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구슬나무 아래에 가면
문곡 최상섭
멀구슬나무 밑에 가면 희수인 내가 청춘의 시대에 빠져 그리움으로 함몰되었던 젊음의 시절로 회귀(回歸)한다. 나무도 나무려니와 그 향이 마치 사랑했던 여인의 아름다웠던 정분(情分)과 분 내음 향이 어우러진 것처럼 이곳이 무릉도원의 세상인가 착각에 빠진다. 세세한 꽃잎 기특하고 그 향이 어찌나 진한지 어떤 이는 만리향이라 말할 만큼 5월의 멀구슬나무 아래는 천상천하(天上天下) 가장 행복한 곳이다.
꽃나무를 좋아하는 나는 매일 이 나무 밑에서 꽃나무를 화분에 심는다. 아니 꽃나무를 심는 게 아니고 지나간 내 인생을 반추하며 추억을 심는다는 말이 거의 타당하다 할 것이다. 요즈음은 여러 종 비비추를 구해서 40여 개의 화분을 만들어 사랑하는 제자와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다. 소재값이 만만치 않지만 이 또한 불가의 보시와 기독교의 사랑의 마음이라 내 딴은 착각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착한 선행이라고 여기니 꼭지가 덜 떨어져도 한참 아래인 내 인생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이 나무 아래에서 꽃나무를 심는 순간은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지고 정신 집중이 잘 되어 그야말로 행복한 시간임을 느낄 수 있어 내게는 천상 열차를 타고 우주를 여행하는 기분이다.
이제 멀구슬나무에 대하여 알아보자. 멀구슬나무는 분류는 쥐손이풀목 > 멀구슬나무과 > 멀구슬나무속 > 멀구슬나무이다. 꽃의 색깔은 보라색이고 학명은 Melia azedarach L.이며 꽃말은 “경계”이다. 개화기는 5월, 6월이며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잘 자란다. 이 멀구슬나무가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개교 시 심었던 큰 나무와 이 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져 여러 군데 작고 큰 멀구슬나무가 자라고 있다. 꽃나무를 심을 수 있는 작업공간이 없는 나는 이 중간 크기의 나무 아래에 헌 책상 2개와 작업 도구를 갖추어놓고 짬이 나는 시간으로 이곳에서 꽃나무 심기 작업을 한다. 참으로 마음이 편한 보랏빛 삶이 펼쳐지는 순간들이다. 이보다 더한 기쁨이 도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으니 나는 분명 백치 아다다임이 확실하다는 나만의 생각을 해 본다. 노락(老樂)이 이런 것이려니 생각하니 마음에 빚이 없고 빙그레 미소가 절로 나온다.
오늘도 멀구슬나무 짙은 향에 매료되어 이곳에 앉아 있으면 천하가 부러울 게 없다. 사람 사는 게 별것인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좋은 장소에서 할 수 있으면 행복(幸福)이 아니겠는가? 2022. 05. 24 신 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