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흥도 세월 제주도행 선박은 취소되고

[황순재]

금요일 태균이 퇴원하고 돌아와서 주말동안 잠시 쉬어보지도 못하고 이것저것 손대느라 분주했습니다. 뜨거워진 날씨에 농작물들은 어찌나 빠르게 결실을 맺는지 처치하기 바쁩니다. 제가 심은 것은 아니지만 감자도 어찌나 잘 되었는지 한참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주도가는 차에 한가득 실었습니다, 준이 완이 감자요리 아주 좋아합니다.

김치 담근 게 5통에 뿌리채 가져가는 파가 100리터 비닐봉투에 2포대, 고추 호박 오이가 한보따리, 이것저것 선생님들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들 죄다 집어넣다보니 카니발 차안이 운전석과 조수석 빼고는 짐으로 한 가득입니다. 태균이만 있으니 원래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어야 할 녀석들이 자꾸 생각납니다.

새벽 2시반 제주도행 예약해놓고 일요일 저녁 시간맞춰 완도항에 잘 도착하려고 열나게 운전해서 가다 휴게소에서 확인한 문자 하나, 새벽 2시반 제주행 선박은 불가피한 수리가 필요해 취소되었다는... 황당한 내용.

갑자기 생긴 시간공백에 당황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아침 일찍 도착해서 아이들 따뜻한 밥한끼 차려주려 했건만 점심 때나 되어야 당도할 듯 합니다. 그 동안 선생님들이 계속 보내준 사진들을 통해 확인은 했지만 엄마떨어진 병아리들처럼 시들시들하지는 않았는지... 잘 지냈다면 이제 독립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완이녀석 거의 다 잡았다 생각했던 옷벗기가 다시 나왔다하고, 틱과 편마비 증세로 잠시 오른쪽편 쓰기가 불편해보였던 준이녀석 다시 오른손으로 밥먹는 사진을 보니 그나마 안심됩니다. 다행히 근이녀석 공격성은 줄었으나 식판엎기는 아직도 나온다하니 이 어려운 과제를 어찌 해결해야 할 지 머리가 아득합니다.

애매한 시간을 메꾸기위해 고속도로 쉼터마다 들리며 쪽잠을 자고있습니다. 조수석 좌석에서 잠들기가 불편한지 영 잠 못드는 태균이는 그래도 표정은 일품입니다. 간밤에 열도 나고 뭔가 불편함 속에 지친 기색이 역력하더니 어제 오후부터 급 화색이 돕니다.

미국 종단횡단 여행 중에 있는 고교동기와 잠시 카톡대화를 나누니 미국 종단횡단하던 때가 떠오릅니다. 요금받는 구간이 극히 제한적인 미국 고속도로는 전국에 걸쳐 거의 무료인지라 적절한 거리단위로 여행객을 위한 모텔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밤길을 달리다 너무 피곤하면 싼 가격에 하룻밤 휴식이 가능했던 그 모텔들.

'노인은 위한 나라는 없다' '델마와 루이스'와 같은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그런 씬들, 딱 고속도로 주변 모텔들의 모습입니다. 낮은 층수, 객실수가 의외로 많고, 날밝고나면 건물뒷편에서 눈에 띄는 수영장, 초라한 조식 (시리얼에 빵, 커피나 쥬스가 다임), 그런 와중에 어떤 모텔들은 묘한 풍경지대에 놓여있어 한참 주변을 서성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분위기를 한국 고속도로에서 찾으면 안되겠지요. 이 시각 여행지에 있다면 휴대폰에다 호텔이라고 써서 엄마 눈 앞에다 연실 흔들어 댈텐데... 요즘은 엄마어깨 너머로 검색하는 방법을 터득했기에 아예 호텔을 검색해서 흔들어대기도 할텐데요, 아무 것도 없는 고속도로 상에서 태균이 화장실 계속 가겠다는 표시만 연실 해댑니다.

새벽 2시반을 건너뛰려니 참으로 시간때우기가 쉽지않은 한밤입니다.

[여에]

고생이 많으시네요. 지루한 시간을 견뎌내시고 지금쯤 승선하셔 배 안에 계시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