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言約 - (창15:1-21)
양병모 목사님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약속하시는 장면이다. 결국 아브라함과의 약속은 우리에게도 유효하게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언약의 내용을 잘 알고 그 축복을 우리의 것으로 살아야 한다.
이제 아브라함이 75세에 고향을 떠나와 그로부터 한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점점 나이가 들어간다.
그러면서 그는 점점 마음의 걱정으로 다가오는 것이 자손이 없다. 아내는 열살 적으니 당연히 경수가 끊어졌다.
이것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신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1절,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그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두 가지
방패와 상급
이것이 두려워해서는 안될 이유이다. 우리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며 사면에 끊임없는 골리앗들이 다가온다.
그 속에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방패는 ‘마겐’ (히) 으로 ‘보호자, 둘러싸다’ 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어떻게 적들이 공격해 와도 끄덕 없다는 것이다.
상급은 ‘솨르’ (히) 으로 ‘품삯’ 으로 하나님자신이 품삯의 대가라고 하신다.
품삯으로 하나님을 주신다. 포도원에 일하러 들어간 자들이 일찍 들어간 자나 늦게 들어간 자나 똑같이 받는데
그 품삯이 주님이다. 구원의 자리에 가는 것이다.
그러니 은행잔고가 좀 떨어져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 우리는 하나님을 받은 자이다.
그러나 묻지도 않았는데 자식이 없다고 이야기 한다.
2-4절,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네 몸’ 은 아브라함인데 그가 애굽에서 데리고 온 여자 하갈과 결혼하지 않나? 그녀에게서 난 아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몸에서 나오지 않았나? 나왔는데….왜 이삭을 이야기하는가?
이스마엘을 낳은 것은 사라의 몸에서 낳게 해 주신다는 그 약속을 못 믿어서 젊은 여자와 아이를 낳았다.
사라는 경수가 끊어지고 아브라함은 아직 씨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아스마엘은 믿음으로 난 자녀가 아닌
불신의 자녀이고 이삭은 믿음의 자녀다.
갈4: 22-23절,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30-31절,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첫 번째 약속은 씨
바로 믿음의 자녀이어야 된다는 것이다. 즉 약속,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영적인 믿음의 자녀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영적자녀의 번식을 이야기 하는 것,
이것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첫 번째 약속인데 바로 씨에 대한 것, 그래서 별에 비유한다.
다니엘 12:3절에 보면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결국 지혜있는 자들, 빛나는 인생들의 후손을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자녀들은 믿음의 자녀들, 영적자녀들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향하여 내 믿음의 자식이라고 한다. 형제자매 개념이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도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내 형제자매라 하셨다.
이제 언약의 첫 번째는 자식에 대해서인데 이 뜻은 ‘제라’ (히) 라는 뜻으로 아예 씨를 말한다.
그런 자손들을 많게 해 주겠다는 것, 그래서 별을 보라 하시고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할 때 이 ‘믿으니’ 가
바로 ‘아멘’이다. ‘아주 견고하게, 확고하게 붙들다’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그 약속의 말씀을 붙든 것이다.
그래서 아멘 한다는 것은 이 약속을 견고히 붙든다 라고 할 때 아멘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멘은 책임이 뒤따르는 것이다. 아멘을 잘 할 때 하나님이 의롭다 여기시는 것이다.
5-6절,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렇게 아멘을 잘 한 여인을 통하여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신다.
룻기 1장에 보면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꽉 붙잡고 간다. 룻의 후손으로 다윗이 나오지 않나?
그 다음에 꽉 붙들은 여인이 있다. 마리아다.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하며 말씀을 붙잡고 가서
남자도 몰랐는데 가서 출산 준비하는 것이다. 남들에게는 손가락질 받는 일이었다다. 이것이 믿음이다.
이 마리아를 통하여 그리스도가 오신다.
지금 아브라함의 아멘은, 논리적 상식적으로는 안되지만 붙잡은 것이다. 룻도 친정아버지 집이 가까이 있는데
그 모르는 곳을 따라가야 했나? 그런데 따라갔다.
이렇게 말씀을, 언약을 붙잡고 간 여인을 통하여 씨가 오는 것이다. 믿음의 씨가…
우리도 말씀을 붙잡고 아멘으로 믿을 때 그리스도의 씨가 되는 것이다. 온전한 씨인 그리스도로 씨가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 약속은 씨의 약속이다. 이제 육체의 씨를 믿음의 씨로 바꿔주리라.
엄청난 약속이다. 이 씨가 바뀌어야 영원한 나라에 가는 것이다. 그 영원한 씨인 그리스도가 내 안에 오셨을 때
가는 것이다. 영생의 나라는 육체의 씨, 아담의 씨로는 갈 수 없다. 두 번째 오신 씨로 갈 수 있다.
두 번째 약속은 땅
이제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땅과 우리가 생각하는 땅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보자,
창세기 1장은 땅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한데 점점 그 땅의 물이 물러가고 그 땅에다가
식물을 심고 나무를 심고 열매 맺고…하는 땅의 이야기로 나온다.
예레미아4:1-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네가 만일 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 네가 흔들리지 아니하며 진실과 정의와 공의로 여호와의 삶을 두고 맹세하면 나라들이
나로 말미암아 스스로 복을 빌며 나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와 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
가증한 것을 버리고 와서 땅을 갈라고 하신다.
4절,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가증한 것을 버리라고 하는 것이 마음 가죽을 베는 것, 가죽은 딱딱하다. 묵은 땅도 딱딱하다.
묵은 땅은 마음가죽을 뜻한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를 내 버리실 때 창세기 3장 23절에 보면
“너의 근본이 된 토지를 갈라” 근본이 된 토지는 불순종했던 그 마음, 그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라는 것이다.
4:22-23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땅이 혼돈하고 공허한가? 22절을 바꾸어 표현하는 것이다.
너희 땅이 좋은 땅이었는데 거친 땅이 되었다는 것이다.
26절, “보라 내가 본즉 좋은 땅이 황무지가 되었으며
그 모든 성읍이 여호와의 앞 그의 맹렬한 진노 앞에 무너졌으니”
6:19절,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거절하였음이니라”
땅이 듣는가? 우리의 마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호세아 10장에서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12절,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땅에다 공의를 심으라고 하신다. 의로 올바른 것을 심으라는 것, 의로 오신 그리스도를 심으면 인애, 사랑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심겨지면 온유와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나무였는데 악을 밭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열매를 맺힌 것이다.
포도를 맺어야 하는데…이것을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13장은 네 종류의 밭 이야기다.
23절,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좋은 땅은 말씀을 듣고 …그러니까 말씀은 씨앗이다. 좋은 땅은 좋은 마음, 부드러운 마음이다.
그럴 때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이 열매에 대해서는
갈라디아서 5:22-23절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이 사랑은 아가페 사랑의 열매다.
희락은 ‘카라’ (헬) 로 환경과 여건을 뛰어 넘는 기쁨이다. 내 안에서 솟아나는 질 좋은 기쁨이다.
화평은 ‘에이레네’ (헬) ‘샬롬’ (히) 으로 이 뜻은 예수님의 대속을 통한 화평이다. 우리가 빚쟁이인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빚을 갚아주신 것, 이것은 대속, 속량의 내가 갚을 빚이 없는 화평이다. 빚에 눌려 있다가 찾아오는 평강…
죄책감을 뛰어 넘는 평강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후 오셔서 제자들이 떨고 있을 때 평강, 평강, 하신 것이다.
이런 것은 진리의 말씀을 듣고 깨달았을 때 그 진리의 말씀의 열매다.
두번째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인 땅은 옥토밭으로 곧 열매를 약속으로 주신 것이다.
내 안에 계신 진리의 열매, 성령의 열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이제 믿음의 씨를 네 안에 넣어주리라 네 자손들에게 넣어 주리라…
그러니 그 믿음의 씨를 잘 받아서 열매 맺으라는 것이다. 땅을 주셨는데 옥토밭이 되었나? 말씀의 씨를 주셨는데…
열매를 맺고 있는가?
우리는 과정중에 있다. 때로는 가시덤불밭, 때로는 돌작밭에 있지만 이제는 네게 갈아서 열매 맺으라는 것이다.
이것이 은혜다. 주신 씨앗을 심기 위해 근본된 토지인 마음땅을 갈아 엎어야 한다. 그냥 대책없이 내 보내시지 않고
씨를 주셨다.
잘 생각해 보라, 아브라함이 가나안땅으로 들어가는데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젖과 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곧 젖과 꿀은 씨앗이다. 젖과 꿀이 흐르기에 가치있는 땅이다.
씨앗이 있는 땅에 갔으니 이제 열매 맺으라는 것, 가나안 땅보다는 나일강유역이 더 기름지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는
젖과 꿀,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서 기름진 것, 곧 말씀이 땅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말씀을 받아드리고 가는 것이다.
애굽땅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에 가면서 그들이 언약궤를 가지고 가는 것이다. 가지고 가서 갈아엎고 심으면
확실이 열매를 맺는다. 씨와 열매에 대한 약속이다.
문익점이 중국에서 목화씨를 붓뚜껑에 숨겨 가지고 오지 않았나?
그런데 우리에게는 씨앗을 쏟아부어 주셨다. 주신 씨앗도 심지 못하고 열매 거두지 못하는 것, 이것이 아버지의 분노다.
받은 씨앗은 열매 맺어야 한다.
이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하시는 언약식의 내용이 나온다.
창15:811
“
7-11절,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소와 염소와 양을 쪼개도 그 위를 지나간다. 언약을 어길 때 죽음에 대한 경각심으로 주시는 것이다.
이 때 비둘기를 쪼개지 않는 것은 레위기1:17절에 보면 다 찢지 말도록 하신다. 레5:8절, 몸은 아주 쪼개지 말라고
나와있다. 비둘기의 뜻은 ‘성령’을 의미한다.
솔개는 사단이다. 마태복음에서도 이 새가 와서 말씀을 쪼아먹고 간다. 이제 아브라함에게 씨와 열매에 대한
엄청난 약속을 하시는 장면이기에 사단은 이 씨와 열매를 사람들이 받으면 치명적이 된다. 이제 완전한 씨로 오신
그리스도를 알려주시려는 그 순간에 사단이 방해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진리의 말씀이 들어오는 것을 사단은 방해한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사단이 와서 돌덩이로
떡덩이가 되게 기적을 베풀라고 한다. 그러나 거절하신다. 말씀을 믿고 가야지 기적과 이적을 믿고 가는 것을
거절하신다. 사단은 믿음의 씨인, 말씀을 막는 것이다. 말씀 앞으로 가는 것을 어떤 방법으로든 막는다.
예배의 자리에 가는 것을 어떤 방법으로든 막는다.
이제 아브라함이 좀 두려워 깊은 잠에 드는데…우리가 깨어 있어야 함을 이야기 하시는 것
12절,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13-21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이제 그 약속을 시작하자, 하시는데 애굽에서부터 시작하신다.
애굽이 혼돈과 무질서의 땅, 길가밭의 땅이다.
아브라함은 바벨론에서 나왔으므로 이제 그 후손들은 애굽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애굽은 아주 몹쓸 땅이다. 황무지다. 세상의 땅, 욕심과 정욕의 땅이다.
그런 우리가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말씀이 흐르는 땅으로 가는 것이다.
우리 안에는 선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오직 선하신 분이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만이 선하시다.
우리는 애굽에서 시작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가야한다.
그런데 거기 가기 전에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하신다. 금은보석…을 가지고 나와 성막을 짓게 하시는데
그 안에 온 금으로 쌌던 것이 바로 언약궤다. 언약궤는 그 안에 말씀을 담는 상자다. 씨 담는 상자다.
그래서 이 상자속에 시내산에서 씨를 주시는 것이다.
큰 재물을 얻는다고 하시더니 그 금으로 언약궤를 만들라고 하시더니
그러더니 그 말씀의 씨앗을 거기다 넣으라는 것이다. 결국 아브라함의 씨라는 것은 믿음의 씨앗이고 결국 말씀을
따라 갔던 아브라함이었기 때문에 말씀의 씨앗을 주신다는 것이다.
또 약속하신 땅, 가나안 땅을 주신다. 이 주신 젖과 꿀, 씨앗을 가지고 가는 땅이다.
가나안 땅 들어가면 다 이스라엘 땅이었나? 들어가니 아메리칸이 들어갔을 때 인디언이 살고 있었던 것처럼
10족속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너희들이 싸워서 차지하라는 것이다.
3족속은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므로 마음을 바꾸어 주시지만 그래도 7족속이 있는 것이다. 이들과 싸운 것이다.
이제 말씀을 맺으며…땅은 어떻게 쟁취하나? 싸워야 한다. 즉, 우리 마음밭은 어떻게 만들어가나? 싸우면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길가밭 깨뜨려야 하고 돌작밭 골라내야 하고 가시덤불밭은 뽑아 옥토밭 만들어야 한다. 우리땅은 애굽땅이었다.
가나안 땅에 왔어도 한꺼번에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가져온 씨앗을 주셨다. 이 씨앗으로 싸우라는 것이다.
내 안의 성령의 열매, 그 사랑과 희락과 평강, 어느 것 하나도 놓쳐선 안 된다. 생명 걸어야 한다.
이 열매 있으면 환경이 좀 어려워도 족한 것이다. 이것이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앞에서 일체의 자족의 비결을 바울은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싸우라 하시는 것이다.
마태복음 10:34-39절,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무슨 말씀인가? 자기 집안식구와 싸우라? 이 뜻은 형제자매들과 싸우라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집안식구다. 내 안에 거짓아비가 있다. 진리가 있는데 누룩을 가르쳤던 거짓아비.. 세상 것을 때로는 비젼과
꿈이라는 것으로 포장하여 욕심을 부추겼던 거짓아비가 있다. 나인 줄 알고 붙잡고 있었던, 내 아내인줄 알고 붙잡고
있었던, 내 자식인줄 알고 붙잡고 있었던, 욕심과 정욕의 가나안 칠족이 내 안에 있는 것이다.
싸우라는 것이다. 무엇으로 싸우나? 검을 가지고 싸운다. 검은 하나님의 말씀의 검이다. 전신갑주도 말씀의 검이다.
그들의 시내산에서 받은 그 말씀의 검을 가지고 싸우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온전한
진리의 말씀을 주셨다. 그것을 가지고 싸우라는 것이다. 이 싸우는 과정이 자기십자가이다.
여기 나오는 자기목숨, 자기사랑, 이것이 소돔고모라의 특성이다. 이런 것을 못 박고 이제 굳은 것 베어내라…
그럴 때 열매 맺게 해 주신다. 너희들은 좋은 포도열매를 맺도록 지어진 것이다. 그런데 거짓 열매를 맺었구나.
열매를 바꿔주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씨앗을 바꾸어야 한다.
이미 온전한 씨앗, 66권의 말씀으로 주셨다. 이제 그리스도 오셨고 더욱 깨닫게 해 주신다.
이 진리의 씨앗 가지고 심어야 한다. 심을 때 굳은 마음을 베어내는데 싸워야 한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은 힘이 있다. 운동력이 있다…그러므로 오늘도 돌 몇 개 뽑아 낸 것이다. 그런 가운데 언젠가
열매 맺힐 것을 소망하자. 사랑 희락 평강….내 안에 천국을 이뤄주셔서 누리다가 만나자 하는 것이다.
이미 주셨는데 주었는지도 모르고 끊임없이 애굽의, 바벨의 삶을 계속한다면 이것이 아버지의 엄청난 아픔이다.
오늘, 언약,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이 씨에 대한 약속과 열매에 대한 약속…
이 엄청난 축복의 약속을 저와 여러분의 것으로 끌어 당기는, 믿음으로 아멘으로 붙잡고 나아가는
그런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첫댓글 축복의 아버지 아브라함과
어머니 사라의 자녀들로서
말씀의 씨를 주시니 옥토밭 널리 일구어
아가페 그 크신 사랑과 천상의 기쁨,
내면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평강의 강
인내, 자비, 착함, 충성. 온유, 절제의 아름다운 열매 올려드리는
우리의 나날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