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싹은 돋아나고 고목은 사라진다.’는 것은 자연의 순환(循環) 이치다. 손자 민재가 태어나더니 노모는 이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 장례 일정을 무사히 마친 것을 감사드린다. Come Back하니 온 몸은 녹아내리는 듯 몸살이 난 것 같지만, 머리 속은 열흘간의 일들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이 감사해야 할 일들을 기록으로 남겨 두고 싶다.
9월 21일 밤 위급-별세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비행기 표 한 장을 구하여 이튿날 새벽에 떠나 저녁 8시 경 흑석동 중앙대 병원 장례식장은 찾아갔다. 입관 절차는 이미 끝나고 동생들과 조카들은 조문객 맞이하느라 바빴다. 오랜만에 여러 친척 친지들을 뵈었고 동생들과 조카들의 직장 문상객들이 많이 들려 갔다. 동생, 조카들과 함께 밤새 빈소를 지켰다.
9월 23일 아침 일찍 막내 동생이 다니는 예우림교회에서 장로 권사 그룹이 와 6시 영결 예배 후 6시 반 영구차와 조객 일행의 버스가 병원을 출발하였다. 관(Coffin)을 검은 상복 입은 손자들과 손자 사위 6명이 달라 붙어 운구하니 보기 좋았다. 교통량이 적은 이른 아침인 탓으로 대관령을 넘어 10시 경 동해 승화원(화장장)에 당도했다. 마침 우리의 예약 시간 10시 반 전후로 다른 예약이 없었음으로 통상 2시간보다 빠른 약 1시간 반에 걸쳐 화장 절차를 마칠 수 있어서 감사했다. *동해안에 화장장이 이곳 하나밖에 없음으로 보통 때는 꽤 붐빈다고 한다.
화장 시작 전 서울서 교회 버스로 내려온 강도사 일행과 함께 조용하고 엄숙한 화장 예배를 보았다. 어머님의 시신이 화로에 들어가기 전 나는 관을 붙들고 '어머니! 이 세상에 오셔서 자식 여럿 낳아 키우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육신은 불태워지더라도 영혼은 하늘나라로 가시길...' 소리 지르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어머니의 몸은 불태워져 한 되박만한 유골 가루로 만들어져 장남인 나의 가슴에 안겨졌다. 사람이 이 세상에 왔다가 갈 때는 모든 것 다 두고 한 줌의 흙이나 재로 변한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46년 전 묻히신 아버지 묘소로 향하였다. 가파른 경사와 아카시아 숲으로 길을 덮은 험한 장지라 유골 가루를 상자에 넣어 모시고 가서 아버님 묘소에다 합장한 것이다. 날씨는 어렸을 때 가을 소풍을 온 듯 청명하여 감사했다. 어머니가 전에 다니시던 교회에서 장지로 와 마지막 하관 예배를 가졌다. 송정교회 주 목사님은 전에 집사이셨던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가실 때는 홍 권사님으로 불러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돌아가신 때가 추석이 지난 결실의 계절인 9월 말인데다가 장례일도 좋은 날씨를 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 한국이 지난 9월 초까지만 해도 폭염이다가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는 좋지 않은 날씨였다고 한다. 덮거나 춥지 않은 때에 돌아가신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장례 절차가 다 끝나고 참석한 분들이 헤어진 다음 우리 형제들과 누이 내외가 함께 어머니가 두 달 전까지 계시던 동해항 옆에 위치한 고택으로 내려갔다. 아무도 없는 집 대문에 들어설 때 노모가 버선발로 뛰어나오며 반기는 듯 환상에 사로잡혀서 어지러웠다. 이제는 정다운 어머니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슬픔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90수를 넘기셨음으로 사람들은 ‘호상(好喪)’이라고들 하지만 어머니를 잃은 자식은 떠나가신 이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다.
동생들과 이튿날까지 부지런히 유품과 집안 정리를 말끔히 하였다. 자식들이 다 떠나 버리고 오로지 노모만 혼자 오래 지키며 지내시던 고택이라 많은 것을 버렸다. 쓸 수 있는 것들은 길 가에 내다 놓으니 금방 집어갔다. 어머니가 쓰고 보관하셨던 인두, 삼베 천, 사진, 할아버지 문집 등 조그마한 유품들을 형제들이 한두 개씩 나누어 보관하기로 하였다.
이제는 고향 집으로 내려가 살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그 시골 집은 당분간 형제와 조카들이 공동 Holiday House로 이용하기로 하였다. 동해안 주변에 깨끗하고 좋은 Beach와 해수욕장들이 많고 동창회, 집안 모임 등으로 들를 일들이 자주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한국은 주말 농장이랑 '제2의 시골 휴식처 집(Second House)'이 유행이란다. 텃밭을 짓겠다는 분은 금새 나타났다.
장례 후 3일째인 9월 23일 일요일은 아침 일찍 묘소에 모여 삼우제 참배를 하고 9시에 송정교회 주일 예배에 참석한 후 목사님을 따로 찾아뵙고 감사 인사와 헌금을 드렸다. 막내 제수 씨는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나신 인사로 시루떡을 맞추어 교회와 이웃에 돌렸다. 그런데 어머니 별세하신 날이 주말이나 주일날이 아닌 것이 정말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주말이나 주일 날 상(喪)을 당하면 친척, 친지들 연락하는 일이 쉽지 않고 교회를 이용한 장례 절차도 여의치 않다.
돌아가신 어머니께 너무나 감사한 일은 생전에 텃밭에 파, 부추, 마늘 등 특용작물을 재배하여 천만 원이라는 큰 돈을 저축하였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돈엔 자식들이 수시로 드린 용돈도 일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틈틈이 밭 농사일 하여 5일장에 내다 팔아서 손자들 들르면 용돈도 주고 당신의 장례비를 모아온 것이다. 낮에 그냥 놀기보다 하고 싶은 일하면서 지내신 것이 장수의 비결이었다. 말년에 귀 잘 안 들리고 허리도 꼬부라진 ‘꼬부랑 할머니’가 눈물겨운 쌈짓돈을 남겨 놓고 가신 것이다. 자식들에게 장례비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생각이셨다.
장례비는 총 천이백만 원이 소요되었다. 아직 두 동생이 교직, 은행에 현직으로 있고 군인 장교 등 직장 생활하는 손자들도 여럿인 연유로 조위금이 상당히 들어왔다. 모인 조위금을 장례비 부족분과 공동경비(집세 등 공과금과 어머니 기일 추모회비 약 5백만 원)로 남겨두고 나머지를 동생들에게 나누어 가져가도록 하였다. 부조한 분들에게 앞으로 사유가 발생하면 갚아야 할 빚들이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명복을 빌어주고 조문, 조위금을 보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
3개월 전 한국 가 뵈었을 때 심부전증으로 숨을 몰아쉬시면서 ‘멀리 외국 가 있는 너희들이 이렇게 와 있을 때 내가 죽는 것이 임종도 할 수 있고 비행기 값 들여 오지 않아도 되니 좋을텐데 하나님은 왜 죽기를 바라는 내 소원을 들어 주지 않으시는지?’ 원망하던 일이 생각난다. 죽음을 앞둔 고령의 어머니이기에 그런 바램도 이해가 가지만 자주 뵙지 못해 죄송한 마음으로 들렀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자식으로서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프고 슬펐다.
동생들 이야기로는 어머니가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영면하셨다고 한다. 사람들은 죽을 때 평안한 표정도 있지만, 일그러진 모습, 악을 쓴 표정 등 여러가지라고 한다. 어머니는 아주 평안한 표정으로 가셨다니 참말로 감사한 일이다. 어머니는 본래 천성이 착하고 겸손하셔서 좋은 것 있으면 남에게 먼저 주시는 '자신보다 남을 위하라'는 주님의 뜻을 따라 사셨으니 넓으신 하나님의 품에 편안히 안기셨을 줄 믿는다.
어머니가 90세 고령이 되면서부터 멀리 있는 장남으로서 매일 빠지지 않는 기도 제목이 ‘노모의 편안한 죽음과 좋은 계절에 소천’하시는 것이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이 저의 줄기찬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다. 큰 고통 없이 돌아가게 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께 감사, 거듭 감사드린다. 다시금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자비하시다는 것을 확실히 믿는다. (2011.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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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ChCh 집에 돌아 왔을 때 이숙희 권사는 Hanmer Springs 시니어들 영성 세미나에 가고 없네요!!!
가는 데마다 나는 싱글이 잘 되는군요!!!!
귀하신 권사님 이제 천국에서 최집사님 위해서 기도하시겠네요. 환하신 미소를 지으시면서..
감사합니다. 그러실 줄 믿습니다...
최준항 원로집사님께서 건강하신 것이 어머님을 닮아서 그런가 봅니다...사람들은 최준항원로께서 저보다 어린줄 알고 있던데...어머님은 이제 고통도 근심, 걱정이 없는 영원한 세계에서 편안하게 계십니다...
손주들도 먼저 본 할아버지 선배님이시지요. 거의 매일 운동하셔서 진짜 건강은 토니 집사님이십니다.
이건 확실합니다. 눈이 좀 침침한 것은 하나님 사업의 일종인 교회 카페에 열심이신 때문이지요...
사도 바오로를 조금씩 닮아가는 존경하는 토니 집사님!!!!! 감동!!!
최준항 집사님의 글을 읽으니 제 마음도 숙연해지고 저의 불효자 모습도 돌아보이고 그러네요. 글 감사합니다.
자식은 어머니의 분신이니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한이 없겠지요...살아 계실 때 많이 많이 사랑하세요!!!
어느 글에...누군가가...신이 모두에게 와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대신 보내주었다고 하는데... 집사님의 어머님 모습이 절로 떠올려지는 듯 합니다. 저도 어머니라는 이름을 갖고 있음에도 왠지 저와는 먼 이야기 같습니다...수고하셨어요 집사님 ...
감사해요.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시고 사랑을 듬뿍 주시니 소중한 분이시지요.
저의 어머니 돌아가신 일을 너무 자세히 적은 것 같은데, 이번에 체험한 것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이 세상을 떠날 때 평가되어지는 게 아닌가? 또 진실하고 간절한
Continuous Prayer는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확실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명복을 빌어주고 조위를 표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집사님, 이 세상에서 어머님을 다시 뵐 수 없어 슬프시지만 아주 편안한 하나님나라에 가셨으니 힘내세요!! 목요예배때 뵈니 더 젊어지신 것 같았는데... ... 지금 생각하니 집사님이 응답받으신 감사와 기쁨때문이지 않았나하네요. 그동안 수고하셨어요~~ 목요저녁에 교회에서 두 분 뵈니 참 좋았어요!!
저의 어머님이 편안히 하늘나라로 가셨을 것이라는 확신이 드니 참 기뻐요.
여러 분들이 명복을 빌어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