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재의 돌발史전] 1948년 유엔은 대한민국을 ‘38선 이남 합법정부’라 했나?
조선일보 2023.03.17
1948년 8월 15일 중앙청에서 열린 대한민국 수립 선포식.
프랑스 파리를 방문하는 관광객마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센 강 건너편 샤요 궁이 있는 언덕 광장이죠. 그런데 그 샤요 궁이 바로 1948년 12월 12일 열린 제3차 유엔 총회에서 ‘대한민국은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라는 결의를 한 역사적 장소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드 괴담’과 ‘청담동 술자리’를 믿는 사람이 아직도 30%를 넘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아마 ‘1948년 12월의 제3차 유엔총회 결의’를 조사하더라도 아직 잘못 유포된 ‘괴담’을 믿는 사람이 꽤 많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무슨 얘긴가 하면, 당시 결의가 ‘대한민국은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가 아니라 ‘대한민국은 38선 이남의 합법 정부’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1990년대 대학교를 다닐 때 NL 계열의 운동권 선배들은 이런 얘기, 즉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가 아닌 ‘38선 이남의 합법 정부’라고 했다는 것이 사실인 것처럼 말하고 다녔습니다. 심지어 “그 결의문에 한반도라는 말은 들어있지도 않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이런 얘기는 이영희 등 일부 좌파 이론가들이 주장했던 내용이 유포됐던 것이고, 급기야 훗날 검인정 역사 교과서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난해엔 초등학교 5~6학년이 사용할 사회 과목 검정 교과서 11종 중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를 제대로 쓴 교과서는 단 2종뿐이라는 뉴스도 나왔습니다.
1948년 제3차 유엔총회가 열린 프랑스 파리 샤요궁. 에펠탑 맞은편에 있다. /이한수 기자
이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긴밀한 관련이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1948년 12월 12일 프랑스 파리의 제3차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결의 제195호(Ⅲ) 2항은 도대체 무슨 말을 했던 것일까요? 원문을 보겠습니다.
Declares that there has been established a lawful government(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having effective control and jurisdiction over that part of Korea where the Temporary Commission was able to observe and consult and in which the great majority of the people of all Korea reside.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이 감시하고 협의할 수 있었으며 한국인의 대다수가 살고 있는 한반도 내 지역에 관해 유효한 지배권과 관할권을 가진 합법 정부(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음을 선언한다.]
…and that this is the only such Government in Korea.
[그리고 이것은 코리아(한반도)에서 유일한 그런(합법적인) 정부임을 선언한다.]
‘Korea’를 ‘한국’이나 ‘대한민국’으로 번역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한반도’라고 번역한 것이고, ‘the only such Government’는 ‘합법 정부’라는 의미가 분명합니다. 대한민국의 지배권과 관할권이 38선 이남에서만 유효하지만, ‘합법 정부’라는 성격에서는 한반도에서 유일하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 같은 해 9월 9일 38선 이북에서 수립된 이른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즉 북한 정부는 합법적인 정부가 아니라는 명백한 의미인 것이죠.
대한민국 승인을 얻기 위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3차 유엔총회에 참석한 대표단.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정일형 김우평 장기영 김진구 김활란 장면 조병옥 모윤숙. /운석장면기념사업회
왜 유엔이 한반도 전체에서 대한민국, 즉 남한 정부만 ‘합법 정부’라고 인정했던 것일까요.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항복으로 광복이 됐지만 38선 남·북을 각각 미군과 소련군이 점령했습니다. 이 점령은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위한 일시 점령이었죠. 연합군은 이미 1943년 카이로 선언에서 시기를 밝히지 않은 채 ‘코리아를 독립시킨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948년 9월 지중해 진출이 무산된 소련은 38선 이북 한반도에 친소 정권을 세우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1946년 2월 들어선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는 사실상의 정부였고 분단을 고착화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한반도 문제를 논의한 1946~1947년의 미·소 공동위원회는 성과를 내지 못했고, ‘코리아 독립’ 문제는 1947년 9월 유엔 총회에 의제로 상정됐습니다.
‘유엔 감시하의 총선거’를 한반도 전역에서 실시하기로 결정돼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이 1948년 1월 한국에 도착했지만 소련의 반대로 38선 북쪽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2월 유엔 소총회는 ‘선거가 가능한 지역에서만이라도 선거를 감시한다’는 결정을 내려 5월 10일 제헌국회를 구성하기 위한 총선거가 유엔 감시하에 이뤄졌습니다.
1948년 5월 31일 열린 제헌의회 개원식. /조선일보 DB
선거권은 만 21세 이상 남녀, 피선거권은 만 25세 이상의 남녀 국민이면 가질 수 있었고, 선거인 명부 등록자 중 95.5%가 참여한 이 선거로 198명의 제헌의원이 선출됐습니다. 이들로 구성된 제헌국회는 7월 17일 첫 헌법을 통과시켰고 3일 뒤 초대 대통령에 이승만을 선출해 8월 15일 대한민국 수립 선포식을 열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왕조가 이어진 뒤 식민 지배까지 받았던 한민족이 비로소 자유·보통선거와 복수정당제에 토대를 둔 의회민주주의의 역사를 시작하게 됐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성문종합영어 수준의 영문 독해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그리고 왜곡의 의도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라면 결의안 원문의 문장을 오역할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관장을 맡았던 주진오 상명대 교수는 과거 좌편향 교과서로 비팓받았던 천재교육 교과서에서 ‘38선 이남의 합법 정부’라고 서술했다가 훗날 국회에서 잘못을 시인했습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도 저서 ‘국가보안법 연구’에서 ‘38선 이남의 합법 정부’였다고 주장한 적이 있지만 이미 고인이 돼 이 문제에 대해 물어볼 수 없게 됐습니다. 학계에선 이미 이 오역 문제는 논쟁거리도 되지 않는 것 같지만, 아직도 교과서 같은 곳에 남아있는 영향력이 적지 않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