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 가이드’에도 등장한 전북 고창, 시대를 담은 아름다운 고장

[혜운(재형맘)]

‘미슐랭 가이드’에도 등장한 전북 고창, 시대를 담은 아름다운 고장

‘미슐랭 가이드’를 아시나요?

<대한민국 미슐랭 가이드의 표지> (사진 : 중앙일보)

‘미슐랭 가이드’를 아시나요? 1900년 타이어 회사 ‘미슐랭’이 각종 여행 정보를 담아 발간한 책에서 시작된 ‘미슐랭 가이드’는 현존하는 여행 가이드 북 중 가장 명성 있는 책자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주로 세계의 맛집에 별점을 매기는 ‘레드 가이드’ 시스템이었던 ‘미슐랭 가이드’가 여행지에 별점을 매기는 새로운 ‘그린 가이드’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미슐랭 사에서 대한민국을 주제로 한 450 페이지 분량의 ‘미슐랭 가이드-그린’을 출판한다고 해서 화제입니다.

‘미슐랭 가이드’에서 다룬 대한민국의 명소는 총 23곳 입니다. 그 중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우리에게도 귀에 익고 눈에 익던 일반 명소들과는 달리 생경하게 느낄 법한 곳이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곳은 바로 전라북도 고창의 고인돌 박물관입니다. 고창에 고인돌 박물관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창의 고인돌들이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멋진 장소라는 사실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 못하지요. 그렇기에 ‘미슐랭 가이드’에서 추천하는 이 명소, 안 가볼 수 없습니다. 게다가 ‘미슐랭 가이드’에서 가장 높은 별점이라는 별 세 개를 받은 장소입니다. 우리나라의 오랜 태고적 신비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고창입니다. 그러나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공간이라 할 순 없습니다. 어느 곳보다 흘러온 역사를 가장 잘 담고 있는 아름다운 고장, 전라북도 고창으로 떠나볼까요.

‘미슐랭 가이드’가 만점을 준 대한민국 박물관, 고창 고인돌 박물관

<고창 고인돌 박물관> (사진 : 한국관광공사)

고인돌하면 마냥 ‘옛 사람들의 무덤’으로 치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인돌 박물관 이야기 전, 먼저 고인돌의 유래부터 알아보아야 하는 것이 맞겠지요.

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넘어갈 무렵이었습니다. 무기 및 다양한 생활 도구들은 대개 돌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청동과 구리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면서 그들이 많은 사람들의 권력을 쥐게 되고 많은 이들을 호령하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청동과 구리로 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그들의 능력은 돌로 무기를 만드는 사람들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힘이 강력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당연히 사람들 간의 상하 관계가 생기고, 그것이 곧 계급과 지배자 그리고 국가로 그 범주가 넓어지게 된 것입니다.

고인돌은 지배자의 죽음을 시각화 하기 위한 묘지의 역할로 처음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고인돌은 순 우리말로 큰 돌을 받치고 있다는 ‘고이다’, ‘괴다’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청동기 시대의 유물인 이 고인돌들은 고창에 하나의 군락을 형성하고 있을 정도로 그 수가 많은데요. 세계적으로 가장 밀집도가 높고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이 있다는 점에서도 고창의 고인돌은 확실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보아도 무방합니다.

이를 반증하듯 2000년 12월 사적 제 391호인 고창의 고인돌 군락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도 등재되며 본연의 가치를 공고히 했습니다. 이후 세계적인 문화 유산인 고인돌 군락을 보존, 관리하고 관광 자원으로서의 활용을 위해 고인돌 공원과 고인돌 박물관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지요.

고창의 고인돌 박물관 내로 들어가면 다양한 테마로 많은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단순한 고인돌의 특징과 모양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 상까지 다양하게 보여주고자 하는 노력이 느껴져 많은 이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지요. 내부에는 당시 사람들의 움집 생활, 고창 선사인들의 죽음과 그에 따른 화장법과 매장 방법, 이후 고인돌로 탄생하기까지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설명들은 비단 눈으로만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박물관 주변에는 청동기 시대를 재현해 놓은 듯 한 선사마을과 선사마당, 그리고 체험마을까지 조성되어 있는데요.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을지 세세한 부분까지 사람 모형으로 표현해 놓은 부분은 마치 당시의 생활을 직접 하고 있는 양 사실성을 가미시켜 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체험마을에서는 직접 실제 고인돌의 크기와 무게가 흡사한 돌을 청동기 시절 방식 그대로 끌어보는 독특한 체험도 할 수 있게끔 설치해놓았습니다. 고인돌과 흡사한 무게이니만큼 두 세 명이서 끌어보는 건 무리겠지만, 둥그런 통나무를 깔아놓고 큰 돌을 굴려보는 체험은 고창 고인돌 박물관이 아니라면 하지 못할 독특한 경험일 것입니다.

박물관과 고인돌 유적지와는 걸어서 30분 정도의 거리로 떨어져있는데요. 멀게 느껴지는 분들에게는 그 곳까지 갈 수 있는 탐방 열차가 있으니 고인돌을 직접 보는 데에 문제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고인돌이 약 30,000기가 있습니다. 그 중 고창에는 거의 10%에 달하는 2,000기가 있고, 고인돌 유적지에는 대략 수 백 기가 다양한 형태와 특징을 뽐내며 있습니다. 너른 벌판에 놓여진 고인돌을 보면서 우리는 시간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습니다. 3,000년에 가깝게 거슬러 내려간 과거에서 만들어진 고인돌이 숱한 세상의 풍파를 겪으며 지금 우리의 눈 앞에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가슴이 벅차 오르는 감동으로 와 닿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고려 시대를 담은 아름다운 사찰, 선운사와 도솔암

<선운사 전경> (사진 : 한국관광공사)

고창에서 나고 자란 미당 서정주 시인의 시 중 ‘선운사 동구’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전문이 짧아 이 글에도 실어보고자 합니다. ‘선운사 동구, 서정주.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읍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읍디다.’ 선운사의 아름다운 봄 동백인 춘백(春栢)을 만나보지 못하고 돌아서는 서운한 마음을 노래한 것이지요. 또한 가수 송창식의 노래 중에도 ‘선운사’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습니다. 역시 선운사의 서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동백을 칭송한 노래입니다. 이렇듯 고창의 숨은 매력을 간직한 아름다운 선운사입니다.

문학에도 등장하고, 노래에도 등장하는 선운사는 사찰 특유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자연까지 함께하며 그 멋을 더하고 있습니다. 특히 동백나무의 아름다움은 유명한데요. 본디 이 동백나무는 미관을 위해 심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산불이 났을 경우 사찰을 보호하기 위해 심었던 사찰 보호림에서 출발한 것이 바로 이 춘백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 이 동백나무들은 2,000 그루에 달하며 하나의 아름다운 군락으로 재탄생 했습니다. 이러한 ‘동백나무 군락’은 선운사의 대표적인 명물 중 하나로 자리잡으며 봄마다 붉은 빛의 꽃으로 가득히 선운사를 적시고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웅장한 대웅전의 위용과 수막새 하나까지도 정성이 가득한 전경은 사찰 특유의 향내마저 기분 좋게 만들어줍니다. 또한 너른 관내 한 쪽에 위치한 범종은 전북의 유형 문화재에도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그 모습이 정교하고 품새 또한 멋드러진 모습을 자랑합니다. 선운사를 한 바퀴 둘러본 다음 약 30분 정도를 더 올라가면 선운사의 또 다른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도솔암이 등장합니다. 도솔암까지 올라가 선운사를 품어 안고 있던 선운산의 경치를 바라보노라면, ‘선운산은 호남의 금강산이다.’라는 옛 선조들의 말에 일면 수긍이 가며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온갖 기암괴석들과 무수히 많은 나무들이 장관을 이루기 때문이죠. 곧 여름이 되면 더욱 푸르게 녹림이 우거질텐데 그 모습을 가서 보는 것 역시 고창의 필수 여행 루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선운산의 경치만을 보기에는 도솔암의 기묘한 느낌이 또 우리를 끌어당기며 바쁘게 합니다.

<도솔암 내 마애불> (사진 : 연합뉴스)

도솔암에는 보물 1200호에 등록되어 있는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 줄여서 마애불이라 불리는 바위가 단연 백미입니다. 마치 조각을 한 듯 양각과 음각의 조화가 눈에 띄는 마애불은 그 크기부터가 우리를 압도합니다. 높이는 15.6m, 폭은 8.48m에 달하는 거대한 마애불은 크기로 따졌을 때 한국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그 위용이 대단하다고 하네요. 재미있는 부분은 마애불의 명치 끝에 있는 감실인데요. 감실은 대개 석굴이나 고분 등의 한 부분을 깊이 파서 그 안에 작은 불상이나 성체 등을 모셔둔 곳을 일컫는 비밀스런 공간입니다. 하지만 마애불의 감실에는 일반적인 불상이 아닌 나라의 흥망을 가르는 비결록이 들어 있다는 소문이 퍼졌었다고 합니다. 이를 보여주듯 당시 나라가 흉흉하던 시절 동학의 접주 손화중이 빼내어 갔다고 하는데요. 아직 그 비결록의 행방은 묘연하다고 하니 감실의 전설을 떠올리며 도솔암을 방문하여 마애불을 만나보는 것도 좋겠지요. 멋진 경치 감상이 끝나고 나서 내려오다 보면 천연 기념물 제 354호인 장사송이 있습니다. 600여 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소나무인 장사송을 보고 내려오시면 선운사의 감상이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하지만 선운사에 한 번도 못 간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다고 하니 언젠가 다시 선운사를 만나게 되겠지요?

과거와 현재가 함께 공존하는 고창, 고창 읍성 및 고창 축제

<고창 읍성 전경> (사진 :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의 3대 읍성을 아시나요? 바로 서산의 해미 읍성, 순천의 낙안읍성, 그리고 지금부터 살펴 볼 고창의 고창 읍성입니다. 서산의 해미 읍성은 종교적인 박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곳이라 그런지 참 마음 저릿한 공간으로 여겨지고, 반면 순천의 낙안읍성은 실제 읍성 내에서 숙식하며 체험을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친근하고 편안하게 느껴지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고창 읍성에 발길이 닿는 순간 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자연미에 마음을 빼앗기고 맙니다. 뿐만 아니라 만들어진 계기에서도 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왕과 국정에서 읍성을 축조하라고 지시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고창 읍성은 조선 시대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호남 대륙을 지키기 위해 백성이 십시일반 노력해서 읍성을 지어냈습니다. 비록 그 이후 오랜 기간 방치되어 있었으나 1976년 복원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었지요. 게다가 보수 작업을 할 때도 단순히 자리 맞추기 형국으로 인공석을 끼워 넣은 것이 아니라 자연석으로 보수하면서 그 본연의 멋을 더했답니다. 물론 읍성 주위의 모든 건물들까지 완벽하게 복원한 것은 아니지만 동헌, 객사, 작청, 감옥 등 대부분의 볼거리들은 다시 재건되어 여행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습니다.

읍성의 성벽을 따라 걷는 길은 또 다른 즐길거리 입니다. 앞서 말한 ‘호남의 금강산’인 선운산을끼고 돌며 그 산세를 감상할 수 있기도 하고, 굽이 돌다보면 5월에 만개하는 철쭉들에 언덕이 붉게 물든 장관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 어느 순간에서는 고창군의 전경이 온 눈과 몸에 담길 듯 다가옵니다. 이렇다 보니 단순히 읍성을 보러 온 것이라기 보다는 고창의 비경들을 한 눈에 보러 온 것이 아닐까 하는 기분 좋은 착각이 들 정도이지요.

읍성 내에서도 다양한 테마를 가진 걷기 좋은 길들이 많습니다. 성곽을 둘러 꽃 구경을 할 수 있는 길, 소나무가 우거져 볼 거리를 자아내는 읍성 내부 길, 또한 곧은 대나무가 가득해 서늘한 한기마저 느껴지는 맹종중림까지 제각기 다른 색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렇듯 고창 읍성은 매력 가득한 공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지금까지도 고창은 본연의 고유한 멋을 유감없이 내뿜고 있습니다. 해마다 다양한 축제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고창에서는 가까운 6월에는 복분자 축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고창의 대표 명물인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이지요. 또한 7월에는 고창의 자랑 제 21회 고창 수박 축제가 열리는데요. 고창 수박을 먹어보면 그 다음부터는 다른 수박 못 먹는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로 당도와 품질 모두가 높다고 하니 수박 축제에 참여해 즐거운 여름을 보내시는 것도 꽤나 좋은 여행 코스가 되지 않을까요?

시대를 담고 있는 고창으로

‘자연과 문화와 행복의 고장’ 고창의 캐치 프레이즈 입니다. 자연을 살리면서 문화와 역사를 담고 있는 고창의 면면들을 보니,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전북 고창에서 역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슐랭 가이드’에 실릴 정도로 그 의의가 가득한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과, 고려시대의 불교를 엿보고 자연의 아름다움까지 함께 느낄 수 있었던 선운사와 도솔암, 조선시대의 다양한 매력을 흠뻑 느껴볼 수 있었던 고창 읍성과 지금까지도 그 멋을 유지하고 있는 현재의 고창 축제들까지. 이보다 더 시대를 담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가 어디 있을까요? 태고적 신비부터 작금의 모습까지 아낌없이 보여주는 고창의 매력을 따라 한 발 나아가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