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선암사는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사찰입니다. 선암매가 피기 시작하고 부터 한달 뒤에는 수백년 묵은 자산홍과 왕벚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하여 일년에 몇번을 다녀오기도 하는 사찰이며, 조계산을 두고 양쪽에 아름다운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어서 문화재와 자연을 즐기고자하는 우리들에게는 큰 복(福)인지 모르겠습니다. 인근에 낙안읍성이 함께 자리하고 있어 옛날의 성을 볼 수 있는 것도 기쁨이고, 인근 금둔사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전 핀다는 납월매화가 있어 봄의 여행지로는 추천을 드리고 싶은 곳입니다.
경상도 땅의 사찰은 크고 우람하지만 전라도 땅의 가람은 작으면서도 아름다운 멋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태고종 총림 선암사는 어떤 절일까?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조계산(曹溪山) 동쪽 기슭에 있는 사찰이며, 현재 한국불교 태고종의 유일한 수행 총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찰로 손꼽히기도 합니다. 다른 사찰보다 입구에서 부터 걷는 평지형 산길의 풍광이 좋아서, 또 승선교(보물)를 끼고 있는 진입로의 경치를 더 좋아하는 방문객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산 속의 절들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오히려 선암사의 진입로는 다른 절에 비하면 힘듦이 없는 적당한 편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하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2018년 6월 30일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 열린 제42차 회의에서 한국이 신청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했으며 선암사도 함께 포함 되었습니다.
선암사 연혁을 보면 백제 성왕 5년(527년) 현재의 비로암지에 초창주(初刱主) 아도화상(阿度和尙)이 처음 사찰을 창건하였고, 산 이름은 청량산(淸凉山), 사찰 이름은 해천사(海川寺)라 하였다고 하지만, 학계에서는 신라 말 헌강왕 때 이창주(二刱主) 도선국사가 현 가람 위치에 절을 창건하고 이름 선암사로 하였다는 설을 더 믿습니다. 당시 1철불 2보탑 3부도를 세웠으며, 지금도 이들 중 1철불 2보탑 3부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선암사에는 3무(無)가 있습니다. 첫째로 천왕문(사천왕이 있는 문)이 없고 두번째 대웅전 정면 어간문(스님들이 드나드는 문)이 없으며 세번째로 석가모니 부처님 양쪽 협시보살이 없습니다.
또 선암사에는 화엄사와 같은 각황전이 있는데 크기가 가로1칸 세로1칸으로 되어 있습니다.
고려 중기 삼창주(三刱主)인 대각국사 의천(고려 문종의 네째 아들)이 대각암에 주석하면서 선암사를 중창하였습니다. 대각국사는 천태종을 널리 전파하였고 선암사는 호남의 중심 사찰이 되었습니다. 대각국사 중창건도기(重創建圖記)에 의하면 당시의 중창은 법당 13, 전각 12, 요사 26, 산암 19개소 등의 방대한 규모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 명종 때의 문인 김극기(金克己 1171-1197)는 시(詩)에서 "적막하고 고요한 수행의 사찰"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이후 조선 전기 선암사가 어떠했는지는 모릅니다. 중종 35년(1540년) 일주문을 중수했다는 기록만 남았을 뿐입니다. 또한 조선 중기 왜란 시기 선암사도 다른 절과 마찬가지로 1597년 정유재란 때 큰 피해를 입었는데 모든 전각이 불에 타고 철불, 보탁, 부도, 문수전, 조계문, 청측만이 남았다고 전합니다. 현종 1년(1660년) 경준(敬浚), 경잠(敬岑), 문정(文正) 등 세 승려가 대웅전을 세우는 등 8년간 크게 중창했지만 전쟁 이전의 사세를 복구하기에는 무리였다고 합니다.
순천 선암사 동, 서 삼층석탑은?
절 서쪽에 높이가 10여 장(丈)이나 되고 면이 평평한 큰 돌이 있는데, 사람들은 옛 선인이 바둑을 두던 곳이라고 하여, 이 때문에 ‘선암(仙岩)’이라는 절이름이 생겼다고도 합니다.
절 안의 승선교를 지나 마당에 들어서면 대웅전 앞에 좌우로 3층석탑 2기가 서있다. 전체 높이 4.7m로 2단으로 이루어진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입니다. 규모와 수법이 서로 같아서 같은 사람의 솜씨로 동시에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하나씩의 기둥 모양을 새기고, 각 기단의 윗면에는 3층의 굴곡을 이룬 괴임돌을 두어 윗돌을 받치고 있습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몸돌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지붕돌은 처마밑이 수평이고 밑받침은 각 층이 4단입니다. 지붕돌 정상에는 2단의 굴곡을 이룬 괴임이 있는데, 지붕돌에 이와 같은 수법을 한 것은 희귀한 일입니다. 탑의 머리장식으로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이 남아 있고 그 위에 작은 석재들이 놓여 있습니다.
이 두 탑은 완전히 동일한 수법으로 만들어졌으며, 각 부에 다소의 손상을 입기는 했으나 규율성이 느껴집니다. 위와 아래의 비율도 건실하고 우아하며 신라시대 석탑의 전형 양식을 잘 계승하고 있습니다. 다만 기단의 가운데기둥 조각이 하나로 줄고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도 각 층 4단으로 줄어 신라 중기 이후인 9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선암사 동.서 삼층석탑(보물)
승선교(보물)와 강선루
선암사 대웅전은 중앙 어간문이 없어서 옆문으로 드나들어야 합니다.
선안사 대웅전에는 일반 사찰과 달리 협시 보살이 없고 부처만 있습니다.
화엄사 각황전과 달리 가로 세로 한칸의 각황전입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간 걸려 있는 선암사 해우소(센뒤)입니다.
선암사 /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 앞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천년기념물 선암매(수령 600년)
선암사에는 수백년 된 매화가 50여 그루 있습니다.
수령 수백년 된 선암사 자산홍과 영산홍도 4월이면 여기저기 피어납니다.
3월 10일 쯤에는 광양 매화 마을과 화엄사 매화 그리고 산동면 산수유를
3월 중순에는 선암사 매화 그리고 4월 중순에는 선암사 자산홍과 왕벚꽃이 핍니다.
봄 여행을 원하시면 즉극 추천을 합니다.
첫댓글 고향 거창 딸기 하우스에 딸기 모종 정식에 다녀오느라 글 연결이 조금 지연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사진을 보면, 너무 선명하고, 생생하여 절을 다녀온 듯한 기분입니다.
제가 배운대로라면 탑의 양식이 신라 말, 즉 9세기 양식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절을 창건할 때 탑도 동시에 건립한다고 하니 -----,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합디다마는.
탑의 형식이나 절의 창건 연대를 감안하면 선생님 추측이 맞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