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철을 타고 나가
칠월 둘째 토요일은 가끔 산행을 함께 다니는 벗과 강둑으로 트례킹을 나선 날이다. 벗과 다녀올 행선지는 김해 경전철로 김해공항 근처로 나가 낙동강 강둑을 걸어 화명대교를 건너 구포로 가서 무궁화호를 타고 창원으로 복귀 예정이었다. 실종된 장마전선은 종적을 찾을 수 없는 가운데 어제 오후엔 애타게 기다리던 소나기가 한줄기 내려 달구어진 대지를 조금이나마 식혀주었다.
유월 하순에 예정했던 트레킹이 출발을 하루 앞두고 갑자기 내가 집을 비우지 못할 사정이 생겨 벗에게 양해를 구하고 미루어졌다. 살던 아파트를 리모델링했더니 아래층 욕실에서 누수가 있다는 민원으로 시공업자가 들려 점검이 예정되어서였다. 그날 집을 찾아온 시공업자는 탐지기로 몇 군데 짚어보더니 누수 원인은 의외로 간단한 곳에서 발견되어 손쉽게 해결되어 마음이 놓였다.
칠월 초순 토요일 아침 창원대학을 출발해 김해 불암동을 오가는 첫차 운행 97번을 탔다. 시청 광장을 돌아 상남동에서 동행할 벗이 합류해 창원터널을 지나 장유에서 김해 시내로 들어갔다. 수로왕릉역에서 부산 사상으로 가는 경전철로 갈아타 시가지를 벗어나 대저 들녘을 지나니 드넓은 김해평야가 드러났다. 우리는 공항 못 미친 등구역에서 내려 낙동강 하류 강둑으로 올라섰다.
을숙도 하굿둑에서 시작된 낙동강 하류 생태탐방로의 길고 긴 강둑은 오래전 자전거 길로 닦여졌으니 산책로를 겸함은 당연했다. 을숙도에서 김해 대동에 걸친 칠십 리에 이르는 강둑은 벚나무가 가로수로 식재되어 봄날이면 벚꽃이 화사해 상춘객이 황홀해했다. 다른 계절에도 철 따라 사람들이 찾아와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거나 우리처럼 도보로 산책하는 이들도 가끔 볼 수 있었다.
둑길 양편은 아름드리 벚나무 가로수가 그늘을 드리워 햇볕을 가렸기에 뜨거운 햇살을 피할 수 있었다. 강 건너는 부산 사상에서 화명 일대의 빌딩과 아파트단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백양산에서 이어진 산등선은 금정산 고당봉까지 아스라이 보였다. 김해 대동 방향으로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니 십대 학창 시절 국어 교과서에 나온 이은상의 ‘낙동강’ 시비와 동상을 만나기도 했다.
사덕마을을 지나다 정자에 올라 벗이 가져온 담금주를 비우면서 주변 풍광을 조망했다. 쉼터에서 일어나 발길을 때어 김해 대동으로 향하니 까만 빗돌에 가곡 ‘그네’의 노래비를 오선지 악보에 새겨 놓았는데 곁에는 작곡자 금수현이 사색에 잠긴 모습으로 동상이 되어 앉아 있었다. 교육자이기도 했던 금수현은 부산과 경남의 경계였던 대저 출신이라 그의 노래비가 강둑에 있었다.
부산 시민들의 식수원인 김해 상동면 매리취수장의 대형 송수관은 경전철과 구포대교와 함께 교량이 놓여 낙동강 강심을 건너고 동래에서 만덕을 넘어온 3호선 지하철은 강서 대저로 향해 갔다. 서낙동강이 흘러가는 배수장 수문을 지나다 정자에 올라 남겨둔 담금주를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행정구역은 김해 대동면이었다. 장미와 국화를 비롯한 화훼시설재배로 알려진 곳이었다.
물길이 서낙동강으로 나뉜 수문을 지나니 대형 주탑에 쇠밧줄이 걸린 사장교가 나왔는데 화명대교였다. 김해 대동과 부산 북구 화명동을 연결하는 교량이었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보도가 확보되어 자전거나 사람의 통행이 자유로웠다. 우리는 화명대교 보도를 따라 강 건너 화명으로 가니 생태공원이 펼쳐졌다. 잔디밭에는 뙤약볕도 아랑곳하지 않고 파크골프에 열중하는 이들을 봤다.
습지 생태공원엔 연꽃이 화사한 꽃망울을 밀어 올려 눈길을 끌었다. 구포 시장에서 가까운 강가는 최근 금빛 노을 전망대가 세워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 구름다리를 따라 끝까지 가봤다. 저녁놀은 물론 야경이나 아침 안개도 멋질 듯했으나 한낮이라 마음으로만 그려보고 되돌아왔다. 둘은 구포역으로 가서 돼지국밥에 맑은 술을 곁들여 소진된 열량을 벌충하고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22.07.09
첫댓글 이 더운 날...
참으로 대단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