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處와의 觸(channaṃ phassāyatanānaṃ)
여러 가지 界(dhātu)들이 경문에 나타난다.
우리 욕계 중생들과 밀접한 界는 18계이다. 혹은 6界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엄밀하게는 地水火風空識은 색계 초선에도 해당되는 틀(型, 骨格)도 된다.
마치 尋伺(思惟)가 욕계뿐만 아니라 색계 초선에도 해당되는 것과 같다.
그리고 5蘊(界)이 욕계에 해당되지만 색계에도 해당된다.
정리하면 여러 가지 界중에서 욕계와 밀접한 18계, 6계, 5온(界)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18界 : 6內根-6外境-6識身
[cakkhudhātu rūpadhātu cakkhuviññāṇadhātu, sotadhātu saddadhātu sotaviññāṇadhātu,
ghānadhātu gandhadhātu ghānaviññāṇadhātu, jivhādhātu rasadhātu jivhāviññāṇadhātu,
kāyadhātu phoṭṭhabbadhātu kāyaviññāṇadhātu, manodhātu dhammadhātu manoviññāṇadhātu]
이러한 18界가 모두 갖추어져 있으면 욕계 유정이고
특히 모든 根들이 갖추어 있는 욕계의 인간에 해당된다.
즉 6內根중에서 일부는 潛在되어 있는 중생들도 있지 싶다.
그리고 색계와 무색계는 18界 각각을 모두 갖추지 못한 유정들이다.
그러므로 18界는, 모두 갖추고 있는 욕계 인간과
일부만 갖춘 유정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분류법이다.
물론 무색계 유정은 意界, 法界, 意識界로만 설명할 수도 있다.
이것은 5온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욕계와 색계 대부분의 유정들에게 해당되고
(잠재된) 무색계에게도 해당되지만
잠재되지도 않은 무색계 유정에게는 대부분 4온으로 설명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18界에 대해 욕탐 등이 모두 제거된다는 의미는
욕계와 연관된 측면에서 제거된다는 의미와 삼계를 모두 벗어난다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5온) 名色이라고 했을 때도 욕계와 색계의 의미이지만 모든 色과 名을 모두 벗어났다고 하면
무색계에 해당되는 名도 또한 벗어났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서는 무색계에서는 名色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4온으로 표현하는 것과 같다.
이상과 같이 범주를 넓게 잡을 수도 있고 좁게 잡을 수도 있다.
하여튼 욕계의 18계, 6계, 5온계를 기준으로 하는 의견이다.
그 수준은 다르겠지만 삼계에 모두 공통되는
[manodhātu dhammadhātu manoviññāṇadhātu]를 기준으로 경문의 내용을 따라 가본다.
內界(dhātu)-內觸(phasso)-內受(vedanā)
[manodhātuṃ paṭicca uppajjati manosamphasso,
마노의 요소를 반연하여 마노의 감각접촉이 일어나고
manosamphassaṃ paṭicca uppajjati manosamphassajā vedanā,
마노의 감각 접촉을 반연하여 마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이 일어나지만
no manosamphassajaṃ vedanaṃ paṭicca uppajjati manosamphasso,
no manosamphassaṃ paṭicca uppajjati manodhātu.
마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을 반연하여 마노의 감각접촉이 일어나지는 않고
마노의 감각접촉을 반연하여 마노의 요소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外界(dhātu)-外想(sañña)-外惟(saṅkappo)-外欲(chando)-外熱(pariḷāha)-外求(pariyesanā)
[dhammadhātuṃ paṭicca uppajjati dhammasaññā,
dhammasaññaṃ paṭicca uppajjati dhammasaṅkappo,
dhammasaṅkappaṃ paṭicca uppajjati dhammacchando,
dhammacchandaṃ paṭicca uppajjati dhammapariḷāho,
dhammapariḷāhaṃ paṭicca uppajjati dhammapariyesanā.
법의 요소를 반연하여 법의 인식이 일어나고 법의 인식을 반연하여 법의 사유가 일어나고
법의 사유를 반연하여 법의 열의가 일어나고 법의 열의를 반연하여 법의 열기가 일어나고
법의 열기를 반연하여 법의 추구가 일어난다.]
위 경문의 思惟(saṅkappo)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넓게 잡아도 색계 초선이지만) 욕계에 대한 경문이다.
[dhammadhātuṃ paṭicca uppajjati dhammasaññā,
dhammasaññaṃ paṭicca uppajjati ... pe ... dhammapariyesanā;
no dhammapariyesanaṃ paṭicca uppajjati dhammapariḷāho,
no dhammapariḷāhaṃ paṭicca uppajjati dhammacchando,
no dhammacchandaṃ paṭicca uppajjati dhammasaṅkappo,
no dhammasaṅkappaṃ paṭicca uppajjati dhammasaññā,
no dhammasaññaṃ paṭicca uppajjati dhammadhātu.
법의 요소를 반연하여 법의 인식이 일어나고 …
법의 열기를 반연하여 법의 추구가 일어나지만
법의 추구를 반연하여 법의 열기가 일어나지는 않고 …
법의 인식을 반연하여 법의 요소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外界(dhātu)-外想(sañña)-外惟(saṅkappo)-外觸(phasso)-外受(vedanā)-外欲(chando)
-外熱(pariḷāha)-外求(pariyesanā)-外得(lābho)
[dhammadhātuṃ paṭicca uppajjati dhammasaññā,
dhammasaññaṃ paṭicca uppajjati dhammasaṅkappo,
dhammasaṅkappaṃ paṭicca uppajjati dhammasamphasso,
dhammasamphassaṃ paṭicca uppajjati dhammasamphassajā vedanā,
dhammasamphassajaṃ vedanaṃ paṭicca uppajjati dhammacchando,
dhammacchandaṃ paṭicca uppajjati dhammapariḷāho,
dhammapariḷāhaṃ paṭicca uppajjati dhammapariyesanā,
dhammapariyesanaṃ paṭicca uppajjati dhammalābho .
법의 요소를 반연하여 법의 인식이 일어나고 법의 인식을 반연하여 법의 사유가 일어나고
법의 사유를 반연하여 법의 감각접촉이 일어나고 법의 감각접촉을 반연하여 법의 느낌이 일어나고
법의 느낌을 반연하여 법의 열의가 일어나고 법의 열의를 반연하여 법의 열기가 일어나고
법의 열기를 반연하여 법의 추구가 일어나고 법의 추구를 반연하여 법의 획득이 일어난다.
no dhammalābhaṃ paṭicca uppajjati dhammapariyesanā,
no dhammapariyesanaṃ paṭicca uppajjati dhammapariḷāho,
no dhammapariḷāhaṃ paṭicca uppajjati dhammacchando,
no dhammacchandaṃ paṭicca uppajjati dhammasamphassajā vedanā,
no dhammasamphassajaṃ vedanaṃ paṭicca uppajjati dhammasamphasso,
no dhammasamphassaṃ paṭicca uppajjati dhammasaṅkappo,
no dhammasaṅkappaṃ paṭicca uppajjati dhammasaññā,
no dhammasaññaṃ paṭicca uppajjati dhammadhātu.
법의 획득을 반연하여 법의 추구가 일어나지는 않고 …
법의 인식을 반연하여 법의 요소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앞의 경문
外界(dhātu)-外想(sañña)-外惟(saṅkappo)-外欲(chando)-外熱(pariḷāha)-外求(pariyesanā)과 비교하면
중간의 外觸(phasso)-外受(vedanā)와 마지막 外得(lābho)이 차이점이다.
그 발단이 되는 것은 [dhammasaṅkappaṃ paṭicca uppajjati dhammasamphasso]이고
그 결과, 차이점이 外得(lābho)이다.
전자에서는 內 안에서 일어나는 外에 대한 欲(chando)은 있었지만 求(pariyesanā)로 그쳤다면
후자는 '무엇에 대한 생각이 나서 무엇을 접해서' 外觸(phasso)-外受(vedanā)-外欲(chando),
즉 직접 外를 觸(과 觸生受)하고서 欲(chando)이 일어나서 결국 外를 得(lābho)하게 된 경우이다.
이 둘의 차이는 전자는 內的 갈등에 의해서 求(pariyesanā)하기만 한 경우와
후자는 外部 대상을 직접 경험(觸)한 결과 得(lābho)하게 된 경우이다.
여기까지의 경문에서 觸(phasso)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內界(dhātu)-內觸(manosamphassa)-內受(vedanā)
外界(dhātu)--- 外觸(dhammasamphasso)-外受(vedanā)---
전자와 후자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나오는 경문은 명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M28에
[mano aparibhinno hoti, bāhirā ca dhammā na āpāthaṃ āgacchanti no ca tajjo samannāhāro hoti,
neva tāva tajjassa viññāṇabhāgassa pātubhāvo hoti.
안으로 마노[意]가 손상되지 않았지만
밖에서 법들이 마노의 영역에 들어오지 않고
그곳으로 전향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에 상응하는 알음알이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경우가 內界(dhātu)-內觸(manosamphassa)-內受(vedanā)인 상태이고
[ajjhattiko ceva, āvuso, mano aparibhinno hoti, bāhirā ca dhammā āpāthaṃ āgacchanti,
no ca tajjo samannāhāro hoti, neva tāva tajjassa viññāṇabhāgassa pātubhāvo hoti.
안으로 마노가 손상되지 않았고
밖에서 법들이 마노의 영역에 들어오더라도
그곳으로 전향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에 상응하는 알음알이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비록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그 外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스쳐지나가서
집중(收集, 作意, samannāhāro)하지 않거나, 할 수 없으면 識이 생겨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yato ca kho, āvuso, ajjhattiko ceva mano aparibhinno hoti,
bāhirā ca dhammā āpāthaṃ āgacchanti,
tajjo ca samannāhāro hoti, evaṃ tajjassa viññāṇabhāgassa pātubhāvo hoti.
안으로 마노가 손상되지 않았고
밖에서 법들이 마노의 영역에 들어오고
그곳으로 전향하는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것에 상응하는 알음알이가 일어납니다.]
外에 대해 관심을 가져 집중(samannāhāro)하면 識이 생겨난다는 말씀이시다.
이 경우가 外界(dhātu)--- 外觸(dhammasamphasso: 영역에 들어오고)-外受(vedanā)---이다.
흔히들 觸을 根境識 三事和合으로만 설명하지만
전자의 경우는 識의 몫이 나타나지 않은 경우이고
마지막의 경우에만 識의 몫이 나타난 경우이다.
이런 경우 즉 마노와 담마 사이에서 식의 몫(마노의 알음알이)가 생겨난 경우
이 상태에서 생겨난
色은 색온에, 受는 수온에, 想은 상온에, 그 외의 법들인 行은 행온에,
그리고 識은 식온에 포함된다고 말씀하신다.
마노와 담마 사이에서도 色이 생겨난다는 말씀이시다.
그러므로 의-법 2處 만이 있는 무색계와는 달리
욕계나 색계의 2처에서도 색(이른바 무표색, 법처소섭색)이 생겨남을 알 수 있다.
[manasā dhammaṃ viññāya dhammanimittānusārī viññāṇaṃ hoti;
dhammanimittassādagadhitaṃ dhammanimittassādavinibandhaṃ
dhammanimittassādasaṃyojanasaṃyuttaṃ bahiddhā viññāṇaṃ vikkhittaṃ visaṭanti vuccati.
Evaṃ kho āvuso, bahiddhā viññāṇaṃ vikkhittaṃ visaṭanti vuccati.
마노[意]로 법을 지각하고 알음알이가 법의 표상을 쫒아가서
법의 표상의 달콤함을 취하고 법의 표상의 달콤함에 매이고 법의 표상의 족쇄에 묶이면
알음알이가 밖으로 흩어지고 산만하다고 합니다.]
dhammanimitta가 外界(dhātu)-外想(sañña)의 근거가 되는 相이다.
앞선 경문에서 外觸(dhammasamphasso)-外受(vedanā)도 눈여겨 볼 지점이지만
이른바 6觸入處(channaṃ phassāyatanānaṃ)인 內觸(~manosamphasso)를 根境識 삼사화합의 觸인지
6종류의 處와의 觸인지에 대해서도 본 경문이 그 근거가 된다고 여겨진다.
內觸(~manosamphasso)이 드러난 모습이 결국에는 根境識 삼사화합의 觸이더라도
內에 대한 觸(~manosamphasso)이 그 근저에 있다.
즉 6觸入處(channaṃ phassāyatanānaṃ)는 6處와의 觸 혹은 處에서의 觸이라는 의미이지 싶다.
[... yo manasmiṃ chandarāgo, cittasseso upakkileso.
… 마노에 대한 욕탐은 마음의 오염원이다.
Yato kho, bhikkhave, bhikkhuno imesu chasu ṭhānesu cetaso upakkileso pahīno hoti,
nekkhammaninnañcassa cittaṃ hoti.
Nekkhammaparibhāvitaṃ cittaṃ kammaniyaṃ khāyati, abhiññā sacchikaraṇīyesu dhammesū’’ti.
비구들이여, 비구가 이들 여섯 가지 경우에 대한 마음의 오염원을 제거하면
그의 마음은 출리(出離)로 기울고,
출리를 철저히 닦은 마음은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해야 하는 법들에 적합하게 된다.]
6內根(chasu ṭhānesu)에 대한 욕탐(upakkileso)을 제거하면
出離(nekkhamma, 불환자: 욕계를 벗어남으)로 기운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마노는 욕계와 연관된 內根이다.
6觸入處(channaṃ phassāyatanānaṃ)를 벗어나면 일단은 욕계를 벗어난 불환자이다.
眼耳鼻舌身意의 대상인 色聲香味蜀法에 대한
見聞嗅嘗接識에서 嗅嘗(接?)을 남김없이 완전히 벗어나면 색계이고,
이것을 포함하여 전5근과 전5경
이른바 10色處를 완전히 벗어나면 무색계인 意-法 2處이고 이분도 불환자이다.
6觸入處(channaṃ phassāyatanānaṃ)를 남김없이 벗어났다는 것은
마노를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이고 삼계해탈이지 싶다.
그러나 12처에서 생겨난 모든 법들은 5온으로 수렴하고
이러한 5가지가 心에 쌓인 것이 蘊이고 이러한 5온에 대한 갈애에 의한 取가 5취온이고
또한 邪見으로 取하여 훈습된 것이 5蘊界이고 潛在(anusaya)이다.
5취온이 有된 것이 名色이고, 이러한 名色은 6界를 取하여 모태에 들었을 때 나타나는 법이고
그 결과 6處가 생겨나고 6處가 생겨났다는 것은
18界가 이미 마음에 잠재하고 있고 작동할 준비가 된 상태라는 것이다.
그 결과 6內-6外-6識-6觸-6受-6想-6思-6愛--6界-5蘊(界)으로 다시 흘러들어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