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도서관 - 러시아문학연구소(푸시킨의 집) 도서관 러시아 문학과 인문학 연구의 보물창고[ Библиотека Пушкинского ДомаИРЛИ РАН ]
hanjy9713
2023.12.24. 19:40조회 16
러시아문학연구소(푸시킨의 집) 도서관
러시아 문학과 인문학 연구의 보물창고
[ Библиотека Пушкинского ДомаИРЛИ РАН ]
러시아문학연구소. 정식 명칭보다 “푸시킨의 집”이라는 별칭이 더 친숙한 곳이다. <출처: (cc) Lite at en.wikipedia.org>
러시아 근대화의 출발, 상트페테르부르크
발트해로 나가는 핀란드만 하구에 자리 잡은 러시아의 옛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703년 표트르 대제(Pyotr Ⅰ, 1672~1725)에 의해 세워진 이후 제정 러시아의 수도로서 러시아 근대화와 발전의 상징이 되어왔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성스러운 표트르(베드로)의 도시”라는 의미로, 네바 강변에 세워진 표트르 대제의 기마상은 이 도시와 표트르 대제의 운명이 하나임을 떠올리게 한다. 표트르 대제가 도시 건설에 전혀 적절치 못한 늪지대에 제국의 수도를 건설한 것은, 순전히 바다를 통해 서유럽과 교류하여 당시 서유럽에 한참 뒤떨어져 있던 러시아를 개혁하고 근대화의 길로 이끌기 위해서였다.
네바 강변에 세워진 표트르 대제의 기마상. 그는 러시아를 개혁하고 근대화의 길로 이끌기 위해 이 도시를 건설했다. <출처: (cc) Lite at en.wikipedia.org>
“서구로 열린 창”이라 불리는 이 도시는 네바강을 끼고 있는 여러 개의 섬들을 다리로 연결하고 내륙에 여러 개의 운하를 만드는 등 베니스나 암스테르담과 같은 아름다운 물의 도시로 구상되었다. 하지만 무리한 계획도시 건설의 과정에서 치러진 희생으로 인해 “뼈 위에 세워진 도시”라는 결코 아름답지 못한 오명 또한 가지게 되었다. 지금도 지하철을 타기 위해 상당히 깊은 지하로 내려가다보면, 도시의 지반이 얼마나 약했으면 이렇게 깊이 파야 했을지 새삼 깨닫게 된다.
유명한 이탈리아 건축가들이 초빙되어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들이 세워지고 귀족들과 고관들이 이주해오면서,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아름답지만은 않은 건설의 역사를 뒤로 하고 두 세기 동안 거대한 러시아 제국의 수도로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문화와 예술을 꽃피워갔다. 도시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네프스키 대로와 그와 연결된 운하 옆의 소로들을 따라 발길 닿는 대로 걷다보면 도시 곳곳에서 러시아 5인조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푸시킨과 도스토옙스키, 고골의 문학을, 이동전람화파와 레핀, 말레비치의 그림을 만나게 된다. 또한 겨울 궁전과 궁전 광장, 피의 교회,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표트르대제의 개인 박물관(쿤스트카메라), 표트르 대제의 오두막, 러시아 최초의 여학교로 세워졌다가 이후 러시아 혁명군의 본부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페테르부르크 지방 정부의 청사로 쓰이는 스몰니 수도원, 러시아 혁명의 상징으로 네바강에 아직 떠 있는 범선 오로라 호 등에는 러시아의 격동의 역사가 남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도 하다. 이삭 성당과 카잔 성당에서는 유명한 러시아 남성합창단의 풍부한 저음이 울리는 정교성가를 들을 수 있다. 네바 강변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관해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 푸시킨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러시아 근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푸시킨. 상트페테르부르크 곳곳에는 그의 예술과 삶의 흔적이 남아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와서 곳곳에 남아있는 표트르 대제의 발자취를 보게 되면 이 도시가 정말 그 명칭대로 표트르 대제의 도시임을 깨닫게 되지만, 다른 한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최고의 문호이자 러시아 근대문학의 아버지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Aleksandr Sergeyevich Pushkin, 1799~1837)의 도시이기도 하다. 위대한 시인 푸시킨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곳곳에 그의 예술과 삶의 흔적을 새겨두고 있다. 물론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고골, 도스토옙스키를 비롯하여 이후 알렉산드르 블로크,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 안나 아흐마토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등 혁명기까지 수많은 러시아 문호들을 배출하였지만, 이들 작가들 모두 그들이 이룬 모든 것의 시작이 푸시킨이었음을 고백한 바 있다. 도스토옙스키가 푸시킨에 관해 “모든 것을 포용하는 보편성”이라 정의 내린 것도, 막심 고리키가 “시작의 시작”이라 정의한 것도, 그러한 의미에서였을 것이다.
러시아 최고의 문호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은 러시아 문학에 있어서, 아니 러시아 자체에 있어서 절대적인 존재다. 19세기 초 조국 전쟁의 승리와 함께 도래한 러시아 제국의 번영, 그리고 민족적 낭만주의의 번성 아래 진정한 러시아의 혼을 담은 작품들을 써내려간 푸시킨은 러시아 민중 고유의 정신을 높은 예술적 형식에 담아내었으며 민중의 풍요로운 언어적 유산을 보편적이면서도 우아한 러시아어로 표현해냄으로써 진정한 러시아적 통합의 상징으로 전 러시아인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와서 “푸시킨의 집”이라 불리는 연구소에서 공부하게 된 이후 필자는 항상 모이카 운하 길에 있는 푸시킨이 거처하던 집(지금은 푸시킨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에 가보고 싶었지만, 춥고 음산하고 진눈깨비로 축축한 날씨 탓에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그런데 4월 중순이 되자 지겹도록 내리던 진눈깨비와 걷힐 줄 모르고 드리워져 있던 회색 하늘이 갑자기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놀랍도록 따스한 햇볕이 내리쪼이기 시작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온 이후 감히 열지 못하던 창문을 열어젖히자 봄 내음이 밀려들어온 어느 날, 필자는 봄 날씨를 만끽하며 모이카 운하를 따라 걷다가 진짜 푸시킨의 집, 푸시킨 박물관을 찾아갔다.
대작가의 박물관치고는 소박하고 다정한 보통 사람의 생활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거처의 모습에 대작가가 아니라 인간 푸시킨의 삶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혹독한 전제정치와 잔혹한 농노제를 비판하던 청년 푸시킨이 변방을 떠돌며 고국과 처형 당한 친구들을 그리워했을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돌아오는 길에 거리 군데군데 노란 미모사 꽃이 피어 있었다. 우리나라의 산수유처럼 미모사는 러시아에서 봄을 알리는 전령으로 이야기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건물에 유독 밝은 노란색이 많은 것은 유독 춥고 긴 겨울 속에서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해서일까.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제정 러시아의 수도로 러시아 제국을 대표하는 도시이기도 했지만, 이 도시는 봄이 오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미모사 꽃처럼 푸시킨이 노래했던 저항과 자유의 정신이 변함없이 움트는 곳이기도 하다.
러시아 문학과 인문학 연구의 최고 본산
네바강 맞은편에서 바라본 러시아문학연구소, 일명 “푸시킨의 집”. 둥근 돔형의 이 건물은 러시아 문학 및 인문학 연구의 본산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와서 필자가 학위 과정을 시작한 러시아국립학술원 러시아문학연구소(IRLI)는 별칭으로 “푸시킨의 집(푸시킨스키 돔)”이라 불린다. 사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러시아문학연구소라는 명칭보다 “푸시킨의 집”이라는 명칭이 더 친숙하다. 네바강의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마카로프 거리에서 러시아 건물 특유의 노란색과 둥근 돔형의 지붕으로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하는 러시아문학연구소 푸시킨의 집은 명실공히 러시아 문학과 인문학 연구의 본산이다.
푸시킨의 집은 그 이름이 보여주듯이 시작과 발전의 역사가 시인 푸시킨과 직결되어 있다. 1899년 푸시킨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이 도시의 상징이자 러시아의 영혼 그 자체라 평가되는 푸시킨을 기념하기 위한 논의가 촉발되었지만, 이후 이 위대한 시인에게 다만 작은 동상으로 세워진 기념비의 초라함과 무성의함에 대해 엄청난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따라서 러시아 문화예술계 각고의 노력으로 1905년, 시인 푸시킨에 바쳐진 국가적 기념비로서 푸시킨의 집이 건립되었다.
푸시킨의 집은 애초에는 그 이름처럼 위대한 시인 푸시킨과 그의 시대의 문화적 유산을 보존하고 연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하지만 이후 원고에서부터 유물에 이르는 다양한 종류와 방대한 양의 자료들이 푸시킨의 집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점차 러시아 문학사 전체를 아우르는 박물관이자 연구 기관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1930년 푸시킨의 집은 러시아국립학술원 산하의 러시아문학연구소(IRLI)로 명명되었지만 별칭으로 원래의 이름을 아직도 보유하고 있다.
현재 푸시킨의 집은 러시아국립학술원(아카데미 나우크) 산하의 러시아문학연구소로서 15개의 연구 분과와 대학원(아스피란투라) 교육 체계를 갖추고 있는 연구ㆍ교육 기관이다. 푸시킨의 집은 매년 50여 권의 러시아 문학 관련 서적을 출판하며, 특히 이곳에서 발행하는 학술지 “러시아 문학(루스카야 리테라투라)”는 러시아 문학 및 이론 분야에서는 최고의 권위와 명성을 누린다.
러시아 문학 연구자를 위한 보물창고, 푸시킨의 집 도서관
푸시킨의 집 도서관 내부. 1905년 설립된 이후 러시아 인문학과 문화예술의 정수를 집결해놓은 곳이다.
세계의 유수한 유명 도서관에 비해, 그리고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가 각각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 국립도서관에 비해, 사실 푸시킨의 집 도서관은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도 푸시킨의 집 도서관이 러시아 인문학과 문학에 특화된 도서관이고, 연구소에 부속되어 있어 대중에게 개방되지 않기 때문에 전문가 집단을 벗어나서 혹은 러시아 외부로 많이 소개되지 않은 것이지 싶다.
그러나 푸시킨의 집 도서관은 러시아 역사 전체를 아울러 이 대국의 인문학과 문화예술의 정수를 집결해놓은 곳이다. 이곳은 1905년 설립된 이후 20세기 러시아 학계의 발전과 함께 성장해오면서 러시아 인문학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국보급 서고이자 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은 현재 러시아국립학술원 산하 러시아문학연구소(IRLI)의 부속 도서관이기도 하지만, 실상 푸시킨의 집은 먼저 도서관이 이루어지고 이후 연구소가 형성된 셈이기 때문에 도서관은 푸시킨의 집의 시작이자 중심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 도서관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러시아 지성인들의 오랜 관심과 사랑에 의해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졌다. 도서관은 기념관으로서 출발한 이후, 학자들과 작가들, 그리고 사회 저명인사들의 도서 기부와 수집에 의해 성장하였고, 아울러 소비에트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과 재정적 지원에 의해 연구소와 함께 급속도로 확장되었다. 특히 시인 푸시킨의 개인 소장 도서들이 들어오게 된 이후 소장 도서들이 급속도로 증가하게 되었고 1931년부터는 러시아국립학술원 도서관의 분관으로서, 그리고 1979년 러시아 문학연구소(IRLI)의 한 조직으로 위상이 정립되었다.
푸시킨의 집 도서관은 러시아에서 인문학 분야에 특화된 도서관들 중 가장 대규모의 도서관이며 특히 러시아 문학과 문학이론 분야의 연구를 위한 장서의 소장으로는 최고의 도서관으로 꼽힌다. 서고에는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거의 모든 러시아 작가 및 시인들의 작품들과 번역, 세계 고전 작품들, 러시아와 국외의 문학이론 및 문학사 관련 서적들, 백과사전, 어학 및 각종 사전, 인문학 각 분야에 관련한 서지학 도서들 등이 소장되어 있다.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발행된 문학과 예술 관련 저널 컬렉션 역시 러시아에서 손꼽히는 최상의 것으로 평가된다. 1950년부터 도서 소장 작업은 상위 조직인 러시아 국립학술원 도서관을 통해 진행되고 있으며, 최근 푸시킨의 집 도서관의 소장 도서는 약 60만 권에 이른다.
재미있는 점은 이곳의 이러한 학문적 위상과 문화예술적 의미에 비해 도서관의 체계는 비교적 구시대적이라는 사실이다. 필자가 공부를 시작했던 2000년 당시 도서관에 가서 종이로 된 서지 목록을 일일이 찾아 청구지에 써서 신청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몹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그것도 일종의 추억거리가 되었지만, 서울에서 이미 너무나 익숙해져 있던 컴퓨터 검색 시스템이 없던 것이 당시에는 몹시 불편했었다.
이곳 도서관에서는 책을 보기 위해 종이로 된 서지 목록을 일일이 찾아 역시 종이로 된 청구지를 작성한 뒤 도서 열람을 신청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한 아날로그적 불편함을 제외한다면 이곳 도서관은 학위 과정중의 필자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곳이 되었다. 이곳에는 필자가 찾는 거의 대부분의 자료가 있었고, 마치 집의 공부방처럼 친숙하고 가족적인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연구소와 도서관이 같이 있는 이곳에서는 도서관 건물이 따로 있지 않고 주로 서고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여타의 국립도서관처럼 크고 웅장한 열람실은 없었지만, 필자를 비롯하여 이곳에서 공부하던 유학생들은 공부방처럼 작고 아담한 열람실을 퍽이나 편해 하였었다.
또한 푸시킨의 집 도서관은 외부로 개방된 도서관이 아니어서(물론 견학은 가능하다) 소장 도서는 연구소 학자들과 학위 과정생들에게만 대출이 가능하였기에 여기 소속된 연구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해주었다. 대출 기한도 따로 없었다. 다들 알아서 적당한 때에 돌려주긴 했지만 때로는 너무 오래 책을 보다가 늦게야 반환하여 사서 할머니 니나 알렉산드로브나에게 야단을 맞기도 했다.
세계 각처에는 크고 유명한, 혹은 건물이 뛰어나게 아름답고 웅장한 도서관이 많다. 하지만 공부하는 이에게 도서관은 개인적인 추억에 의해 더욱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필자에게 푸시킨의 집 도서관은 바로 그러한 곳이다. 필자의 박사 논문 참고문헌 대부분이 이곳에서 찾은 책들이기 때문이다. 학위를 받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나온 지 9년. 그곳에서는 아직도 변함없이 책을 빌려보려면 종이에 도서 청구서를 써내야 하지만, 이제는 온라인 도서관(http://feb-web.ru) 체계가 놀랍도록 잘 갖추어져 있어 필자는 한국에서도 여전히 이곳에 공부빚을 지고 있다.
러시아 주요 작가들의 친필 원고가 한자리에, 필사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