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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잔은 내려놓은 린도 소령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홀 안을 둘러보았다. 바 쪽에 앉아 있던 중국계 콜걸
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고 그 대신 서양 남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칼라만탄이나 술라웨시
로 뱃길 관광을 가려는 관광객이다. 덩치 큰 남자 놈의 지갑에는 5백 달러 정도쯤 있을 것이고 여자는
지금 남자에게 싫증을 내고 있다. 그들의 옆모습을 보면서 린도는 그렇게 추측했다. 항구에서 세관
일을 10년째 맡고 있는 터라. 린도는 자신의 추측이 대체로 맞는다고 자신했으며 부하들도 그것을 인
정했다. 눈빛을 정면에서 읽으면 밀수범을 가려낼 확률은 90퍼센트쯤 될 것이다.
잔에 위스키를 채운 린도는 한 모금에 입 안으로 털어 넣고는 홀 안을 둘러보았다. 구석 쪽 테이블에
앉은 중국계 콜걸 둘이 보였다. 저기로 자리를 옮기자. 좋다. 마음을 정한 린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밤은 저것들로 정하자. 30달러씩 쥐어주면 될 것이다. 일주일 만에 나온 외박이니 한 시간도 아
깝다.
다리가 조금 휘청거렸다. 린도는 허리를 펴고 화장실을 향해 발걸음을 떼었다. 이번 인사 이동에서 그
는 보직 배정을 받지 못했다. 진급이 늦어진 것이다.
그러나 다 좋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술라바야 항구의 세관업무 10년 만에 자카르타에 7층짜리 빌딩
한 채와 고향인 반둥에는 자동차 정비소를 차렸고 술라바야 저택의 지하금고에 150만 달러의 현찰을
모아놓았다. 앞으로 5년만 더 일하면 빌딩 두 채는 생길 테지. 그때는 미련 없이 손을 터는 것이다. 나
이 45세면 한창 팔팔할 때 아닌가?
소변구 앞에 선 린도는 시원하게 오줌줄기를 뻗어내었다.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지금까지 해온 대로
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행운아다.
그 순간 린도는 뒤통수에 거센 충격을 느끼고는 입을 딱 벌렸다가 그대로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바지
지퍼 사이로 나온 성기에서는 아직도 오줌 줄기가 품어지고 있었다.
클럽을 나온 윤우일은 바지 주머니 속의 베레타를 쥔 채 인파 속을 걸었다. 베레타 92-F였고 실탄이
장전된 탄창 두 개까지 덤으로 가져왔다. 지금쯤 소령은 화장실에서 깨어났겠지만 먼저 바지 지퍼를
올린 다음에 소변이 묻은 바지부터 처리해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분실된 권총에 대해서는 함구를 하
는 것이 정상이다. 군인이 술집에서 권총을 빼앗겼다면 영창감인 것이다.
사거리를 건너 인파로 북적대는 시장 안으로 들어섰을 때야 걸음을 늦춘 윤우일은 뒤쪽으로 돌아보았
다. 맨손으로 나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저쪽이 혼자 나온다고 했지만 그 말을 믿는다면 지나던 개도
웃을 것이다. 서미향을 위기에서 구해내 주었다고 방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밤 11시 50분. 매표소 앞에 모여 서 있던 선원들이 거리 쪽으로 하나 둘씩 사라졌다. 부두는 이내 정적
에 휩싸였다. 이미 문을 닫은 매표소 부근은 짙은 어둠에 덮여져 있는 터라 간판의 글씨만 희미하게
드러났다. 바다 쪽의 창고는 더 어두워서 바다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창고로 다가간 오웬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방 끝 쪽에 플라스틱 벤치가
놓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장소가 그럴 듯하군.]
쓴웃음을 지은 오웬이 거리 쪽을 향하고 벤치 끝에 앉았다. 뒤쪽 바다는 잔잔해서 제방에 부딪치는 물
결소리만 났다. 버트 쥰은 아마 창고 안이나 오른쪽 거리에서 나타날 것이다. 제방은 수십 개의 선착
장이 뻗쳐져 있었으므로 궁지에 몰렸을 때 벤치에서 바로 바다에 뛰어들면 찾기는 불가능했다.
오웬은 다시 손목시계를 보았다. 12시 5분 전이었다. 그때 옆쪽 창고의 벽이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지
다니 곧 사람의 형체가 나타났다. 거리는 10여 보 정도여서 곧 다가선 사내의 얼굴이 보였다. 버트 쥰
이었다. 오웬은 실물과 대면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그의 얼굴은 사진으로 보아 머릿속에 입력이 되
어 있었다. 윤우일이 다가와 서자 오웬은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난 특수부의 오웬이오. 만나서 반갑소.]
[쥰이오.]
그들은 악수를 나눈 뒤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오웬이 정색하고 말했다.
[요점만 말하지. 트리폴리 해상에서 일어난 사건을 말해주지 않겠나?]
[연락원 카이바가 선실에 있던 이덕수를 쏘았소. 난 갑판에 있어서 놈의 기습을 피할 수가 있었소.]
윤우일이 어둠 속에서 번들거리는 눈으로 오웬을 보았다.
[카이바가 미덥지 못해서 이덕수 씨를 선실에다 미끼로 놓고 난 갑판에 숨어 있었던 거요.]
[그래서 카이바를 쏴 죽였군.]
[당연하지.]
윤우일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카이바가 지시를 받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소.]
[카이바가 그렇게 말하던가?]
[놈은 이미 죽어 있었소.]
[카이바의 단독 범행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
[이것 보시오, 오웬 씨.]
윤우일이 흰 이를 살짝 드러내고 웃었다.
[난 일을 마친 요원을 제거하는 집행관이 있다는 걸 알고 있소. 난 트리폴리 작전을 끝으로 제거당할
운명이었어.]
[본부의 계획에는 없었어.]
머리를 저은 오웬이 정색했다.
[내가 확인하고 왔으니까. 그렇다면 카이바의 단독 범행이야.]
[그놈이 우리를 제거하고는 그 거금을 갖고 도망친다는 각본이었단 말이오?]
이번에는 윤우일이 머리를 저었다.
[믿기지가 않아. 배후가 있어.]
[배후가 있다니?]
그때였다. 눈을 크게 떴던 오웬이 마악 말을 이으려다가 털썩 등을 벤치에 부딪치더니 앞으로 쓰러졌
다. 순간, 윤우일은 몸을 굴렸다. 그리고는 땅바닥에 엎드린 채 오웬을 보았다. 오웬은 눈을 부릅뜬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렇군. 집행부의 음모였어....]
오웬이 헐떡이며 간신히 말했다.
[날 죽이고 당신한테 누명을 덮어씌우려는 것이야.]
[오웬 씨, 괜찮아요?]
윤우일이 포복자세로 오웬에게 다가갔다.
[어딜 맞았습니까?]
[가슴에, 정통으로..]
오웬이 입술 끝을 비틀고 희미하게 웃었다.
[이럴 줄 알고 방탄조끼를 입고 왔지. 밤이라 머리는 겨누지 못해서 다행이야.]
그때 위쪽 선착장에서 요란한 엔진음이 울리더니 모터보트 한 척이 다가왔다.
[저건 우리 편이야.]
오웬이 엎드린 채 말했다.
[이제 확실해졌다. 우리가 이곳에서 살아 나가기만 하면 된다.]
[보스!]
보트 안에서 사내 하나가 다급하게 외쳤다.
[괜찮습니까?]
[조심해! 저격수가 있다!]
오웬이 몸을 굴려 선착장 쪽으로 다가가면서 소리쳤다.
[쥰, 당신도 이쪽으로!]
그로부터 한 시간쯤 지난 시각, 그들 셋은 술라바야 중심가에 위치한 낡은 사무실에 둘러앉아 있었다.
오웬은 상반신을 벗고 가슴에 난 상처에다 반창고를 붙이는 중이었다.
[정확하게 심장을 맞춘 걸 보면 집행부가 저격수를 데려온 거야.]
오웬이 어깨를 흔들어 보다가 아픈지 얼굴을 찌푸렸다.
[지난번 작전은 집행부장 윈필드 휘하의 토드 폭스가 책임자였습니다.]
피터슨이 아직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얼굴로 말했다.
[어쩌면 윈필드가 개입했는지도 모릅니다.]
셔츠를 걸친 오웬이 힐끗 벽시계를 보았다. 오전 1시 반이 조금 넘어 있었다.
[저쪽 시간은 오후 1시 반이군. 부국장 밥맛이 달아나겠지만 전화는 해야겠다.]
오웬이 전화기를 쥐었을 때 피터슨은 윤우일을 향해 몸을 돌렸다.
[쥰, 당신이 증언을 해줘야겠어. 일이 꽤 복잡하게 될 것 같단 말이야.]
[난 증언 같은 건 안합니다.]
이맛살을 찌푸린 윤우일이 피터슨을 보았다.
[이것으로 당신들이 알아서 수습하도록 하시오.]
[놈들은 오웬 씨를 죽여서 네가 죽인 것처럼 만들려고 했어.]
[그것도 당신들이 알아서 하시오.]
윤우일이 전화를 하고 있는 오웬을 힐끗 보았다.
[당신들의 더러운 음모에 끼어들기 싫단 말이오.]
[이봐, 쥰.]
정색한 피터슨이 윤우일에게로 상반신을 굽혔다.
[당신은 누명을 쓰게 된단 말이오.]
[배신자가 있다는 건 지금 밝혀졌지 않았소?]
윤우일이 주머니에서 베레타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 놓자 피터슨은 화들짝 놀라 몸을 젖혔다. 그때 전
화를 끝낸 오웬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쥰, 무기를 갖고 있었나?]
[군인 한 놈한테서 뺏은 거요.]
권총을 쥔 손을 테이블 위에 놓은 채 윤우일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아무래도 불안해서요, 오웬 씨.]
전화벨이 울렸을 때 댄 라이트는 컴퓨터로 메일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사무실에는 오늘도 그 혼자뿐
이었는데 사흘에 한 번씩 당직이 걸린 날이다. 메일은 그대로 둔 채 라이트가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거기 CIA 지부지요?]
이건 또 어떤 놈이야? 정신이 번쩍 든 라이트는 전화기를 고쳐 쥐었다. 사내의 영어발음은 정확했지만
금방 윤우일이 떠오른 것이다.
이놈도 영어권 출신이 아니다.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거기 CIA 집행부 소속인 한국인이 있을 텐데. 버트 쥰이라고.]
사내는 또박또박 말했다. 여유가 느껴졌다. 감청도 두려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라이트는 이미 감청
스위치를 켠 터라 긴장감에다 스릴까지 증폭되었다.
[글쎄, 난 모르겠는데. 먼저 그쪽 신분을 밝히셔야...]
[버트 쥰이라는 놈한테 전해. 난 북한의 기관원이라고.]
사내가 쏘아붙이듯 말했다.
[내가 내일 오전 12시 정각에 다시 전화를 할 테니까 대기하라고.]
[북한 기관원이라고 했는데, 도대체 무슨 일로 그러는 거요?]
[내가 이덕수의 가족을 인질로 잡고 있다는 말만 전하면 돼.]
그리고는 전화가 끊겼다.
라이트는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버트 쥰은 아마 지금쯤 특수부장 오웬과 함께 있을 것이다.
방으로 들어선 오웬과 피터슨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오웬은 눈을 크게 뜨고 윤우일을 주시한 채 곧
장 다가온 반면에 피터슨은 딴전을 피웠다. 둘 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새벽 3시가 되어 가는 시간
이어서 그들은 구봉역 근처의 조그만 호텔에 들어와 있는 참이었다. 오웬이 창가의 의자를 끌어당
겨 윤우일의 앞에 앉았고 피터슨은 창문의 블라인드를 내렸다.
[쥰, 문제가 생겼네.]
오웬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윤우일은 시선을 들었다. 오웬의 속눈썹이 연한 갈색으로 빛나고 있
었다. 그것은 피부 색깔과 비슷했다. 윤우일의 시선을 받은 오웬이 말을 이었다.
[북한놈들이 마두라에 다녀갔어. 서미향 씨와 아이를 데려갔단 말이야.]
[........]
[자카르타 사무실로 연락을 해왔네. 오늘 낮 12시에 자네하고 직접 협상을 하겠다는 거야.]
[도대체 그놈들이 어떻게....]
갈라진 목소리로 윤우일이 겨우 그렇게 말했을 때 피터슨이 오웬의 짐을 덜어주려는 듯이 나섰다.
[두 가지 경우가 있네, 쥰. 하나는 인도네시아 보안국에서 정보가 흘러나간 경우하고, 또 하나
는........]
그리고는 피터슨이 침을 꿀꺽 삼켰다.
[우리 쪽에서 정보를 준 경우야.]
[자네 말대로 놈들이 내 가슴을 맞춘 것은 의도적일 가능성이 높네.]
오웬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말했다.
[경고를 한 것이지. 날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을 테니까.]
눈을 부릅뜬 윤우일은 머리만 끄덕였다. 놈들이 돈을 찾아갈 때까지는 자신을 죽이지는 못할 것이
다. 놈들의 목표는 자신이 가로채간 무기 판매 대금일 테니까. 연락을 받고 오웬과 피터슨은 나름대로
정황을 분석해 본 모양이었다. 정색한 오웬이 말을 이었다.
[놈들의 목표는 무기 판매 대금이야. 놈들이 리비아에 판 무기는 이미 부대에 배치되었지만 놈들은 아
직 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어. 북한은 돈을 받기 전까지는 무기를 하선시키지 못하겠다고 버텼지만 리
비아측이 억지를 쓴 것 같네.]
[......]
[북한이 이곳에 있는 리비아계 테러단체의 협박을 받을 가능성도 있어.]
그리고는 오웬이 입맛을 다셨다.
[사건이 더 복잡해졌어. 놈들은 우리측의 리비아 작전을 다 파악했을 가능성이 있는 데다 인질까지 잡
고 있단 말이야. 본부에서는 자네를 도우라고 했지만 전면에 나서지는 못할 상황이야.]
[그렇겠지요.]
그때서야 윤우일이 잇사이로 말했다.
[당신들 목표는 짐작할 수 있어요. 첫째, 자금을 북한이 쥘 수 없도록 할 것과, 둘째는 사건이 노출되
는 것을 막는 것 둘 뿐일 테니까.]
[쥰이 핵심을 알고 있군.]
윤우일의 방을 나온 오웬이 복도 끝에 멈춰 서더니 피터슨을 보았다.
[하지만 우리의 도움 없이는 놈들과 접촉할 수 없을 테니 일단은 우리가 키를 쥔 셈이야.]
[우리가 손을 뗀다는 걸 알면 반응이 달라질지 모릅니다.]
[어쨌든 세 시간 후에 출발이다.]
오웬이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오전 4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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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히 읽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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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합니다
ㅈ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