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칠불암에 머물 때 준비한 칠불암 안내문입니다. 몇 글자 보태어 안내드립니다. 월암)
칠불암(七佛庵) 연혁
신라 서라벌 백성들은 남산을 이상향의 피안인 “연화장세계”(불국정토)로 생각하였다. 살아 생전에 남산에 올라 기도 정진하고, 죽어 사후에 남산 불국 정토에 부처로 태어나기를 기원하였다. 그래서 남산의 골짜기마다 가람을 꾸미고, 바위를 보면 불보살상을 조성하고, 언덕마다 탑을 세워 이 땅의 현생정토를 장엄하였다. 천년의 세월이 지난 이즈음에도 남산에는 수많은 불적이 남아 자연박물관을 이루어 우리 민족의 거룩한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남산은 신라인, 아니 우리 민족의 영원한 어머니요 고향이다.
남산의 얼굴은 “칠불암”이다. 즉 남산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찰이 칠불정토로 불려지고 있는 칠불암인 셈이다. 칠불암은 남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미타봉(일명 봉화봉)을 바라보고 있는 관음봉의 정상 아래쪽 깎아 찌른 듯한 거대한 바위폭포 밑에 천년미소를 머금고 웅자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창건 당시의 모습과 절 이름은 알 수 없으나 일곱 부처님이 계시는 까닭으로 언젠가부터 칠불암이라 불려지고 있다. 이 곳에서 발견되는 힘차면서도 화려한 기와 무늬며, 귀인들이 기도드리고 중병을 고쳤다는 비명문 조각, 그리고 산 정상에 거대한 불상 군을 조각한 사실과 감은사지 쌍탑에 비견되는 대탑의 흔적 등으로 미루어 보아 창건 당시에는 왕궁에서 직접 관장하던 “국찰”(國刹) 규모의 가람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세월의 무상함 앞에서 초란한 암자의 모습으로 전락하여 문화 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이 돈독한 사람들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칠불암은 신라 왕궁 반월성에서 불국사 방향으로 3km 지점에서 화랑교육원, 통일전 방향으로 우회전 하여 남산동에 이르러 절골이라 불리는 골짜기 밑 주차장(남산사 지나 사과밭집)에서부터 걸어서 한 시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칠불암 입구인 남산 기슭에 들어서면 전형적인 이 땅의 정다운 산수를 만나게 된다. ‘山절로 水절로 山水간에 나도 절로’를 되뇌며 개울을 건너고 언덕을 지나 솔바람에 정담을 실어 보내며, 오솔길을 따라 5리 정도 걸어 올라가면 계곡 주위에 쭉쭉 뻗은 “미인송”(美人松)을 만나게 되고, 마침내 미인솔 향기에 취하는 듯 남산에서 가장 깊은 봉화골(일명 미타골)의 품에 안기게 된다. 미타골로 들어서면 여울은 급하게 흘러 내리고 산길은 점점 경사가 심해진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칠불암 절골에 접어들면 천년을 흘러내린 차디찬 맑은 옥샘이 기다리고 있다. 이 옥샘은 삼국유사에서 왕이 친히 올라 물맛을 보았다는 “천천”(天泉: 하늘 샘)으로 추정되고 있는 샘이다. 하늘 샘에서 한 모금 천수(天水: 감로수)를 마시고 가파른 인생길의 여독을 한 순간에 떨치고 칠불암을 향해 하늘 사다리 길을 오르게 된다. 마지막 108 계단을 올라 거칠어진 숨을 고르고 이마의 땀을 훔치기 바쁘게 눈앞에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인간 세계를 떠난 하늘 신선 세계)의 세계인 칠불정토(일명 오불정토: 5불 2보살)가 펼쳐진다.
이 시대 마지막 천연(天然)의 기도 성지라 불리는 칠불암은 이렇게 5불 2보살의 대 장엄 속에 자리하고 있다. 통일 신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족의 얼로써, 시대 민중의 귀의처로써, 사부대중의 수행처로써 당당히 천년의 미소를 보내고 있는 마애삼존불과 사방불전에 고개 숙여 합장하니, “운거천상”(雲居天上: 구름 위 하늘나라)의 “비로회상”(毘盧會上: 부처님 세계)을 친견한 듯 환희와 감격에 가슴이 떨려온다. 칠불의 배경은 기기묘묘한 거암으로 하늘에 맞닿은 듯 드높게 솟아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칠불상 또한 우리나라 조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품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껏 보물로 지정되어오던 것이 몇 년 전 국보 312호로 승격되어 많은 참배객들의 찬탄을 받고 있다.
경사가 가파른 험한 산등성이에 가람을 짓기 위해 동북 양면에 돌 축대를 쌓아 터를 만들고, 터 위에는 서쪽 바위 면에 기대어 자연석으로 불단이 병풍처럼 솟아 있는데, 이 바위에 마애(磨崖: 바위에 浮彫로 새겨진 불상) 삼존 대불이 새겨져 있다. 삼존불 바위 면에서 동쪽으로 1.74m 쯤 간격을 두고 6면 입방체의 바위가 삼존불 쪽으로 조금 기울어지려는 듯이 솟아 있다. 이 바위의 네 면에 여래상을 새겨 “사방불”을 나타내었으니 이 곳 불상은 모두 칠불이 되는 것이다.
이 칠불은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을 맞아 왔으나 삼존불의 코가 조금 훼손되어 성형을 했을 뿐 대체로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삼존불의 뒷면과 좌우 측면 그리고 사방불의 상단에 기둥을 세웠던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창건 당시에는 “석굴사원”(혹은 반 석굴 반 목조)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불단 남북 쪽 3m 거리에도 기둥을 세웠던 흔적이 보이니 법당으로 드나들던 복도가 아니었을까 한다.
본존불은 그 동쪽 정면 일직선상에 토함산 석굴암 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시대적으로 석굴암 불상 보다 반세기 정도 앞서 조성된 불상으로 조각 수법이나 모형이 흡사할 뿐만 아니라, 토함산과 석굴암 부처님을 남산과 칠불암 부처님이 뒤에서 감싸고 있는 형국을 들어 학자들은 칠불암 본존불을 석굴암 부처님의 “모불”(母佛: 어머니 부처)로 추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역사• 문화• 종교적으로 깊은 혼이 서려있는 칠불암에 요즈음 인연 있는 사부대중이 모여 자성청정(自性淸淨), 인간청정(人間淸淨), 가정청정(家庭淸淨), 사회청정(社會淸淨), 국토청정(國土淸淨)이라는 생활불교 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신앙 공동체 “청정결사(淸淨結社)”를 결성하게 되었다. “천년의 미소” 칠불암이 청정결사의 근본도량이 되어 많은 대중들이 더불어 수행하고 교화하는 이 시대의 명실상부한 시방총림으로 가꾸어지길 발원한다.
(1) 마애삼존불
가. 본존여래불
높이 5m 너비 8m로 병풍처럼 솟아 있는 절벽 바위면에 거의 입체불 만큼이나 높은 돋을 새기는 형식으로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이 불상들은 규모에 있어서나 조각 솜씨에 있어서 남산 불상 중 최고의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본존여래불은 두 겹으로 핀 넓은 연꽃 위에 결가부좌로 당당히 앉으셨다. 넓은 어깨를 위엄있게 펴고 양가로 조금 치켜 올린 눈은 비교적 크게 뜨고 먼 앞을 내다보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마구니를 항복받기 위해 땅을 가리키는 손 모양)으로 표시하여, 마귀들의 항복을 받고 계신 모습에서 파사현정(破邪顯正: 삿된 것을 부수고 바른 것을 세움)의 엄숙한 기상이 넘치고 있다. 삭발한 머리에 정상육계(頂上肉髻: 불상 머리위에 볼록한 부분)가 끈으로 동여맨 듯이 나타나 있고, 아래 눈시울 밑에 비교적 깊게 선이 그어져 있는 점 등이 특이하다. 비교적 얇은 입술은 굳게 다물고 있는데, 입 양가에 힘을 주어 부처님의 얼굴은 더욱 엄격하게 보인다. 큰 귀는 양 어깨까지 드리워져 있고 몸체는 가슴이 평평하나 전체가 직사각형으로 장대하게 솟아 있어 위엄스럽다. 두 팔이 팔굽에서 직각으로 꺽이어 있기 때문에 입체감이 더욱 돋보인다. 신라의 불상대좌는 보통 복련대좌(伏蓮臺座: 연꽃이 아래로 향한 대좌)와 앙련대좌(卬蓮臺座: 연꽃이 위로 향한 대좌) 사이에 팔각중대석이 놓이는데, 이 대좌에는 중대석이 없고 복련대 위에 바로 양련대가 놓여있다. 밑으로 처진 복련대는 꽃잎이 좁고 길어 사실적인데 비해 앙련대의 꽃잎들은 짧고 넓으며 끝이 두개의 곡선으로 그려져 다양한 변화를 주고 있다.
나. 좌협시보살(관세음보살)
협시보살(挾侍菩薩)은 본존여래의 양 옆에 배치되어 여래의 뜻을 받들어 중생들을 제도하는 보살을 말한다. 왼쪽(우리가 보기에 오른 쪽)에 모셔져 있는 보살은 관세음보살로서 큰 복련꽃 대좌 위에 서서 오른손에는 보상연화(寶相蓮花)를 들어 가슴 앞에 올리고 왼손은 아래로 떨어뜨린 채 천의자락을 살포시 들고 있다. 진흙탕에서도 때를 타지 않는 연꽃처럼 깨끗한 마음(處染常淨)으로 세상을 제도하겠다는 관세음보살의 중생들에 대한 진한 열정이 연꽃을 들고 있는 손가짐에 잘 나타나 있다. 살결이 풍만한 얼굴을 본존불쪽으로 반쯤 돌리고 있는데 그 표정은 더욱 귀여운 데가 있다. 머리에는 삼면두식(三面頭飾: 머리띠의 앞과 양 옆 장식을 붙인 보살들이 쓰는 관)으로 된 관을 썼고 두 어깨는 보발(머리카락)로 덮여 있다. 목에는 간단한 목걸이가 걸려있고 부챗살처럼 펴진 승기지(僧祗支: 보살들이나 천인들이 가슴을 가리는 긴 천)가 비스듬히 가슴을 감싸고 왼쪽 어깨에 걸쳐져 있다. 허리를 감싸고 있는 치마주름 위를 끈으로 동여매었는데, 끈은 배 옆에서 나비 날개처럼 매듭을 짓고 나머지 자락을 밑으로 드리우고 있다.
다. 우협시보살(대세지보살)
오른쪽(우리가 보기에 왼쪽)에 서있는 보살은 대세지보살로서 본존대좌의 복련대 꽃잎과 같은 모양의 연화대좌 위에 서서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집어 가슴 앞에 올려들고 오른손은 아래로 떨어뜨린 채 정병을 들고 있다. 손가락을 집어 가슴 앞에 올려든 것은 부처님의 뜻을 중생들에게 가르치는 모습이고, 물병을 들고 있는 것은 목마른 사람들에게 물을 먹이듯이 괴로운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진리의 감로수로 구제하겠다는 이 보살의 약속이다. 풍만하게 살찐 얼굴은 본존불쪽으로 약간 돌리고 시선도 바로 그 방향을 보고 있다. 머리는 삼면두식으로 장식을 하고 왼쪽 어깨에서 비스듬히 승기지가 가슴을 감싸고 그 남은 자락이 수직으로 물결을 그리며 흘러 내렸다. 두 어깨에는 보발이 덮여 있고 목에는 간단한 목걸이가 장식되어 있다. 허리를 감싸고 있는 치마주름 위를 과판이 딸린 띠로써 꼭 동여매고, 흘러내린 치맛자락은 발등을 덮고 양 옆으로 퍼지면서 잘다랗게 주름잡아 곱게 처리되었다. 넓은 천의는 어깨에 걸쳐 두 팔을 감싸며 양 옆으로 흘러 내렸고 팔목에는 팔찌가 장식되었다. 머리 뒤에는 크게 보주형 두광이 새겨져 있어 연꽃대좌와 함께 보살의 위력을 돋보이게 하였다.
이러한 모습으로 서있는 이 두 보살상은 다리 길이에 비해 가슴이 넓고 길다. 신라의 보살상들은 8C 중엽에 이르러 가슴이 짧아지고 다리가 길어 몸맵시가 날씬해진다. 석굴암 문수• 보현• 십일면관음상들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이로 미루어 칠불암 부처님들의 조성 연대를 통일신라 초기인 8C 초로 잡아 볼 수 있다. 칠불암 불상들은 곡선으로 부드럽게 표현되는 당나라 불상의 영향을 받아드리고 있으며, 두 보살들은 본존쪽으로 몸을 돌리게 하여 삼존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수법으로 삼국을 통일한 신라인의 기상을 나타내려고 하였다. 이 불상들처럼 한 광배(光背: 불상 뒤의 후광) 안에 삼존불을 나타낸 것을 일광삼존(一光三尊)이라 하는데, 삼국시대에는 금동불로 조성된 예가 많고 통일신라 전후에 마애불이 만들어진다.
본존여래상에 대해서 어떤 이들은 아미타여래로 추정하는데, 그 이유는 두 협시보살이 아미타불의 좌우보처인 관세음• 대세지보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여래상은 석가모니불로 보는 것이 많은 학들의 견해이다. 석가여래는 법신 비로자나불의 화신으로서 사바세계에 사는 우리 인간들의 생명은 불성을 지닌 본래불(本來佛)의 귀한 존재임을 가르쳐 주기 위해 오신 부처님이시다. 본존여래의 수인(手印: 손 모양)은 항마촉지인으로써, 석굴암 부처님과 동일선상에서 해뜨는 동해를 바라보고 계시니 우연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 부처님들은 침략해 오는 외구를 마귀로 봤을 때 항마인상으로 적을 항복 받는 뜻도 되므로, 이 부처님들은 모두 호국• 호민의 부처님으로 조성된 것 같다. 혹자는 이 부처님이 향하고 있는 방향이 동짓날 해가 뜨는 방향과 일치한다고 주장하며, 동지는 죽어가던 해(음이 다하고)가 다시 살아나는(양이 살아나는) 생명의 날이기 때문에 빛과 생명의 부처라고도 한다.
(2) 칠불암의 사방불
칠불암 삼존대불 앞에 솟아있는 네모난 면마다 부처님을 새겨 사방불을 나타내었다. 사방불의 존명은 경전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동방에는 유리광세계 약사여래불, 서방에는 서방정토 아미타불, 남방에는 환희세계 보생여래불, 북방에는 무우세계(無憂世界: 근심 걱정이 없는 불국토) 부동존여래불 혹은 불공성취여래불로 대표된다.
가. 동면 여래불(약사여래불)
동면 여래상은 밑으로 쳐진 복련 꽃잎과 위로 향해 핀 앙련 꽃잎들이 생생하게 피어있는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있다. 왼손은 약그릇을 들어 무릎 위에 놓고 오른손은 엄지와 검지를 집어 가슴에 올려 설법인을 표시하고 계시다. 얼굴은 둥글고 살결이 부드럽고 풍만하다. 삭발한 머리 위에 육계가 덩실 솟아있고, 머리 양옆에 두 귀가 길게 어깨까지 드리워져 있다. 이 불상은 손에 약그릇을 들었고 동향으로 앉아 계시므로 약사여래불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동방 아득히 먼 곳에 유리광정토라 부르는 부처님 나라가 있다. 그 나라를 장엄하고 있는 부처님이 약사유리광여래이신데, 생략하여 보통 약사여래라 부르는 것이다. 이 부처님은 보살로 수행할 때에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십이대원(十二大願)을 세우고 노력 정진하여 유리광세계를 이룩하고 부처님이 되셨는데, 12대원이란 열두 가지 중생을 이롭게 하는 큰 서원으로 그 일곱 번째 원이 제병안락원(除病安樂願)인데, 일체 중생의 병을 낫게 해주는 의사의 부처님으로 숭앙받았으니 많은 민중들에게 절실한 소원으로 신앙되었던 것이다.
이 부처님 곁에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계셔 밝은 빛으로 여래를 받들어 중생을 제도하시고 12신장들이 있어 이 부처님의 국토를 지킨다고 하니, 이 사방불의 동면에 이렇게 유리광세계를 대표하는 약사여래부처님을 모시어 시대 민중의 아픔을 달래주고 있는 것이다.
나. 서면 여래불(아미타불)
이 불상은 몸체만 돋을 새김으로 나타내었고 연화대좌는 선각으로 표현되었다.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으셔서 오른손은 엄지와 검지를 집어 가슴 앞에 올리고, 왼손은 엄지와 셋째, 넷째, 다섯째 손가락을 굽히고 둘째 손가락만 펴서 무릎 밑으로 드리워 설법인상을 하고 있다. 이 불상은 살결이 풍만하여 얼굴은 둥글고 자그마한 눈을 아래로 떠서 하계를 살피시는 모습이다. 크지 않은 입을 곱게 다물고 있어서 대단히 조용한 느낌을 주는 인상이다. 이 불상은 서쪽을 향해 앉아계신 것으로 보아 서방정토 극락세계 아미타여래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서방정토 극락세계는 법장스님의 48대원으로 이루어진 부처님의 국토로서 우리 인간 세상에서 서쪽으로 십만억 부처님의 나라를 지나 저 멀리 있는 정토이다. 그 곳은 아미타불이 계서서 한량없는 설법을 하시고 모든 일에 부족함이 없고, 언제나 즐겁고 괴로움이 없는 안락국이다.
48대원이란 이 국토에는 지옥, 아귀, 축생 등 세 가지 악도가 없게 해달라는 악취무명원(惡趣無名願)과 이 곳에 태어나는 사람은 죽음 없이 영원히 살게 해달라는 수량무궁원(壽量無窮願) 등 마흔 여덟 가지 좋은 점만 따서 이룩한 곳이니 아름답고 평안하고 즐겁기가 이를대없는 불국토이다. 아미타란 인도 범어로써 무량수(無量壽: 영원한 생명), 무량광(無量光: 영원한 빛)으로 번역되는 빛과 생명의 부처님이시니, "나무아미타불"이란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계신 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한다”는 뜻임과 동시에 인간 본성의 “영원한 빛과 생명으로 돌아간다”라는 “인간의 주체적 삶의 구현”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다. 아미타부처님 곁에는 사랑(大慈大悲)의 화신인 관세음보살과 슬기(大喜大捨)의 화신인 대세지보살이 좌우보처로서 아미타여래의 뜻을 받들어 중생을 제도하고 있다.
다. 남면 여래불(보승여래불)
남면에 새겨진 불상은 남방 환희세계 보생여래로서 사실적으로 생긴 연꽃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두 손은 설법인을 표시하며 아래위로 들고 있는 모습은 아미타여래와 같다. 발은 흘러내린 옷자락 속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다. 돋을 새김으로 조각된 얼굴에는 살결이 풍만하고 삭발한 머리 위에는 육계가 단정히 솟아있다. 가는 눈은 양가가 약간 치켜 올라간 모습이고 두 겹으로 주름이 잡혀져 있다. 두광은 역시 무늬 없는 보주형으로 나타나 있어서 시원스럽고 장엄하게 보인다.
라. 북면 여래상(부동존여래)
북면은 이 바위에서 가장 좁은 면이다. 서족 아랫부분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불상도 동쪽 윗면에 조그맣게 나타나 있다. 이중으로 핀 연꽃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두 손을 설법인상으로 짚어 아래위로 들고 있는 모습이나 무늬 없는 보주형 두광으로 장엄된 것은 다른 상들과 같은 모습인데, 이 상은 무릎 너비에 비해서 키가 아주 작다. 앞가슴의 승기지 아래로 보이는 옷끈은 나비날개처럼 매듭지었고 양 무릎 위에는 두 발이 나타나 있다. 무릎 아래로 흘러내린 옷자락은 역시 물결처럼 주름잡고 연꽃대좌 위를 덮고 있다. 이 불상의 존명은 경전대로라면 무우세계의 부동존여래 혹은 불공성취여래이다.
사방불의 윗면은 동서 166cm, 남북 198cm의 평면인데, 동남쪽과 서북쪽 두 모퉁이에 24.2cm 깊이의 ㄱ자형으로 홈이 패여 있고, 또 동남북 3면 꼭대기에는 작은 구멍이 패어져 있다. 이 유구들은 이 곳에 목재로 된 지붕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데, 지붕이 있었다면 이 유적은 원래 석굴사원 혹은 반 석굴사원이었을 것이다. 삼존대불 뒤에도 암벽사이에 공간이 있는데, 암벽에 목재를 끼웠던 흔적이 많은 것으로 미루어 이곳도 지붕을 덮고 선방으로 이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3) 석탑 옥개석과 요사지
칠불암 경내에는 현재 6개의 석탑 옥개석 조각이 남아 있다. 그 중 두 개는 북쪽 계곡에 방치되어 있고, 네 개는 불단 남쪽에 여러 가지 석재를 포개어 탑처럼 쌓아 놓았는데 석가탑 형식의 옥개석으로 최소한 크고 작은 두 기의 탑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큰 것은 추녀 길이 75cm가 되고 작은 것은 67cm가 되는데, 옥개 받침으로 보아 큰 탑은 통일신라 초기 양식이고, 작은 탑은 신라 하대의 양식으로 보인다. 큰 탑은 네 개의 옥개석을 합쳐 놓으면 추녀 길이가 2.93m나 되는 거대한 탑이 되는데, 크기와 높이는 감은사 쌍탑과 고선사 탑을 연상케 한다.
지금의 절 아래에 샘이 있는 언덕 대나무 숲 속에 창건 당시에 쌓았던 거대한 축대와 요사 및 승방의 터가 남아 있다. 이 곳에 기와 조각과 주추돌이 남아 있는데 요사의 규모가 컸을 것으로 보인다. 이 곳에서 발견된 경편석이나 귀인들이 기도하여 병이 나았다는 비명문석, 화려한 꽃무늬로 장식된 막새기와 조각들로 미루어 국가적인 차원에서 세운 큰 가람이었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무엇보다 이 유적의 뛰어난 점은 자연환경에 인공을 조화시켜 이루어 놓은 장엄하고 웅대한 불국 정토의 대가람이라는 점이다.
3. 신선암 마애 관음보살상
칠불암 삼존불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포수와 같이 솟은 듯한 바위산 위에는 구름을 타고 하강하는 신선의 모습이 연상되는 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칠불암 위로 바위와 바위가 연이은 약 40m 정도의 위치의 절벽 위, 작은 바위에 신비에 찬 신선암 마애 관세음보살상이 조각되어 있다. 보물 199호다.
칠불전을 좌로 돌아가면 좁은 대나무 오솔길이 나타나고, 미끄러운 돌계단 길을 돌아 아찔한 걸음으로 조심스럽게 신선대에 이른다. 벼랑 아래 방금 떠나온 칠불암이 앙증스럽게 내려다보이고 산하대지가 한꺼번에 탁 트여 온갖 시름이 문득 자취 없이 사라진다. 일망무제의 동방 하늘을 바라보면 멀리 토함산과 불국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여기 이대로가 청량세계가 아닌가라는 착각도 잠시, 흔들바위를 잡고 돌아가면 거기가 바로 신선불이 계시는 곳이다. 천년을 하루같이 미소 짓고 계시는 마애상은 마치 아득히 잊었던 첫사랑의 기억처럼 고운 자태로 나그네를 맞이해 준다. 힘들고 어려운 이들의 영원한 보금자리로 마냥 그렇게 앉아 계셨나 보다.
이 불상 앞의 공간은 2-3m 정도의 좁은 공간이며 그 앞은 천애의 절벽을 이루고 있다. 보살상 앞에 앉아 아래를 굽어보면 아득한 아래 세상은 송림의 푸른 구름으로 덮여 있고 멀리 가까이 보이는 산봉우리들은 하늘 위 구름 속에 솟아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봉우리 마다 부처님이 설법하고 계시니 어느덧 하늘의 부처님 나라에서 법문을 듣고 있다는 황홀경에 빠진다.
남쪽을 향해 절벽을 이루고 있는 이 암면은 비가 와도 불상이 젖지 않도록 왼쪽면이 조금 앞으로 나오도록 경사를 지어 깍아 내고, 그 곳에 높이 1.53m 너비 1.27m의 배광을 감실 모양으로 파면서 돋을 새김으로 보살상을 나타내었다. 옷자락으로 덮여 있는 의자 위에 걸터앉아 한 손에 꽃을 들고 한 손으로 설법인을 표시하며 깊은 상념에 잠긴 채 구름을 타고 속계로 내려오는 모습을 하고 있다. 머리에는 보관을 크게 틀어 올리고 그 둘레에는 삼면두식으로 장식을 했다. 장식을 동여 맨 끈은 머리 좌우에서 나비 날개처럼 매듭을 짓고, 그 자락이 양 귀 언저리로 흘러 내려 두 어깨 위에 보기 좋게 드리워져 있다. 살결이 풍만한 둥근 얼굴에는 초생달 모양으로 패어진 고운 눈썹에 연결되어 가름한 코가 알맞은 맵시로 솟아있다. 이 얼굴에서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입의 표정이라 하겠다. 신라의 보살상은 대개 윗입술이 아랫입술을 감싸는 듯 표현되고 입술 양가가 패어져 이지적인 미소를 띠고 있는데 비해, 이 보살의 얼굴에는 그것이 없고 윗입술보다 아랫입술이 더 크게 표현되어 누구에게나 정다운 느낌을 주는 낯익은 얼굴이다. 두 귀에는 화려한 귀걸이가 달려있고 목에는 구슬 목걸이가 걸려 있다. 두 어깨 위에는 연꽃송이로 장식된 수발(垂髮: 내려뜨린 머리칼)이 덮어져 있는데 수발에 연꽃을 장식한 것은 다른 상에는 볼 수 없는 예이다. 오른손에는 화려한 보상화 가지를 들었고 왼손에는 설법인을 표시하여 왼쪽 가슴에 들었는데 다정하고 부드러운 얼굴의 표정은 다시 이 손에 반복되고 있다. 중지와 넷째 손가락을 굽혀 엄지와 마주잡고 둘째와 셋째 손가락을 펴서 손바닥을 앞으로 향하여 들었는데, 손가락의 변화도 다양하지만 맑은 피가 도는 듯 따스함을 느끼게 한다. 손목에는 팔찌가 끼어 있으며 손과 손 사이로 승기지 자락이 보인다. 허리에는 치마끈이 매여지고 그 자락이 의자 위로 흘렀는데 왼쪽발은 그 자락 위에 편안히 얹어놓고 오른발은 의자 아래로 내려 걸터앉아 있다. 구름 속에서 한 송이의 연꽃이 피어나와 드려진 오른발을 받들고 있다.
이 보살이 걸터앉은 자세를 유희좌(遊戱坐)라 부른다. 왼쪽 발은 의자 위에 얹어 놓고 결가부좌를 풀고 있는 편한 자세이기 때문에 유희좌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보살은 부담 없는 자세로 편안히 앉아서 중생을 구제할 생각을 하면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 보살의 어깨에 걸쳐진 천의의 표현이 독특한데, 두 어깨에서 흘러내려 두 팔목에 걸쳐 힘차게 흘러내리다가 두 무릎 아래에서 감돌아 다시 무릎 위로 올라갔던 천의자락은 의자의 양가로 흘러내려 구름으로 융화되어 사라져 버리니, 보살의 몸체를 감고 도는 율동감은 오묘하고 신비하기까지 하다. 몸체 뒤에는 무지개 모양으로 신광이 나타나 있고 머리 뒤에는 달무리 같이 둥근 두광이 부드럽게 어려 있다. 패어진 얇은 감실은 주형광배(배 모양의 광배)의 형상을 하고 있다.
광배 위에는 너비 8.2cm 길이 127cm 되는 홈이 일직선으로 가로로 패어져 있는데 이곳은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차양을 달았던 자리로 짐작된다. 차양홈 위에 또 차양과 삼각형으로 홈이 패어져 있는데, 이 홈은 바위 위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을 돌려서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이 보살상은 봉덕사에서 신종이 처음 울리던 8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이라 추정된다. 살결이 풍성하며 야단스럽고 화려한 옷차림이 그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 불상은 남산의 불상 중에 가장 아름다운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그리고 많은 선남선녀들의 인연기도가 성취되는 영험 지중한 부처님으로 유명하다.
보살상에서 서쪽으로 몇 사람 정도 설 수 있는 평평한 자리가 있고, 그 서쪽에 자그마한 바위에 지름 25cm 정도 되는 홈이 보이는데, 이 곳이 부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려주는 석등을 세웠던 자리이다. 석등자리를 지나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가면 옛 신선암 법당 자리가 나온다. 축대를 쌓아 평평하게 한 자리가 신선암 터인데, 일제 말까지 이곳에 신선암 법당 건물이 있었다 한다. 아마도 신선암은 칠불암사원에 예속된 암자로 짐작이 된다.
법당터를 뒤로 돌아 나가면 평평한 바위가 언덕처럼 놓여 있는데 이곳을 원효대(일명 望日臺)라 부른다. 그 옛날 원효스님이 남산 토굴에서 수행할 때 이곳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일상관(日想觀)을 닦아다 하여 원효대 혹은 망일대라 한다. 지금도 많은 신심있는 불자들이 칠불암에서 철야기도를 하고 아침 일찍 망일대에 올라 일출의 장관을 보고 삼매경에 빠지곤 한다.
이와 같이 칠불암은 세계에 자랑할만한 민족의 성지요, 불교의 수행처요, 민중의 기도처로써 면면히 그 생명을 이어온 빛나는 문화유산이다. 많은 불자들이 칠불정토(칠불암)에 올라 불보살의 천년 미소로 마음이 평안해지고, 자연의 향연 속에서 자성청정(自性淸淨)을 깨달아 오늘 이 땅에 청정국토를 만들어 가기를 기원한다.
十方淸淨結社衆 시방청정결사중 시방의 청정 공동체 가족
雲居天上七佛國 운거천상칠불국 구름 위 하늘나라 칠불정토에서
一念觀音作三昧 일념관음작삼매 일념 관음 삼매를 지어
無心卽是解脫境 무심즉시해탈경 일념마저 놓으니 그대로가 해탈 경계로다.
神仙磨崖慈笑容 신선마애자소용 신선대 마애불 밝은 미소
千年風霜如一日 천년풍상여일일 천년 세월 하루 같이
寒貧生靈仰頂禮 한빈생령앙정례 춥고 여린 생명 우러러 예배하니
瞻禮然消多生業 첨례연소다생업 예배 즉시 다생 업장 녹아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