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 라스트 콘서트에서 "김정은이라는 돼지는…" 趙甲濟
어제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나훈아 콘서트에서 그는 올해 전국 순회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은퇴할 것임을 확인했다. 나훈아는 지난 2월 공개편지에서 은퇴를 시사한 바 있다. 그는 어제 2시간 반 동안 22곡을 불렀다. 거의가 자신이 작사, 작곡, 노래한 곡이었다. 콘서트 전체를 자신의 노래로만 채울 수 있는 가수는 이미자, 패티김, 조용필, 나훈아 정도일 것이다. "혹시 누구에게 곡이라도 써주며 연예계를 기웃기웃하지 않을까 싶겠지만 전 후배 가수들도 잘 모른다. 살짝 옆눈으로도 연예계 쪽은 안쳐다 볼 것"이라고 했다. "책은 봐도 글은 쓰지 않으렵니다. 지금까지 남은 마흔여덟 권의 일기장, 이제 일기도 안 쓸 겁니다. 여러분 고마웠습니다. 진짜. 저는 아직 더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이크를 내려놓습니다. 쎄가 빠지게 벌은 돈은 다 쓰고 죽어야 합니다. 저는 결혼식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11명 대통령이 바뀌어도 전 아직 노래중입니다." 나훈아는 "이 이야기는 꼭 하고 노래를 그만둬야겠다"며 노래 '공'의 선율에 맞춰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북쪽을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북쪽 김정은이란 돼지는 사람들이 굶어죽거나 말거나 살이 쪄가지고 저거는 나라가 아니다. 혼자 다 결정하니깐 실컷 얘기하고 조약을 맺어도 혼자 싫다 하면 끝이다. 이제 전쟁도 돈이 필요한 시대다. 이스라엘이 이란 미사일을 막는 데 하루 1조를 써서 99%를 막았다고 한다. 치고싶어도 칠 수 없을 만큼 강해져야 한다. 힘이 있어야 평화도 있다." 나훈아의 말에 관중들은 "옳소" "그렇지" 하고 호응했다. 그의 마지막 노래는 '사내'였다. '큰소리로 울면서 이 세상에 태어나'로 시작된 그의 노래는 '훈아답게 살다가 훈아답게'에서 뚝 멈췄다. "전 이제 마이크를 내려놓기에 노래를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대신 노래해주세요"라며 드론에 마이크를 달아 날려보냈다. 나훈아는 인천 이후에도 청주, 울산, 창원, 천안, 원주, 전주에서 상반기 공연을 이어간다. 하반기 공연 일정은 추후 발표된다. ////////////////////////////////////////////////////////////////// *2020년 10월에 썼던 글 2020년 추석 전후 10일 정도는 나훈아가, 국민을 크게 하나로 합친다(大統)는 사전적 의미에서 실질적 대통령이었다. KBS의 두 차례 방송에서 약 50%의 시청률을 기록,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나훈아의 비밀을 연구해야 할 이들은 우파세력이다. 1. 나훈아는 늙어도 젊게 행동했다. 옷차림, 말, 행동이 젊었다. 우파가 늙어 보이면 젊은 이들, 여성들은 달아난다. 2. 나훈아는 남성미를 보였다. 우파의 美學(미학)은 건강한 힘이다. 상무정신, 애국심, 규율과 절도, 프로정신, 정확성. 이 모두를 갖춘 나훈아는 이런 힘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3. 나훈아는 이념에 충실했지만 이를 부드럽게 드러내었다.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는 반공자유민주 정신이 깔려 있었다. 탈이념의 김종인류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가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4. 나훈아는 지혜로웠다. 반공자유의 이념을 촌스럽게 드러내지 않고 삭여서 표현하는 슬기를 보여주었다. 5. 나훈아는 메시지의 귀재였다. 그는 짧고 정확하고 쉬운 언어를 구사, 말하고 싶은 뜻을 확실하게 전달하였다. 우파가 배워야 할 선전술이다. 6. 나훈아는 자유와 自主(자주)의 영혼을 양보하지 않았다.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려는 자존심을 거칠게 표현하지 않고 여유있게 드러냈다. 웃음을 잃지 않았다. 7. 나훈아는 계획과 연습에 철저한 프로였다. 고집을 뒷받침할 만한 실력이 있었기에 주최측에 통했고, 국민들을 열광시킬 수 있었다. 우파는 주장은 강한데 실천력이 약하다. -결론적으로 우파는 나훈아 같은 프로가 되어야 한다. 좌파는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는 데는 프로인데, 우파는 아마추어적이다. 나훈아가 보여준 匠人(장인)정신을 본 받아 우파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권력을 장악하는 데 있어서 프로의 승부정신으로 임해야 한다. *2003년 9월28일 올림픽공원 콘서트 중 멘트 녹취 여러분, 원래 이 공연이 평양에서 하기로 되어 있었던 공연입니다. 그런데 이 공연이 오늘 서울 평화의 문 앞에서 하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습니다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공연이 누구의 제재를 받고 누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간섭을 받고는 이런 공연은 절대 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저는 간섭을 받기보다는 서울에서 공연을 하는 걸로 결정을 했습니다. (관객 환호 함성) 여러분, 얼마 전에 남쪽 북쪽 이산가족이 만나는 거 뉴스를 보고 아마 마음 아프시고 속상하시고 하신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우리 이산가족이 천만이 넘는답니다. 억지로, 좀 봐주는듯이 해서 한 몇백 명 만나게 해주는데…일 년에 천 명이라고 봅시다. 천만 명이 만나려면 만 년을 기다려야 됩니다. (관객 환호 함성) 남쪽 북쪽 할 거 없이 정신차려야 합니다. (코러스: "우리의 소원은 통일" 합창) 시끄럽다. 저는 이 노래를 제일 싫어합니다. 4분의 3박자, 느려터져가지고 한두 소절만 들으면 눈물이 나려고 그러고. 이 노래 부를 때 여러분 보셨습니까? 손잡고 그저 울고 앉았어.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언제 통일합니까? 통일의 노래는 힘이 있어야 되고 빠른 템포에 힘이 있어야 합니다. 갑니다. 여러분 도와주십시오. (코러스/관객: "통일 쾌지나 칭칭 나네" 합창) 이렇게 "쾌지나 칭칭 나네" 해가지고는 북쪽이 안들리니까, 북쪽이 들리게 크게, 왜냐면 같이 정신차려야 되니까. 다시 한번 갑니다! 쾌지나 칭칭 나네 어쨌든 해야 돼 쾌지나 칭칭 나네 빠르면 더 좋아 쾌지나 칭칭 나네 언젠가는 해야 해 쾌지나 칭칭 나네 쾌지나 칭칭 나네 우리는 해야 돼 쾌지나 칭칭 나네 빠르면 더 좋아 쾌지나 칭칭 나네 제주도도 우리 섬 쾌지나 칭칭 나네 독도도 우리 섬 쾌지나 칭칭 나네 금강산도 우리 산 쾌지나 칭칭 나네 백두산도 우리 산 쾌지나 칭칭 나네 쾌지나 칭칭 나네 서울도 우리 땅 쾌지나 칭칭 나네 평양도 우리 땅 쾌지나 칭칭 나네 쾌지나 칭칭 나네 우리 모두 통일하자 쾌지나 칭칭 나네 아버지 때문에 통일하자 쾌지나 칭칭 나네 쾌지나 칭칭 나네 자꾸만 통일하자 쾌지나 칭칭 나네 자꾸만 칭칭나네 쾌지나 칭칭 나네 쾌지나 칭칭 나네 언제 해도 해야 되는 통일입니다. 빠르면 빠를 수록 좋고요. 우리 마음을 모아서 빨리 통일합시다. /////////////////////////////////////////////////////// *월간조선 2002년 1월호 인터뷰 오효진: 무절제하게 오라는 대로 다 가면 안 되겠군요. 나훈아: 『그렇죠! 내가 가야 할 자리를 골라서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누가 말해도 설 자리가 아니면 절대 안 섭니다』 ―그러면 너무 비싸게 군다고 안 할까요? 『욕을 먹어야지요. 미국서 제가 신문을 보니까, 일반대중 가운데 30%는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야 슈퍼스타가 된답니다. 너나 나나 다 좋아하는 사람은 슈퍼스타가 아니라 그냥 스타라는 겁니다. 싫어하는 사람 30%가 있어야 좋아하는 사람들이 미칠 정도로 좋아한다는 겁니다. 저는 욕을 많이 먹습니다. 방송사에서 제일 많이 욕먹는 사람이 바로 접니다. 출연 교섭 한번 할래도 「더러워서 죽겠다」고 그래요. 우리 가수 가운데 학벌 좋고 공부 잘하고 노래 잘하는 분도 계십니다. 그런 분이 쇼하면 손님 안 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아주 점잖고, 교양 있는 말만 하고, 그러니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교수 같잖아요. 그러니까 안 가는 겁니다. 뭔지 모르지만 스캔들도 있고, 뭔가 좀 삐딱하게 굴기도 하고, 뭐 하나 할락카면 정신없이 난릴 직여 뿔고, 그러니까, 도대체 저게 뭐야, 한번 가보자, 이런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혹시 돈 많이 안 줘서 안 온다는 소리는 안 듣습니까? 『돈 많이 안 주면 안 갑니다. 그기 당연한 거 아니에요. 누가 대한민국에서 젤 비싸냐? 제가 젤 비쌉니다. 제가 2등의 열 곱은 더 받습니다』 ―방송사에 모시려면 한 1억은 내야 합니까? 『방송사에선 가수들한테 출연료를 10만∼20만 원밖에 안 줍니다. 그건 뭐냐? 내가 출연시켜 주니까 너희들 홍보가 되지 않느냐 이겁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는 안 합니다. 저를 출연시킬려면 적어도 2천만 원 이상을 내야 돼요. 큰 프로그램에 나갈 때는 물론 1억이 넘어야지요』 ―그러고 보니 오늘 이 인터뷰도 돈으로 따지면 수천만 원 나가겠는데요. 『예, 인터뷰도 그렇습니다. 저와 인터뷰하기가 쉬운지 한번 물어 보십시오. 보세요, 이렇게 어려우니까 月刊朝鮮에서 吳 선생님 같은 분이 오신 겁니다. 그건 제가 만들어야 합니다. 제 공연을 보고 나서도 사람들이 만족을 하고, 밖에 나가서 자랑을 하게 해야 합니다. 관객들은 최고로 비싼 (보통 15만 원) 입장료를 내고 왔지만, 내가 또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 주거든요. 그러면 사람들이 내가 최고의 입장료를 내고 최고의 무대를 보고 왔다고 자랑을 하게 되는 겁니다. 가수는 이렇게 자랑거리를 만들어 줘야 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