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맹담(安孟聃.1415.태종 15∼1462.세조 8)
조선 세종(世宗)의 사위. 자는 덕수(德壽), 시호는 양효(良孝), 본관은 죽산(竹山). 관찰사 안망지(安望之)의 아들.
1428년(세종 10) 세종(世宗)의 딸 #정의공주(貞懿公主)와 결혼한 뒤 죽성군(竹城君)이 되고, 1432년에는 연창군(延昌君), 이어서 연창위(延昌尉)가 되었다. 집 뒤에 세웠던 불당을 헐어서 그 자재로 문수사(文殊寺)를 중수(重修)하여 문제가 되었으나 무사했다.
1455년(세조 1) 원종공신(原從功臣)의 칭호를 받고, 수록대부(綬祿大夫)에 올랐다. 글시와 활쏘기에 능했고, 음악⋅의약 등에도 조예가 깊어 약을 지어 주기를 즐겼다. 아등 상계(桑鷄)가 있었다. - 이홍직 : <국사대사전>(백만사.1975) -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덕수(德壽), 시호는 #양효(良孝), 함길도(咸吉道) 관찰사(觀察使) 망지(望之)의 아들이다. 1428년 세종의 둘째딸 정의공주(貞懿公主와 결혼하여 죽성군(竹城君)에 봉해졌고, 1432년 다시 연창군(延昌君)에 봉해졌다.
뒤에 연창위(延昌尉)에 개봉되었으며, 세조 원년(1445)에는 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고 수록대부(綬祿大夫)에 올랐다. 글씨에 뛰어나 초서를 잘 썼으며, 말 타기, 활쏘기 등 무예에도 뛰어나 수양대군과 가까이 지내기도 하였다.
사어(射御)를 잘 하였으며 음률(音律) ·약물(藥物)에도 밝았다. 그의 아들 안상계는 돈령도정을 지냈는데, 단종 문제로 세상이 어수선하자 저자동에 조용히 머물렀고 김종직·남효온과 친교가 있었으며 세조의 조정에 출사하지 않았다 한다. 경기도 양주시 만송동에 안맹담의 사우(祠宇)가 있다.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良孝公 安孟聃과 貞懿公主 墓域)】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0호.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 63-1, 465-2, 468-1. 조선 세종의 딸 정의공주의 부군인 양효공 안맹담의 묘소와 신도비(神道碑)이다.
묘는 정의공주와 쌍분으로, 봉분 2개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으며 봉분 앞에 석등과 4기의 문인석이 있다. 묘역 아래에 세워져 있는 신도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받침돌의 거북조각과 머릿돌에 새겨진 두마리의 용조각은 매우 뛰어나면서도 정교한 편이다. 비문은 정인지(鄭麟趾)가 지었고 글씨는 안맹담의 넷째 아들 안빈세(安貧世)가 썼다. 현재 비문은 마모가 심해 판독이 어려우나 전문이 전해지고 있다.
묘소는 도봉산(道峰山)의 한 지맥인 시루봉[甑峰] 남쪽 기슭에 부인 정의공주의 묘와 나란히 위치한다. 묘 앞에는 각각 "수록대부연창위양효공안맹담지묘(綏祿大夫延昌尉良孝公安孟聃之墓)"와 "정의공주지묘(貞懿公主之墓)"라고 새겨진 묘갈(墓碣)이 있으며, 네 구의 석인상(石人像)과 석등(石燈)이 세워져 있다. 이 일대는 죽산 안씨의 공동묘역으로 수많은 묘가 자리하고 있어 조선시대 묘비(墓碑) 연구의 중요한 사례가 된다.
묘소보다 한 단 아래에 위치한 신도비는 1466년 7월에 건립된 것으로 귀부(龜趺)·비신(碑身)·이수(螭首)를 모두 갖추었다. 지대석 위에 놓인 화강암제 귀부는 높이 1.2m, 길이 2.8m, 너비 1.7m나 된다. 귀부 위에 세운 대리석제 비신은 이수와 한 돌로 되어 있는데, 이수에는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받들고 있는 형상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비문은 안맹담의 사돈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하동군(河東君) 정인지(鄭麟趾: 1396∼1478) 지었다. "양효안공묘비(良孝安公墓碑)"라 새긴 머리전서[頭篆]와 비문 글씨는 양효공의 넷째 아들인 안빈세(安貧世)가 썼는데, 서풍은 조선 초기에 유행한 송설체(松雪體)이다.
【안맹담(安孟聃) 사우(祠宇)】
경기도 양주시 만송로 207-73(만송동 70-51)에 있는 조선 전기 세종의 사위 안맹담(安孟聃)의 사당. 안맹담 사우(安孟聃祠宇)는 안맹담을 기리기 위한 사당이다.
안맹담의 아들 안종탄(安從坦: 1490~1538)이 10세 되던 해인 1500년(연산군 6)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16~17세기 임진왜란·병자호란의 양란으로 거의 소실되어 18세기 전반에 중건하였다. 이후 6·25 전쟁으로 대부분 소실된 것을 1971년 19세손인 안성만(安聖萬)이 중심이 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이다. 전면의 세 기둥은 원주(圓柱)이고, 나머지는 각주(角柱)를 사용하였다. 익공(翼工)을 올린 초익공식(初翼工式) 건물이며, ‘양효공 사우’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안맹담 사우는 죽산 안씨 연창위 종가(竹山安氏延昌慰宗家) 안에 위치한다. 안맹담 사우를 포함해 죽산 안씨 연창위 종가는 2001년 1월 16일 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소유자 및 관리자는 안민용이다. 안맹담 사우는 조선 초기 왕실의 혼인 관계 및 사당 건축 양식을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안맹담 묘역 봉분
▲안맹담 묘역 전경
▲양효안공 묘비
▲양효안공 신도비
▲정의공주 묘비
▲양주시 안맹담 사우
▲양주시 안맹담 사우 입구
▲사우 내부
[출처] 조선 세종 사위 안맹담(安孟聃)
[출처] 조선 세종 사위 안맹담(安孟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