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7,火木連載/(아내의 팔뚝),수염,02회/김용원
그 뒤로 사발면 회원들은 붓글씨로부터 동양화, 한문에서 영어회화까지 익히게 되었고, 게이트볼까지 배우게 되었다. 군청에서 발행하는 주민홍보용 신문에서 군수의 인사말로 거론됐듯이 이제 사포면은 ‘사포면발전면학회 때문에 군내에서, 아니 전국에서 가장 진취적이고 모범적인 명실상부한 농촌마을’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승승장구 잘나가던 도중 어느 날 갑자기 대외적으로는 창피스럽기 짝이 없고 대내적으로는 곪아터진 고름냄새가 오장을 뒤집는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그럭저럭 넘어가면 될 텐데 중뿔난 소위 개혁을 부르짖는 젊은 반골파들이 역대 회장들의 비리를 파잦혀 밀폐용기에 잘 감춰져 있던 악취가 터져나왔던 것이다.
처음 그들의 반란 행위에 사발면 회원들 대부분은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지금껏 회장이 되려면 그만한 필요 경비가 소용됐고, 일단 회장이 되면 정당하지는 못하지만 회장으로 당선되기까지의 경비는 필수고, 재산 증식에 다소의 도움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그건 그제껏 내려온 관례의 하나였지 않는가. 그런 봐줄 만하고 또 그렇게 해왔던 사실을 공연히 드러내 이슈화하는 바람에 역대 회장들의 얼굴에 똥칠을 한다는 것은 아무리 비단금에 수수자, 금수강산(錦繡江山)이 날짐승금에 짐승수자 금수강산(禽獸江山)이 되었다손 치더라도 이건 사람의 탈을 쓰고 할 짓이 아니라고 성토했다. 따라서 제 아비의 연배를 욕먹게 하는 것은 곧 자신의 아비를 욕되게 하는 짓이요, 나이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전직 회장을 놓고 모욕을 주는 것은 오륜지도 자체를 깔아뭉개는 행위였다.
(다음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