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를 돌아보세요. 이 곳이 궁입니다" | ||||||||||||
와! “현대식 건축물들이 뒤에 보이죠? 그 안에 이렇게 아름다운 곡선과 자연이 들어있어요. 느낌이 오세요? 이런 곳이 서울 도심에 있어요.” “다시 돌아보세요." “처마 끝에 북악산 정상이 걸리죠? 저런 곡선이 궁의 묘미랍니다. 경복궁 어디에서도 북악산을 볼 수 있어요. 북악산과 흐르는 듯한 처마의 곡선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느껴보세요.” “사람이 만든 것은 질리죠. 자연이 만든 것은 질리지 않아요. 궁은 사람이 만든 건축물과 자연이 조화로운 곳이에요. 자연이 보여주는 사계절에 따라서 궁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답니다.” 안내원이 이끄는 대로 경복궁을 거닐다 멈춰선 경회루 앞. 안내원의 한마디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꽃샘추위를 알리는 바람이 불어오는 금요일 오후 경복궁을 찾았다.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곳, 경복궁 "역사니까 간직해야죠. 그리고 조선시대는 가깝잖아요. 자료도 많이 남아있고 그림도 있으니 복원할 수 있죠. 여기는 역사를 간직한 곳입니다." 경복궁 안내를 맡고 있는 조연옥(26)씨의 말이다. 1시간 남짓, 경복궁을 둘러보는 동안 아름다움에, 놀라움에, 그리고 행복감에 감탄사는 끊이지 않았고 고개가 연신 끄덕여졌다. “경복궁은 태조시대에 지어져서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타 없어졌어요. 그리고 나서 고종시대에 복원하게 됐죠. 1395년에 지어져서 1592년에 불탔으니까 273년간 없었던 거죠. 500년 조선왕조에서 절반 이상동안 없었어요.” “임진왜란 이후에 경복궁을 다시 짓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막대한 공사비와 더불어 여러 논란에 휩싸이면서 창덕궁을 먼저 짓게 됐죠. 사실상 그때부터 경복궁은 정궁의 역할을 하지 못했죠. 고종시대에 흥선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다시 지어지고 고종이 창덕궁에서 경복궁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나서 고종은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겼고 경복궁은 정궁의 기능을 잃었어요.” “경복궁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어요. 아픔도 간직하고 있죠. 임진왜란에 불타고 명성황후는 이곳에서 시해됐으니까요.” “저 곳이 고종과 명성황후가 거처하던 곳이에요. 저 쪽에는 명성황후가 시해된 장소가 있죠. 지금은 복원 공사 중 이랍니다.” 궁, 알고 보면 더 재밌다 “향원정입니다. 매우 아름답죠? 건천정과 다리로 연결돼 있어요. 고종과 명성황후가 쉬던 곳인데요. 연못을 파서 가운데 섬을 만들어 정을 지은 것이에요. 북쪽으로 연결돼 있었는데 훗날 복원된 것이랍니다.” “저 다리를 혼자 건너는 상상을 해보세요. 물위로 가볍게 바람이 일고 주변은 고요하고 다리를 혼자 건넌다... 참 아름답죠. 저는 여기가 참 좋은데요. 연못 한 바퀴를 돌다보면 여기서 보는 것과 또 다른 미를 느낄 수 있어요.” 조연옥씨의 손길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었다.
“궁의 건물들은 그냥 보는 것과 달라요. 빛이 달라지면 보여 지는 게 다르다고 하잖아요? 보는 각도와 위치에 따라서 다른 모습, 다른 미를 보여준답니다. 여기서 보시니까 또 다르죠? 다른 건물들도 그렇답니다.” “궁에는 감춰진 게 많아요. 잘 보셔야 해요. 저기 보이는 십자 구멍이 보이시죠? 뭔지 아세요? 통풍구 랍니다. 저게 있다는 말은 저 건물이 온돌이 아니라는 말이에요. 온돌이 있는 건물은 아궁이가 있죠.” “저 건물에는 아궁이가 있죠? 그럼 저건 뭘까요? 굴뚝이랍니다. 이쪽 건물에서 땅으로 이어져 굴뚝을 냈어요. 연기가 건물에 가까이 있으면 임금님의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연기가 닿으면 단청이 상하기 때문에 건물과 굴뚝을 떨어뜨려 놓은 겁니다. 외국인들에게 꼭 물어보죠. 여기서 굴뚝을 찾아보라고. 다들 놀라요. Amazing!” “그렇다면 이 건물은 뭐 하는 곳일까요. 강녕전, 임금님 처소랍니다. 안에는 방이 9개에요. 임금님이 가운데 방에서 주무시고 나머지 8개 방에서는 상궁들이 숙직을 섰죠. 문이 3개가 나란히 있죠? 반대쪽에도 그렇답니다.” 조연옥씨의 궁에 대한 설명은 흐르는 듯 자연스러웠다. 그는 “알고 보면 알고 볼수록 궁은 아름다움과 놀라움을 전해준다”고 전했다. “요새는 궁에 대해서 알아보고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책도 많이 읽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궁이 많이 등장하니까 전문적 지식을 갖고 오시는 분들도 많죠. 그런 분들을 안내할 때는 저희도 신이 나서 잘 설명할 수 있어요. 물어보시는 게 많으니까 말씀드릴 것도 많죠.” “대장금이 일했던 수랏간을 묻는 분들이 많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물론이고 외국인들도 궁금해 하죠. 드라마가 아시아권에서는 엄청난 인기인가 봐요.” 그에 따르면 경복궁은 지속적으로 복원중에 있다. 그런 가운데 최근 드라마 대장금의 주무대였던 소주방이 발굴돼 복원작업에 들어갔다. 궁궐 곳곳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음식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요. 궁궐에서는 도시락을 드시는 게 금지돼 있어요. 궁궐을 소풍장소로 많이들 여기는데요. 궁은 역사의 현장이고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지 소풍장소가 아니에요.”
궁은 시내에서 고적하게 나들이할 만한 좋은 곳이긴 하다. 그래서인지 도시락을 싸들고 궁을 찾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이 그렇게 여기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일제가 궁을 일반에 공개하면서 공원으로 만들었어요. 창경궁을 동물원 식물원으로 바꿔서 창경원을 만든 것이죠. 심지어 연못을 파고 일본식 장자를 세워 놓기도 했어요. 궁궐의 격을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궁궐은 소풍가는 곳이 됐고 그런 인식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죠.” “여기가 동궁입니다. 동궁은 동쪽에 있는데요. 왜 그런지 아시겠어요?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이동하잖아요? 동궁에 기거하는 왕세자가 왕이 되어 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랍니다.” 궁 안에는 건물과 문마다 이름이 있다. 그에 대한 설명을 다 하려면 끝도 없겠지만 조연옥씨는 중요한 건물과 문이 있으면 부담스럽지 않게 의미를 전해준다고 했다. “궁에는 4개의 문이 있죠. 남쪽에는 광화문, 동쪽에는 건춘문, 서쪽에는 영추문, 북쪽에는 신무문이 있는데요. 건춘문은 봄 춘(春)자를 쓰고 영추문은 가을 추(秋)자를 쓴답니다. 역학에서 동쪽이 봄, 서쪽이 가을을 뜻하거든요. 건물이름, 문이름을 다 설명하려면 끝도 없지만 중요한 이름은 꼭 말씀을 드려요.”
설명을 듣고 있자니 공부해서 다시 오고 싶어진다. 아니 더 있고 싶어진다. 그가 이끄는 손 끝에 걸린 경치라도 보고 가고 싶어진다. 궁을 한바퀴 돌아 다시 근정전 앞으로 왔다. 급한 마음에 지나쳤던 임금의 집무실 궁궐의 정전이다. 티비와 영화에서 보던 바로 그 곳. 돌계단이 있고 밑으로는 넓은 마당이 보인다. 신하들이 가득 들어차 엎드린 장면이 눈에 선하다. “임금님은 가마를 타고 다녔죠. 이 길은 임금님만 다닐 수 있는 길이고 그 옆길이 신하들이 걷는 길입니다. 가운데가 봉곳 솟아있죠? 비가 오면 아래로 비가 흐르게 돼 있어요. 그리고 경복궁은 입구부터 끝까지 1미터의 고도차이가 있어요. 비가 오면 비가 북에서 남쪽으로 흐르게 돼 있고 임금이 다니는 이 길에서 양 옆으로 비가 흐르죠. 빗물이 고이지 않는 답니다. 저 쪽에 하수구가 있죠? 저쪽으로 물이 빠집니다.” 궁 안내원이 전하는 궁 예찬론 시선이 닿은 곳으로 이끌렸다. “여기는 제가 궁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 중에 하나에요. 처마와 행각, 근정전, 북악산이 보이죠?” 조연옥씨와 함께 경복궁을 안내하는 이들은 모두 9명이다.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별로 안내원이 있고 하루 3-4차례의 안내를 맡는다고 한다. “궁을 사랑하냐구요? 당연하죠. 그렇지 않으면 이 일을 어떻게 하겠어요?” 미술사학과와 영문학을 복수전공 했다는 조연옥씨는 문화재에 관심이 많았던 터에 문화재청 홈페이지 안내원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했다고 전했다. “겨울에는 양말, 장갑 세 겹씩, 내복은 두벌, 옷도 껴입어요. 그래도 춥죠. 입과 귀는 열려있어야 하니까요. 아무리 추운 날 이어도 안내를 한답니다. 보러 오신 분들이 있으니까요. 겨울엔 눈이 덮이지 않은 궁을 보러 오신 분들이 문이 열릴 때까지 줄서서 기다리기도 해요. 궁을 보면서 즐거워 하시는 분들을 보면 저희도 즐겁답니다.”
“현대인들 참 바쁘게 살죠? 저도 집에 가면 바쁘게 사는데요. 궁에 있으면 여유가 있어서 좋아요. 마음도 편해 지구요. 궁에 와보시면 아실꺼에요. 도심에 이런 여유와 자연, 아름다움이 어우러진 곳을 갖고 있는 나라는 흔치 않아요.” 조연옥씨의 환한 웃음의 배웅을 뒤로 궁을 나섰다. 다시 찾을 때는 어떤 느낌일까? “아 그리고, 궁에서는 담배 필 수 없는거 아시죠?” 궁을 나서고 꺼내들었던 담배를 웃으며 다시 담았다. 한적한 궁을 나서자 처마 뒤로 보였던 현대식 건출물이 시선에 들어온다. 잠시 일상에서 빠져나왔던 것일까? 여유로웠던 발걸음과 마음은 어느새 빨라지고 있었다.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 김경환 기자 <'현장의 감동 살아있는 뉴스' ⓒ민중의소리 www.vop.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첫댓글 모셔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