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무엉탄( MUONG THAN ) 호텔과 디엔 비엔 푸 전투
내가 무엉 탄 ( MUONG THAN ) 이라는 이름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는 몇번의 베트남 방문시 다낭과 후예, 그리고 호이안, 달랏등 방문하는 관광지마다 유달리 인상적으로 시선을 사로잡은 호텔의 모습 때문이었다.
건물 꼭대기에 위치한 날개를 활짝 편 독수리 형상의 커다란 상징물(emblem)과 도시의 규모등에 비추어 과다하다 싶게 주위를 압도하는 높고 커다란 건물의 인상이 강렬해서 였다.
해변이던, 도시 중심이던 가장 노른자위에 위치하여 랜드 마크의 역활을 하고 있었다.
구글과 위키피디아 검색에 의하면 60여개의 호텔을 보유하고 있어 아시아 최대 규모로 베트남 정부에서 건립 운영하고 있으며 특히 라오스와 베트남에 많다고 한다.
무엉탄은 베트남 서북쪽 라오스 국경과는 35km 위치에 있는 길이 20km 폭 6km의 분지 형태의 계곡(MUONG THAN VELLY)의 지명이다. 월남전에 참전하신 분들은 이제 쉽게 짐작하실 것이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은 디엔 비엔푸( Dien Bien Phu) 전투가 펼쳐진 곳이 바로 무엉 탄 계곡(MUONG THAN VALLEY)에 위치하고 있다.
보 응우엔 잡 장군은 보병 4개 사단과 1개 기갑 기갑사단등 5만명으로 앙리 나바르 장군이 이끄는 프랑스군을 포위하여,
분당 50여발의 포격등 압도적인 화력을 집중하여 두달간에 걸친 치열한 전투끝에 프랑스군을 궤멸시키고 프랑스군의 항복을 받아 냄으로 전쟁을 종결하고 프랑스를 베트남에서 철수하게 하였다.
중화기를 포함한 5만명의 대부대가 발각되거나 저지당하지 않고 신속히 포위망을 완성한 사례는 생도시절 전사 시간에 그 은밀성과 신속성에 대해 배운 기억이 있다.
무엉 탄 이라는 이름은 7세기(698년)로 거슬러 올라가 이곳을 기점으로 스와 제국을 건국한 무엉탄 쿤로 황제로 부터 시작된다. 이후 1253년 몽골제국의 침공에 대항하여 싸운 스와 제국의 중심이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짧은 기간 구글과 위키피디아 검색을 통해 단편적으로 모은 기록을 근거로 한 것으로 보다 자세한 연구가 필요한 부분임을 밝혀 둔다.
도이 모이 정책(개혁 개방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던 베트남 정부는 1992년 이곳에 디엔 비엔 푸 마을을 조성하고
이후 2003년 시로 승격시켰다. 또한 1995년 부터 무엉 탄이라는 이름으로 각지에 호텔을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스와 제국 창시자 무엉 탄 쿤로에서 시작하여 디엔 비엔 푸 전투의 승리에 이르기 까지, Muong Than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베트남인들에게는 자부심 그 자체라는것을 깨닫기에 충분했다.
호텔 이름으로 무엉 탄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의도가 나름 짐작되었다.
숙박료가 생각했던 것보다 저렴하고 나트랑 해변의 중심에 있어 휴가의 전반기는 이곳에서 보내기로 했다.
커튼을 열면 정면으로 시원하게 펼처지는 바다와 백사장의 모습과, 끝임 없이 들려오는 파도 소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커다란 선물이 었다.
- 나트랑 해변의 중심에 자리 잡아 주변을 압도하는 호텔의 모습
- 옥상에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편 독수리 모습의 상징물 (EMBLEM)은 야간에는 황금색 조명으로 멀리서도 쉽게 식별된다
- 세계 각국에서 찿아온 관광객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은 좋은 눈요기로 백사장 산책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 호텔 5층에는 널찍한 테라스 카페가 있어 자주 이곳에 들려 느긋하게 앉아 시원한 바닷바람과 해변 풍경을 보고 즐기며 둘이서 34만동(17천원) 규모의 예산으로 간단한 점심을 해결했다
- 그리고 호텔 바로 옆 골목에는 가성비가 좋아 현지인들로 항상 북적이는 음식점이 있어 우리도 자주가서 이십만동(만원) 수준으로 식사를 해결하기도 했다.
무엉 탄 호텔의 detail 은 건물 규모나 외양을 따라가지 못하고 약 했다. 핸드폰 충전등을 위한 방안의 전기 소켓은 모두가 조금씩 헐거워서 접속에 애를 먹고 샤워기는 미끄럽고 비좁은 욕조안에 있어 사용이 조심스러웠다.
마감재의 재질이나 마감 상태와 방음 처리도 아쉬운 점이 많았다. 규모와 외양에 치우치고 세세한 부분( detail)에 약한 공기업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오전에는 백사장과 공원 산책으로 오후에는 호텔의 fitness 센터에서 가벼운 헬스후 수영을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4. 참파 섬 ( Champa Island ) 과 로맨틱한 Pool Side Wedding
휴가의 후반 16일은 참파섬 리조트 (Champa Island Nha Trang Resort)에서 힐링(Healing) 하며 보내는 일정이다.
- 참파섬은 나트랑 북부에 위치, 서쪽에서 동으로 흘러 베트남 동해 Bien Dong (동해)로 합류하는 카이 강 ( Cai River ) 의 하류 삼각주에 형성된 자그만 섬이다
리조트측은 이곳에 또다른 작은 섬을 다리로 연결하여 함께 리조트를 건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세계 각국인들이 휴양을 목적으로 와서 체류하는데 러시아.유럽 특히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중국사람, 현지 베트남인 들이다. 한국 사람도 자주 눈에 띈다.
그러나 며칠전부터 미국.유럽사람과 중국인들은 모두 자취를 감췄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영향이다
다리 건너 바로 인근에 참파 유적인 파나가 사원 ( Panagar Tower )이 있고 옛날 부터 Champa 섬 이라고 했다는 걸 보면 12세기 비자야 ( Vijaya, 현재 퀴논)을 수도로 번성하였던 참파왕국 시대부터 주민들이 거주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나트랑은 옛날 부터 어업이 발달한 곳이라 강과 바다를 오가며 고기를 잡는 어부들이 살지 않았을까 한다.
- 내가 이곳을 선택한 것은 소란스러움과 번잡함을 피해 한가롭게 강과 바다를 즐길 수 있고 나트랑 시내나
main beach에 쉽게 갈수있는 장점들 때문이다.
리조트측은 메인 비치에 전용 private beach 가 있고 수시로 무료 셔틀버스(친환경 전기차)를 운용하고 있어 편리하다, 시내 중심에 있는 롯데마트는 택시로 2.5천원 거리다.
숙소 선택에는 구글 지도와, 호텔과. 음식점, 관광지등를 평가 소개하는 TripAdvisor 등의 웹을 많이 참고했다.
- 섬밖에 갈때는 항상 리조트에서 한가롭게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이용하고 돌아 올해는 통상 공유택시 Grab을 활용한다. 한국의 카카오 택시와 같은 시스템이다.
어플을 설치하고 들어가 인적 사항과 신용카드 정보를 입력하고, 택시호출은 어플을 열어 목적지를 입력한후 사용의사를 확정하면 핸드폰의 구글지도에 행선지 까지의 경로와 예상 요금, 차량이 경로를 따라 내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보인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요금을 확인한 후에 그냥 내리면 된다. 현금 지금이나 카드 결재가 필요 없다. 자동으로 결재된후 핸드폰에 바로 결재 내용이 표시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우버( Uber ) 동남아 지역에서는 그랩 ( Grab )이 편리하다. 우리 나라에서는 물론 카카오 택시가 단연 편리하다.
IT 도구를 이용하는 것은 많은 시행착오와 상당한 인내심이 요구된다. PC 보다는 테블릿PC 나 핸드폰을 주로 이용하는데 자판도 작고 이제 손가락의 감각도 무디어 오타가 많고 애기치 못한 애러가 자주 발생해 당황할 때가 많다.
넉넉한 시간과 여유, 그리고 참을성이 필요하다.
우리들에게 사용할 수있는 시간은 젊은이들 보다 상대적으로 적다. 시간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아껴 써야 한다. 역설적으로 바쁘게 처리해야 할 일들이 별로 없는 우리에게 시간 밖에 달리 내세울 것이 없는 것도 현실이다.
서투르지만 인내심을 갖고 넉넉한 마음으로 젊은이들 보다 많은 시간을 활용한다는 마음이면 IT 도구들에도 적응하고 점차 익숙해 질 것으로 믿는다.
100세까지 살아야 될지도 모른다는 데 변화하는 세상에 조금씩 적응해야 하지 않겠는가 ?
- 서쪽 방향으로 카이 강 상류를 향하고 있는 리조트 좌안 산보길 모습
-우측에는 아침 저녁으로 우리가 이용하는 식당의 테라스 테이블들이 있어 우리는 항상 카이 강 바로 옆의 자리에 앉아 식사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마트 호텔 식당등의 손님을 상대하는 종업원은 마스크를 착용한다
- 우리는 식당에서 거의 VIP 대접을 받는다. 부페식 아침에도 우리가 오면 테이블에는 조그만 녹차 주전자와 따끈한 커피 포트를 가져다 놓는다.
- 장기투숙 손님이고 resturant 캡틴 Hong
Anh 과 서브 담당 Loan 이라는 아가씨를 잘 사귀어 논
덕이다.
- 저녁에는 조그만 귤을 말려 꿀에 절인 것을 항상 후식으로 가져다 주었는데 달콤하면서 새콤한 맛이 쌉쏘롬한
녹차와 잘 어울렸다. 납작하면서 작은 꽃잎처럼 귀엽게 모양을 낸 것이 상당한 정성이 느껴지게 만든 것으로 특별히
대접받는 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가족 같은 손님에게 대하는 태도에서 스스럼 없고 편안한 친밀감이 들게 했다.
그동안의 여행을 통해 얻은 konow how로 숙소의 직원 한두 사람을 잘 사귀면 여러가지로 생활이 즐겁다는 걸 알고 실천한 덕이다.
- 리조트의 우측 산책로. 산책로는 섬 둘레에 계속 연결되어 있다
- 수영장과 우측에 야자수 지붕의 Fitness Center 가 보인다.
- Champa Island 도착 이틀째인 1.30일 베트남 신부와 러시아 청년의 로맨틱한 Pool Side ( 수영장 옆 ) Weeding 모습을 4층 우리방에 앉아 내려다 보는 행운을 누렸다.
- 어둠이 막 시작되는 황혼의 아름다운 하늘과 강을 배경으로 Pool Side에 마련된 야외식장에서 음악과 함께 예식이 시작되고
- 6인조 여성 무용단의 축하 공연이 있었다
- 이윽고 전통 의상으로 갈아 입은 신부와 신랑의 모습, 러브 샷, 테이블을 돌며 하객에게 인사하는 모습들이 야간 조명을 받아 로맨틱하고 환상적이다
- 다음 사진들은 12세기 참파 유적인 포나가 사원 ( Ponagar Tower )의 모습들 이다.
포나가 사원은 카이 강 ( Cai River )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하여 우측에 참파 섬, 좌측으로 남중국해를 내려다 보는 곳에 있다.
우리가 머무르고 있던 곳에서는 도보로 20분 정도 거리다
-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리조트에서 카이 강 건너로 보이는 모습이다
- 포나가 사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나트랑 관광 명소인 혼총 커피( Hon Chong Coffee)와 혼총 곶 ( Hon Chong Promontory)이 있고 나트랑 대학과 나트랑 관측소도 바로 인근에 있다.
혼총 커피 ( Hon Chong Coffee )는 베트남 전통음악 공연을 관람할 수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입장료 이만동( 천원 )을 내고 들어가면 전통음악을 직접 감상하고, 야외 카페에서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음료수나 스낵을 먹을 수있다
5. 베트남 국민의 알렉산드르 예르생 ( Alexandre Yersin ) 사랑
- 베트남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외국인은 프랑스 세균학자로 널리 알려진 알렉산드르 예르생 (Alexandre Yersin )이다.
페스트균, 말라리아,콜레라, 디프테리아,폐결핵,임질, 매독등 우리가 어렸을때 배운바 있는 많은 전염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밝혀내 인류의 건강을 지켜낸 인물이다.
또한 베트남에서는 가축의 질병에 대한 연구와 브라질 고무나무, 말라리아에 특효인 키니네 나무등을 도입하고 재배방법을 보급하여 농민들의 소득과 삶을 향상시키는데도 공헌하였다.
내가 그에게 관심을 갖게된 계기는 작년 고원 휴양지로 유명한 달랏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던 과정에서 였다.
베트남 남서부 랑비앙 고원에 자리한 해발 1,500m 고도의 달랏은 예르생 박사가 당시 인도차이나 총독으로 이후 프랑스 대통령이 된 폴 두메르에 요청하여 1916년 프랑스 식민정부 법원이 설립을 반포하면서 시작되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달랏( DA LAT )은 라틴어 Dat Aliss, Laetiam Aliss Temperation ( “어떤 이 에게는 즐거움을” “어떤 이 에게는 신선함을”)의 약자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그는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세균학자이면서 탐험가, 항해술 연구자, 천문학자, 농경학자로도 이름이 알려지고 있다.
인도차이나 반도 4곳에 파스르 연구소 와 세곳에 실험실을 짓도록 하였고 하노이 의과대학, 하노이와 달랏에 고등학교 설립을 주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루이 파스테르는 그의 스승이다.
베트남 국민은 주요도시 곳곳의 도로 명칭에 그의 이름을 붙여 사랑과 존경을 표시하고, 통일 베트남 정부는 그가 거주하던 곳에 박물관(Alexandre Yersin Museum)을 지어 그를 기리고 베트남 명예 시민 자격을 부여하였다.
그는 1943년 3월 1일 1:00AM에 나트랑에서 8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 알렉산드르 예르생 박물관Alexandre Yersin museum)은 나트랑 해변 중심인 햇불 타워에서 북으로 1.2Km 해변에 파스테르 연구소와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 전시관이 위치한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중앙에는 어부들이 제작하여 예르생박사에게 주었다는 정크 선( Junk)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우기에 바다가 범람하여 집등이 침수되면 피신처로도 사용하였다고 한다
- 이층 전시관 입구에 있는 그의 두상이다, 옆에는 항상 두개의 화병에 꽃을 꽂아 놓아 그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
- 그는 메콩강을 따라 상류쪽 산간 지역 오지 까지 탐험하고, 수차에 걸쳐 인도 차이나 각지를 탐험하여 사진과 기록을 남겼다.
그가 남긴 지도에는 네차례에 걸친 탐험 루트가 표시되어 있다
- 꼬끼리에 짐을 실은 일행의 모습등이 흥미롭다
- 박물관 앞 정원에 있는 흉상의 모습
* 다음은 작년에 모은 자료중 흥미로운 사진이 있어 올려본다. 이번 여행과는 직접 관련이 없으나 어쩐지 가슴이 시린 사진으로 달랏에 위치했던 베트남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모습이다.
- 베트남 육군사관학교는 프랑스 식민시절인 1950년 1 기가 졸업하고 계속 이어 졌으나 베트남 전쟁이 종료된 후 1975년 1월에 폐교의 비극적 운명을 맞이했다
졸업을 하지 못한 마지막 클래스 생도로 1월 어느 날 달랏에서 찍었다는 설명이 보인다.
- 두서 없는 글을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맺는다 -
첫댓글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여행정보도 부탁합니다.
이제야 올리신 댓글 읽어 보았읍니다. 두서 없는 글을 읽고 칭찬해 주셔서 감사-박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