 살을 이르는 말을 불혹지년(不惑之年), 필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음을 일컫는 말을 불요불급(不要不急), 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난관도 꿋꿋이 견디어 나감을 이르는 말을 불요불굴(不撓不屈), 천 리 길도 멀다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먼길인데도 개의치 않고 열심히 달려감을 이르는 말을 불원천리(不遠千里) 등에 쓰인다.
▶️ 可(옳을 가, 오랑캐 임금 이름 극)는 ❶회의문자로 막혔던 말이(口) 튀어 나온다는 데서 옳다, 허락하다를 뜻한다. 나중에 呵(訶; 꾸짖다), 哥(歌; 노래) 따위의 글자가 되는 근본(根本)이 되었다. 또 나아가 힘드는 것이 나갈 수 있다, 되다, 그래도 좋다, 옳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可자는 '옳다'나 '허락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可자는 곡괭이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可자는 본래 농사일을 하며 흥얼거린다는 뜻으로 쓰였던 글자였다. 전적으로 노동력에 의존해야 했던 농사는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런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이겨내고자 흥얼거리던 노래가 바로 농요(農謠)이다. 그래서 可자는 곡괭이질을 하며 흥얼거린다는 의미에서 '노래하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可자가 '옳다'나 '허락하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입을 벌린 모습의 欠(하품 흠)자를 결합한 歌(노래 가)자가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可(가, 극)는 (1)옳음 (2)좋음 (3)성적이나 등급 따위를 평점하는 기준의 한 가지. 수, 우, 미, 양, 가의 다섯 계단으로 평점하는 경우에, 그 가장 낮은 성적이나 등급을 나타내는 말 (4)회의(會議)에서 무엇을 결정하거나 어떤 의안을 표결할 경우에 결의권을 가진 사람들의 의사(意思) 표시로서의 찬성(동의) (5)…이(가)됨, 가능(可能)함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서 동작을 나타내는 한자어 앞에 붙음 등의 뜻으로 ①옳다 ②허락하다 ③듣다, 들어주다 ④쯤, 정도 ⑤가히 ⑥군주(君主)의 칭호(稱號) ⑦신의 칭호(稱號) 그리고 ⓐ오랑캐 임금의 이름(극)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시(是), 옳을 의(義),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不), 아닐 부(否)이다. 용례로는 할 수 있음을 가능(可能), 여러 사람의 의사를 따라 의안을 좋다고 인정하여 결정함을 가결(可決), 변화하거나 변경할 수 있음을 가변(可變), 움직이거나 이동할 수 있음을 가동(可動), 대체로 합당함을 가당(可當), 가능성 있는 희망을 가망(可望), 두려워할 만함을 가공(可恐), 하고자 생각하는 일의 옳은가 그른가의 여부를 가부(可否), 얄미움이나 밉살스러움을 가증(可憎), 불쌍함이나 가엾음을 가련(可憐), 눈으로 볼 수 있음을 가시(可視), 나눌 수 있음이나 분할할 수 있음을 가분(可分), 어처구니 없음이나 같잖아서 우스움을 가소(可笑), 참고할 만함이나 생각해 볼 만함을 가고(可考), 꽤 볼 만함이나 꼴이 볼 만하다는 뜻으로 어떤 행동이나 상태를 비웃을 때에 이르는 말을 가관(可觀), 스스로 생각해도 우습다는 뜻으로 흔히 편지에 쓰이는 말을 가가(可呵), 법령으로 제한 금지하는 일을 특정한 경우에 허락해 주는 행정 행위를 허가(許可), 옳지 않은 것을 불가(不可), 인정하여 허락함을 인가(認可), 아주 옳음이나 매우 좋음을 극가(極可), 안건을 결재하여 허가함을 재가(裁可), 피할 수 없음을 일컫는 말을 불가피(不可避),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능(不可能), 될 수 있는 대로나 되도록을 이르는 말을 가급적(可及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을 이르는 말을 가시적(可視的), 현상이나 상태 등이 실제로 드러나게 됨 또는 드러나게 함을 이르는 말을 가시화(可視化), 침범해서는 안됨을 일컫는 말을 불가침(不可侵), 의안을 옳다고 결정함을 일컫는 말을 가결안(可決案), 옳거나 그르거나를 일컫는 말을 가부간(可否間), 불에 타기 쉬운 성질을 일컫는 말을 가연성(可燃性), 높아도 가하고 낮아도 가하다는 뜻으로 인자는 벼슬이 높아도 거만하지 않고 낮아도 두려워하지 않음으로써 직위의 고하를 가리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가고가하(可高可下), 동쪽이라도 좋고 서쪽이라도 좋다는 뜻으로 이러나 저러나 상관없다는 말을 가동가서(可東可西), 머물러 살 만한 곳이나 살기 좋은 곳을 일컫는 말을 가거지지(可居之地), 어떤 일을 감당할 만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가감지인(可堪之人), 그럴듯한 말로써 남을 속일 수 있음을 일컫는 말을 가기이방(可欺以方), 참고하거나 생각해 볼 책이나 글을 일컫는 말을 가고문헌(可考文獻), 두렵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가공가소(可恐可笑), 믿을 만한 사람이나 믿음직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가신지인(可信之人), 투표 등의 개표 결과가 찬성과 반대가 동수임을 일컫는 말을 가부동수(可否同數) 등에 쓰인다.
▶️ 與(더불 여/줄 여)는 ❶형성문자로 与(여)는 통자(通字), 与(여)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동시에 음(音)을 나타내는 절구구변(臼; 절구)部와 八(팔)을 제외한 글자 (여)와 사람이 더불어 정을 주고 받는다는 나머지 글자의 뜻이 합(合)하여 더불다, 주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與자는 '주다'나 '더불다', '같이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與자는 舁(마주들 여)자와 与(어조사 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與자의 금문을 보면 코끼리 상아를 서로 붙잡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누군가에게 상아를 건네주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與자의 본래 의미는 '주다'였다. 그러나 지금의 與자는 물건을 서로 맞잡고 있다 하여 '더불다'나 '같이하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與(여)는 ①더불다(둘 이상의 사람이 함께하다) ②같이하다 ③참여하다, 참여하다 ④주다, 베풀어주다 ⑤허락하다, 인정하다 ⑥간여하다, 간섭하다 ⑦돕다, 협조하다 ⑧기리다, 찬양하다 ⑨기뻐하다 ⑩기록하다, 등재하다 ⑪쫓다, 따르다 ⑫친하다 ⑬의심하다 ⑭만일, 가령 ⑮미리, 앞서 ⑯위하여 ⑰및 ⑱~보다는 ⑲어조사 ⑳무리(모여서 뭉친 한 동아리), 동아리(같은 뜻을 가지고 모여서 한패를 이룬 무리)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함께 구(俱), 함께 해(偕), 참여할 참(參),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받을 수(受), 들 야(野)이다. 용례로는 그러함과 그러하지 아니함을 여부(與否),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여 이것에 편을 드는 정당을 여당(與黨), 여당과 야당을 여야(與野), 주어진 조건을 여건(與件), 금융기관에서 거래하는 상대방에게 신용을 주는 일 곧 돈을 빌려주는 일을 여신(與信), 주고 받음을 여수(與受), 결과가 나타나려 할 때에 힘을 주어 결과를 나타내도록 하는 것을 여과(與果), 동맹을 맺은 나라를 여국(與國), 참여하여 들음을 여문(與聞), 함께 의논함을 여의(與議), 주는 일과 빼앗는 일을 여탈(與奪), 계책을 짜는 데에 참여함을 여모(與謀), 참가하여 관계함을 참여(參與), 도움이 되는 구실을 하는 것을 기여(寄與), 관계하여 참여하는 것을 관여(關與), 지니거나 갖도록 해 줌을 부여(附與), 재산을 무상으로 타인에게 물려 주는 행위를 증여(贈與), 지니거나 갖도록 해 줌을 부여(賦與), 간섭하여 참여함을 간여(干與), 상장이나 상품 등을 줌을 수여(授與), 팔아 넘김을 매여(賣與), 세상의 변화에 따라 함께 변함을 일컫는 말을 여세추이(與世推移), 양에게 양고기를 내어 놓으라고 꾀다는 뜻으로 근본적으로 이룰 수 없는 일을 이르는 말을 여양모육(與羊謨肉), 덕으로써 이웃한다는 뜻으로 덕이 있으면 모두가 친할 수 있다는 말을 여덕위린(與德爲隣), 다른 사람과 서로 약속함을 일컫는 말을 여인상약(與人相約), 다른 것과 저절로 다름을 일컫는 말을 여타자별(與他自別), 별로 다른 데가 없이 보통 사람과 같음을 일컫는 말을 여범인동(與凡人同), 온 세상의 귀착점이 같은 일을 일컫는 말을 여세동귀(與世同歸), 장물을 주는 이나 받는 이나 둘 다 죄가 같음을 일컫는 말을 여수동죄(與受同罪), 다른 사람과 더불어 함께 즐김을 일컫는 말을 여인동락(與人同樂) 등에 쓰인다.
▶️ 同(한가지 동)은 ❶회의문자로 仝(동)이 고자(古字)이다. 여러 사람(멀경 部)의 말(口)이 하나(一)로 모인다는 뜻이 합(合)하여 같다를 뜻한다. 혹은 凡(범)은 모든 것을 종합하는 일과 口(구)는 사람의 입이라는 뜻을 합(合)하여 사람의 모든 말이 맞다는 데서 같다 라고도 한다. ❷회의문자로 同자는 '한 가지'나 '같다', '함께'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同자는 凡(무릇 범)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凡자는 큰 그릇을 그린 것으로 '무릇'이나 '모두'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모두'라는 뜻을 가진 凡자에 口자를 더한 同자는 ‘모두가 말을 하다’ 즉, '이야기를 함께 나누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모임에서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자신이 원하는 발언을 제시할 수 있다. 그래서 同자는 '함께'나 '같다', '무리'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同(동)은 (1)한자어(漢字語) 명사(名詞) 앞에 쓰이어 같은 한 그 따위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한가지 ②무리(모여서 뭉친 한 동아리) ③함께(=同) ④그 ⑤전한 바와 같은 ⑥같다 ⑦같이하다 ⑧합치다 ⑨균일하게 하다 ⑩화합하다 ⑪모이다 ⑫회동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한 일(一), 한가지 공(共),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다를 이/리(異),무리 등(等)이다. 용례로는 같은 시간이나 시기를 동시(同時),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보는 사람을 동료(同僚), 같은 의견이나 의사를 동의(同意), 한 나라 또는 한 민족에 속하는 백성을 동포(同胞), 같은 문자를 동자(同字), 함께 참가하는 것을 동참(同參), 아우나 손아래 누이를 동생(同生), 의견이나 견해에 있어 같이 생각함을 동감(同感), 같은 시기나 같은 무렵을 동기(同期), 주장이나 목적이 서로 같은 사람을 동지(同志), 데리고 함께 다님을 동반(同伴), 여러 사람이 일을 같이 함을 공동(共同), 여럿이 어울려서 하나를 이룸을 합동(合同), 이것과 저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뒤섞어서 보거나 생각함을 혼동(混同), 일정한 목적으로 여러 사람이 한데 모임을 회동(會同), 조금 차이는 있을지라도 대체로 같음을 대동(大同), 힘과 마음을 함께 합함을 협동(協同), 서로 같지 않음을 부동(不同), 같은 병자끼리 가엾게 여긴다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불쌍히 여겨 동정하고 서로 도운다는 말을 동병상련(同病相憐), 같은 침상에서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같이 행동하면서 속으로는 각기 딴 생각을 함을 이르는 말을 동상이몽(同床異夢),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한다는 뜻으로 같이 고생하고 같이 즐긴다는 말을 동고동락(同苦同樂),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뜻으로 같은 조건이라면 좀 더 낫고 편리한 것을 택한다는 말을 동가홍상(同價紅裳),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간다는 뜻으로 원수끼리도 공동의 목적을 위해서는 같은 배를 타고 서로 협조하게 된다는 말을 동주제강(同舟濟江), 같은 배에 탄 사람이 배가 전복될 때 서로 힘을 모아 구조한다는 뜻으로 이해 관계가 같은 사람은 알거나 모르거나 간에 서로 돕게 됨을 이르는 말을 동주상구(同舟相救), 동족끼리 서로 싸우고 죽임을 일컫는 말을 동족상잔(同族相殘), 같은 소리는 서로 응대한다는 뜻으로 의견을 같이하면 자연히 서로 통하여 친해진다는 말을 동성상응(同聲相應), 발음은 같으나 글자가 다름 또는 그 글자를 이르는 말을 동음이자(同音異字), 기풍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은 서로 동류를 찾아 모인다는 말을 동기상구(同氣相求), 같은 성에다 같은 관향이나 성도 같고 본도 같음을 일컫는 말을 동성동본(同姓同本),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같은 의견의 사람끼리 한패가 되고 다른 의견의 사람은 물리친다는 말을 동당벌이(同黨伐異), 같은 뿌리와 잇닿은 나뭇가지라는 뜻으로 형제 자매를 일컫는 말을 동근연지(同根連枝), 겉으로는 동의를 표시하면서 내심으로는 그렇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동이불화(同而不和), 같은 목표를 위해 일치단결된 마음을 이르는 말을 동심동덕(同心同德), 같은 업은 이해 관계로 인하여 서로 원수가 되기 쉽다는 말을 동업상구(同業相仇), 이름은 같으나 사람이 다름 또는 그러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동명이인(同名異人) 등에 쓰인다.
▶️ 群(무리 군)은 ❶형성문자로 羣(군), 䭽(군)과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양 양(羊; 양)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君(군)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群자는 '무리'나 '떼'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群자는 君(임금 군)자와 羊(양 양)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君자는 지팡이를 손에 들고 명령을 내리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群자는 본래 군집 생활을 하는 '양'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그래서 羊자에 지팡이를 들고 명령을 내리는 모습을 그린 君자를 결합해 양 떼를 모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참고로 소전까지는 羣(무리 군)자가 쓰였었고 群자는 속자(俗字)에 불과했었지만, 해서에서는 글자가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群(군)은 (1)많은 것이 모인 떼. 어떤 명사(名詞) 뒤에 붙어 그 무리 또는 같은 떼를 나타내는 말 (2)하나의 연산에 대하여 닫혀 있는 집합(集合) 등의 뜻으로 ①무리(모여서 뭉친 한 동아리) ②떼 ③동아리(같은 뜻을 가지고 모여서 한패를 이룬 무리) ④벗(비슷한 또래로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 ⑤동료(同僚) ⑥많은 ⑦여럿의 ⑧모이다 ⑨모으다 ⑩많다 ⑪떼를 짓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무리 속(屬), 무리 휘(彙), 무리 도(徒), 무리 대(隊), 무리 훈(暈), 무리 조(曹), 무리 등(等), 무리 중(衆), 무리 배(輩), 무리 류(類), 무리 당(黨), 붙을 부(附), 떼 부(部)이다. 용례로는 많은 사람들 또는 여러 가지의 모양을 군상(群像), 한 곳에 무리지어 모여 있는 사람들을 군중(群衆), 무리 지어 삶을 군거(群居), 연달아 잇닿은 많은 산을 군산(群山), 많은 꽃들을 군화(群花), 여러 사람이나 물건이 모임을 군집(群集), 많은 영웅들을 군웅(群雄), 여럿이 함께 어우러져 추는 춤을 군무(群舞), 떼 지어 모인 개를 군견(群犬), 많은 동생들을 군계(群季), 새떼로 떼를 지어 모인 새를 군조(群鳥), 떼지어 낢을 군비(群飛), 뭇 신하들을 군신(群臣), 짙은 남색 물감을 군청(群靑), 어진 사람들을 군현(群賢), 많은 나라를 군방(群邦), 떼를 지은 많은 학들을 군학(群鶴), 여러 근기이라는 뜻으로 많은 중생이라는 말을 군기(群機), 적의 무리를 적군(敵群), 큰 떼로 많은 무리를 대군(大群), 여러 봉우리가 많이 모여 있는 산의 무리를 산군(山群), 장사치들의 우리를 상군(商群), 같은 방향으로 공통되는 공간 운동을 하는 항성의 한 무리를 성군(星群), 여럿 가운데서 특별히 빼어남을 발군(拔群), 닭의 무리라는 뜻으로 평범한 사람의 무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계군(鷄群), 다른 사람들과는 비할 바 없이 매우 뛰어남을 불군(不群), 무리 지어 있는 닭 가운데 있는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으로 여러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있는 뛰어난 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군계일학(群鷄一鶴), 여러 맹인이 코끼리를 더듬는다는 뜻으로 자기의 좁은 소견과 주관으로 사물을 그릇 판단함을 이르는 말을 군맹무상(群盲撫象), 아무리 가벼운 것이라도 많이 모이면 수레의 굴대를 구부러뜨릴 수 있다는 뜻으로 아무리 적은 힘이라도 일치 협력하면 강적에 대항할 수 있다는 말을 군경절축(群輕折軸), 많은 영웅들이 각각 한 지방에 웅거하여 세력을 과시하며 서로 다투는 상황을 이르는 말을 군웅할거(群雄割據), 많은 사람이 다 의심을 품고 있음을 이르는 말을 군의만복(群疑滿腹)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