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2/05 무역의 날, 자원봉사자의 날
"우표에서 얻은 것이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 많다."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2013 - 우리나라 김장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우리 나라의 김장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됐습니다. 전종환 /MBC 뉴스 2013-12-05 16:14 http://imnews.imbc.com/news/2013/culture/article/3378317_11185.html
2013 - 서울시, 사상 첫 초미세먼지 주의보 발령 서울시가 오늘 오후 4시를 기해 사상 처음으로 초미세먼지 주의보를 발령했습니다. KBS 뉴스 /2013.12.05 (16:26)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2766928&ref=H 2013 -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Mandela, Nelson) 사망 만델라 [Mandela, Nelson Rohihlahla, 1918.7.18~2013.12.5] 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 밝혀 제이콥 주마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이 타계했다고 말했다. 이 날 주마 대통령은 만델라 전 대통령이 자신의 요하네스버그 소재 집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남아공은 만델라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장례형식을 국장으로 결정하고 조기를 계양할 계획이다. 주마 대통령은 "만델라 전 대통령이 고히 잠들고 아프리카에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요하네스버그 로이터=뉴스1) 정은지 기자 /뉴스1 2013.12.06 07:04:08 http://news1.kr/articles/1439013 - 'Window Right' - 'Peace Treaty with Nature'
- 'Hundertwasser House' - 'Black Hatter'
- '99 Heads' - 'Fragrance of Humus' 2010 - 훈데르트바서 한국전시 * 기 간 2010 / 12 / 5 (일) - 2011 / 3 / 15 (화) * 시 간 11:00~19:00 (2011.1.1-2.27 10:00~19:00 /3월부터 11:00-20:00) * 장 소 한가람디자인미술관 1,2전시실 * 가 격 성인 15,000원 / 청소년 7,000원 / 어린이 5,000원 * 할 인 골드4장/블루2장(2,000원 할인) * 휴관일 2010.12.27 / 2011.1.31 / 2011.2.28 훈데르트바서가 지향하는 자연과의 조화를 근간으로 만든 건축과 예술, 삶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자연, 인간, 건축이 함께 숨쉬는 행복한 세상의 실현을 향한 작은 여행을 생각해 보는 감동스러운 모습을 이끌어 낼 것이다. /예술의전당 ‘오스트리아 가우디’ 훈데르트바서전 곡선과 원색 물결…자연과 생명을 찬미하다 화가이자 건축가 ‘독특한 이력’ 직선은 부도덕하다! 화가가 평생 고집한 신념 덕분에 그림들은 동화나라 꿈동산이 되었다. 모든 그림들은 구불구불하고 비뚤비뚤한 소용돌이 선과 환상적인 원색으로 물결친다. 건물은 사람처럼 피와 눈물을 흘리며, 대머리 아저씨는 잔디가 자라는 땅과 지층이 되며, 나무들은 알록달록한 사탕으로 변신한다. ‘오스트리아의 가우디’로 불리는 화가·건축가 훈데르트바서(1928~2000)의 작품들은 세상 만물의 경계를 지워버린다. 가우디 건축물 같은 구불구불한 곡선과 소용돌이치는 나선의 역동감이 따뜻한 원색의 물감층과 어울려 자연과 한몸이 된 삶을 노래한다. 그림 특유의 곡선과 색채의 천진난만한 리듬감으로 자연과 생명의 매혹을 이야기하는 그의 작품들이 한국에 찾아왔다. 지난 연말부터 훈데르트바서의 첫 한국 전시가 차려진 서울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은 입소문 듣고 찾아온 가족관객들로 붐빈다. 전시는 삶과 예술, 자연이 일치된 ‘토털 아트’를 평생 추구하며 환경운동가로도 발자취를 남긴 그의 작품 세계를 꿈결처럼 거닐며 느껴보라고 권한다. 훈데르트바서 비영리 재단과 오스트리아 쿤스트하우스빈 박물관의 소장품들을 중심으로 원작그림 60여점과 대표적인 건축 모형 8점, 그래픽 원화, 직물 공예품인 태피스트리 등이 내걸렸다. 평생 떠돌이로 살았던 훈데르트바서는 현대미술사의 특정 양식이나 사조로 분류하기 어려운 독특한 작업들을 남겼다. 굳이 분류한다면, 클림트, 에곤 실레로 대표되는 20세기 오스트리아 토털 아트의 계승자로서 삶과 하나되는 생태·자연 예술을 평생 실천해온 대가라고 할 수 있다. 빈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스에 의해 강제 이주당하고 친척들이 몰살되는 참사를 겪었다. 이런 기억이 평생 평화와 자연과의 합일이라는 화두를 품고서 유럽과 일본, 미국, 뉴질랜드를 돌면서 작업하는 모티브가 된다. 돼지우리를 개조한 임시작업실, ‘레겐타크’라는 자신의 전용 배 등에서 살면서 직접 만든 물감으로 아무 종이에나 그림을 그리고 일본풍 목판화를 찍었다. 70년대 시작한 건축물 설계도 자나 도면을 일체 쓰지 않고 드로잉처럼 작업했다. 원래 이름은 프리드리히 슈토바서였으나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에 흐르는 백개의 강’이라는 뜻을 지닌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로 이름을 바꾼 것이나 태평양을 떠다니는 배에서 삶을 마친 것도 생태주의 실천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시장에 나온 1940~90년대 그의 그림들과 훈데르트바서 타워, 빈 슈피텔라우 쓰레기소각장, 쿤스트하우스빈 등의 대표 건축물 모형들은 뚜렷한 정형이 없다. 작가는 제1의 피부를 실제 살갗, 제2의 피부를 옷, 제3의 피부를 집이라고 명명하며 나선처럼 확장되는 선들을 통해 인간과 자연, 건축 이미지의 유기적인 상상력을 보여준다. ‘녹색 여인-정치의 정원사’ ‘수염은 머리가 벗겨진 사람의 잔디다’(그림) 등에 나온 사람의 모습은 몸의 근육이나 나무의 나이테를 닮았고, ‘노란 집’‘피 흘리는 건물’ 등에 보이는 집들의 창과 몸체는 작은 세포 조직 등을 떠올리게도 한다. 기하학적 규격선이 사라지고 화폭처럼 알록달록한 색감의 잔디 지붕과 올망졸망한 창 등으로 뒤덮인 화폭 같은 여러 건축물 모형들은 동화적 세계와 세기말적인 환상을 내뿜고 있다 ‘모든 것은 한없이 간단하며, 한없이 아름답다’ 등 곳곳에 붙은 그의 명상적 경구들을 되새김하는 것도 이 전시에서만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3월15일까지. (02)545-3944.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 2011-01-13 오전 08:44:07
한국자원봉사협의회.한국자원봉사센터협회.행정자치부가 함께 주최하는 2006 전국자원봉사자대회가 5일 '자원봉사! 새로운 지평을 열자'라는 주제로 경기도 일산 킨텍스 그랜드볼룸에서 열렸다. 행사에서는 무의탁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3만3000여 명을 대상으로 7500여 차례 의료봉사 활동을 해온 치과의사 송현곤(광주시 광산구 자원봉사센터 이사장)씨가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는 등 202명의 자원봉사 유공자가 정부 포상을 받았다. 자원봉사 친선대사인 가수 유열씨는 국내 아동학대 예방과 제3세계 봉사활동을 한 공로로 행정자치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행사에는 한명숙 국무총리, 장인태 행정자치부 차관, 이일하 한국자원봉사협의회 상임공동대표, 이제훈 한국BBB운동 회장, 권영빈 중앙일보 사장과 자원봉사자 3000여 명이 참석했다. 이어 한화갑.박찬숙 국회의원, 김선화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 서명선 한국여성개발원장, 조명현 현대해운 사장, 김칠두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한미영 한국여성발명협회장 등 10여 명은 2006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에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 자원봉사 운동 참여를 선언했다. 올해 노블레스 오블리주 자원봉사 운동엔 100여 명이 동참하고 있다. 제1회 자원봉사자의 날 기념식 국무총리축사 /야! 신난다! 자원봉사 2006-12-11 15:35:00 http://lalalavol.net/board/board_con.php?tag=1&seq=265
2006 - 인간, 컴퓨터에 완패 체스 세계챔피언 크람니크 ‘4무2패’ “한 시대가 갔다.” 5일 인간과 컴퓨터가 맞붙은 체스 대결 마지막 날. 독일에서 2주간 펼쳐졌던 그 격전(激戰)에서 인간 챔피언은 여섯번 붙어 컴퓨터에 한 판도 못 이겼다. 6전4무2패. 세계 체스챔피언인 블라디미르 크람니크(Vladimir Kramnik)와 독일의 컴퓨터 체스 프로그램인 ‘딥 프리츠(Deep Fritz)’ 간의 이번 대결이 열리기 전만 해도, 도박사들은 “그래도 백중세는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 출신의 크람니크는 2000년 세계 챔피언에 처음 등극한 뒤로, 2004년과 2006년에도 타이틀을 따냈다. 체스계의 절대 강자다. 그는 2002년에도 ‘딥 프리츠’와 대결한 적이 있다. 당시는 초반에 잘 나가다 후반에 밀려 결과는 4:4 무승부. 인간은 기계와 달리 피로가 누적됐기 때문이라고 봤다. 이번은 4년 만의 재대결 성격. 크람니크는 출전 조건으로만 50만유로를 받았다. 승자에게는 별도로 50만유로의 상금이 걸렸다. 컴퓨터가 이기면, 체스 프로그래머 팀이 받게 된다. 크람니크는 대결 전 “인간 자존심이 걸린 매우 어렵고 중요한 시합”이라며, 컴퓨터의 인공지능 작동 원리를 파악하기 위해 컴퓨터 체스 프로그래머의 특별지도를 받기도 했다. ‘딥 프리츠’ 프로그램 팀도 체스 고수(高手)들의 조언을 받아가며 성능을 키웠다. 4년 전의 ‘딥 프리츠’는 초(秒)당 279만 수를 읽었으나, 이번엔 초당 800만 수를 읽는 능력을 갖췄다. 이번 대국에선 인간이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격일로 경기가 치러졌다. 첫 시합에서 크람니크는 컴퓨터가 읽지 못하는 공격의 수를 사용해 컴퓨터의 ‘허(虛)’를 찌르기도 했지만, 결과는 무승부. 둘째 시합은 크람니크의 패배였다. 잘 공격하다가 한번 실수한 것이 패인이 됐다. 컴퓨터는 인간의 사소한 실수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3·4·5 시합은 무승부. 마지막 시합은 패(敗). 최보식 congchi@chosun.com /조선닷컴 2006.12.07 01:49 http://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6/12/07/2006120700111.html
2000 - 유엔, '2001 세계자원봉사자의 해(IYV)' 전진대회 '2001 세계자원봉사자의 해(International Year of Volunteers)' 유엔은 21세기를 여는 첫 해를 '2001 세계자원봉사자의 해'로 선포하였다. [월간소비자 2001년1-2월호]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1995 - 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역사속 오늘[1995년 12월 5일] 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1995년 오늘! /YTN 2012-12-05 http://www.ytn.co.kr/_pn/0422_201012042146066782
1992 - International Conference on Nutrition FAO, Italy, 5-11 Dec 1992 http://www.unpi.com/projects_un_conference_stamp_listing_1999.asp
오늘의 역사 (12월 5일)[1975년] 영동선 완전 전철화 개통 동서를 관통하는 영동선 전철이 1975년 12월 5일 개통됐다. 철암-북평(61.8km)과 고한-증산(23.7km) 간 전철의 개통으로 산업선인 중앙, 태백, 영동선 320.8km 전구간이 완전전철화되어 무연탄, 시멘트, 철광석 등 각종화물의 신속한 수송에 크게 기여하게 됐다. 영동선은 1972년 12월 6일 내자 24억원과 외자 8백만 달러를 들여 산악지대의 난공사를 극복하고 3년 만에 완공됐다. 영동선의 개통으로 구걸리-북평간의 경우 급행열차는 운행시간이 종전 8시간에서 7시간 10분으로 50분이, 화물열차는 12시간 20분에서 9시간 10분으로 3시간 10분이 각각 단축됐다. 화물수송능력도 하루18회 운행에 연간 187만t이던 것이 28회에 372만t으로 증가, 연간 185만t을 더 수송했다. 철도청은 전국철도화물소송량의 40%를 감당하고 있는 이 선로에 24량의 전기기관차를 더 도입, 모두 90량을 운행했다. /조선 http://focus.history.chosun.com/history/read_body.jsp?id=19990804_0139
[어제의 오늘]1968년 국민교육헌장 선포 극우 파시즘 ‘상징’ 기독교 신자들이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을 줄줄 암송하듯이 지금의 40, 50대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어렵잖게 외울 수 있다. 그런데 국민교육헌장은 아련한 추억거리이기보다는 가끔씩 욱신욱신 통증이 도지는 정신적 상처에 가깝다. 일제시대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의 암송을 강요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위압적이고 강제적인 분위기가 가득했으며, 때때로 물리력까지 행사됐기 때문이다. 1968년 1월18일 박정희 대통령은 이른바 ‘건전한 생활윤리와 가치관 확립’을 위한 헌장의 제정을 지시한다. 그해 여름 서울대 철학과 박종홍 교수가 초안을 만들고, 각계 각층을 대표하는 헌장 기초위원 및 심의위원 44인의 수정작업을 거쳐 헌장 전문이 완성됐다. 마침내 그해 12월5일 국민교육헌장 선포식이 있었고, 전국 초·중·고교의 모든 학생들은 헌장 전문을 깡그리 암송해야 했다. 코흘리개들은 뜻도 모르고 ‘민족중흥’ ‘국가발전참여’ ‘반공민주정신에 투철한 애국애족’ 따위의 어마어마한 어휘들을 앵무새처럼 되뇌었고, 제대로 못 외우는 아이들은 체벌을 당하거나 별도의 보충수업까지 받았다. 국민교육헌장 전문을 쓰는 붓글씨대회와 국민교육헌장을 주제로 한 백일장과 웅변대회도 열렸다. 학교에서뿐만이 아니었다. 전국의 모든 의식행사에서는 반드시 헌장이 낭독되었고, 교과서를 비롯한 공문서에도 예외없이 수록됐다. 손동우 사회에디터 /경향신문 2008-12-04 18:20:14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2041820145
64년의 수출목표가 1억 2천만 달러였기 때문에 1억 달러 돌파는 대충 11월 이후가 될 것으로 계산하였다. '수출잔치'로는 적합한 날이었다. 이 같은 상공부의 의견에 따라, 그 해 8월 26일 국무회의에서, 64년도 수출실적이 1억 달러를 달성하는 날을 「수출의 날」로 제정하고 매년 기념식을 갖기로 의결했다. 상공부의 입장으로서는 하루 빨리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수출이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하기만 했다. 상공부는 10월을 '수출촉진의 달'로 정하고, 적극적인 수출독려 활동을 벌였다. 휴일에도 세관 등 수출지원부서는 업무를 보았다. 수출물자 하역반도 계속 근무를 통해 수출물자를 하루라도 빨리 선적토록 했다. 상공부당국자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역사적인 순간이 다가왔다. 연말을 꼭 1개월 앞둔 11월 30일, 우리나라의 수출이 사상 최초로 1억달러를 돌파한 것이다. 11월말 현재의 수출실적은 1억 139만 2천 달러. 12월 2일, 이 감격적인 순간의 발표는 김정렴 상공부차관이 맡았다. 박충훈장관은 박정희 대통령의 방독에 앞서 11월 6일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서독에 파견됐기 때문이었다. 상공부는 12월 2일 장관담화를 통해 "수출실적이 1억 달러를 돌파함으로써, 우리가 염원하던 자립경제의 확립과 경제발전의 역사적 기점이 마련됐다"고 밝히고 제1회 수출의 날 기념식을 12월 5일 거행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1962년 오늘! 정국의 분위기를 완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YTN 2012-12-05 http://www.ytn.co.kr/_pn/0422_201012042146460623
카레라스 [Carreras, José, 1946.12.5~ ] 스페인의 테너 가수.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다. 6세 때 이탈리아의 테너가수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의 전기영화 《위대한 카루소》를 보고 성악가가 되기로 결심한 뒤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아 8세 때 지방방송에 출연하는 등 일찍부터 공연활동을 시작했다. 바르셀로나 음악원에서 성악을 공부한 후 1968년 바르셀로나의 리세오가극장에서 도니체티의 《루크레치아 보르지아》로 데뷔했다. 1971년 파르마에서 열린 베르디 국제음악콩쿠르에서 1위를 했으며, 벨리니·도니체티·베르디·푸치니의 레퍼토리를 소화하고 오페라가수로서 음악적 성공을 거두었다. 1976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vert von Karajan)의 초청으로 잘츠부르크 부활축제에서 오페라 《레퀴엠》에 출연해 명성을 얻었으며, 이어 레오나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주빈 메타(Zubin Mehta) 등 당대의 유명 지휘자들과 함께 《돈 카를로스 Don Carlos》 《라보엠》 《운명의 힘》 등을 비롯한 많은 작품에 출연해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특히 1982년 카라얀이 지휘한 베를린필하모니관현악단과의 협연에서 메조 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Agnes Baltsa)와 함께 비제의 《카르멘》을 공연하여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87년 파리에서 《라보엠》 영상촬영을 하다가 백혈병으로 쓰러졌으나 기적적으로 완쾌하고 재기에 성공하여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의 음악감독을 역임했으며, 1990년 로마월드컵 전야제 때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세계 3대 테너 콘서트’를 시작으로 1994년 미국월드컵 폐막공연, 1998년 프랑스 파리월드컵 전야제, 200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인종차별정책철폐 5주년 기념공연, 6·25 전쟁 50주년 2001년 한국공연 등 세계 각국을 무대로 한 공연을 의욕적으로 펼치고 있다.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음색과 섬세한 표현으로 뛰어나 음유시인으로 불리며,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세계 3대 테너가수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미국의 에미상과 그래미상을 비롯해 프랑스의 디스크 그랑프리상 등 국내외에서 많은 상을 수상했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어 1979년 로열오페라단의 《토스카》 공연 때 처음 내한독창회를 가진 뒤 1993년·1994년·1997년·1999년·2001년에 내한공연을 가졌다. /naver
역사속 오늘[1936년 12월 5일] 스탈린 헌법 채택 1936년 오늘! /YTN 2012-12-05 http://www.ytn.co.kr/_pn/0422_201012042147191870
오늘의 역사 (12월 5일)[1933년] 미국 금주법 14년 만에 해제 1933년 12월 5일 미국의 유타주가 금주법을 정한 수정헌법 제18조를 무효화하는 수정헌법 제21조를 36번째로 비준함으로써 미국의 4분의 3에 달하는 주(州)가 금주법을 폐지해 역사상 유례가 없던 ‘금주시대’가 미국에서 막 내렸다. http://focus.history.chosun.com/history/read_body.jsp?id=20000331_0032
- Thailand, 100 baht (Banknote)
1927 - 태국 국왕 푸미폰 아둔야뎃(Phumiphon Adunyadet) 출생 부미볼 아둘리아데지(푸미폰 아둔야뎃) [Bhumibol Adulyadej, 1927.12.5~2016.10.13] Phumiphon Adunlayadet, Rama Ⅸ라고도 함. 1782년부터 타이를 통치한 차크리 왕조의 9번째 왕. 출라롱코른 왕의 손자로 아버지인 송클라의 마히돌 왕자가 하버드대학교 유학중에 태어났다. 그는 형 아난다 마히돌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아난다는 1935년 왕이 되어 1946년 6월 9일 저격당해 죽었다. 부미볼은 1950년 4월 시리키트 키티야카라 공주와 결혼했고 1950년 5월 5일 정식으로 왕에 즉위했다. 타이의 절대왕정은 프라자디포크 왕 재위중인 1932년 혁명의 결과로 이미 폐지되었다. 따라서 부미볼 왕은 헌법에 의해 국가의 수반이며 군대 총사령관으로 규정되었더라도 정치적인 실권을 거의 행사하지 못했다. 부미볼 왕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타이 국가의 살아 있는 상징이며 통일의 구심점이다. 1950년대 후반의 사리트 타나라트 정부 이후 부미볼 왕은 공식석상에 자주 나가고 타이의 극단적 정파들이 협조하게 하는 등 공적인 활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후계자는 외아들 바지랄롱코른 왕세자이다. /브리태니커
- 'Portrait of Monet', by Renoir - 'Woman in Garden'
- 'Lady in Garden' - Pleasure Boats'
- 'Impression, soleil levant (Impression, Sunrise)' - 'Waterlilies in Moonlight' 1926 - 프랑스 화가 모네(Monet, Claude,) 사망 모네 [Monet, Claude, 1840.11.14~1926.12.5] [책갈피 속의 오늘]1926년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 사망 “모네가 가진 건 눈밖에 없다.” 가난 탓에 제대로 미술 교육을 받지 못한 모네의 갈증을 풀어 준 건 인상파의 선구자로 불리는 외젠 부댕이었다.
- Poland, 1000000 Zlotych (Banknote) (출처 - 카페 화여자)
1925 - 폴란드의 소설가 레이몬트(Reymont, Władysław Stanisław) 사망 레이몬트 [Reymont, Władysław Stanisław, 1867.5.7~1925.12.5] 폴란드의 작가. 공부를 마치지 못하고 젊은시절에 가게 점원, 수도원의 평수사(平修士), 철도공무원, 배우 등을 전전했다. 초기 작품으로는 〈약속의 땅 Ziemia obiecana〉(1899)이 있다. 이는 급속도로 확장되어가는 공업도시 우지를 배경으로 직물공장 소유주들의 생활과 심리를 묘사한 글이다. 〈만남 Spotkanie〉(1897)·〈희극 여배우 Komediantka〉(1896)를 비롯한 단편소설 및 장편소설은 자연주의적이고 사실주의적인 짧은 문체로 씌어졌다. 소설 〈농민 Chłopi〉(4권, 1904~09)은 1년 4계절 동안의 농민생활을 연대기적으로 기록한 것으로 거의 전체가 농민의 사투리로 씌어졌다. 이 책은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었고 노벨 문학상(1924)을 안겨주었다. 그의 후기 작품은 전기에 비해 표현이 풍부하지 않지만 다양한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그 예로는 유심론 운동에 대한 견해를 나타낸 〈밤피르 Wampir〉(1911)와 18세기말 폴란드의 정치·사회 생활을 해석한 〈1794년, Rok 1794〉(3권, 1913~18)이 있다. /브리태니커
- '물동이를 인 여인' - '현명' (공중전화 카드)
윤효중 [尹孝重, 1917.12.5~1967.10.19] 조각가. 호는 불재(弗齋). 김복진에게서 크게 재능을 인정받았으며, 그의 도움을 받아 도쿄 미술학교 조각과에 입학했다. 1940년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물동이를 인 목조 여인상 〈아침〉으로 입선되었고, 1942년 선전에서 총독상을 수상했으며, 1944년에는 활을 당기는 목조 여인상 〈현명 弦鳴〉으로 창덕궁상을 받아 일찍이 조각적 재능을 발휘했다. 대개 목조로 된 그의 작품은 인체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데 주력했고, 표면질감을 강하게 드러내기 위해 거친 발자국을 나타내기도 했다. 해방과 함께 홍익대학교 미술학과 창설에 참가했고,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추천작가,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예술원 회원,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 홍익대 미술학부장 등을 지내 화단의 행정가로서도 상당한 능력을 발휘했다. /브리태니커
1911 -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Szpilman, Władysław) 출생 슈필만 [Szpilman, Władysław, 1911.12.5~2000.7.6] 브와디스와프 슈필만(Władysław Szpilman, 1911년 12월 5일 - 2000년 7월 6일)은 폴란드의 유대계 피아노 연주자이다. 그가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던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일어났다. 그는 바르샤바 게토로 강제 이주됐고, 레스토랑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대량 학살 이후 게토가 없어지고 대부분의 게토 주민들이 죽었을 때 그는 노동자로서 죽임을 당하지 않았고, 도망쳐서 바르샤뱌의 게토가 있었던 곳에서 숨어 살았다. 나치에 불만을 가졌던 독일군의 빌름 호센펠트 대위가 소비에트 연방이 바르샤바를 점령하여, 독일군이 물러날때까지 슈필만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해 줬으며,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소련의 포로 수용소로 끌려가 죽었다고 한다. 1945년 전쟁이 끝난 직후, 슈필만은 다시 폴란드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폴란드 대중 음악 작곡가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바르샤바에서 살아남은 내용을 담은 《도시의 죽음(Śmierć Miasta)》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썼다. 하지만, 이 책은 전쟁에 대한 관점 때문에 공산주의 정권에게 검열당해야 했다. 약 50년이 더 지나 1998년에 《피아니스트》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판되었고, 이를 토대로 2002년에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다. /위키백과
- Mao and Lin Piao
1907 - 중국의 정치가, 군인 린뱌요[林彪] 출생 린뱌오 [林彪(임표), 1907.12.5~1971.9.13] [역사 속의 인물] 대륙 1인자 꿈꾸다 몰락, 린뱌오 지난달 시진핑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를 통해 중국 서열 1위 국가주석이 되었다. 말을 아끼고 자신을 낮춰 적을 만들지 않음으로써 마침내 13억 명의 중국인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른 것. 반면 은인자중의 자세를 무시하고 나대던 보시라이는 출당 처분을 당한 데 이어 형사처벌까지 받아 재기는커녕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를 걱정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중국에서는 튀지 않고 조용히 지내는 2인자가 최고 권력자가 된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증명된 셈. 1907년 오늘 후베이성에서 태어난 린뱌오(林彪)도 보시라이처럼 굽힐 줄 모르고 설치다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했다. 린뱌오는 마오쩌둥의 공식적인 후계자였다. 문화혁명을 통해 권력을 되찾은 마오가 1969년 전인대에서 통과시킨 당 규약 개정안에 힘입어 린뱌오는 후계자 지위에 올랐다. 하지만 마오가 필요 이상의 정치권력을 린뱌오가 행사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곧 몰락의 길을 걷는다. 린뱌오는 1971년 숙청되지 않기 위한 필사적인 대응으로 쿠데타를 시도했다. 하지만 쿠데타 음모가 마오에게 발각되자 러시아로 달아나던 중 몽골 상공에서 의문의 비행기 추락사고를 당해 6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보시라이가 ‘제2의 린뱌오’라 불리며 몰락한 것을 하늘 위의 린뱌오는 어떻게 생각할까. 배성훈 편집2부장 /매일신문 2012년 12월 05일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64303&yy=2012
안익태 [安益泰, 1906.12.5~1965.9.16] [오늘속으로(12월5일)] 安益泰 1906년 12월5일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가 평양에서 태어났다. 1965년 스페인 마요르카섬에서 몰(沒). 오늘날의 애국가는 안익태가 1936년에 베를린에서 작곡한 ‘한국환상곡’ 마지막 악장이다. 이 곡은 1948년 8월15일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국가로 채택되었다. 일제 시대의 조선인들은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오랜 옛날부터’라는 뜻)의 구슬픈선율에 애국가 가사를 실어 부르곤 했다. 고종석 /한국일보 2003-12-04 16:4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 sec&sid1=103&oid=038&aid=0000210105
디즈니 [Disney, Walt, 1901.12.5~1966.12.15] [오늘속으로(12월5일)] 월트 디즈니 1901년 12월5일 미국의 만화가 겸 만화영화 제작자 월트 디즈니가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66년 몰(歿).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 sec&sid1=110&oid=038&aid=0000037685
하이젠베르크 [Heisenberg, Werner (Karl), 1901.12.5~1976.2.1] [오늘속으로<664>(12월5일)] 하이젠베르크 1901년 12월5일 독일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뷔르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1976년 몰(歿). 1932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그는 친(親)나치 경력에도 불구하고 일생을 영예 속에서 살았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 sec&sid1=104&oid=038&aid=0000162937 1891 - 브라질의 황제 페드루 2세(Pedro II) 사망 페드루 2세 [Pedro II, 1825.12.2~1891.12.5] [역사 속의 인물] 브라질 제국 ‘관대한 황제’페드루 2세 19세기 초에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포르투갈 왕국을 침공하자 왕족들은 식민지인 브라질로 망명했다. 이후 브라질은 포르투갈-브라질 연합왕국의 실질적인 중심지였으며 나폴레옹이 물러난 후에는 자치 의식이 싹터 독립을 추구하게 되었다. 포르투갈이 브라질을 식민지의 지위로 되돌려 놓으려 하자 반발했고 이에 망명 왕족 출신인 페드루 1세가 1822년에 브라질 제국을 선포했다. 페드루 2세는 1825년에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페드루 1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내외의 분쟁에 휘말려 1831년에 포르투갈로 돌아가자 불과 만 5세의 나이로 제위를 물려받아 무려 58년간 통치했다. 16세에 대관식을 치른 후 커피 생산으로 경제 발전을 시도하는 등 현명한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후반으로 갈수록 사회적 모순이 불거지면서 인기를 잃었다. 특히 1888년에 노예제를 전면적으로 폐지한 것이 결정타였다. 이에 반발한 세력들이 이듬해 군사정변을 일으켜 제정이 폐지됐고 유럽으로 망명한 그는 호텔을 전전하다 1891년 오늘, 66세의 나이로 숨졌다. 노예제 폐지에서 보듯 ‘관대한 군주’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비교적 좋은 지도자였다. 리우데자네이루 인근의 도시 페트로폴리스가 그의 이름을 딴 데에서 알 수 있다. 김지석 논설위원 /매일신문 2013.12.05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59838&yy=2013
- Fritz Lang, Igor Stravinsky, John Muir, Wernher von Braun 랑 [Lang, Fritz, 1890.12.5~1976.8.2] 오스트리아 태생 미국의 영화감독. 죽음과, 인간의 불가피한 숙명을 극복해야 하는 내용을 다룬 그의 작품들은 시각 구성의 걸작으로 여겨지고 있다. 건축가의 아들로 태어나 빈의 기술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한 뒤 두루 여행을 다니다가 파리에 한동안 거주하면서 화가로 일했다. 제1차 세계대전중 오스트리아 군대에서 복무하다가 입은 상처를 회복하는 동안 영화대본을 쓰기 시작했으며 전쟁이 끝난 뒤 베를린으로 가서 독일의 영화제작자인 에리히 포머와 함께 일했다. 감독으로서 성공을 거둔 첫 작품은 〈죽음에 지치고 Der müde Tod〉(1921)였다. 〈도박사 마부제 박사 Dr. Mabuse, der Spieler〉(1922)는 범죄 주동자를 다룬 작품이며, 〈니벨룽겐 Die Nibelungen〉(1924, 미국에서는 〈지크프리트 Siegfried〉와 〈크림힐트의 복수 Kriemhild's Revenge〉의 2부로 나뉘어 개봉됨)은 13세기초의 독일시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메트로폴리스 Metropolis〉(1926)는 미래를 표현주의적으로 관찰한 작품이다. 그의 가장 유명한 독일 영화인 〈엠 M〉(1931)은 살인충동을 파헤친 작품이다. 〈마부제 박사의 유언 Das Testament des Dr. Mabuse〉(1932)에서는 어떤 미친 사람이 나치의 철학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이 나치 선전담당관 조제프 괴벨스의 눈에 띄어 독일 영화를 감독하게 된다. 랑은 그날 저녁 파리로 떠났으며 그뒤 미국으로 이주했다. 〈분노 Fury〉(1936)는 폭력을 휘두르는 군중들을 다룬 작품으로 그가 만든 미국 영화 중 가장 많은 찬사를 받았다. 다른 작품들로는 〈너는 단지 한번 산다 You Only Live Once〉(1937)·〈Western Union〉(1941)·〈사형집행인도 죽는다 Hangmen Also Die〉(1943)·〈주홍의 거리 Scarlet Street〉(1945)·〈밤의 대결 Clash by Night〉(1952)·〈악명의 목장 Rancho Notorious〉(1952)·〈Moonfleet〉(1955)·〈Beyond a Reasonable Doubt〉(1956) 등이 있다. 폴 M. 젠센이 쓴 〈프리츠 랑의 영화 The Cinema of Fritz Lang〉가 1969년에 발간되었다. /브리태니커 1872 - 인도의 시크교도 작가, 신학자 바이 비르 싱(Vir Singh, Bhai) 출생 비르 싱 [Vir Singh, Bhai, 1872.12.5~1957.6.10] 시크교도 작가·신학자. 펀자브어를 유례 없이 높은 문학적 수준의 언어로 끌어올렸다. 그가 작품을 쓴 시기는 시크교도의 종교·정치 및 펀자브어가 영국과 힌두 문화의 강력한 공격을 받아 시크교도들이 스스로의 생활 방식의 가치를 의심하기 시작할 때였다. 다재다능한 글솜씨로 시크교도의 용기·철학·이상을 칭송하고 문학도구로서의 펀자브어에 대한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철학 핵심은 인간이 신을 인식하려면 자만심과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나면 그때부터 신을 내면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 1899년 바이 비르 싱은 암리차르에서 〈칼사 소식 Khālsā Samācār〉이라는 주간지를 창간했는데, 이 주간지는 아직 발행되고 있다. 그의 소설로는 17세기 구루 고빈드 싱의 일생에 관한 소설 〈칼기들루르 차마타르 Kalgῑdlur Camathār〉(1935)와 시크교 창시자의 전기인 〈구루 나나크에 대한 이야기 Guru Nānak Camathār〉(2권, 1936) 등과 시크교 철학과 뛰어난 용감성에 대한 소설로 〈순다리 Sundarῑ〉(1943)·〈비자이 싱 Bijai Singh〉(1899)·〈바바 노우드 싱 Bābā Noudh Singh〉(1946) 등이 있다. 그는 짧은 운율이나 무운시(無韻詩)와 같이 펀자브어로는 씌어진 적이 없던 시와 문학 양식들을 사용했다. 그의 시 〈밤샘 The Vigil〉은 그의 사후에 출판되었다. 그의 공헌을 기려 펀자브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다. /브리태니커 1870 - 미국의 카우보이, 로데오의 영웅 빌 피켓(Pickett, Bill) 출생 피켓 [Pickett, Willie M. "Bill", 1870.12.5~1932.4.2] [역사 속의 인물] 로데오의 영웅 빌 피켓 로데오는 가장 미국적인 경기다. 서부시대의 카우보이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흔히 말`소 위에서 오래 버티는 것만 알지만 경기 종목이 많다. 반야생마 타기, 안장 없이 말타기, 소타기, 밧줄던지기, 소와의 격투 등 5개 기본형과 그 변형이 있다. ‘로데오 거리’라는 말도 1887년 콜로라도에서 처음 로데오 경기가 열렸을 때 상설 할인매장이 형성된 것에서 유래했다. 초창기 로데오의 영웅은 흑인 빌 피켓(1870~1932)이었다. ‘소와의 격투’(bulldogging) 종목에 출전하면 구름같이 관중이 몰려들었다. 말에서 소 잔등으로 건너 올라탄 후 소를 넘어뜨리는 위험천만한 경기였다. 그의 기술은 처절했다. 손으로 뿔을 잡고 이빨로 소 머리를 물어뜯어 넘어뜨리는 방식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기술을 가졌다’는 평판을 얻었다. 그 당시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대단히 어려운 경기여서 현재는 수송아지로 경기를 한다. 1870년 오늘, 텍사스에서 노예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목장일을 했다. 카우보이답게 말에게 머리를 부딪혀 사망했다. 1971년 카우보이 명예의 전당, 1989년 프로로데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박병선 논설위원 /매일신문 2009년 12월 05일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52421&yy=2009
뒤마 [Dumas, Alexandre, 1802.7.24~1870.12.5] 역사속의 오늘-'삼총사' 작가 뒤마 사망 ‘삼총사’, ‘철가면’, ‘몽테크리스토 백작’. 어린 시절 기억에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봤음직한 모험 가득한 소설은 ‘대(大)뒤마’라고도 불리는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소설가 알렉상드로 뒤마의 작품이다. 1870년 12월 5일 ‘대 뒤마’가 디에페 근교 푸이즈에서 사망했다. 고향 비예 코트레에 묻힌 뒤마는 2002년 11월 30일 파리 팡테옹으로 옮겨졌다. 나폴레옹 1세 휘하의 장군이었던 뒤마의 아버지는 뒤마가 네 살 때 죽었다. 이후로 뒤마의 집안은 가난한 삶을 살게 된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뒤마의 책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손에 잡히는 책은 닥치는 대로 읽었다. 이와 함께 어머니가 들려주는 군내에서 아버지의 활약상은 아들 뒤마에게 모험과 영웅에 대한 동경심을 심어주었다. 뒤마의 작가 생활은 스무 살 때 파리로 간 뒤 시작됐다. 잡지에 글을 싣다가 극본을 쓰게 됐고 사극 ‘앙리 3세와 그 궁정’(1829)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극작가로서의 길을 걷게 됐다. 1830년 7월 혁명에서 루이 필리프를 지지해 크게 활약하기도 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매일신문 2006년 12월 04일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53839&yy=2006
노바크 [Novák, Vítězslav, 1870.12.5~1949.7.18] 체코 작곡가. 프라하대학에서 법률과 철학을 공부하면서 동시에 음악원에서 스테카·드보르자크 등에게 사사한 뒤, 동음악원에서 작곡강의를 하였고, 1919∼1922년에 원장으로 취임하였다. 그의 작풍은 대단히 민족적이기는 하지만, 그 반면 프랑스인상파의 영향도 적지 않다. 작품으로는 《타트라에서(1902)》 《영원한 동경(1904)》 《숲속의 요정(1907)》 《남체히(보히미아) 모음곡(1937)》 《가을 교향곡(1937)》 등이 있고, 이외에 세레나데·서곡·피아노협주곡·오페라·발레·실내악·가곡 등의 작품이 많다. 또 1900∼1930년 사이에 6집에 달하는 슬로바키아민요를 출판하였다. /yahoo
피우수트스키 [Piłsudski, Józef (Klemens), 1867.12.5~1935.5.12] 폴란드의 정치가, 혁명가. 러시아 하르코프대학 의학부에 재학 중 학생운동에 참가하여 퇴학당하였다. 후에 나로드니키 테러리스트로서 알렉산드르 3세 암살계획에 연루되어 1888~1892년 시베리아로 유형, 그 곳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어 폴란드사회당을 결성하고 지하신문 《노동자》를 발행하다가 다시 투옥되었다(1900). 이듬해 탈옥, 영국으로 망명하고 러시아 제1혁명(1905∼1907) 후, 폴란드 독립을 위해서는 러시아의 패전(敗戰)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오스트리아로 망명하여 그 참모본부의 지지를 얻어 갈리시아에 무장집단 ‘스트레리치’를 조직하였다.
- USA, 10 Dollars (Banknote) Alexander Hamilton 1791 - 알렉산더 해밀턴 미국 재무장관, ‘제조업에 대한 보고서’ 의회에 제출 [오늘의 경제소사/12월 5일] <1260> 제조업보고서 ‘미국의 미래는 제조업에 있다. 보조금을 지급하고 수입 공산품에 관세를 매겨 국내산업을 보호해야 한다.’ 1791년 12월5일 알렉산더 해밀턴 미국 재무장관이 의회에 제출한 ‘제조업에 대한 보고서’의 골자다. 권홍우 편집위원 /서울경제 2008/12/04 17:42:11 http://economy.hankooki.com/lpage/economy/200812/e2008120417420797490.htm
- Austria, 5000 Schilling (Banknote)
모차르트 [Mozart, Wolfgang Amadeus, 1756.1.27~1791.12.5] 오늘의 역사 (12월 5일)[1791년] 모차르트 사망 오스트리아 작곡가 모차르트가 1791년 12월 5일 사망했다. 어렸을 때부터 재능을 나타내어 4세 때 건반 지도를 받고 5세 때 소곡을 작곡했다. 그의 뛰어난 재능을 각지에 알리기 위해 당대에는 꽤나 유명한 궁정음악가였던 아버지가 계획한 여행은 그가 작곡가로서의 활동에 커다란 자극과 영향을 주었다. 특히 서유럽을 일주하면서 파리에서 알게 된 J.슈베르트, 런던에서 알게 된 J.C.바흐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771년까지는 주로 잘츠부르크에 머물면서 미사곡과 사교적인 작품을 많이 작곡하였으나 1780년말 뮌헨궁정으로부터 오페라 상연을 의뢰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아버지의 반대와 사표의 반려에도 불구하고 잘츠부르크를 떠나 빈에서 거주, 그의 후반부 작품세계가 시작됐다. 빈에 머무는 동안 작곡한 교향곡이나 현악4중주곡은 하이든의 것과 함께 고전파시대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확립하는 작품이 됐다. 이시기에 작곡한 작품으로 '피가로의 결혼'(1786) '돈조반니'(1787), 3대 교향곡 '제39번 E장조''제40번 G단조''제41번C장조:주피터교향곡'이 있다. 1791년 9월 징그슈필의 대작 '마적'을 완성하여 성공을 거두었으나 잦은 여행으로 인한 건강악화와 경제적 궁핍으로 '레퀴엠'을 미완성인 채 남겨두고 이날 빈에서 36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36년을 채 채우지 못한 모짜르트의 삶은 '천재적인 것'의 온갖 세속적 징표들로 가득했다. 조숙, 범절에서의 일탈, 가난, 요절 등이 그 징표였다. /조선 http://focus.history.chosun.com/history/read_body.jsp?id=19990804_0123
1782 - 미국의 제8대 대통령 밴 뷰런(Van Buren, Martin) 출생 밴뷰런 [Van Buren, Martin, 1782.12.5~1862.7.24] 뉴욕주(州) 킨더후크에서 출생했다. 변호사를 개업한 후, 1812∼1820년 뉴욕주 상원의원, 뉴욕주 검찰총장, 1821∼1828년 연방 상원의원을 지냈으며, 1829년 뉴욕 주지사로 선출되었으나 곧 사퇴하였다. 1829∼1831년 A.잭슨 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다음 1833∼1837년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1836년 민주당후보로 대통령에 당선, 잭슨의 정책을 계승하였다. 1837년의 공황대책(恐慌對策), 대영국외교(對英國外交), 전국정당(全國政黨)으로서의 민주당 조직의 확립과 유지, 텍사스 즉시병합(卽時倂合) 반대 등에 진력하였으나, 인기를 잃은 채 1840년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의 W.해리슨에게 패배하였다. 이후 민주당의 장로로서 정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1860년 대통령선거에서는 공화당의 A.링컨을 지지하였다. /naver
1443 - 로마 교황 율리우스 2세(Julius II) 출생 율리우스 2세 [Julius II, 1443.12.5~1513.2.21] 로마 교황. 델라 로베르가(家) 출신으로 원 이름은 줄리아노 델라로베레(Giuliano della Rovere). 교황 식스토 4세의 조카로, 아비뇽의 대주교 ·추기경 등을 거쳐, 비오 3세의 짧은 재임 뒤에 교황이 되어 교회국가의 재건과 확대에 노력하였다. 베네치아로부터 영토를 빼앗기 위하여 1508년 프랑스 ·독일과 캉브레동맹을 맺고, 프랑스 루이 12세의 세력이 증대하자 베네치아 ·에스파냐 등과 신성동맹(神聖同盟)을 맺었다. 이 동맹이 성공하여 이탈리아에서는 프랑스 세력은 쇠퇴하고 그 뒤로는 에스파냐의 세력이 증대되었다. 그는 정치 외에 학문 ·예술의 진흥 ·보호에도 힘써 로마를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특히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를 보호하고, 성베드로대성당을 재건한 것은 유명하다. /naver ----------------------------------------------------------------------------- - 화상이 창안하여 2004년 4월부터 매일 연재하고 있는 [우표로 본 오늘의 인물과 역사]는 세계최초의 <우표를 이용한 매일역사연재물>입니다. 수집한 우표를 이용하여 오로지 취미와 교육적 목적으로 만들고 있지만, 자료의 충실을 기하느라 본의 아니게 저작권에 저촉되는 일이 생길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혹시 문제가 있으면 미리 알려주셔서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