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뽑은 총각무우가 거의 두 트럭이나 되었습니다.
고라니가 반은 뜯어 먹어서 그렇게 크게 생각을 안했더니 더욱 실하게 잘 되었으니
그도 갑자기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알타리단해서 팔러 나갈 수도 없고
모두 김치를 담그어 팔고 남은 것은 저장을 하기로 했습니다.
총각무우는 다듬는데 시간과 손이 많이 가니 갑자기 사람이 많이
필요 했습니다.
그런데다가 일은 사흘안에 모두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데
본래 하기로 한 세사람으로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만만한 인물이 친정엄마라 sos를 쳤습니다.
어지간하면 요즘은 오시라 소리를 안하는데 어쩔 수 없다고 했더니
엄마는 보따리에다 반찬을 이것저것 해 가지고서
아침 일찍 오셨습니다.
김장 하는 날은 꼭 돼지고기 수육 삶은 것이 있어야 한다고
남편은 며칠전부터 타령을 해 댔습니다.
내가 별로 들은 척을 않자 손수 수육꺼리를 열근이나 사 왔습니다.
엄마는 이웃집 부엌을 빌려서 그 고기를 삶아 내셨습니다.
된장을 넣고 사과를 넣고 소주도 넣고 넣고 넣고......
수육이 너무 많이 삶아져서 부서진다고 썰으시던 권사님이 타박을 하시자
엄마 당신이 이가 부실하시니 물렁하니 삶아 놓으시고서는
수육이 물렁해야 먹기가 좋다고 강조를 하십니다.
저는 삶은 수육을 몇 봉지로 나누어서 그릇에 담아서는 오토바이로 배달을 갑니다.
삶으라고 할 때는 들은 척도 않다가 삶아 놓으니 나누러 다니는 것은
신난다 한다고 남편이 흉 아닌 흉을 봅니다.
갑자기 배 이상의 사람이 필요 했습니다.
새로 이사 온 동네라 어디서 사람을 얻을꼬 고민하다가
앞집언니에게 부탁을 했더니 언니는 다시 언니의 친구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동네에 있는 두분이 일을 해 주시겠다고 대답을 했지요.
그런데 막상 우리집에서 이 많은 일을 하려니
집수리중이라 어디 내려 놓을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당 넓은 이 댁에서 그냥 다듬자고 했더니 그러라고 순순히 대답을 하시며
편리를 들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어제부터 인 겁니다.
그럼 서로 바쁘니 품값을 조금 더 드리고 새참과 점심도 알아서 하자고 다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렇잖아도 영감님 점심 챙겨 드려야 하는데 잘 되었다고 대답 하셧습니다.
그러니 감사해서 수육 삶은 것을 배달해 드렸지요.
총각무가 얼마나 많은지 이틀을 다듬어도 줄지도 않는다고
지나는 어르신들마다 들여다 보며 걱정들을 하시고 .......
하는길에 파김치도 한다고 뽑아 왔는데 이것도 역시 시간 잡아 먹는 귀신입니다.
우리집을 올라오거나 내려 갈적에 이 할머니 댁을 지나가는데 지나갈 때마다
인사를 하면 <어딜가시나 ?>
하고 열번을 가면 열번 물으시는 분입니다.
얼마나 심심하시면 그러실꼬 싶었는데 마침 이야기가 나와서 파를 다듬어 주시기로 결정
이 분도 이틀째 방에서 이러고 파 다듬기를 하십니다.
그러니 여기도 챙겨 드려야지 .
동네에 혼자 사는 남자 어르신이 계시니 거기도 챙겨 드려야지
일할 분들을 소개해 준 언니네도 김장을 하느라고 야단이니
거기도 챙겨 드려야지 수육 열근이 금새 다 동이 났습니다.
김장 하는 댁에서는 절인배추와 김치속을 싸 주었습니다.
엄마는 그 바쁜중에 오시면서도 감자를 갈아 부침개를 부쳐 오시고 ......
마음이 얼마나 바빴으면 점심 먹는 사진 하나 남긴다 하고서
요따위로 사진을 남겼습니다.
그렇게 온 동네 시끌벅적 올해 우리 김장이 시작 되었는데
집에서는 집데로 담그어 두었던 고들빼기며 단풍깻잎이 나가느라
모여 앉아 담으면서 옛이야기 장단이 한창입니다.
자연스레 동네 이야기들이 새로운 이야기로 떠 올랐습니다.
저도 아는 젊은 엄마가 어느날 홀연히 이혼을 하고 마을을 떠났다고 합니다.
무엇이 얼마나 맺혔길레 남편이 일하러 간새에 짐을 싸서 말도 않고
가 버리고 나중에 이혼통보를 했다구요.
마음이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귀농하여 농사를 짓는다고 요 몇년 둘이 열심히 일하던 것이 보기 좋더니
어찌 그런 결정을 내렸을지 ......
남의 밭을 얻어 농사를 하더니 여전히 빚을 많이 진 모양이라고
모두들 안타까워 합니다.
그러면서 젊은 날에 힘들었던 시집살이 이야기,
새끼들 내 버리고 도망 가려던 이야기들이 또 나오구요.
그런데 전에도 많이 들었던 엄마의 젊은날 이야기가 오늘 따라
귀에 들어 오고 마음 가득히 엄마를 이해 하게 되었습니다.
무던히도 시집살이 잘 견디고 오늘날까지 사셨다 했더니
엄마도 남편을 버리고 가버린 이웃마을의 젊은 엄마처럼
모두 버리고 갔던 적이 있더랍니다,
엄마의 젊은날은 고왔습니다.
외출할 때는 양산을 쓰고 다니고 굽높은 구두를 신고
하늘 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친구들과 교외 딸기 농장으로 나들이를 갈 정도로
여유있는 서울의 부잣집 딸이었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 공직에 계시고 50년 전에 전용자가용 기사가 있었으며
연희동에 2층집이 있었으니 얼마나 괜찮은 집 딸이었을지
엄마가 말 안하지만 이런 옛 사진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던 엄마는 직장이던 군 사무관 시절에
산골에서 갓 군대에 와 겨우 쫄병을 면한 아버지와 눈이 맞아 연애결혼을 했습니다.
집안의 반대가 말도 못해서 할머니만 대동하고 조촐하게
시골집 마당에서 혼례식을 올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촌 생활을 시작했답니다.
믿고 온 남편은 3일만에 군대로 가 버리고
소도 세마리라더니 혼례식 끝나고 하루 있더니 모두 각자의 집으로
데려 갔습니다.
얼마나 먹을게 없었는지 만날 나물죽에 저녁이면 감자와 고구마로
끼니를 떼우며 힘들고 어려운 시집살이를 계속 했습니다.
고만고만한 시누이들이 셋이나 같이 있고 시어머니는
무뚝뚝해서 무엇을 물어도 가르쳐 주질 않았습니다.
어렵게 어렵게 딸을 낳아 돌이 좀 지나 둘째가 또 들어 섰습니다.
먹고 싶고 가지고 싶은 것은 말로 다 못하게 많은데
현실은 만날 나물죽이라 텃밭에 올라오는 풋마늘 잎을 좀 따 넣고
국수를 밀어 넣었더니 입덧이 좀 덜해 졌답니다.
그런데 국수를 드시던 아버지께서 크지도 않은 마늘을
뜯어서 넣었다고 어찌나 역정을 내시던지 국수 한그릇을
다 못 먹고 눈물을 쏟으며 상에서 물러 났답니다.
뭐 먹여 준게 있다고 그까짓 마늘 잎사귀 좀 먹었다고
사람을 그렇게 구박을 하느냐고 대들었더니 아마도 크게
싸움이 되었나 봅니다.
할머니는 사랑방 문에 걸터 앉아 아버지 편만 들면서
그렇게 말씀을 하셨다네요.
<여자는 그저 분홍치맛자락 있을 때 길을 들여야지
몽둥이가 제일이다 제일이야......>
그 소리가 얼마나 서운한지 그 길로 젖먹는 저를 놔두고
서울로 간다고 집을 나가셨답니다.
하지만 서울갈 차비도 한푼 없으니 이웃집에서 자고서
아침에 차비라도 가지러 가려고 집으로 들어 갔더니
세 시누이들이 치마자락을 붙잡고 가지 말라고 매 달리더래요.
그래도 새차게 뿌리치고 나서는데 젖먹이던 제가
할머니에게 안겨서 손을 뻗으며
<엄마 엄마> 하더라네요.
그 소리에 차마 못 돌아서고 젖먹이러 앉았더니
할머니가 그제야 달래면서
<얘야 하루를 참으면 백날이 편하단다 >
하시기에 못 이기는 척 주저 앉았다구요.
그렇게 이쁘게 키운 딸래미가 오늘날 저 모양도 못내고
옷은 고추가루 투성이요,
손은 터서 그 모양을 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고 내 정곡을 찌릅니다.
내가 아무리 행복하다고, 일하는 것이 좋다고 해도
엄마 눈에는 늘 안되 보이는 어린 딸래미 인가 봅니다.
그 곱던 엄마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그 자리에 앉아
50년이 다 된 이야기를 엊그제 일마냥 담담히
이야기 하십니다.
엄마의 그 시절이 있기나 있었을까요.
오늘 점심에도 파김치를 했습니다.
벌써 이 큰 다라로 세번째 무쳐 내는 겁니다.
남편이 애써 농사를 짓더니 파가 어찌나 맛있는지
엊저녁에는 선자리에서 엄마도 남편도 저도 파김치만 해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 양념에 비벼 또 점심을 먹자고 밥 두어 그릇을 붓고 들기름 몇 방울 넣어 비벼 냈습니다.
전화소리에 받아 보니 알타리 다듬는 동네 어르신들 호출 입니다.
얼른 내려 오래서 오토바이를 타고 내려 갔더니 닭볶음탕을 한냄비
해 주셧습니다
일꺼리 주어서 돈 벌게 해 주니 고맙다고 주신 겁니다.
전날 수육 해다 준 보답도 되구요.
그래서 점심상이 푸짐해 졌습니다.
새로 온 동네지만 이웃의 정이 푸짐합니다.
3일째 알타리를 주무르는데 아직도 이렇게나 많이 남았습니다.
한 일손이 아쉬운 판인데 점심을 먹고 내려 갔더니 낯 모르는 어르신이 일손을 도와 주십니다.
지나가다 붙잡히셧다고 하시며 알아서 이것저것 잔손 가는 것을 도와 주십니다.
이제 연세 80이 되셔서 마음은 있어도 이런것 밖에 못 도와 준다고 아쉬워 하셨습니다.
그 분에게도 젊은 날이 있어 저기 저 젊은이들처럼
썩 들어서 일도 잘 했었노라고 오히려 미안해 하시면서요.
어르신이 말씀하시는 저 어르신들은 이제 낼 모레면 70이 되십니다.
동네 가운데서 총각무 김치를 사흘이나 하고 있으니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들립니다.
사과도 깍아다 주시고 음료수도 가져다 주시고 고구마도 구어다 주십니다.
아직 다 모르지만 인심들이 참 좋습니다.
그렇게 저렇게 왁자지껄 오종종종 그 많던 총각김치를 다 해 냈습니다.
일부는 택배차에 실려 어디로 또 어디로 진짜 주인을 찾아 떠나고 .......
늦은 밤까지 남편과 읍내에 지인들 댁에 배달도 마쳤습니다.
저녁도 먹고 늦은 시간 읍내 앞집언니 진짜집에 들려 그릇구경도 하고
차도 얻어 마셨습니다.
대마도에서 사 온 1000엔짜리 그릇들
그 자랑이 어찌나 이뻐 보이는지요.
언니는 지난주에 3박2일 배타고 대마도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여행을 떠나면서 언니가 말했습니다.
<바쁜데 밥이라도 해 주어야 하건만 미안해~>
언니는 정말 별말씀을 다 했습니다.
어제도 동네에 남의 김장 도우러 오셔서는 우리집에 새참 해다 준다고
김치넣고 메밀 부침을 부친다고 차렸나 봅니다.
그런데 동네 가운데서 소당질(시골에서는 부침개 부치는 것을 기름질 한다 혹은 소당질 한다 합니다)을 하고
있으니 오고가는 사람들이 다 들어 와서 한두 소당씩 주다가 보니 정작 우리집은
다섯시가 넘어서 겨우 가져 왔다고 했습니다.
언니도 나도 남편도 엄마의 저 나이에 오늘을 어제처럼 이야기 할 날도 있을 거에요.
첫댓글 즐거운 주말 되세요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많은 일거리들을 무서워하지않고 잘 해내고 사는모습! 정말 대단합니다. 저희도 30분만 가면 사골에 논과 밭이 있지만,
농사는 엄두도 못내고 있는데.....
두트럭 총각김치 담고
오늘은 대만행~
상상이 안되네...
두트럭의 총각김치가...
여러 따뜻한 맘들도
같이 버무러져 더 맛나겄다~~~
총각김치 파김치 담는 맛에 침이! 꼴각 넘어 가는데 그렇지님의 글이 더욱 맛갈 스럽네요
좋은글 감사 함니다
보면서도 어휴 진짜 많다 하면서 보았네요. ㅎ ㅎ
우리네 옛적 동네 인심이 살아있는 훈훈한 삶의 현장 즐겁게 잘 보았습니다.
꽃다운 나이의 서울 처녀가 옛날 말로 깡시골로 시집을 오신거지요? ㅎ ㅎ
어머님과 아버님의 사랑의 결실로 그렇지님을 낳아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