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
‘광장시장(廣藏市場)’은 원래 동대문시장이었다. 동대문시장을 처음 열었던 회사 이름이 광장주식회사(廣藏株式會社)였고 그 회사의 이름이 오늘날 광장시장의 이름이 되었다.
1910년의 강제적인 ‘한일병합’ 이전부터 ‘한반도 침략’은 시작되었다. 1905년 ‘을사늑약’ 이전에도 이미 농촌의 토지와 도시의 상권, 물품유통망에 대한 일본의 침탈은 시작되었다.
‘을사늑약’ 1년 전인 1904년, 화장품 ‘박가분’을 만들었던 상인 박승직이 서울의 큰 상인 26명과 더불어 처음으로 근대적 경영기법에 기반을 둔 ‘공영사’를 만들었다. 10년 후 이 회사는 ‘광장주식회사’로 바뀐다. 최초의 ‘주식회사’였다. 박승직은 초대 사장을 맡았다.
‘공영사’가 일본인들의 상권에 대항하여 만든 ‘시장’이 바로 ‘동대문시장’이었다. 동대문시장은 이후 ‘광장시장’까지 포함하는, 동대문 일대의 시장들을 모두 아우르는 이름이 되었다. 지금은 거꾸로 ‘광장시장’이 동대문시장 혹은 동대문 상권의 일부분으로 알려졌다.
‘광장주식회사’는 한반도 최초의 주식회사이면서 한편으로는 근대적 경영기법을 처음 도입한 ‘조합형태의 회사’이기도 했다. 서울 시내의 큰 상인들이 상당수 회원이자 주주로 가입해서 활동했고 “주주, 상인들 간의 협조가 무척 잘 되었다”고 전해진다.
초기 주요 유통 물품은 포목이었다. 영국계, 일본계 제품들이 유통되었고 상권은 일본인들과 중국인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박승직이 주도한 ‘한국 상인들의 회사’ 즉 ‘공영사’와 ‘광장주식회사’는 포목을 통해 한반도의 상권을 일본, 중국인들의 손에서 지켜낸 셈이다.
종로5가와 광장시장 일대는 조선왕조 한양 시절, 도성의 동쪽 끝이자 종로 육의전의 끝이었다. 국왕은 동대문을 통해 전농동, 제기동에 행차했다. 동대문 너머 선농단(先農壇)이 있었고 이 선농단에서 조선 왕조 내내 선농제(先農祭)가 열렸다. 광장시장은 조선왕조에는 도성의 끝 부분이었고 조선왕조 후기부터 일제강점기에는 시장이 되었다. 지금의 종로5가 일대에 배오개(梨峴)시장이 있었고 배오개시장이 곧 동대문시장, 광장시장의 전신이었다. 일제강점기 전철이 생기면서 배오개시장은 지금의 광장시장 일대로 이사를 했다. 길을 따라서 시장이 섰다가 옮긴 것이다.
한국 근대시장의 역사 100년은 바로 광장시장의 역사가 1904년부터 시작되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당연히 광장시장에는 여러 이야기가 남아 있다. 소설가 고 박완서 선생의 자전적 소설 ‘그 여자의 집’에는 박 선생의 올케가 한국전쟁 무렵 남편이 죽자 광장시장에서 포목장사를 시작하는 장면이 나온다. 광장시장은 이 무렵에도 포목전으로 유명했다. 한편으로는 정치 깡패 이정재가 자유당 시절 정치자금과 조직 운영 자금을 만들었던 곳도 바로 광장시장이었다. 폭력조직 ‘동대문파’는 동대문 옆의 광장시장에서 자금을 마련했던 것이다.
지금 광장시장의 1층 일부분은 먹자골목으로 유명해졌다.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서구, 중국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밤늦은 시간 광장시장 먹자골목에서는 일본 관광객이나 서구인들이 순댓집 좌판에 웅크리고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광장시장 먹자골목에서 유명한 집, 맛집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서민들의 음식이 시장 통에서 명맥을 유지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미디어를 통해 널리 알려졌고 외국 관광객들에게도 알려진 경우다. 가격이 싸고 양이 푸짐하며 아직도 손맛이 남아 있는 음식들이 주 종목을 이루는데, 몇몇 유명한 집만 그런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가게들이 비슷한 음식, 비슷한 가격이다.
‘순희네빈대떡’은 광장시장 먹자골목을 널리 알린 가게 중 하나다. 원래 서울식 빈대떡은 곱게 간 녹두 이외에 별다른 식재료를 넣지 않는다. 이북식 빈대떡 특히 황해도 식 빈대떡은 돼지고기 등 푸짐한 재료를 녹두와 더불어 넣는다. ‘순희네빈대떡’은 부재료도 넣지만 이북식 정도로 푸짐하진 않고 ‘서울식+이북식’의 절충 형태다. 큰 번철 판에 바로 구워서 내놓는다.
‘자매집’이 있는 좁은 골목에는 육회집이 몇 곳 더 있다. ‘자매집’이 역사도 오래 되었고 식재료가 신선하며 양도 넉넉하다고 이름이 났다. 주변의 다른 집들도 비슷한 수준이지만 어쨌든 ‘자매집’이 널리 알려졌다.
좌판으로 순대 등을 팔고 있는 ‘할머니집순대’도 유명하고 보기 드물게 ‘좌판+뷔페식 나물반찬’ 형태인 ‘쌀ㆍ보리밥집’도 일본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집이다. ‘쌀ㆍ보리밥집’은 쌀밥이나 보리밥으로 모두 비빔밥을 비빌 수 있다고 붙인 이름이다.
‘마약김밥’도 광장시장 명물이다. 한번 맛보면 그 맛과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보통 김밥보다는 작은 크기이고 맛은 담백하다.
광장시장에서 종로5가 길을 건너면 종로구 연지동, 원남동 일대다. 보령제약 부근, 설명도 하기 힘든 곳에, 가게 이름도 정확치 않은 ‘시래기국밥집’이 있다. 간판도 없이, 좁은 골목길 담벼락에 ‘시래기국밥전문’이라고 작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시래기국밥 3,500원. 가격이 싸고 맛있지만 한편으로는 음식에 대한 정성이 깊고 내공도 상당하다. 무청 시래기의 껍질을 일일이 벗겨서 사용하고 국물은 전통 재래된장을 사용했다. 껍질을 벗기면 장맛이 잘 배어들고 시래기가 구수해진다. 국밥을 주문하면 1인당 1개씩 주는 삶은 달걀은 덤이다.
첫댓글 ^^
광장주식회사’로 바뀐다. 최초의 ‘주식회사’였다. 박승직은 초대 사장을 맡았다.
ㅇㅇ
잘봤어요
감사해요^^
잘보고갑니다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