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노숙인시설에서 노숙인 자립자활 사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어제 종례 후에 한 노숙인이 제게 와서 "죄송합니다. 선생님. 제가 오늘 술 한잔 하고 00일보에 항의하러 갔습니다. 하도 화가나서 따지러 갔는데 문턱에서 그냥 쫒겨났어요."
숭례문 화재와 관련된 기사에서 노숙인을 다룬 기사를 보고 속상해 하던 60대의 노숙인이었다.
힘내시라고 말씀과 "앞으로는 항의하더라도 술의 힘을 빌리시면 안됩니다. 아무리 정당하더라도 술은 오히려 더 상황을 나쁘게만 만듭니다." 내 마음도 술 한잔 마시고 "확!" 따지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기에 다른 대응과 방식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제가 아는 분들에게 이 번 사건과 노숙인에 대한 오해를 조금이나마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노숙인이 자랑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천인공노할 죄인의 집단도 아니기에 이 번 화재와 신문기사들을 보면서 부당함을 느끼기에 글을 올립니다.
읽으시는 분들 중에서도 노숙인에 대한 안좋은 경험과 감정을 갖게 되신 분도 계시겠지만 그냥 한 인간이 극복하진 못한 어려움에 경제적 좌절과 사회적 열등의 상황에 놓여진 아픔을 겪고 있구나 생각하시고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 글은 함께 일하는 동료와 나눈 메일에서 상당부분을 발췌하였기에 매끄럽지 못한 면이 있습니다.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녁급식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시간이 8시 20분쯤, 숭례문이 불탈 때 나는 서울을 벗어나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 TV뉴스에서 화재소식을 접했는데 언론에 비치기로는 불씨가 잡혔고 잔불만 제거하면 된다고 하여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금새 불길이 누각 사이에 새어나왔고 화재발생 5시간도 되지 않아 숭례문은 완전 전소되고 말았다.
이 얼마나 분통하고 억울하고 황당한 일이냐? 최첨단 시대라고 얘기하는 2008년, 눈 앞에서 벌어진 이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한 참을 멍하니 바라보며 온 몸을 떨었다. 그렇게 TV시간이 종료될 새벽 4시 넘어까지 화면 속 현장을 보면서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남대문이 어처구니 없이 화재로 순식간에 전소될 사실 때문이었고, 다른 한편에는 남대문 소실이 가져올 노숙인에 대한 따가운 사회적 시선이 걱정스러웠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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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히지도 않은 방화자는 노숙인?
우려는 곧바로 인터넷상에서 나타났다. 공영방송에서도 전기누전으로 인한 방화와 방화의 두 가지 가능성에 무게를 두면서 방화의 경우 목격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검은 색 항공점퍼를 입은 50대 남성’이라고 조심스럽게 보도하던 그 시간에도 23시 47분 ‘한국경제신문’을 필두로 ‘노숙자로 보이는 50대 남성’, ‘60대 노숙자가 사다리로 숭례문에 올라갔다.’, ‘노숙자 차림의 남성.’, ‘노숙자 행색의 흰 옷을 입은 사람’ 등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센터에 전화를 해보니 서울역 주변에서는 경찰들이 노숙인들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벌이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고 곧이어 인터넷에서는 서울역 주변에서 방화용의자로 보이는 50대 남성 2명의 소환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는 기사가 떴다.
범인이 잡히지도 않은 수사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이 기사들을 보면 마치 범인이 노숙인인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노숙인을 주요하게 언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노숙자로 보이는, 노숙인 차림이나 행색’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일반인인지 노숙인인지 구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시간 남대문에서 목격된 사람은 다 노숙인으로 치부된 것이고 유력한 방화용의자로 찍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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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은 범죄자라는 사회인식이 문제
우리사회에서는 불행하게도 ‘노숙인’이라는 말이 ‘범죄자’, 또는 ‘주요범죄대상자’ 등과 동일시되는 측면이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여지없이 그 효과가 나타났는데 언론과 경찰은 노숙인을 주요 범죄선상에 올려놓고 노숙인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탐문수사와 취재를 시작했고 유도성 질문으로 노숙인을 방화범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아니나다를까 다음날 오후 모 일간지에서는 경찰 수사내용과 ‘서울역 근처에서 태운 용의자가 술냄새를 풍기며 긴장한 채 숙대입구역에서 내렸다.’는 택시기사의 진술을 토대로 용의자를 찾는다며 센터를 방문했다. 숙대입구 근처 노숙인이 이용할 수 있는 쪽방이나 시설 등을 탐문하다가 다시서기센터를 알게 되어 찾아왔으며 택시기사가 진술한 그 노숙인이 어제 밤 센터에 묵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니냐?며 벗겨진 머리에 모자를 쓴 사람이 저녁 9시 이후에 들어온 적이 있느냐?, 운영시간이 어떻게 되며 몇 시에 문을 닫고 여는지, 신분은 확인하는지 등을 물었다. 마치 용의선상에 있는 사람이 센터를 방문한 것을 확신하고 물증이라도 잡으려는 것처럼 캐물었다.
국민들의 노숙인에 대한 따가운 화살이 봇물처럼 퍼부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바로 이런 기저에는 노숙인은 범죄자라는 잘못된 사회인식이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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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은 범죄자인가? 희생자인가?
이번 사건을 통해 방화자의 유형과 성격에 대한 다양한 분석들이 넘치고 있지만 하루에도 수십 건씩 일어나는 수많은 방화사건의 방화자 유형을 정형화하긴 쉽지 않다.
이번 사건의 방화자인 채모씨의 경우도 성격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른 불만표출이었다. 마을 사람들도 증언에서 보듯이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지를 사람이 아닌,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있고 심신상태도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으로 확인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사고의 주범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예는 거의 없다. 대다수가 정치세력들간의 권력다툼, 경제적인 이해관계 등 이익관계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이면에는 기본적으로 힘과 이익이 깔려있다. 즉 사회문제화 할 만한 힘이 있거나 그 힘을 통해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될 때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노숙인은 기본적으로 힘이 없는 사회적 무력자다. 결손가정, 저학력, 빈곤, 사업실패, 실업, 관계망 훼손, 건강악화, 주거불안 등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게 없는 열악한 처지에 있으며 성장과정 속에서 숱한 좌절을 통해 하루하루 연명하기도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다. 국가사회적인 공적 체계 속에서도 소외되어 있는 무국적자다. 적어도 최소한의 힘이 있어야 분노를 표출할 수 있고 불순한 생각도 할 수 있고 실행에 옮길 수도 있는데 노숙인들은 이것도 힘든 무력자다.
이런 노숙인의 특성상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방화 가능성은 애초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언론이 잘 몰라서인지, 아니면 다른 뜻한 바가 있는 것인지 노숙인을 범죄자로 몰아가고 있다.
절대 빈곤의 삶 속에서 겨우 생명만을 부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노숙인들은 자신의 존재가 남에게 드러나는 것 자체를 싫어하며 조용히만 지내려고 한다. 입이 있어도 말(표현)한 지 오래 되었고 눈과 귀가 있어도 보고 듣는 것조차 싫어한다.
지금의 언론의 태도를 보면 노숙인의 무력함을 무기 삼아 오히려 노숙인에게 관리부실의 책임을 떠 넘기고 추후 방화사건에 대한 예비범죄자로 낙인찍으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언론과 여론이 이렇게 할수록 노숙인이야말로 최대의 희생자일 뿐이다.
방화자 검거했는데 왜 노숙인이 사설에!
노숙인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추적하다가 엉뚱한 채씨가 방화범으로 체포되었다. 그런데 노숙인 기사가 오히려 방화범 체포전보다 더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방화자가 체포되었으면 방화자를 중심으로 문제를 접근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텐데 어떻게 된 일인지, 언론은 노숙인에게 일관되게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주요 일간지의 사설에까지 등장했다.
사설의 요지는 문화재관리에 대한 국가시스템의 허점을 설명하는 내용인데 왜 하필 여기에도 노숙인을 타켓으로 삼아 논거를 썼을까? 정말 노숙인이 전국에 산재해 있는 대한민국 문화재관리에 최우선 경계대상이며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일까?
자연환경에 의한 파손을 제외한 인위적인 문화재 파손은 일반인이나 관람객 방화, 전문도굴꾼 약탈 등으로 인한 손실이 훨씬 크다. 그 어디에도 노숙인이 문화재를 파괴한 예를 찾기 쉽지 않다.
13일자 주요 일간지 사설에 적은 숭례문에서의 노숙인 행태에 관해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 ‘문루에 올라가 잠을 자고 라면을 끓여먹고 술을 마셔왔다.’, ‘일주일전에 문루에 갔더니 10여 명이 모여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여름이면 시원한 문루에 30명쯤 몰려든다.’ 는 등 얼마나 정확하게 취재를 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노숙인복지사업을 10년 넘게 하고 있는 실무자들이 아는 한 노숙인은 숭례문에 올라 라면을 끓여 먹지도 잠을 자지도 술을 먹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노숙인은 라면을 끓여 먹을 장비도 없을뿐더러 귀찮아서 하지도 않고, 한여름 모기가 넘실대고 일반인의 잦은 출입으로 소란스럽고 산만한 그곳을 이용할 이유가 없다. 아래 잔디밭을 두고 높은 그곳까지 올라갈 힘도 없는 사람들이며 더군다나 타인의 시선을 극히 부담스러워 하는데 경비시스템까지 가동되어 싸이렌이 울려 시선이 집중되는 그곳에 올라갈 생각도 안하는 사람들이다.
다시서기센터에서 서울역과 숭례문 일대를 매일 저녁 거리상담과 순회를 하고 있는 상담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거리아웃리치 활동을 하면서 숭례문 문루로 들어가는 노숙인도 없고 들어간 것을 본 적도 없다고 한다. 이는 평소 만나는 노숙인을 통해서도 확인된 것이다. 상담원들이 듣기로는 숭례문의 관리허점상 오히려 객기 있는 일반시민, 주변지역 사람들, 관광객, 문화재관계자나 전공자, 호기심 많은 청소년 등이 간혹 이용한다는 것이다.
사실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왜 언론은 노숙인을 부각시킬까?
사회통치설에 근거한 분석
사회학에서는 한 국가(사회)를 운영유지하기 위한 예로 국가시스템을 생물과 비교하여 설명하면서 사람이 먹고 마시면 반드시 배설을 해야 하듯이 국가나 사회도 그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먹고 마시고 쓴 만큼 배설해야 하는데 그 배설창구가 어느 시대에나 어느 사회에나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본사회의 발전, 또는 사적 재산 증가, 이익창출과 잉여재산의 유지관리, 사회안정화 등을 위해서는 그 사회유지를 하면서 불가결하게 발생되는 문제점을 대리해소하고 혼란 등을 최소화하고자 특정집단을 배설창구 겸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노예, 소작농, 백정 등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면 여성과 장애인을 거쳐 현재는 노숙인이 그 어려운 짐을 떠맡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최근의 언론 보도행태를 봐도 여실히 드러나며 공공기관과 시민들의 태도에서도 흔하게 드러난다. 이런 면에서 노숙인의 입장에서 보면 다들 사회적 공범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배설창구 및 희생양을 덫을 벗어나려면 예전의 여성, 장애인이 끊임없는 싸움을 통해서 자각하고 요구조건을 관철시켜왔듯이 우리도 피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오늘, 사회주요 이슈가 바뀌었다.
오늘자 언론기사를 보면 노숙인 문제 부각과 아울러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던 주요 내용들이 슬그머니 사라졌거나 축소된 것을 볼 수 있다. 사회적 관심사가 한 순간에 바뀐 것이다. 설날 전후의 국민적 관심사는 단연 삼성 특검, 이명박 특검이었다. 또한 때가 좀 지나긴 했지만 태안기름유출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숭례문 방화사건으로 인해 한 순간에 주요이슈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방화전소로 인한 국민적 상실감이 매우 깊고 국보1호 숭례문이 가지는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제 이성적으로 냉정히 따져보아야 할 때인데 오히려 숭례문 방화사건을 더 키워간다는 인상이 짙다. 더구나 그 한 측면에 노숙인이 조연에서 주연으로 등장하고 있다.
숭례문을 새로 짓는데 소요되는 예산은 200~300억과 00그룹이 조성한 비자금 수조원 중 어느 것이 더 큰가? 이명방 당선인이 우려하는 남대문 전소로 인한 사회혼란과 00그룹의 특검수사에 대한 조직적인 저항과 태업 및 국가권력을 장악하려는 오만함에서 오는 가치혼란 중 어느 것이 국민들에게 더 큰 상실감과 혼란을 안겨줬을까?
정작 혼란스러운 것은 남대문 화재사건으로 인한 민심의 혼란보다는 00특검조사에서 보여주는 세계적인 기업 00의 태업수준과 맞먹는 공권력에 대한 대항과 도전이 훨씬 국민들의 눈에는 혼란스럽게 비친다. 세계적 표준이자 모범임을 지향한다는 00이 수조원의 비자금을 불법 조성하고 상식적인 참고인 조사에도 별별 핑계로 수사를 지연시키며 아예 조직적으로 문서를 파쇄하고 진실을 엄폐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것이 과연 2008년 대한민국의 모습인지 황당해하고 있다. 이 도덕적 해이를 어찌 국민에게 문제있다고 물을 것이며 더구나 노숙인에게 화살을 돌릴 것인까? 하지만 이미 노숙인은 본의 아니게 사회이슈 변경의 한 축으로 등장했다. 언론에 수고로움에 의해!
례문의 전소가 여론의 방향을 트는 결정적인 기회가 되었으며 노숙인은 여론몰이의 대상이 되어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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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복지사업 고사상태 우려
현재의 여론향배를 바로 잡지 않는다면 남대문 전소의 책임을 엉뚱하게 노숙인이 감당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왜 무죄한 노숙인이 이 큰 짐을 떠 안아야 하며 뭇매를 맞아야 하나? 언론과 여론의 폭풍으로 노숙인복지사업이 위축되고 그 피해는 노숙인에게 고스란히 가게 될 것이며 사회안전망의 약화로 이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사회와 시민의 관심과 후원이 줄어들고 노숙인에 대한 편견이 고착화되고 매카시적 망령이 되살아날지 매우 걱정스럽다.
언론의 호들갑, 사후약방문
숭례문의 전소로 문화재관리 부실에 대한 비판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한 숨 돌려 생각해보면 그렇게 중요한 문화재 관리를 왜 그렇게 부실하게 해 왔으며 언론은 그간 감시기능을 소홀히 해왔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개발만능의 성장논리와 효율성 강조, 자본우선의 경쟁사회 분위기 속에서 문화분야는 늘 뒷전이었지 않나?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은 행정기관과 의회는 문화분야에 얼마나 많은 예산을 지원했으며 배정순위에서도 우선에 두고 있는가를 보면 문화에 대한 관심과 투자의 정도가 얼마나 열악한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언론은 또 얼마나 제때 감시하고 예방조치했는지 무척 궁금하다.
찬란한 민족의 문화유산과 공공의 사회적 자산을 잘 보존, 관리, 감시하여 후손에게 원형대로 물려주어야 할 책무를 부여받은 국가나 공공영역이 제 역할을 다 하지는 못했으면서 벌써부터 책임공방의 난투전을 벌이고 있고 언론은 양비론에 열불을 올리고 있다. 이제 그 공공의 책임을 회피하며 아무 힘없는 노숙인을 낙인찍어 예비범죄자로 몰아가고 있기까지 한다. 정말 꼴불견이고 한심한 작태다.
이는 언론과 방송, 공공기관이 공정성을 보장하고 공공의 선을 추구해야 하는 책무를 포기하는 정말 비겁하고 저열한 행위이다. 사후약방문 격으로 호들갑을 떨고 있는 언론과 허물을 덮으려 급하게 수습하고 있는 행정기관이 문화분야에 대한 관심을 얼마나 지속하고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인지 두고두고 지켜볼 일이다.
문화유산에 대한 투자가 해결책
방화자 채모씨는 얘기했다. “토지매입산정가격이 자신이 요구한 금액보다 터무니없이 낮은데 불만을 품고 창경궁 문정전에 방화를 했다.” 그것도 모자라 “열차폭파를 계획했지만 대량인명피해가 걱정되어 숭례문을 택했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의 자존심과 자긍심을 대표한다는 숭례문의 가치가 토지보상가격의 ‘불만’과 등가할만한 가치밖에 되지 않는 것인가?
그 마을 사람들도 얘기했듯이 “그런 못된 짓을 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아주 정상적인 생각과 평범한 가정을 가진 사람의 문화인식이 이 정도라면 심각한 것 아닌가. 이런 상황이라면 전국의 모든 문화재 주변에 철망을 두르고 경비원을 24시간 둔들 방화목적을 갖고 달려드는 방화자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정책의 뒷전으로 밀려나 소외받은 지 오래된 문화분야의 홀대가 빚어낸 불행한 결과의 소산물에 다름 아니다.
문화는 그 사회의 성숙도를 나타내는 측도이자 문화인과 그 소양은 국가의 위상과 직결되며 문화적 자부심이 높은 민족과 국가일수록 문화재 파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어 채모씨처럼 문화재를 방화할 엄두도 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분야에 대한 전폭적인 투자와 장기적인 지원, 전인적인 교육이 수반될 때 가능한 일이다. 그럴 때에야만 촘촘한 철망을 걷어도 스스로 침범하지 않고 모두 주인으로 나서 문화재관리의 파수꾼이 될 것이다.
억울함에 대한 항변
노숙인에 대한 언론의 부당한 차별행위가 자행되고 있다. 노숙인은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사건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언제까지 당하고 살 것인가? 적어도 사실이라면 억울하지도 않지!, 오도하고 왜곡하는 주류언론의 태도와 자세는 비이성적이고 비열하다. 언론과 여론의 향배를 틀고 문제를 정확히 바로 볼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첫댓글 심각한 내용임은 틀림없는거 같어요...앞으로도 좋은일 많이 해주세요..*^^*
좋은 일이 따로 있나요. 남에게 희망과 기쁨으로 함께 행복하게 살려는 노력이겠죠. 그러니 심군님도 엄청 좋은 일하고 계시잖아요. 새해에는 소망하는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한해가 되길 바라고 방장으로서 든든한 강방 이끌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