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규의 國運風水] 붕괴사고 낸 현대산업개발 사옥이 反풍수적이라고?
조선일보 2022.02.20
건축풍수와 점으로 본
롯데와 현대의 마천루 경쟁
풍수개념은 다양하게 정의된다. ‘복지(卜之)·영지(營之)·거지(居之)·점지(占之)’란 개념 정의를 필자는 좋아한다. 터를 잡고(卜之), 건물을 짓고(營之), 입주하고(居之), 그랬을 때 그 결과가 좋을까 나쁠까를 점치는(占之) 행위가 풍수다. 그런데 이 네 가지 행위가 순차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동시적이다. 즉 건축 행위가 발생되기 전, 이 네 가지 행위를 종합 판단한다.
이때 시빗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은 점치는 행위다. 무당·도사·법사를 불러 돼지머리 놓고 굿하자는 것이 아니다. 터의 성격과 용도, 건물의 형태, 공간배치가 주변 자연·문화·역사 환경과 어울리는가를 살펴 길흉회인(吉凶悔吝)을 따지는 것이 점치는 행위다. 길(吉)하면 공사를 시작하고, 흉(凶)하면 포기한다. 길할 것 같지만 아쉽거나(悔), 흉할 것 같으나 미련이 있으면(吝) 설계·시공 과정에서 변화를 주는 것이다. 비보진압(裨補鎭壓) 풍수 행위다.
서울 삼성동 HDC 아이파크 사옥 전경(왼쪽). 왼편 아래에서 건물 상단으로 꿰뚫는 모습의 ‘벡터’ 구조물이 마치 몸에 대못이 비켜 찔린 듯한 모습을 연상케 한다. 사옥 오른편 한국전력공사 사옥은 지난 2017년 철거됐고 현재는 현대자동차 신사옥(GBC)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HDC 홈페이지
잠실 123층 ‘롯데월드타워’가 마무리 공사 중일 때인 2016년, 123층 전망대에 올라 주변을 살필 기회가 있었다. 공교롭게 바로 그즈음 현대자동차는 삼성동 옛 한국전력 본사 부지에 105층·553m 신사옥(GBC) 계획을 발표했다. 롯데월드타워보다 2m 낮은 높이였다.
국내 제1의 마천루를 짓겠다는 롯데 측은 경쟁하지 않겠다는 현대 측을 의아해하면서도 안심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롯데월드타워가 555m로 완성되자마자 현대 측은 115층에 높이 571m 건물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것이 실현될 경우 롯데월드타워보다 16m가 더 높아 대한민국 최고의 마천루가 된다.
롯데와 현대의 ‘마천루 경쟁’은 1920년대 미국 크라이슬러빌딩과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의 마천루 경쟁을 떠올리게 했다. 자동차회사 크라이슬러와 맨해튼은행 사이의 경쟁이었다. 1928년 크라이슬러 회장은 높이 259.4m로 세계 제1의 마천루인 크라이슬러빌딩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맨해튼은행은 260m의 마천루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화가 난 크라이슬러 측은 276m의 마천루를 짓겠다고 수정 발표를 했다. 이에 맨해튼은행은 3층을 높여 283m 높이로 짓겠다고 맞받았다. 당시 크라이슬러와 맨해튼은행 사이의 마천루 경쟁은 뉴욕 시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 건축가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롯데와 현대의 ‘마천루 경쟁’은 성사될까? 롯데 측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필자는 롯데 임원들에게 “풍수상 현대 측 마천루는 어렵지 않겠습니까?”라고 조심스럽게 점을 쳤다. GBC 주변의 자연·문화·역사환경을 근거로 한 것이다.(자세한 것은 졸저 ‘권력과 풍수’에 소개). 당시 GBC 건설 부지를 살폈을 때 눈에 띄던 것이 인접 HDC현대산업개발의 ‘탄젠트 파사드’ 사옥(아이파크타워)이었다.
파사드(정면부)보다도 건물 몸통을 관통하는 창과 같은 ‘벡터’가 더 특이했다. 풍수에서는 건축물도 살아있는 생명체로 본다. ‘벡터’는 몸에 대못이 비켜 관통하는 모습이다. 또 ‘탄젠트 파사드’는 그 현란함으로 주변 건물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 반(反)풍수적이다.
최근 광주에서 발생한 붕괴 사고 2건으로 인명 사고를 낸 HDC 사옥이라서 더욱 말들이 많다. 사옥은 그 회사의 철학을 표상한다. HDC 사옥은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한국건축사와 협업한 작품이지만, 리베스킨트 스타일이 강하게 반영된 건축이다. 리베스킨트가 풍수를 몰랐던 것도 아니다. 그의 경험담이다.
“풍수설은 기본적으로 건물과 물의 조화를 중요시하며, 자연의 이치 속에서 가장 바람직한 건물의 위치를 찾는 데 중점을 둔다. 건축가라면 누구나 마음에 담아두고 되새겨볼 만한 철학이다.”(저서 ‘Breaking Ground’ 중· ‘낙천주의 예술가’로 번역 출간). 그러한 리베스킨트가 왜 한국에서의 건축설계에 풍수적 점을 치지(占之)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