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중에 하나!
요13:21-30(2008-09-05)
1,진실로 하시는 말씀!
2,너희 중에 하나가!
3,제자 중에 하나가!
지난 주 계시록 집회를 한 울산 집회 갔었던 교회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용은 집회한 다음날부터 교회 안에, 회개의 역사는 물론, 각종 은사의 역사가 일어나, 교회가 성령의 불이 뜨겁게 붙었다는 소식이었다.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들을 만나 주시기를 원하신다.
성령님도 오늘 여러분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시기를 원하신다.
(요13: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영접”은 수동적으로 집에 앉아서 영접할 자를 기다림이 아니다.
“영접”이라는 말은 능동적으로 영접할 자를 찾아서 모셔드리는 말이다.
주님께서 “보낸 자”를 기쁨으로 “영접”을 해야 함이 주님을 “영접”함이 된다.
주님을 “영접”함이 주님을 보낸 하나님을 “영접”함이 된다고 했다.
주님은 상전으로 “영접”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아주 심각하게 하셨다.
그것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영접”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씀하셨다.
1,진실로 하시는 말씀!
(요13: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에 민망하여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20절에서도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하셨다.
21절에서도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반복해서 강조하셨다.
여기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씀은 원문에 “아멘, 아멘”으로 된 말이다.
발 씻김을 받는 제자들이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주님께서 “아멘, 아멘”하시는 것이다.
물론 예수님의 말씀이 “진실로”가 아닌 말씀이 없지만 오늘은 더 “진실로, 진실로”의 말씀이셨다.
3년 이상을 다리고 다니면서 양육을 했음에도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령에 민망”한 중에 하신 말씀하셨다.
이는 오늘의 말씀이 너무, 너무 중요한 말씀이라는 사실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받는 태도가 중요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으로부터 중요한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 말씀을 듣는 태도가 너무나 불양했기에 말씀을 직접 들으면서도 그 말씀을 이해하지를 못했었다.
제자들의 발까지 씻겨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었지만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매번 귓등으로 들었었다.
오늘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모두가 다 남의 이야기를 듣듯이 했다.
아무도 자기를 향한 말씀으로 들으려 했던 제자가 없었다.
말씀을 남의 이야기로 듣는다면 말씀의 복을 받을 수가 없다.
말씀을 자기의 이야기로 받을 때 말씀의 복을 받을 수가 있다.
어떤 사람은 말씀을 자기 이야기로 들으면서도 아멘으로 듣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을 자기 이야기로 듣지 못하고 있다면 크게 회개하여야 한다.
말씀을 자기 이야기로 들으면서도 기분 덜 좋게 들었다면 더 크게 회개해야 희망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어떤 말씀이라도 다 “진실로, 진실로”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로, 진실로”란 말은 그 말씀이 “아멘, 아멘”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멘, 아멘”이라면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응하던지 말씀그대로 “아멘”이라는 무서운 말씀임을 알아야 한다.
여러분들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면 축복으로 아멘이고,
여러분들이 말씀을 듣고도 회개가 없으면 하늘의 용서도 없이 아멘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들을 향하여 오늘 날 “진실로, 진실로” 간절하게 외치고 있을 때 “아멘, 아멘”으로 말씀을 들으실 수 있기를 축원한다.
2,너희 중에 하나가!
21절에서 “너희 중에 한 사람”을 지목했다.
“너희 중에 한 사람”이란 말이 가장 좋은 말이기도, 가장 나쁜 말일 수도 있다.
“너희 중에 한 사람”이란 말이 좋은 일을 하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가장 좋은 말이다.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이란 말이 나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나쁜 말이다.
오늘 주님께 “너희 중에 한 사람”을 말씀하실 때 제자들은 서로 서로를 의심했다.
(요13:22) 제자들이 서로 보며 뉘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제자들이(유다를 제외하고는) 강퍅하여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의심을 하고 있었다.
주님은 심각하게 제자들에게 “진실로, 진실로” 말씀하시는데도 제자들의 마음은 완악해져있었어 서로 의심만 했었다.
22절에 “제자들이 서로 보며”라는 말씀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왜 자신을 보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보고 있는가?
아마도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칭찬의 말씀을 하셨다면 얼른 자신을 보았을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돈 이야기를 했던지, 명에 이야기를 했던지, 권세 이야기를 했다면 남을 바라보지 않았을 것이다.
말씀을 들을 때 남을 바라 볼 여유가 없다.
말씀을 들을 때 옆 사람을 볼 여유도 없다.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들, 자신을 볼 수 있기를 축원한다.
66권 하나님의 말씀이 다 여러분들을 위한 말씀임을 믿으시기 바란다.
66권 하나님의 말씀이 다 여러분들을 위한 말씀이란 사실이 여러분을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가?
그럼에도 어떤 분들은 이 귀한 말씀의 복을 남들에게 빼앗기고 있다.
말씀을 들으면서 남들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 말씀이 자기에게 임하지 말고, 그 사람에게 임해서 그 사람이 복을 받으라는 sign이기 때문이다.
요한은 늘 예수님 가장 가까이에 있었다.
오늘도 요한이 어린아이처럼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 있었다.
그 때 베드로는 머릿짓으로 요한에게 sign을 해서 “너희 중에 하나”라는 말이 누구를 가리켜 하는 말인지를 예수님에게 물어줄 것을 요청했다.
참으로 못난 베드로이다.
알고 싶으면 자신이 직접 예수님에게 물어 볼 것이지~
요한도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정신이 온통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그래서 요한이 몸으로는 가장 가까이 예수님의 품에 있었지만, 예수님의 마음은 전혀 헤아리지를 못했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몸으로만 교회 출입하지 말고, 마음도 영도 함께 출입할 수 있기를 바란다.
믿음의 삶은 몸과 마음이 함께해야 바로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매우 궁금해 할 때, 떡 한 조각을 찍어서 가룟 유다에게 주면서 그를 지목했다.
물론 그때까지도 주님은 자신을 팔려는 유다의 마음에 회개를 기다렸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를 지목했고 또 떡을 찍어서 주면서 그가 주님을 팔자임을 표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에게 떡을 주시면서 “너희 중에 한 사람”을 지목했다.
거기 함께 있었던 제자들은 아무도 예수님의 의도를 몰랐으나 가룟 유다 본인은 “너희 중에 한 사람”을 말할 때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가룟 유다는 이 귀한 회개의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끝내 마귀 사탄의 길로 가고 말았다.
(요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오늘도 마찬가지다.
회개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감사함으로 회개하지 않으면 저만 멸망의 길로 가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고 있을 때, 그때가 가장 중요한 때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고 있을 그때가 바로 회개할 가장 적합한 때이다.
가룟 유다의 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멘”으로 들려지지가 않았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아멘”할 수 없었던 가룟 유다는 끝내 예수를 돈으로 바꾸고 만다.
왜 하필이면 가룟 유다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 그것도 악한 일에 한 사람이 되려 했을까?
왜 가룟 유다는 좋은 일에 일등하지 못하고 악한 도구로써의 그 한 사람이 되려 했을까?
여기 여러분들은 “진실로, 진실로”인 하나님의 말씀 앞에 조건 없이 아멘하면서,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선한 일에 그 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3,제자 중에 하나가!
30절을 같이 읽자.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믿음은 사람은 밤을 조심을 해야 한다.
하루의 밤에도 조심을 해야 하지만, 마음의 밤, 영의 밤을 더 조심해야 한다.
항상 마음이 밤인지, 낮인지를 살펴 조심을 해야 한다.
가룟 유다가 밤을 선태하게 된 것은 돈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자기 유익만을 추구하게 되면 언젠가는 밤을 선택하게 된다.
밤은 선택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삶을 원하는가에 따라서 자동으로 밤을 선택하게 된다.
“곧 나가니 밤이더라.”는 말은 하루의 밤임과 동시에 영적인 밤을 함께 말하고 있다.
사람이 낮에 사람이 되지 못하면 밤의 사람이 된다.
사람이 영의 사람이 되지 못하면 육에 사람이 되고 만다.
회개가 없는 영의 상태가 곧 밤이기 때문이다.
어렵다는 핑계 속에 너무 세상일에 몰두하지 말라!
바쁘다는 핑계 속에 너무 주의 일에 등한히 하지 말라!
에베소교회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첫 사랑을 버린 교회가 되고 말았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있었던 일이다.
(마8:21)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제자 중 하나가 제자의 부름을, 세상 일 핑계로 헌신짝처럼 버리고 만다.
사마리아 동네에 많은 사람이 살았지만 그 중에 한 사람이 예수 만나는 복을 받는다.
(요4:7)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열 문둥이 중에 사마리아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감사하면 칭찬을 받는다.
(눅17:15)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눅17:16)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눅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사도 바울은 믿음의 삶을 경주자에 비유해서 상받는 자가 하나임을 말했다.
(고전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 중에 그 한 사람 같은가?
공처가.(요즘 여성 파워시대)
어떤 남성들만 모이는 친목 모임이 있었다.
그 때 리더가 운동장에 O와 X를 표시해 놓고 선택하도록 했다.
“집에서 아내의 말에 반대하지 못하는 분은 O표시에 서시고, 그렇지 않은 분은 X표에 서십시오.”라고 했다.
그랬더니 O표에 서신분이 전부였고 X표에 서신 용감한 한 사람이었다.
사회자가 그분이 너무 용감하다 싶어서 물었다.
“당신은 어쩌려고 X표에 위험하게 서게 되었는가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오늘 집을 나올 때 마느라가 사람이 많은 곳에 가지 말라고 해서 X표에 섰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요즘 사람들이 다들 이렇게 변했다.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 때 이렇게 “아멘, 아멘”으로 들으면 얼마나 더 좋을까?
여러분들은 이미 “진실로, 진실로”의 말씀으로 구원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귀에 들려 지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아멘, 아멘”으로 살아야 할 사람들이다.
사람들의 여론에 따라서 눈치를 보면서 살지 말라.
“진실로, 진실로”의 말을 굳게 붙들고 “아멘, 아멘”으로 살아야 한다.
매우 힘들다고 생각 될 때에라도 그 일을 주님께서 도우 실 것을 믿는 그 한 사람이 되라!
외롭다고 생각 될 때에라도 그 자리에 주님이 함께 계심을 굳게 믿는 그 한 사람이 되라!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그 일에 주님이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믿는 그 한 사람이 되라!
지금 이 시간에도 주님께서 천산교회를 내려다보시면서 잘했다 칭찬할 수 있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 그 한 사람이 바로 여러분이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