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쪽 사람들에게 들키면 어쩌려고 했냐. 그쪽에서 너희 둘을 쉽게 믿어주지도 않았을텐데..”
“그래서 처음에 방배동 사업장 하나를 내어준 것 입니다. 처음엔 저희들을 잘 믿지 않더니, 사업장 하나를 넘겨주니까 그다음부터는 의심 안하던데요”
“너희둘 덕분에.. 일본에서 잘 안풀리던 일도 다 풀렸다! 고맙다 정말.. 그동안 쭉 눈엣가시였던 한사장쪽도 뿌리뽑아 버렸으니.. 속이 다 시원하다! 수고 많았다!”
“아닙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저희가 어떻게 회장님을 져버릴수 있겠습니까. 회장님께 받은 게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건 아마 평생을 갚아도 다 못갚을 겁니다”
똑부러지게 말을 잘하는 건이.. 정빈이는 역시 나와의 일이 걸려서 그런지 아빠에게 말을 건네지 못한다.
밥을 다 먹고 엄마와 난 거실로 나왔고, 아빠와 건이, 정빈이는 술을 마셨다.
두시간쯤 지났나? 술을 마시던 세사람이 거실로 나왔다.
“예나야~ 지금도 아빠가 많이 미워?”
취했구만;; 아빠한테서 술냄새가 난다. 눈은 빨갛게 충혈되었고..
“응. 진짜 진짜 미워”
“냉정한 녀석... 아빠가 뭘 그리 잘못했냐~ 다 널위해서 그런거지.. 우리 딸을 너무 많이 사랑해서......”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난 아빠 소유물이 아니야. 나도 내인생이 있다고.. 한번뿐인 인생인데.. 나 하고싶은대로 안하면 너무 억울하잖아?”
“예나가 너무 많이 커버렸구나..... 아빠는... 예나가 어렸을때처럼 언제까지나 아빠만 따르고, 아빠만 바라봐주기를 바랬는데.......”
“뭐야! 아빠한테는 엄마가 있잖아! 그런 감정은 엄마한테나 가지라고;;”
조용히 있던 건이가 말을 꺼낸다.
“저... 회장님.. 제가 이런말씀 드리기는 뭐하지만.. 정빈이.. 좋은 녀석입니다. 예나에 대한 감정은 한순간의 감정이 아닌 것 같습니다. 몇 년동안 이 녀석을 지켜본 저 입니다. 정빈이가 이렇게 한여자한테 목메는 것은 처음 봤습니다. 사실 이번일도.. 다 정빈이의 생각이었습니다. 모두다 예나를 위한 것이었구요..”
아빠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생각에 잠기신 듯..
“회장님. 예나도 정빈이를 많이 좋아하는거 아시지 않습니까? 두 사람.. 서로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일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두사람이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건이가 나와 정빈이를 위해 아빠에게 이런 말을 하다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일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 말은 맞는 말이지만.. 그럼 건이는?? 건이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이면 좋을텐데..
“그래요. 예나아빠.. 건이말이 다 맞아요. 우리 연애할 때 생각해봐요. 우리 부모님도 당신과 결혼하는거 많이 반대하셨잖아요. 그런데.. 지금 우리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살잖아요. 예나랑 정빈이도 분명히 그럴꺼예요. 지금 억지로 떼어놓으면.. 다들 불행해질 뿐이라구요. 당신 마음은 편할꺼 같아요?”
앗싸! 엄마까지!! 잘한다 잘해~
아빠는 아직도 아무 대답이 없다. 이제 좀 허락해주지...... 엄마랑 건이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그때 갑자기 정빈이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아빠에게로 다가갔다.
응??? 맙소사!! 정빈이는 아빠앞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
#72.
“뭐.. 뭐냐!!”
아빠도, 엄마도, 건이도, 나도..... 모두 놀란 눈으로 정빈이를 쳐다보았다.
“회장님... 저 예나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합니다. 예나와 저 사이.. 허락해주십시오. 예나가 저에게는 너무 과분한 존재라는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예나 행복하게 해주겠습니다. 마음아프게 하지 않겠습니다. 울리지 않겠습니다..... 저에게 한번만 기회를 주세요. 허락은 그 다음에 해주셔도 괜찮습니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아빠옆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빠.. 나 정빈이 없으면 정말 안될거 같아.. 정빈이 못보는 동안에 너무 힘들었어. 그러니까 나 생각해서라도 아빠가 져줘.. 정빈이 못미더운 사람 아닌거 아빠도 잘 알잖아. 제발..”
한동안 침묵의 시간이 있었다. 이윽고 아빠가 입을 열었다.
“일어나라 둘다.....”
“회장님...”
“어서 일어나!! 내가 너에게 그렇게 가르쳤었냐? 남자는 함부로 무릎을 꿇는게 아니다. 다시는 무릎같은거 꿇지 말아라”
“이 일은 제 인생에 있어서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무릎 꿇는게 아니라 더한 일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일어나래도!! 예나 너도 일어나라. 일어나서 얘기하자”
“허락하겠다고 말해줘... 안그러면 나도 안일어나”
“이녀석이! 이제 아빠를 협박하는거야?”
“...............”
“휴우...... 알았다 알았어!! 내가 니 고집을 어떻게 꺾겠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그말이 딱 맞네.. 그러니까 일어나!!”
아빠의 말 뜻은?? 이제 허락한다는거 맞지??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빈이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아직도 무릎 꿇고 앉아서 아빠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
“진짜야?? 진짜?? 그럼.. 나 정빈이랑 만나도 되는거 맞지??”
“그래 이녀석아!! 정빈이를 만나든지 말든지.. 너 말대로 너의 인생이니까 알아서 해라. 아빠가 더 이상 참견하지 않겠다.. 아직 허락한다는 건 아니야. 그냥 두고보겠다는거야..”
“와아~~ 아빠!! 고마워~~~”
난 너무나도 기뻐서 아빠를 부둥켜 안았다.
“못된녀석.. 딸자식은 키워봤자 아무 소용없다니까..... 정빈아. 그만 일어나라. 예나를 너에게 주겠다는 약속은 아직 못하겠다. 하지만.. 우리 예나를 잘 보살펴준다면.. 행복하게 해준다면..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
“감사.. 합니다!! 회장님.”
그제서야 정빈이도 벌떡 일어나서 아빠에게 고개숙여 절을 했다.
우리가 바라던 대로 일이 풀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행복한 기분.....
정말.. 그동안 슬펐던거, 아팠던거는 깨끗이 잊어버렸다. 우린 앞으로 행복할 날이 더 많을테니까........
아빠가 잠이 든 사이.. 간만에 정빈이, 건이와 회포를 풀라는 엄마의 허락을 맡고 셋이서 밖으로 나왔다.
“이야~ 축하한다! 정빈아..”
“고맙다! 건아.. 다 니 덕분이야.. 너 아니었으면.. 아마 일 못해냈을꺼다”
“내가 뭘 한게 있다고.... 정말 축하해~ 예나야..”
“오빠 고마워.......”
“이 건!! 그전에 확실히 해둘게 있다.....”
“뭐?”
“너..... 아직도 예나 좋아하냐? 동생으로가 아니라 여자로서.. 나와 같은 감정으로.....”
정빈이가 왜 갑자기 그런 얘기를 하는지 알수없다.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얘기인데...
“아니라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난 예나가 행복해지길 바래. 너도 행복해졌으면 좋겠고.. 너희둘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됐어. 그러면 나도 행복한거야. 그러니까.. 나 신경쓰지 마라! 난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건아.......”
“오빠........ 오빠도......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꺼야. 오빠가 빨리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어.. 오빠는 정말.. 나에겐 친오빠같은 존재야”
그래.. 친오빠.. 남자친구는 될 수 없지만 오빠는 될 수 있잖아? 정말 좋은 오빠..
“아~ 난 먼저 가볼께! 약속이 있어서 말이지......”
사실은 약속같은거 없다는건 알고 있다. 이 늦은 시간에 무슨.. 눈치껏 빠져주려는 건이.. 뒷모습이 쓸쓸해보여서 왠지 우울해졌다.
내 기분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정빈이는 뒤에서 날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73.
“이제 다 끝났어......”
“응......”
“근데 기분이 왜 안좋아보여? 건이...... 때문에?”
“아니... 그냥....”
“그래.. 나도 건이 생각하면 기쁘지만은 않지. 그래도 어쩌겠어.. 건이 곧 좋은 사람 만날 거야”
“그래야지~”
“야.... 근데.. 전부터 느낀건데 너 살 빠졌지?”
“응?? 별로 안빠졌는데?”
“이상하다.. 전에 오토바이 탔을때.. 분명히.. 살 빠진거 같았는데....”
“무슨 소리야?”
“확인해보면 되지!!”
정빈이는 내 가슴을..... 덥썩! 손으로 잡았다.
“꺄악~" 난 놀래서 소리를 질렀다.
“뭘 그렇게 놀래?” 반면에 그런 짓을 해놓고도 태연한 정빈이..
“너..너... 내가 지금 안놀라게 생겼어!! 뭐야. 진짜.. 짐승!! 변태!!”
“야!! 내여자 내가 만지는데 뭐 어때? 그리고.. 뭐 처음 만지는 것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그.. 그래도!! 갑자기 그러니까.. 놀랬잖아!!”
“아.. 다행히 아직도 그대로(?) 있네~ 살빠지면 가슴도 줄어든다잖아.. 넌 절대 다이어트 하지 마라!!”
“변태!!!!! 멀쩡한 얼굴로 잘도 그런말을 하는구나? 바보!!”
난 정빈이를 마구 때렸다. 이제 좀 철이 드나 했더니 여전히 늑대......
정빈이는 나를 꼭 끌어안더니 뽀뽀를 해댔다.
“나 지금 너무 기쁘다.. 널 이렇게 다시 안을 수 있어서.. 너도 그래?”
“몰라!! 늑대야!!”
“삐지기는~ 장난 좀 친거야~”
“난 가끔씩 의심을 하게 된다니까.. 너가 내 몸을 보고 좋아하는건 아닌지..”
“야! 내가 그럴놈으로 보여? 몸 보고 좋아했으면 다른 여자도 많았어. 바보야;; 난 너가 유예나이기 때문에 좋아하는거야..”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하다가도 금방 이렇게 진지한 얼굴을 보여주는 녀석.....
녀석이 진지한 얼굴을 할때마다 심장이 터질거 같다. 그리고.. 난 이녀석의 진지한 얼굴에 매우 약하다. 나에게 다가오는 모습에.. 또 입술을 허락하고 말았다.
오늘은 개학하는 날! 나의 생활은 방학하기 전으로 돌아갔다.
정빈이와 건이도 다시 집으로 들어왔고 같이 또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바뀐 점이 있다면 엄마와 아빠도 함께 살게 된 것.. 일본에서의 일을 무사히 끝마치시고 완전히 한국으로 돌아오셨다.
“엄마, 아빠! 학교다녀오겠습니다~”
“회장님. 사모님.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오늘 일찍 들어와라! 내가 맛있는거 사줄테니까~ 수업끝나면 바로 와!”
전보다 건이와 정빈이에게 한층 부드러워지신 우리 아빠..
난 아빠 앞에서도 당당히 정빈이와 손을 잡고 길을 나섰다.
대문을 나가자마자 난 정빈이와 건이 둘에게 팔짱을 꼈다.
“자! 빨리 가자~”
“어? 야! 너 건이한테 팔짱은 왜 낀거야? 얼른 안빼?”
“뭐 어때~ 우리 오빠인데~!! 그치? 오빠?”
“그래~ 뭐 어떠냐? 유치하게 질투하는 꼬라지하고는... 우습다! 한정빈!”
“이건! 이자식~ 그래~ 이해심 많은 남자 한정빈이 그냥 넘어가주지.... 나중에 보자ㅡㅡ 예나야~”
“응?”
쪽! 녀석은 내가 고개를 돌린 틈을 타서 입술에 뽀뽀를 했다. 넓은 길에서....... 교복을 입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 쳐다봤다.
“뭐야! 늑대!! 쪽팔려 죽겠어!”
“사랑해.......”
정빈이는 내 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 역시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가 없는 녀석.....
“나도..........” 영원히.......... 사랑해................
힘들게 얻은 내사랑.. 그리고.. 값진 우정. 난.. 이 두가지를 모두다 지켜낼꺼야!
#74.
5년 후.........
빰빠라빰빰! 일어나세요~
으....... 시끄러워......... 저놈의 알람!! 더 자고 싶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