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지난 11월 28일 토요일
오후, 일본 도쿄 외곽 ‘가와사키’ 주택가에 위치한 한 보육원에서는
재일교포 1세대를 비롯한 40~50여
명의 재일교포 어르신들이 ‘아리랑’ 민요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3박 4일 동안의 특별한
도쿄여행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관광 여행을 다녀온 것이 아니구요, 일전에 제가 글을 남기면서 제
개인적으로 멘토로 생각하는 한 선배가 있고,
그 선배가 인터넷 언론 기자로 일하던 중에 우연한 기회에 인터뷰 했던 ‘근로정신대 할머니’를 잊지 못하고,
마치 운명인 것 처럼 기자 생활을 그만 두고, 그 후로 ‘근로정신대
할머니를 위한 시민모임’이라는 시민 단체를 만들어서
일본 정부와 일본 군수산업체 중에 가장 큰 업체인 ‘미쯔미시 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업무를 담당해왔다고
적은 적이 있는데요.
지난 주에, 일본 현지에서 오랜 기간 근로정신대 어르신들을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도움 주는 일본 분들과 모임을 갖는다고 해서,
과연 어떤 일본인들이 그리 열성적으로 도움을 주는지 궁금해서, 일제 시대 때 강제징용을 당했던 할머님 두분을 모시고 다녀왔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일정은 함께 소화하고 늦은 오후~저녁 시간에는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잠시 도쿄 구경도 할 겸 다녀왔었어요,
결론적으로 구경은 전혀 하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정말로 개인적으로 특별했고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있었던 3박 4일 일정이었습니다.
2007년부터 도쿄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미쯔비시 중공업 본사 정문
앞에서는 매주 금요일 오전 8시 30분부터 한주도 쉬지 않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금요 시위’를 벌이는 일본인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 중에는, 도쿄 시내/근교
외곽에 살고 있는 이들도 있지만, 멀리 300~500km 떨어진
거리에 살면서 ‘금요 시위’를 하기 위해서 달려오는 이들도 있고,
한국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훨씬 오래 전부터 일제 치하 강제노동의 피해자였던 ‘근로정신대’ 어르신들을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찾았던 지난주 27일(금) 이른 아침에도 그들의 시위는 계속 되고 있었어요.
일본 내에서, 그것도 일본의 정치/경제의
심장부라 일컫는 도쿄 시내 한복판에서, 그런 시위를 벌인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제가 그곳을 찾고 제 눈으로 직접 본 현장의 모습은, 정말이지 그들의
모습에 깊은 감사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침 8시부터 9시 반
까지… 1시간 반 동안 지하철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관심한
수만 명의 일본 직장인들 틈 속에서
확성기를 통한 육성과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란… 그리고 그 일을 10여년
동안 해오고 있는 일본인들…
때로는 보수/우익 성원들의 위협/협박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고, 요즘 유행하는 말로 ‘금수저’ 라고 일컬을 만큼 엄청난 부자집 아들로 태어난 분도 계시고,
현직 변호사 등 전문직종에서 근무하는 분들도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1시간 반 동안 ‘금요
시위’를 끝내고 근처 카페에 가서 휴식을 취하는 도중에 그분들께 제가 질문을 드렸어요.
‘도쿄에서 매주, 그것도 2007년부터 지금까지 한 주도 안빠지고 금요 시위를 한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닐텐데, 도중에 중단하고 싶은 생각이 안드셨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분들 말씀이… ‘왜 안들었겠냐? 마치 계란으로 바위치는 듯한 느낌을 항상 받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관심한 모습으로 그냥 지나쳐 가지만,
매주 같은 분들이 오셔서 유인물을 받아주시고,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음료수를,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커피를 주고 가는 사람들도 있고,
아주 미세한 수준이지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이 늘어남을 느낀다, 그래서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불쑥 들지만 그만 둘 수가 없었다’고 대답하시더군요.
실재로~ 1시간 반 동안 제가 영상/사진을
찍기 위해서 현장에 있었을 때, 몇몇 분들이 가까이 오셔서 유인물을 받아 가셨고, 금요 시위를 하시는 일본 분들과
인사말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봤습니다. 사실, 일본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 투쟁, 원전
반대 투쟁,
그리고 최근 아베정권 하에서 평화헌법 개정 반대 투쟁들이 대중적으로 일어나고 있지만, 그 이전까지 일본 사회에서는 시위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3박 4일 동안의 빡쎈
일정을 뒤로 하고 공항으로 출발하려고 할 때, 오히려 눈시울을 글썽거리면서 먼길 와줘서 고맙다고 연신
허리를 숙이시는 그분들의 모습에,
같은 한국 사람으로서 근로정신대 어르신들, 그리고 일본군 정신대 위안부
할머니들 문제에 별 관심이 없는, 제 자신을 포함한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을 생각하니 좀 답답하더라구요.
잠시 짬을 내서~ ‘가와사키’에
살고 계시는 재일교포 분들과의 만남 시간을 가졌답니다.
지금이야 오랜 시간 흘러서 ‘가와사키’ 구성원으로서 당당하게 살고 있지만, 그분들이 그럴 수 있기 까지
견뎌냈어야 할 민족차별/멸시는 겪어보지 않고서는 상상조차 못하겠지요.
재일교포 1세대 어르신들부터 2~3세대
분들까지… 한국에서 찾아온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보기 위해서 40~50분
어르신들이 모이셨고, 정말로 맛있는 따뜻한 밥을 만들어 주셨어요.
저희가 한국 음식을 준비해가서 배불리 드시게 해도 시원찮을 판에~ 꿈에
그리던 고국에서 찾아온 손님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분들이 손수 음식을 장만해 주셨어요.
그 어떤 유명하고 비싼 레스토랑 음식보다 훨씬 더 맛있는 식사였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모시고 간 근로정신대 할머님들의 영상과 재일교포 분들의
삶을 담은 영상을 보면서, 서로가 가진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셨고,
연신 눈물을 닦는 모습을 보고서
참~ 전쟁이라는 것이 이렇게도 사람들의 삶과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거구나, 더 이상 우리가 살아가는 땅에서 어떤 이유로든 ‘전쟁’이라는 것이 일어나게 해서는 안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성도 이름도 모르고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들인데, 같은 핏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같이 웃고 같이 울 수 있는 거구나 생각하며 ‘핏줄/민족’이라는 것과,
수십년 동안 그들이 타국에서 온갖 멸시/차별을 받아오는 동안 그들을
방치해놨던 ‘국가/정부’라는
것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볼 계기가 됐던 거 같습니다.
공항으로 나오는 길에… 3.1 운동의 계기가 됐다고도 할 수 있는
‘2.8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던 그 장소였던… 현재의 한국 YMCA 건물을 방문해서
‘2.8 독립선언 기념비 및 자료실’을
둘러보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일본의 심장부인 도쿄 한복판에서 '2.8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던 그 당시 젊은 애국지사들의 심경을 잠시나마 생각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유럽여행 다녀와서 제일 먼저 봤던 영화 '암살'의 장면들도 떠오르기도 했구요.
우리 생활 주변에... 의외로 알게 모르게 일본의 잔재들이 많이 남아 있음을 느낍니다.
수십년 동안 군사정권 시절을 거치면서~ 그것들이 자연스레 우리네 일상 속에서 자리잡아 온 것이겠죠.
일례로~ 광주광역시에서는 백선엽과 함께 군인출신으로 대표적인 친일파로 알려진 김백일의 이름을 딴 거리이름(백일로), 초등학교(백일초등학교)가 있었는데,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이 주가 되고 광주지역 시민단체/언론들이 힘을 모아서
거리이름과 초등학교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는 기사를 최근에 본 기억이 있습니다.
크고 거창한 것들도 의미가 있겠지만, 우리 생활주변에 남아 있는 일제 잔재들을 하나씩 없애가는 과정이
또 하나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바람이 많이 차가워졌네요, 내일은 전국적으로 눈도 많이 온다고 하는데...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겨울이 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좋은 밤들 되시구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2.03 00:48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2.03 00:54
첫댓글 정말 알찬 시간 보내고 오셨네요. 좋은 곳들 눈요기하는거는 딱 한시간이면 그만이고 여행을 통해 더 건설적인 시간을 보내고 싶단 생각을 종종 하게되는데 님은 참으로 값진 여행을 하고 오셨네요.
해외출장은 여기저기 많이 다녀봤었는데 정작 가까운 일본은 한번도 가보질 못해서~ 조만간에 한번 다녀와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어요.
선배 덕분에~ 특별한 여행을 하고 돌아온거 같습니다. 많이 배우고 느끼고 되돌아본 시간이었던 거 같아요.
진짜 의미있는 여정이었던 듯 하네요. 따뜻하게 쉬세요.
담에 혹시라도 일본 가면~ 최신 트로트 가요 몇곡도 외워서 가야겠어요... 재일교포 어르신들이 '내 나이가 어때서' 알면 불러달라 하시는데 몰라서 못불러 드렸다는ㅎㅎ
저런건 사실 생각 못하고 여행다니는데...건설적인 시간을 보내셨네여~ 일제잔재들이 알게 모르게 아직도 있죠 바로잡아야되는데 ㅋ
좋은 선행을 하셨어요.
멀리서나마 따듯한 응원 드려요.
작은 나눔이 커져갈 수 있는 고마운 분들의 행동으로 인해
시간이 지나며
빛이 발하기를 바래볼게요.
좋은 하루의 연속이시기를 바랄게요.
좋은 글과 사진 감사드려요.
세상에는 좋으신분들이 많네요. 보람있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