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종주
천왕봉 일출(1982.7.30)
조 흥 제
여기는 1915m의 남한 육지의 최고로 높은 지리산의 정상 천왕봉이다. 지금 시각은 아침 6시30분. 동쪽 하늘은 붉어 오고 해가 떠오를 위치에 엷은 구름이 가려 딱히 태양은 보이지 않으나 징조로 봐서 일출이 시자됐음이 분명하다.
아침을 앉혀 놓고 사방을 찬찬히 바라보다. 뭇 사람이 오르고 싶어하고 나도 그렇게 천왕봉 일출을 보려고 로터리 산장에서 자고 어둠이 걷히기 전에4㎞를 뛰어 오다시피 하여 이곳에 선 것이다. 동쪽 하늘에 찬란히 걸린 아침노을, 태양은 보이지 않으나 눈을 들어 사방을 바라본다. 보이느니 봉우리요, 능선이요, 계곡이요, 구름이다. 계곡을 일정한 높이로 덮고 있는 백운은 흡사 바닷물이 들어 온 것 같다. 금강산이 1만2천봉이라고 했던가? 지리산은 더 될 것 같다.
한라산, 설악산도 정상을 밟아 보았지만 이렇게 철저히 산으로 둘러싸인 곳은 우리나라 전체를 보아도 이 곳 밖에 없으리라. 찬란한 구름 사이로 태양이 얼굴을 내민다. 8월의 이글거리는 태양이 아닌 연약한 햇님이다. 나의 지리산 등정을 축복해 주는 듯하다. 계곡의 구름은 여전하다.
육당 최남선(1890~1957)선생이 금강산에 올라 일찍이 장관이란 말을 썼던 것을 후회한다고 하였다. 금강산의 표현은 장관, 그 이상의 것이었기에 그런 표현을 썼던 것인데 그 심정을 이해할 것 같다. 한 없이 앉아 있으며 감상하고픈 심정이지만 세속에 매여 있는 몸, 갈 길이 바쁜 몸, 아침 먹고 8시20분 출발했다.
이번의 지리산 산행은 정상적인 휴가 계획에 차질이 생겨 부랴부랴 임시 변통으로 세운 것이다. 가족 단위의 휴가 일정에 차질을 빚어 평소 산을 좋아하던 나는 지리산 천왕봉을 대상지로 삼았다. 일행을 구하려고 했지만 구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단독으로 가기로 마음먹고 모든 용구를 점검해 배낭에 챙기고 지도와 나침반, 지리산이 실린 『月刊 山』지를 지참하고 1982년 7월31일 4시에 기상, 택시로 고속버스 터미널에 오니 시간이 많이 남는다. 조선일보 한 장 사고 우유 한 잔 마시고 6시에 진주행 버스에 올랐다.
지리산은 소백산맥 최남단에 솟아 있는 1915m의 남한 최대의 산으로 둘레만도 800리, 넓이는 439㎢로 전남, 전북, 경남의 3개도와 구례, 남원, 함양, 산청, 하동 등 5개 군을 포용하고 있어 예로부터 한라산, 금강산과 함께 삼신산의 하나로 신성시해 온 영산(靈山)이다.
6‧25 때 많은 공비들이 숨어들어 덕유산, 서대산 등을 오가며 인근 주민을 괴롭혔고, 경찰 토벌대와 접전을 많이 벌였으나 넓고 험준한 산세 앞에 기백명의 경찰력으로 공비를 토벌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휴전 무렵 정규군을 토벌대에 투입하기 전까지 지리산은 공비들의 활동무대가 되어 인근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고, 그 때문에 주민들의 피해도 컸다.
종주는 중산리에서 법계사, 천왕봉, 제석봉, 연하봉, 촛대봉, 영신봉, 덕평봉, 벽소령, 삼각고지, 명선봉, 토기봉, 반야봉, 임걸령, 노고단, 화엄사코스로 67㎞가 코스이고, 치밭 못 코스, 피아골 코스, 뱀사골 코스, 쌍계사 코스, 거림코스, 칠선계곡 코스, 백무동 계곡 코스 등이 주로 많이 이용하는 코스이고 사찰도 화엄사, 쌍계사, 연곡사, 천은사, 칠불암, 대원사, 법계사, 실상사 등 많으며 유명한 계곡과 소(沼)와 폭포가 처처에 산재해 있다.
시원스럽게 달리는 차창에 비친 바깥 풍경, 쭉쭉 뻗은 검푸른 건장한 벼 포기 사이로 김매는 농부들 모습이 보인다. 12시 진주 터미널에 도착, 택시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에 와서 표를 사고 기웃거리니 지리산 중산리행이 지금 출발하니 빨리 타라고 차장이 등을 떠민다. 요리 꼬불, 조리 꼬불, 험한 길을 2시간 달려 목적지인 중산리에 도착, 점심을 사 먹고, 2시40분 출발, 입산 신고소에 와서 보니 모자를 점심 막던 곳에 벗어 놓고 왔다. 2㎞를 갔다 올 수도 없고, 모자 없이 강행키로 했다. 다리를 건너니 좌측으로 법계사 입구라는 비석 옆으로 길이 있다. 계곡을 끼고 오르는 길은 경사가 무척 심하다. 수림에 싸여 하늘은 안 보이고 아름드리 거목의 연속이다. 시야는 없고 바위와 초목과 물소리를 들으며 한참 오르니 내려오는 등산객들이 “수고 하십니다. 법계사까지 얼마 안 남았습니다.”하는 인사는 땀으로 목욕한 사람들에겐 용기와 훈훈한 인정을 주었다.
산에 다녀 보면 정상이 보이는 산도 있고, 보이지 않는 산도 있다. 정상이 안 보이는 산이 지금 오르고 있는 중산리 코스일 것이다. 중산리 버스 종점에서 정상인 천왕봉까지 12㎞, 가장 짧은 거리의 정상에 오르는 길이면서도 정상은 보이지 않았다.
날씨는 구름을 많이 동반하였으나 구수한 경상도 아가씨들의 억양 섞인 말씨 속에 정다움을 느끼며 강행에 강행, 암릉길이 때로는 침침하고 때로는 어둡고, 때로는 환하고, 주위의 수림에 따라 명암이 갈라지는 것이 재미있다. 장마철이라 물은 흔하다. 끝없이 오르는 경사 길. 뭉게구름이 이는 가 했더니 비가 온다. 우의를 꺼내 입으니 거추장스럽고 무거워 그렇잖아도 땀이 많이 나는데 흡사 한증탕에 들어간 것 같다. 그러나 우의를 준비 못한 사람들은 그 시원한 빗줄기를 몸으로 받으며 시원하다고 하면서 올라간다. 드디어 법계사. 법계사가 목표가 아니라 로타리 산장이 목표다. 조금 오르니 슬라브를 친 산장이 나온다. 주위가 깨끗하고 전망이 좋은 곳에 있었다. 5시20분 산장 안에 들어가니 일러서인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먼저 온 사람들은 자리를 잡고 자는 사람, 화투를 치는 사람이 많다. 나도 혼자 밥 해 막기가 귀찮아 빵과 우유로 식사를 대신했다. 침낭을 베고 누워 있으니 박수 소리가 난다. 일어나니 산장 관리인이 왔다. 그는 40대의 남자로 지리산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고 지리산의 골짜기나 봉우리에 전설이 많으며 모르는 것이 있나 해서 서울 청계천 책방을 가끔 뒤진다고 했다. 특히 칠선계곡을 극찬한다. 여러 가지 얘기 끝에 각 팀의 리더들을 자기 방으로 오라고 한다. 그 방에는 10여 명의 리더들이 모여 끝없는 산 이야기가 이어졌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은 후 “내일 뱀사골 산장까지 갈 수 있느냐?”고 물으니 “경장이냐”고 묻는다. 경장이라고 하니 손가락을 꼼작꼼작 하더니 “뱀사골까지는 36㎞이니 빨리 가면 갈 수 있다.”고 했다. 그 사이에 산장이 없기 때문이다. 내일 뱀사골까지 가서 자고 모레 노고단을 거쳐 화엄사로 하산하기로 하였다. 잠자리에 드니 밖의 수많은 텐트에서 나는 소란스러움은 밤이 깊어도 여전하고 그것을 제지하는 산장측과 다투는 소리가 났다.
이튿날 새벽 4시20분에 기상. 그때까지 램프를 켜 놓고 화투 치는 팀도 있다. 밖에 나가 보니 땅거미가 걷히기 시작, 5시 정각에 출발, 어둑어둑한 초행길을 그것도 혼자서 걸으니 무서운 생각이 든다. 경사가 심한 바윗길을 오르니 산장에서 담요 한 장 덮고 자느라 움츠렸던 몸이 풀린다. 정상까지 4㎞, 힘든 코스다. 땀 흘리며 앞만 보고 오르니 동쪽이 불그스름하니 보기 좋다. 옆 골짜기를 보니 구름인지 바닷물인지 모를 물체가 골을 덮고 어떤 곳은 구름 한 점 없이 청청하다. 주위에서 사람 소리가 난다. 물이 있느냐 물으니 50m 오르면 있다고 한다. 조금 오르니 커다란 바위에서 흘러내리는 조그만 물줄기, 그것을 자바라 물통에 채워 넣는데 10분 이상 걸렸다. 조금 더 가니 우물이 있는 걸 괜히 시간 낭비를 하였다. 500m를 힘겹게 올라 천왕봉(天王峰)에 섰다. 천왕봉 주위에서 야영하던 사람들도 모두 나와 일출을 감상한다. 밥은 점심밥까지 했다. 8시30분에 출발했다. 뱀사골산장까지 가려면 빨리 가야 한다.
짐을 챙겨 뱀사골 방향으로 내려가다. 조금 내려오니 바위 굴이 있다. 이름하여 통천문, 올라 오려면 이 문을 통과해야 천왕봉에 오를 수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통천문을 지나니 너른 고사목군이 나온다. 한국전쟁 때 공비들이 숨어 있는 은신처를 없애기 위하여 국군들이 불을 놓아 태운 것이라고 한다. 이곳 봉우리가 제석봉, 조금 내려가니 산장이 있는데 장터목산장이다. 올라올 때 정상에 오르는 마지막 산장으로 여기서 자고 새벽에 천왕봉에 올라 일출을 본다고 한다. 조그만 고개들을 많이 넘으니 밑에 너른 고원이 나온다. 이름하여 세석평전, 둘레가 8㎞인 고원으로 지리산 철죽제를 여기서 연다. 거기에 산장이 있었는데 겨울에 손님이 없어 산장 관리팀이 철수했는데 종주하던 사람들이 산장을 뜯어서 불을 놓아 없어졌다. 세석평전을 지나니 계단길이다. 깊은 사면길을 가로지르는 바윗길이다. 그 사면길을 통과하니 조그마한 풀밭이 나온다. 거기에 샘물이 있다. 이름하여 선비샘, 거기서 아침에 먹다 남은 찬밥을 먹고 가니 우측에 조그만 동산이 나온다. 벽소령이다. 연하천을 지나 총각샘에 이르니 기운이 다하였다. 거의 뛰다시피 하루 종일 걸은 것이다. 토끼봉에 이르니 앞에 거대한 봉우리가 위압한다. 저 봉우리를 어떻게 넘나. 길 가 풀밭에 배낭을 베고 누웠다. 하늘에는 흰 구름이 두둥실 떠 있고 바람은 살랑살랑 부는데 몸은 천근으로 움직일 수가 없다. 늘어지게 쉬었다. 토끼봉 너머가 오늘의 목적지인 뱀사골 산장인데 토끼봉이 조그만 언덕이 무척 많다. 나를 위압하던 큰 봉우리는 내가 넘어야 할 봉우리가 아니고 반야봉으로 지리산 서쪽의 최고봉(1732)으로 등산로에선 비켜 서 있다. 토끼봉 마지막 고개에 서니 뱀사골 산장 4㎞라는 안내판이 있다. 내려가는 길어어서 찬찬히 내려가니 안부가 나온다. 이름하여 화개재. 거기서 우측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뱀사골 산장이 거기에 있다. 뱀사골 계곡은 달궁까지 14㎞로 지리산 계곡 중 가장 길고 경치도 좋다. 조금 내려가니 산장이 나왔다. 지금시각이 7시, 로타리산장에서 5시에 나왔으니 14시간이 걸린 것이다. 산장에 들어가 꼼짝을 못하니 산장 관리인이 자기가 불을 피워 줄 터이니 밥을 해 먹으라고 했지만 꼼짝을 할 수가 없어서 우유와 빵 하나 사서 먹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7시에 기상, 아침을 해 먹고 8시에 출발, 화개재까지 올라와 노고단으로 방향을 잡다. 가파른 언덕을 한참 오르니 큰 바위를 끼고 평탄한 길이 나오는데 우측에 봉우리가 날라리봉이라고도 하고 삼두봉이라고도 한다. 날라리봉을 지나자 삼거리가 나오는데 노루목이다. 여기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한참 내려가니 넓은 평원이 나오는데 임걸령으로 텐트를 치고 야영할 수 있는 시설이다. 임걸령을 지나서 고개를 넘으니 건물이 보인다. 노고단 산장이다. 뱀사골에서 14㎞로 능선 끝이다. 천왕봉에서 시작된 45㎞의 긴 능선의 끝이다. 산장에 들를 시간이 없어 화엄사 내리막길을 가다. 노고단에서 화엄사까지 10㎞. 화엄사에 오니 오후 2시다. 화엄사에 들르다. 각황전은 목조건물로 유명한 사찰이고 건물 앞에 탑이 있는데 사자가 받치고 있는 위에 탑을 세운 것이 인상적이었다.
버스 종점으로 나와 점심을 사 먹고 전주행 버스를 타다. 전주에서 유명한 전주 비빔밥을 먹고 서울행 고속버스에 오르다. 앵앵거리는 엔진소리를 들으면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