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종주국 잉글랜드가 월드컵 16강 문턱에서 주저앉았다.(참고로 영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 나라에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세 지방이 각각 월드컵에 출전할 수 있다.) 그것도 단 1승도 못 거두고 1무2패로 56년 만에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이탈리아에 이어 우루과이에도 지는 순간, 이미 잉글랜드의 16강 진출은 불가능했다. 1994년 미국월드컵 때처럼 아예 예선을 통과 못해 본선에 못 나간 경우는 있었지만 일단 본선에 나가면 16강까지는 올라간 게 잉글랜드다. 조별리그 탈락은 56년 전인 1958년 스웨덴월드컵 이후 이번이 딱 두 번째다. 이렇게 해서 ‘유럽 축구 강국’이라는 잉글랜드는 1966년 안방에서 열린 영국월드컵 이후 한 번도 우승을 한 적이 없는 불명예의 기록을 계속 유지하게 되었다.
영국인들은 잉글랜드 팀이 이탈리아와 우루과이에 지고 난 후에도 6월 20일 이탈리아 대 코스타리카 시합을 손에 땀을 쥐고 기대에 차서 보았다. 이탈리아가 코스타리카를 이겨 주고, 잉글랜드가 코스타리카를 이기고, 그런 다음 이탈리아가 다시 우루과이를 이겨주면, 자신들이 16강에 올라갈 수 있다는 정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말이다. 그래서 온 영국이 이탈리아를 응원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이탈리아가 자기들을 위해 이겨 주기를 간절히 빌었다. 차라리 구걸행각이라고 해야 할, 이탈리아를 향한 전 국민적 구애행각이 벌어졌다. 비록 자신들을 짓밟고 지나간 이탈리아지만 그들의 승리를 빌고 또 빌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자력으로는 도저히 살아 남지 못하니 빌 수밖에 없다. 이 애타는 상황을 묘사한 영국 신문 기사 제목들을 모아서 조합해보면 영국이 얼마나 한심한 지경에 이르렀었는지 알 수 있다. ‘수아레스에 의해 유린당해(Savaged by Suarez)’ ‘아구창이 돌아갔고(Kicked in the teeth, 아무리 다른 표현을 찾아봐도 어떻게 다르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독자들의 용서를 구한다)’ ‘상처에 소금이 뿌려졌다(Added insult to injury)’. 그래서 결국 영국의 신세는 ‘승점도 없고, 희망도 없고, 이길 수도 없는(Pointless hopeless winless)’ 상태이다. 문자 그대로 이탈리아라는 ‘지푸라기 하나에 매달리고(Clutches at a straws)’ ‘더 이상 가늘 수 없는 실 끝에 매달린(Hang by slimmest thread)’ 신세로 전락해서 ‘이제 영국의 운명은 신에게 달려 있다(Now England’s fate is in the hands of the gods)’. 그래서 ‘영국은 지금 기적이 필요할 것이다(Now England will need a miracle)’. ‘이탈리아가 도움을 주기를 기도하자(Praying for a favour from Italy)’. 영국이 우루과이에 진 6월 20일과 이탈리아가 코스타리카와 시합을 하는 21일 사이만큼 이탈리아인들이 영국인의 사랑을 받아 본 적도 없을 듯하다. 사람이 궁해지면 참 얼마나 비참해지고 치사해지는지를 보는 것도 야비하고 잔인하긴 하지만 재미있다. 영국 신문에는 이탈리아 말로 이탈리아를 응원하는 구호를 가르치는 기사까지 나왔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 이겨라(Forza Azzurri)’ ‘끝까지 싸워라(Fino alle fine)’ ‘발로텔리 내 모든 것을 다 줄게(Balotelli, per te darei la vita mia)’ 등등이다. 거기다가 영국 최고의 인기 TV 프로그램 ‘매치 오브 투데이’의 축구 해설자이자 1986년 월드컵 본선에서 무려 6골을 넣어 최고득점자로 영국의 영웅이 된 게리 리네커마저 브라질월드컵 현장 해설에서 이탈리아 국기가 붙은 티셔츠를 입고 나와 은근히 이탈리아에 추파를 던졌다. 이렇게 영국인들이 안달을 하는 와중에 이탈리아 대표팀의 ‘수퍼 마리오’라는 별명을 가진 마리오 발로텔리가 영국인들의 약을 올렸다. 그는 맨체스터 시티 클럽에 있을 때부터 악동 이미지로 말썽을 부리다가 결국 EPL에서 못 견디고 고향 이탈리아로 돌아간 전력이 있다. 그런 그가 트위터에 ‘만일 우리가 이기면 엘리자베스 여왕이 키스를 해주겠다고 하면 열심히 한번 뛰어 보겠다. 물론 볼에다가 해주어야 한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탈리아마저도 결국 영국인들의 간절한 염원을 저버렸다. 영국인들의 기도가 부족했는지 신이 영국인들의 염원을 저버린 것이다. 잉글랜드 팀이 16강에 올라갈 수 있는 3번의 ‘만일(if)’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탈리아가 코스타리카와 우루과이에 모두 졌고 잉글랜드도 코스타리카와 비겼다. 잉글랜드의 탈락이 확정되던 날, 영국 신문들은 ‘끝(The End)’ ‘우린 끝났다(We are through)’ ‘아디오스! 잉글랜드’라고 그냥 산뜻하게 제목을 달았다. 잉글랜드 팀은 1966년 월드컵 우승 이후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4강에 오른 게 최고의 성적이다. 당시 3·4위전에서 이탈리아에 져서 4등에 그친 것이 지난 54년간의 최고 성적이다. 우승은커녕 결승전에도 한 번 못 올라가 봤다. 축구 종주국이라는 잉글랜드는 왜 월드컵에서 부진할까. 전 세계 축구팬들이 궁금해 하는 이 의문을 영국을 향한 비판과 변명으로 한번 풀어 보자.(괄호 안은 영국의 변명들이다.) ‘잉글랜드는 유명 선수들이 많은, 돈 많은 클럽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느냐’(클럽에서 뛰는 선수들이 다 영국 국적은 아니다), ‘그래도 영국 국적의 명선수들도 많지 않은가’(명선수들이 많다고 꼭 시합을 잘하는 것이 아니기에… 웨인 루니는 이번에 겨우 월드컵 첫 골을 넣을 정도로 집 밖, 특히 큰 시합 울렁증이 있어 그동안 월드컵에만 나가면 발이 오그라들었다), ‘그래도 축구의 종주국인데’(영국이 종주국인 스포츠는 축구 말고도 테니스, 럭비 등 많은데 그런 종목에서도 영국의 실적은 초라하다), ‘가장 오래된 FA컵 시합 같은 축구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역사가 오래되었다고 다 뛰어난 것은 아니다. 그럼 문명의 발상지 중국이나 이집트가 모든 상을 독점해야 한다), ‘축구가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이라고 할 만큼 열성적이고 충성스러운 2500만의 광 축구팬이 있지 않느냐’(축구팬이 선수로 뛰지는 않으니… 그런데 2500만이라는 숫자는 어디서 나왔나? 이 숫자면 영국 인구 6500만명 중 여자를 제외한 남자 인구 중 2세 이하를 뺀 나머지 모두다. 2세 이상의 남자는 모두 축구팬이고, 여자 팬은 영국민 중 한 명도 없다는 계산이다. 이건 ‘더 선’지의 의견이다). 잉글랜드 팀의 조별리그 탈락은 웨인 루니의 말처럼 “어떤 핑계를 댈 만한 것이 없다”는 게 영국 언론의 거의 일치된 평이다. 과거의 어느 월드컵 시합보다도 더 훌륭한 스태프들이 이번에 브라질로 갔다. 72명의 스태프들이 선수들을 돕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시합 전후 선수들의 심리안정을 도울 스포츠심리 전문의사를 비롯해 영양사, 조리사, 심지어는 잔디 전문가, 선수들이 너무 더워하면 뛰어가서 물을 뿌려줄 스프레이 담당까지도 있었다. 선수들도 역대 최고 수준에다 축구 경력에 따라 맞춤 선발되었고, 감독도 선수들과 호흡이 잘 맞았다. 선수들의 몸 상태도 최고였다. 어디 하나 흠잡고 핑계 댈 만한 것 없이 모든 것이 완벽한데 좋은 성적을 못 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더 기가 막힐 노릇은 잉글랜드 팀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을 선데이타임스의 축구 전문기자가 잘 집어내었다. 그는 그냥 간단하게 잉글랜드의 탈락을 ‘Familiar tale of inadequacy as hope sabotaged by old failing’ 때문이라고 썼다. 이를 친절하게 풀어 보면 ‘이미 과거에도 여러 번 반복되어 너무 익숙하고, 그래서 더욱 고쳐지지 않는 잉글랜드 팀의 수준미달(inadequacy)이 희망을 망가뜨렸다’이다. 그는 또 결론에 에둘러서 쓰긴 했지만 ‘잉글랜드 팀의 플레이는 그냥 단조롭고 무미건조했다’라고 지적했다. 새로운 시도와 모험 없이 너무 안전하게만 시합을 했다는 뜻이다. 만일 누구도 진단을 낼 수 없다면 영국인(정확히 얘기하면 잉글리시인데 이제부터는 그냥 영국인이라고 통칭해야 할 듯하다) 특유의 심성을 살펴보는 방법으로 한번 접근해 보면 어떨까라는 제안을 한다. 선데이타임스 기자의 말대로 감독이나 선수들이 모험도 하지 않고 안전하게만 시합하려는 태도 같은 것들 말이다. 다시 말하면 크지도 않은 섬나라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으로 만든 것이 영국인의 꺼지지 않는 진취력과 모험심인데, 영국인들은 이제 그런 야성을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사실 영국인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군중들 속에서 튀거나 나서서 왕따(bullying)를 당하는 것이다. 영국인들은 어디를 가나 자신이 입은 옷이 너무 튀어서 남의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무난하게 어울리는 옷을 골라 입으려 부단히 노력한다. 남의 눈에 띄는 옷을 입고 폼 좀 내보고자 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심성이라면 영국인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다. 어떤 상황 때문에 자신의 선택과는 달리 갑자기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됐을 때, 대개의 영국인은 지옥을 경험하는 듯이 느낄 것이다. 이제 쉽게 정리를 해보자. 축구는 단체운동이다. 단체운동은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동료들의 협조가 없으면 절대 살아날 수가 없다. 그래서 협동해야 하는 게 축구다. 특히 영국인들의 심성을 고려하면 영국 축구에서는 혼자 잘난 선수가 나오기 힘들다. 영국에서는 아무리 개인 재능이 뛰어난 선수라도 결국은 무리에 어울리는 선수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보면 야성이 무디어지고 둥글둥글한 선수가 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보자. 초창기 선수 시절 갖가지 말썽을 부리던 웨인 루니가 언제부턴가 신문 스포츠면 밖에서는 그의 이름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야생마가 얌전해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 그의 발이 녹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옛날의 그 날카로움은 사라진 듯하다. 또 잉글랜드에 두 방의 결정타를 매겨 탈락의 쓴맛을 안겨 준 EPL리버풀 소속 우루과이 국적의 루이스 수아레스의 예를 들어보자. 그가 다 커서 영국에 온 덕분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뛸 수 있지, 만일 어릴 때부터 영국에서 컸다면 결코 지금의 야성을 발휘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말도 있다. 수아레스의 야성과 맹목적인 열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영국인(리버풀 팬들과 남미 축구를 이해하는 중남미인들은 제외)들은 그를 증오하고 미워한다. 물론 수아레스의 야성은 도를 넘어 기행으로까지 치달았다. 남아공월드컵에서 작정을 하고 골 문에서 핸들링으로 공을 막아 결국 우루과이의 8강 진출을 결정적으로 도왔다. EPL 시합에서 상대방 선수 팔을 시합 중 물어뜯어 10게임 출전 정지를 받기도 한 그가 이번 월드컵에서도 승부와 관련 없이 다시 상대방 팔을 물었다. 인종차별 발언으로 8게임 정지와 4만파운드의 벌금을 물기도 했다. 그러고도 2013년 ‘올해 최고의 선수’로 선정됐다. 축구에 대한 열정과 야성이 기행으로 발휘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의 열정과 야성이 이런 대단한 성적을 내게 만든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시스템에 순종하고 규칙을 지키고 범위 안에서만 살게 교육받은 유전자가 피 안에 있는 영국인들에게서는 그런 번득이는 천재성을 이제 찾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영국 선수들은 룰이 지켜지는 영국 안에서, 항상 같이 뛰어 익숙한 팀과 시합할 때는 뛰어나도 낯설고 물선 밖으로 나가면 힘을 못 쓴다. 현재 뛰고 있는 영국 출신 선수들 중 해외에 나가서 성공한 선수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를 그렇게 해석한다. 영국 내에서 날리던 마이클 오언은 레알 마드리드에 가서 헤맸다. 그는 잇따른 부상 등으로 부진을 거듭하다 결국 영국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에 비해 영국 축구의 전설이자 축구선수로서 오빠부대를 처음으로 몰고 다닌 미남 데이비드 베컴은 크게 실패도 안 했지만 그렇다고 크게 성공한 것도 아니다. 영국에서는 단독 플레이를 한다고 퍼거슨 감독에게 신발로 맞는 굴욕을 당하고 해외로 방출되고 말 정도로 튀는 존재였지만, 결국 그도 영국인이었다. 천재적인 독자성과 실력으로 혼자 살아남아, 토박이 동료 선수들로 하여금 돕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야 하는 해외 클럽에서는 결국 그도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그에 비하면 8530만파운드라는 세계 최고 기록의 어마어마한 이적료로 레알 마드리드로 간 가레스 베일이 유일하게 현재 해외에서 성공하고 있는 케이스다. 그는 영국인이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오언, 베컴과는 달리 잉글리시가 아니라 웨일스인이다. 이런 점이 그가 살아남는 이유가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해외에 나가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토박이 선수들과 어울려 뛰어본 경험 없이 안방에서만 뛰어본 잉글리시 선수들. 이들로 대표팀을 만든 잉글랜드 팀이 각기 다른 나라 클럽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선수들로 구성된 다른 나라 팀들과 맞닥뜨리는 월드컵에 나가면 약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너무 견강부회의 결론인가? 이번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팀의 유난스러운 부진을 젊은 선수들의 국제경기 경험 부족으로 돌리는 보도도 있다. 그 근거로 본선 참가 선수들의 ‘국가대표로 뛴 국제시합 경력(Caps)’ 평균이 잉글랜드 팀이 26.5회로 본선 32개국 선수단 중 27번째로 적다는 점을 든다. 보스니아가 60회로 1등, 스페인이 58회로 2등, 우루과이가 48.5회로 3등이다. 물론 지난 월드컵 우승팀 스페인도 충격의 16강 탈락을 한 걸 보면 선수들의 경험이 많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잉글랜드 팀의 국제 경험 부족은 심각하다는 뜻이다. 참고로 국제시합 경력은 한국이 25.5회로 29등이고 프랑스가 30회이다. 한국을 대파한 알제리는 본선 진출 36개팀 중 15.1회로 국제시합 경험이 가장 적다. 세계 최고의 명선수들이 가득한 잉글랜드 팀의 성적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나쁜지 다른 통계를 한번 보자. 이번 브라질월드컵 본선에 나온 32개 팀의 지난 7개 월드컵 게임 성적을 보면 네덜란드가 6승1패·골득실차 9점·포인트 18점으로 1위, 아르헨티니가 5승1무1패·골득실차 5점·포인트 16점으로 2등, 독일이 5승2패·골득실차 11점·포인트 15점으로 3등, 스페인이 5승2패·골득실차 -1점·포인트 15점으로 4등이다. 그런데 잉글랜드는 1승3무3패·골득실차 -4점·포인트 6점으로 23등이다. 잉글랜드의 1승은 2010년 슬로베니아에 1 대 0으로 이긴 단 한 경기다. 한국은 잉글랜드 바로 위인 22등이다. 이렇게 보면 잉글랜드 팀의 본선 탈락도 사실 놀랄 일이 아니다.(참고로 알제리는 무승에 2무5패·골득실차 -7점·포인트 2점으로 31등이다.) 그래서인지 비참한 성적을 낸 로이 호지슨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을 욕하는 언론도 없고, 본인도 사임하겠다고 하지 않고, 축구협회도 ‘유로 2016’까지 대표팀을 맡아 달라고 하고 있다. 잉글랜드 팀 16강 진출 실패를 제일 슬퍼하는 곳이 영국 펍들과 주류 회사들이다. 월드컵 기간 영국 주류 회사(맥주+영국인들이 사이다라고 하는 사과주)의 판매고가 전주에 비해 무려 2770만파운드가 늘었다. 1000만L의 맥주와 250만L의 사이다가 더 팔렸다고 한다. 정말 술을 입에 달고 살았다는 뜻이다. 이제 술을 사다 놓고 잔을 기울이며 잉글랜드 축구팀의 경기를 사람들이 보지 않을 터이니 주류 회사나 펍들의 좋은 시절은 갔다. 잉글랜드의 조기탈락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여행업계다. 16강 진출이 좌절되자 그동안 부진했던 휴가 예약이 50%가량 늘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4년마다 한 번씩, 하필 여름휴가철에 열리는 월드컵 악몽에 시달리는 여행업계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잉글랜드 축구팀의 16강 진출 탈락을 기뻐하는 사람들은 여행업계 말고도 또 있다. 윔블던테니스대회 관련 인사들이다. 지난 6월 23일부터 시작된 윔블던테니스 경기는 만일 잉글랜드 축구팀이 16강에 올라 계속 시합을 했다면 세인들의 관심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다행히 잉글랜드가 빨리 떨어져 금년에는 영국인들이 윔블던테니스에 관심을 쏟을 수 있게 됐다. 작년 윔블던테니스 왕관을 ‘영국의 아들’ 앤디 머레이가 차지했는데 금년에도 이를 지킬 수 있도록 응원할 태세다. 영국이 종주국이라고 주장하는 또 하나의 운동인 테니스도 말이 종주국이지 그동안 영국인들은 안방에서 벌어지는 윔블던 시합에서 ‘손님’들끼리 경기하는 것만 지켜봐 왔다. 특히 윔블던 시합의 꽃인 남자단식 결승전에서 우승하는 영국 선수를 보기 위해서는 영국 테니스 전설 프레드 페리가 1934부터 1936년까지 내리 3년간 우승을 한 이후 무려 77년을 기다려야 했다. 앤디 머레이가 2013년 윔블던 우승을 한 순간 영국 전체가 환호를 하고 오랜 염원을 풀었다. 한 코미디언이 ‘잉글랜드가 우승할 수 있는 방법은?’이라는 퀴즈를 내서 사람들을 웃기고 있다. 정답은 ‘우루과이 국적의 루이스 수아레스를 귀화시키면 된다’와 ‘영국에서 월드컵을 개최한다’이다. 악동 수아레스가 국적을 바꿀 리는 만무하니 결국 영국이 우승할 방법은 자국 개최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요즘 선데이타임스가 몇 주째 카타르에서 열리는 2022 월드컵을 비판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카타르가 FIFA 위원들을 돈과 향응으로 매수해 월드컵 개최권을 땄다는 둥, 날씨가 너무 더워 경기가 불가능하다는 둥, 월드컵 경기장 건설 현장에 노예 노동력을 쓴다는 식으로 문제를 삼으며 시비를 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