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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를 통해 확인하는 인문 고전 독서의 힘
안철수 교수는 의사였다.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다. 주변에 의사나 공대를 나와 전문 엔지니어가 된 친구들과 안철수 교수를 비교해 보면 상당히 다른 점이 많다. 의사나 엔지니어는 기능인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공대 다니는 친구들은 자신들을 ‘공돌이’ 라고 비하하면서 밤새 실험 기계 돌리고, 기계 지키고 앉아서 하는 일이 게임을 하거나 야동을 보는 일이었다고 한다. 의사 선생님의 삶도 비슷한 듯하다. 힘들게 외래 환자 보고, 수술하고, 하루 종일 받은 스트레스를 음주가무로 보내지 집에 가서 조용히 독서하며 인생과 나라를 생각할 여유는 없다고 한다. 이공계 뿐 아니라, 인문계 출신들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능인으로 부품처럼 살면서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고,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고 역사를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학업과 업무의 연속인 의대생, 의사, 프로그래머, 벤처 기업인의 삶을 살면서 안철수는 삶의 의미를 성찰하고 나를 넘어 사회를 바라보는 성숙한 지식인이 될 수 있었을까?
“나는 우주에 절대적인 존재가 있든 없든, 사람으로서 당연히 지켜나가야 할 중요한 가치가 있다면 아무런 보상이 없더라도 그것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세에 대한 믿음만으로 현실과 치열하게 만나지 않는 것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 또 영원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살아있는 동안에 쾌락에 탐닉하는 것도 너무나 허무한 노릇이다. 다만 언젠가는 같이 없어질 동시대 사람들과 좀 더 의미 있고 건강한 가치를 지켜가면서 살아가다가 ‘별 너머의 먼지’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 생각한다.”
어찌 보면 허무주의적인 색채까지 보이는 안철수의 인생관에는 의대 지식과 컴퓨터 언어가 줄 수 없는 인문 교양의 깊은 그림자를 볼 수 있다.
“사업을 하면서 제가 많이 느꼈는데요, 최선을 다해도 실패하더라고요. 최선을 안 다했는데도 성공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10년 정도 경영하면서 깨달았던 게 성공이라는 게 사실은 내가 차지하는 몫은, 사람마다 비중은 다르겠습니다만, 아마 3분의 2 정도이고, 나머지 3분의 1은 다른 사람이 나를 도와줘서, 사회가 여건을 허락해서, 운이 좋아서 성공하는 거더라고요. 그러니까 하면 할수록 절감하는 게 내가 차지하는 몫은 3분의 2 정도인데, 이 100% 중에서요, 이게 전부 다 100% 내 거라고 주장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사실 성공을 100%, 개인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런 생각들을 가지게 됐는데, 한걸음 더 나아가면 그렇게 사회가 여건을 허락해준 성공에 대해서 마지막 그 결과물을 성공한 사람이 독식을 하게 되면, 그게 천민자본주의의 시작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가진다면 아마도 이런 너무 성공신화에 매몰되기보다 사회 전체의 행복도 생각하게 되는, 좀 더 시야 넓은, 그게 또 장기적인 성공이 아닐까 싶거든요.”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을 100% 사유화하면 천민자본주의가 시작되는 것이라는 유명한 안철수 교수의 지적이고, 이러한 안철수 교수의 성공관과 그의 실천은 ‘불법 상속’과 ‘기업의 사유화’를 통해 성공의 100% 사유화를 시도하는 많은 재벌 총수들의 모습과 대비되며 외신들이 ‘안철수가 한국의 재벌을 부끄럽게 했다’는 보도를 내 놓았다. 이러한 사회관과 국가관의 뿌리도 역시 그가 초중등학교 시절에 쌓은 광범한 인문 교양 도서였다.
지식을 넘어 인격을 형성 시키는 ‘참 공부’
문, 이과생을 불문하고 학생들에게 인문고전을 읽게 하고 인문 교양을 쌓게 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쌓는 지식이 자신과 남을 살리는 생명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 지식은 마치 불과 같다. 잘 통제되고 잘 사용되면 빛과 열을 발산하여 세상을 밝히고 따뜻하게 할 수 있지만, 통제 되지 않고 남용되면 모든 것을 파괴하는 끔찍한 재앙을 초래하기도 한다.
안철수 교수는 현재 우리 교육은 ‘속도 위주’, ‘기능 위주’, ‘결과 위주’의 세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먼저 속도와 기능 위주로만 가기 때문에 대학까지는 가도 사회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조기졸업을 하고 빨리 좋은 대학에 가고 빨리 졸업을 하느냐 이런 쪽에 관심이 많은데, 실제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한 사람들이 조기 졸업을 했느냐 하면 아니거든요. 학교에서 배우는 게 공부뿐 아니라 동료와 함께 잘 지내는 법을 배우고, 평생 같이 갈 만한 친구를 사귀고 심리적인 안정도 얻는 건데요. 공부와 기능만 있으면 친구관계나 사회생활 안 해도 된다고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건 굉장히 큰 잘못이죠. 사회에서 성공이 성적순은 아니거든요.”
이렇게 제대로 된 실력을 기르지 못할뿐더러, 설령 성과를 내더라도 사회에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이 결과 위주의 교육이에요. 너무 결과 위주로 가면 과정의 정당성이 약해지죠. 즉, 어떤 방법을 써도 결과만 내면 된다는 사고로 하다 보니 성적은 최고로 받았는데 10년 후에 보니까 모두 감옥에 가 있어요. 결국 방법이야 어찌 됐든 결과만 내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을 만드는 거거든요.”
그럼 안철수 교수는 어떻게 제대로 된 성과를 내고, 또 성과를 내고도 사회의식과 역사의식을 갖고 그 성과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그 뿌리는 필자는 인문고전 독서 훈련에서 찾았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안철수 교수는 초중등 시절 삼중당 문고 시리즈를 중심으로 광범한 인문 고전 독서 훈련을 마칠 수 있었다. 그가 읽은 책은 수천 권이 넘고, 투자된 시간만 해도 10,000 시간이 넘을 것이다.
삼중당 문고를 통한 인문 고전 독서 훈련
안철수 교수가 말한 삼중당 문고를 국립 중앙 도서관에서 검색해 보았다. 저렴한 가격으로 동서 고전을 소개한 삼중당 문고는 어떤 의미에서 70,80년대 지식의 대중화와 배움에 굶주린 가난한 사람들에게 단비와 같은 역할을 했다. 당시 삼중당 문고는 크게 논어, 맹자, 명심보감, 손자병법, 한비자와 같은 동양 고전, 이광수의 무정이나 심훈의 상록수와 같은 한국 근현대 소설, 난중일기, 징비록, 한중록 같은 한국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 죄와 벌, 부활 같은 서양 고전 소설, 톨스토이 인생론, 팡세, 그리스 로마 신화 같은 서양 철학이나 사상, 백범일지와 같은 한국 근현대 사상집이나 수필집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중 안철수가 제일 열심히 읽고, 이 덕에 인생과 역사에 대한 시야도 넓히고, 고 3때 본고사 유형 국어에서 고득점을 올릴 수 있었던 한국 문학 작품은 다음과 같다.
<삼중당 문고 한국 근현대 소설 목록>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 김동리의 무녀도, 사반의 십자가, 김동인의 감자, 배따라기, 대수장, 젋은 그들, 운현궁의 봄, 김소월의 진달래꽃, 김유정의 동백꽃, 나도향의 물레방아, 노양환의 사랑의 사육제,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 박경수의 향토기, 박계주의 순애보, 박종화의 금삼의 피, 박종화의 다정 불심, 방영운의 달, 선우휘의 불꽃, 심훈의 상록수, 영원의 미소, 안수길의 북간도, 제3인간형, 염상섭의 삼대, 오영수의 갯마을, 유주현의 남한산성, 이광수 이차돈의 사, 원효대사, 흙, 이무영의 농민, 이문희의 하모니카의 계절, 이상의 날개, 이상의 오감도, 이어령의 애수의 사냥꾼, 이은상의 성웅 이순신, 피어린 육백리, 이청준 병신과 머저리,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전영택의 화수분, 조해일의 왕십리, 주요섭의 사랑손님과 어머니, 주요한의 안도산전, 채만식 탁류, 레디메이드 인생, 천승세의 인천비 서울비, 최해서의 탈출기, 한용운의 님의 침묵, 한용운 수필집, 한하운의 보리피리, 현진건의 B사감과 러브레터, 무영탑, 황순원의 일월, 카인의 후예, 독짓는 늙은이
안철수는 처음에는 단편에서 시작해서 점점 중장편으로 읽기 내공을 높여나갔다. 독서력이 쌓이자 단편보다는 장편을 더 좋아했다. 외국 소설도 보기는 했지만 한국 소설만큼은 아니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듣기를 번역 소설은 번역 자체에 문제가 있으면 소설가가 쓰고자 했던 의도를 바로 파악할 수 없을 분 아니라 그 향기도 느낄 수 없게 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어서인지 괜한 편견을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등의 고전을 두려 섭렵한 편이다”
당시 삼중당 문고에서 낸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의 작품은 다음과 같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죄와 벌, 이중인격,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과, 부활, 안네 까레니나, 유년 시절, 소년시절, 청년시절, 톨스토이 인생론이 있었다.
위의 한국 근현대 소설 목록을 적다 보니, 안철수 교수가 왜 맥아피의 천만 불 인수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왜 성공한 CEO에서 나아가 산업계 전반을 걱정하며, 전국을 돌며 청년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는지가 이해가 되었다. 위의 소설들은 시험에도 자주 출제되어 필자도 고등학교 시절 국어 II를 대비하며 틈틈이 읽었던 작품이었다. 김유정의 봄봄과 배따라기를 읽으며 나라를 빼앗기고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었던 민족의 비애와 그 비참한 삶 가운데 살아있는 해학을 배울 수 있었다. 채만식의 레이메이드 인생을 보며 식민지 지식인의 한계와 고뇌를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주인공의 삶과 나의 삶의 대비해 가며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고 역경 가운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큰 그림을 제공해 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라를 빼앗기면 이렇게 비참할 수밖에 없음과 민족에 대한 사랑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다.
이렇게 안철수 교수는 한국 근현대 소설을 중심으로 인문고전 독서를 해 나가면서 자신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형성하고 민족관과 역사관을 수립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달변은 아니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내공이 느껴지는 내용과 스토리를 전달할 수 있는 힘도 바로 초중등 시절에 읽어 두었던 인문 고전 독서에서 형성되었다.
안철수의 사례에서 보는 인문 고전 독서의 방향성
안철수식 인문고전 독서의 가능성
최근에 인문고전 독서 바람이 불면서 청소년이나 초등학교 시절부터 인문 고전 독서를 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전에는 고전의 경우 내용이 어렵고, 시간과 공간의 격차로 인해 배경 지식과 상황이해가 없으면 학생들이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초등 고전읽기 혁명>>의 저자 송채환은
1. 고전은 아이가 읽기에는 어렵다
2. 고전은 특별한 사람이 읽는 책이다.
3. 고전은 고리타분하다 (현대적인 삶과 괴리가 크고, 현대인의 삶에 도움이 안 된다)
4. 고전은 내용을 이미 알려진 책이다. (내용이 많이 알려져 있어 굳이 읽을 필요가 없다) 5. 우리고전 보다 외국 고전이 좋다
6. 굳이 읽어야 한다면 어린이용으로 축약되거나 만화로 된 책을 읽히는 게 좋다
7. 소설류는 몰라도 철학 사상류의 고전은 초등학생에게 너무 이르다
8. 남녀 다른 고전을 읽히는 게 좋다는 여덟 가지 편견이 고전 학습의 방해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저자가 근무하는 동산 초등학교에서 각 학년별로 고전 독서를 시켜본 결과 국어 성적 향상 뿐 아니라 인성이 개선되고 아이들이 스스로 높은 삶의 목표를 갖는 등의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고 보고하고 있다.
교육사 적으로 볼 때 근대 교육이전은 대부분 고전 교육이었다. 근대 이전에 교육의 수혜자들은 귀족이나 왕족이었기에 어려서부터 개별 교사나 소수의 그룹으로 문자 교육을 받고 그 문화권의 고전을 순차적으로 학습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양반의 자제는 천자문을 떼고, 소학, 명심보감, 사서삼경, 역사서 및 기타 철학서와 당대 학자들의 책 순으로 학습했다. 그러다가 근대 교육이 시작되면서 교육이 대중화 되자 새로운 경향이 나타난다. 연령별로 학습 수준을 맞추고, 기존의 고전이나 학습 콘텐츠를 학습자의 수준에 맞게 수정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러면서 학습 내용에 전통과 고전적인 내용의 ‘수직적’인 내용이 아니라 당대의 문화, 관습, 습관을 가르치고 학습자를 자본주의 사회와 근대 국가의 기능인이 될 수 있는 ‘수평적’인 내용이 들어오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수평적인 문화와 지식만을 습득한 아이들은 깊은 생각을 못하고, 공부를 통해 인격을 수양하고 사회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송채환 선생님은 하루에 20-30분씩만 투자해서 고전을 꾸준히 읽히고 책도 삼국유사, 열하일기의 한국 고전에서 톨스토이 단편이나 대지와 같은 서양 고전 소설, 소학, 논어, 성경 등 동서양 고전을 두루 섭렵하게 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학에서 인문학인 역사를 전공하고 이후에 영어교육으로 전공을 바꾼 필자의 입장에서 볼 때 고전은 ‘제대로 된 선생님에게’ 깊이 있게 배우지 않으면 그다지 교육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성경으로 인문 고전 학습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과 논쟁을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바리새인이 누구인지 사두개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배경을 이해하지 않으면 정확히 왜 이런 대화가 오고 가는지 알 수가 없다. 더욱이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랑하지 말라”라는 말이 나오는데, 아브라함이 누구인지 알아야 예수님의 말의 의도를 정확히 알 것이 아닌가?
그림 1 그림 2
그림 1은 이 고전, 저 고전 보면서 제대로 생각이나 독서의 줄기를 세우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인문고전 독서를 상징한다. 그림 2는 하나의 고전을 깊이 있게 공부하고 사고와 신념의 줄기를 튼튼히 세우고난 이후 다른 주제로 관심의 영역을 넓히고 자신이 공부한 바를 적용하여 열매를 맺는 인문 고전 독서를 나타낸다.
그림 2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문고전 독서의 예가 유대인 가정교육이다. 정통파 유대인들은 가정과 회당에서 단 2 권의 책을 공부한다. 바로 토라(모세오경)과 탈무드이다. 정확히 말하면 시두르라는 기도책까지 세권이지만, 시두르도 결국 토라와 시편에 기초한 내용이므로 성경과 탈무드만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성경 안에는 역사와 철학, 의학, 법률의 다양한 분야가 들어 있지만 우선 아이가 만 3-4살 전후로 히브리어를 읽을 수 있게 되면 아침기도와 저녁 기도를 암송하게 하는 것부터 인지 교육을 시작한다. 그리고 안식일 식탁과 별도의 성경이나 탈무드 공부 시간을 통해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조상들의 믿음을 교육하고, 유월절, 초막절 등의 명절 행사를 삼대가 같이 보내며 배운 내용을 복습시킨다.
종교적 배경이 없는 분들을 위해 다른 비유로 설명하면 국어 과목 하나만 가르치는데 이 안에 수학, 윤리, 과학, 의학이 다 들어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 내용을 가정, 회당, 학교(정통파 유대인 학교를 다니는 경우)에서 일관되게 배우기 때문에 뿌리가 튼튼한 인문 고전 독서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명문 양반가의 독서 교육도 이와 유사했다. 소학-명심보감-사서삼경의 교육 과정 하에서 일관되게 충효라는 가치관이 전수되고, 제사 의식이나 명절의식에서, 또 대가족과 가문의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운 내용이 반복 학습되는 구조였다. 이렇게 기본적으로 유교적인 뿌리를 튼튼히 한 후 도교나 불교, 당대의 다양한 사상으로 공부의 영역을 넓혀갔다. 이런 의미에서 소신 있게 자녀에게 인문 고전 독서 교육을 시키고자 한다면, 성경이나 논어와 같은 유교 경전, 불경 등과 같은 종교, 사상서를 기본으로 하여 같은 계통의 공부를 깊이 있게 시키고 난 이후, 또 이 과정을 통해 충분한 어휘력과 독서 능력, 사고력이 배양 되고 난 이후에 다른 동서고전을 읽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안철수처럼 한국 소설에서 시작하기
하지만 이런 이상적인 인문 고전 독서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가 해당 주제나 분야에 대해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안철수 식 인문 고전 독서 훈련은 인문 교양적인 깊이가 부족한 엄마, 아빠들이 자녀와 함께 시작 해 볼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다.
위에서 본 대로, 안철수가 초등학교 1학년 때 한글을 떼고, 몰입 독서를 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 삼중당 문고의 한국 근현대 소설시리즈였다. 필자는 한편으로 안철수가 번역 문학에 대한 편견을 갖고 초기에는 많은 서양 소설을 읽지 않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한국 소설을 통해 어휘력과 민족의식을 분명히 기르고,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읽었기에 나름의 주관과 판단력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인문 고전 독서가 좋은 효과가 있는 줄 알면서도 어떤 책에서 시작해야 할지 그리고 내가 아는데 없는데 아이에게 가르쳐 줄게 없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안철수처럼 한국 근현대 소설부터 시작해 보는 게 어떨까? 특히 교과서와 연계된 소설부터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이가 이해력이 떨어지면 책을 이야기 하듯이 들려주고, 아이가 궁금해 하는 부분을 대답해 주면 된다. 그 시기는 빠르면 초등하교 2-3학년 늦어도 5,6학년에는 이루어지는 게 바람직하다. 어떤 엄마들은 이런 성인 소설이 너무 어렵지 않겠냐고 묻는다. 하지만 필자는 어린아이에게는 어린아이에게만 맞는 책을 주어야 한다는 현대 교육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비주류이기는 하지만 칼비테 교육론에서는 어린아이에게 ‘지지’, ‘맘마’ 같은 유아어를 쓰지 말고 어른의 언어를 쓰면서 아이에게 인격적인 대우를 해주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유아용, 아동용, 청소년용, 성인용 도서를 구분하지 말고, 온 세대가 같은 텍스트를 가지고 독서를 하고 토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 단어를 주제로 좀 더 이야기를 진행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면 된다. 시험 보는 게 아니니까 이해하는 만큼만 진도를 나가면 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부모가 아이와 같이 책을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확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칼럼니스트 소개>
글쓴이 심정섭은 서울대 인문대를 졸업하고 고려대 영어교육학과 학사 편입 한 후, 한양대학교에서 영어 교육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IMF 1세대로 중소 무역회사, 컨설팅 회사, 현대 자동차 해외 영업 본부를 거치며, 바닥부터 살아가는 법을 배웠고, 이시기에 잠깐 했던 영어강사 생활을 통해 본인이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학사 편입 한 후 강남에서 대학생과 고등학생에게 10년 동안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고, 이제는 영어라는 물고기 보다, 인생 경영이라는 물고기 잡는 법을 전하기 위해 공부하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주로 고3과 대학생, 임용 고시 준비생을 지도했지만, 지금의 사교육과 가정의 해체로는 나라의 비전이 없다고 보고, 사교육비 경감과 가정의 회복, 자연출산 및 부모 교육, 유대인식 독서, 토론 교육의 확산을 위한 이론을 정비하고 실천에 이르게 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20살 넘어 다시 하는 영어>>(명진출판, 2011) 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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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빠가 이렇게 중심을 잡으시면 행복한 가정과 좋은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응원하겠습니다.
존경스럽습니다. 제안에 있는 궁금증들을 어쩜 이리도 편하게 풀어놓으시는지....감사합니다.
^^ 좋은글 매번 감사합니다
仁, 禮, 忠 타인을 사랑하고, 배려하고, 마음중심을 가지고 좋은글을 풀어놓으시니 보기에 심히 좋습니다. 심선생님. 감사합니다.
독서의 방향을 잡는 좋은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대에 읽었던 논어 글귀가 40이 다 된 지금에 이르러서야 이해가 조금씩 되감을 느낍니다.
제 아이들에게도 그러한 느낌을 갖게 해주 고 싶습니다.
아.. 눈이 번쩍 뜨이는 글이네요.. 요새 애기들이 다람쥐 까투리 이런 거 밖에 모른다고 해서 걱정인데 우리 아기는 좋은 고전들로 인성 교육 해 보렵니다^^
I appreciate your posting. I picked up a lot of hints and information on how to raise my daughter. ^^
좋은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독서가 제일 중요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