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 너무 늦지 않아 다행입니다.
18년 전, 의사국가고시가 끝난 후 인턴으로 들어가기 전 잠시 성가복지병원에서 환자를 돌본 적이 있었다. 의사면허증도 없는 풋내기 학생시절이라 모든 경험이 새롭고 의욕에 가득 찼지만, 사실 공백을 채우기 위해 잠시 지나가는 곳이라 생각했을 뿐, 그 두 달의 시간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성가복지병원은 무료자선병원으로 가족이 없거나 극빈층의 사람들이 치료를 받는 곳이자,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학생의 신분이 아닌 진정한 의사로서 다시 한 번 일하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했던 일은 통증이 심한 환자에게 진통제를 놓아주는 일이었는데, 그 중 기억에 남는 한 남자 환자가 있다. 그는 당시 마흔세 살로 피부암이 전신에 퍼져 있었고 통증이 심해 하루에도 3,4차례 진통제를 맞지 않으면 잠을 못 자는 상황이었다. 자연스레 우리는 자주 만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친해지게 되었다.
그는 유쾌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몸은 암세포가 지배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그의 성격까지 지배하지는 못했다. 나는 무료한 병원생활 속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그를 찾아 농담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거웠다. 그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나에게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그의 겉모습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아픈 사연들이었지만, 그는 마치 무협지의 영웅담을 들려주듯 구수한 입담으로 인생사를 풀어놓았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가출을 했다고 한다.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도 잘하고 부모님 말씀도 잘 듣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런 그가 고등학교 진학 후 성적이 떨어지면서 부모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자신감을 잃었다. 급기야 자괴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른들의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일삼았고, 같은 반 친구의 꼬임으로 폭력 모임에도 가입하면서 가출까지 하게 된 것이다.
성인이 된 후에도 그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경찰서와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듯 오가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설득도 하고 회유도 했지만, 그의 표현에 의하면 그가 부모님을 너무 질리게 했는지 어느 시기가 지나면서 더는 관여하지 않으셨다. 그 또한 자신의 생활에 빠져 가족들과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고 살아온 터라 소식은 자연스럽게 끊겼다.
2년 전 교도소에서 출소한 그는 서울역과 용산역에서 노숙생활을 전전했다. 그러다 단순 피부질환인 줄 알았던 염증 부위가 점점 커지자 약을 얻어 바르려다 우연히 피부암이 발견됐고, 두 달 전 이 병원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전혀 그런 사실을 몰랐고 상상할 수도 없었다. '폭력 전과자'라는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예의 바른 행동들이 언제나 그의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하하"
그는 갑자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혹시 내 마음을 들킨 건 아닌가 싶어 당황스러웠다. "놀랐어요?“
“네?”
"아, 이걸 어쩌나. 그래도 선생님께는 멋진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는데 못난 과거가 들통 났으니 말입니다. " "아니, 아니요. 다 지나간 일인데요, 뭘 .“
"저 같은 놈의 얘기를 이렇게 진지하게 들어준 사람은 여태 없었어요. 이렇게 털어놓고 나니 가슴이 후련하네요. 고맙습니다. "
"앞으로도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시면 언제든지 하세요.“
그는 진짜 그래도 되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진짜요, 정말이예요.“
그는 다시 한 번 호탕한 웃음소리로 병실을 가득 채웠다. 한참 어린 풋내기 의사가 당황하는 모습이 그로서는 귀엽게 보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준 것만으로도 그에게 도움이 된 것 같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머리를 긁적이고 있던 나에게 그는 다시 한마디 던졌다.
"우리 예비 의사선생님은 정말 훌륭한 의사가 될 겁니다. 어디를 가시든지 지금처럼, 저 같은 환자들의 얘기도 들어줄 수 있죠?“
"그럼요.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
속내를 보여줄 수는 없었지만 그의 말에 진심으로 대답했고, 그는 눈빛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지금도 환자들을 대할 때면 이따금 그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날 그의 한마디는 나에게 의사가 갖춰야 할 '사명감'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들어 준 계기가 되었다. "오늘은 유난히 통증이 더 심한 것 같습니다. "
웬만해선 얼굴을 찡그리지 않던 그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서둘러 모르핀 주사를 놓았다. 그는 그제야 마른 입술에 물 한 모금을 적시며 안정을 찾았다.
"우리 예비 의사선생님, 제가부탁이 하나있습니다. "
"예, 말씀해 보세요."
"온종일 누워 있자니 몸도 쑤시고 바깥이 보고 싶네요. 시간 괜찮으시면 휠체어 좀 태워 주실 수 있을까요?“
"얼마든지요!“ 성가복지병원은 주변을 둘러 보아도 마땅히 산책할 곳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1층 로비로 내려갔다. 늘 별 생각없이 지나쳤던 이곳을 그는 마치 구경거리가 많은 놀이동산에 소풍이라도 나온 것처럼 설레는 모습으로 둘러보고 있었다. 현관문을통해 보이는 바깥을 바라보며 그는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입니까?“
잠시 머뭇거렸다. 가장 행복하였던 때라‥‥‥‥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질문조차 너무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저는 부모님과 함께 보낸 어린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집은 단독주택이었는데 넓은 정원도 있었고 마당에서는 누렁이도 키웠지요. 시간이 날 때마다 꽃밭에 물도 주고, 누렁이랑 이리저리 얼마나 뛰놀았는지. 내 방에는 만화책도 많아서 친구들이 자주 놀러 왔거든요. 어머니는 친구들이 오면 고구마나 감자 같은걸 자주 쪄서 내 주시곤 했는데, 그래서 친구놈들이 우리 집을 더 좋아했어요."
그는 마치 동화책을 읽어주듯 평온한 표정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있었다.
"한 번은 부모님과 함께 시장에 갔어요. 지금이야 바나나가 흔하지만, 우리 어릴 땐 구경하기도 어려웠거든요. 그런데 그날은 웬일인지 한 다발을 몽땅 사주시는 거예요. 정말 정신없이 먹었어요. 결국 그날 밤새도록 설사 때문에 얼마나 고생 했는지‥‥‥‥“
그는 크득크득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요, 며칠을 더 설사해도 좋으니까 단 하루라도 그 시절로 돌아가 봤으면 좋겠어요. 이상하게도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기분이 참 좋아진다니까요.“
"부모님이 보고 싶지는 않으세요?“
"에이, 예비 의사선생님도. 당연히 보고 싶죠.“
장난스럽게 대답하는 그의 말끝에서는 그간 억누르고 살았을 지난날에 대한 아쉬움과 간절함이 느껴졌다.
"부모님은 아직 살아 계신가요?“
"잘 모르겠네요. 저 진짜불효자식이죠?“
"지금이라도 여기저기 수소문해 보면 알아볼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겠죠. 그런데 돌아가셨을까 봐 겁이 나요. 만약 살아계신다 해도 어떻게 제가 그 앞에 나타나요. 평생을 저 때문에 애태우며 사셨을 텐데 아들이 암으로 죽어간다는 걸 아시면 얼마나 기가 막히고 속상하시겠어요. 이제야 잊고 편안해지셨을 텐데 차라리 찾지 않는 게 그나마 못난 자식이 할 수 있는 마지막 효도죠.“
짐작하건대 그의 남은 날은 고작 2,3개월이었다. 그의 몸에서는 하루하루 나쁜 증상들이 늘어갔다. 그럴수록 내 마음도 초조해졌다. 한 가지 고민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죽기 전에 부모님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 옳을지, 아니면 그의 말대로 알리지 않는 것이 좋을지는 나에게 어려운 숙제였다. 그는 여전히 부모님 찾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임종이 가까워지면서 병원은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가족이나 보호자와 장례절차에 대한 상의를하는 것이 병원의 절차였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우리는 그의 가족을 찾기로 하고, 몇 날 며칠을 수소문한 끝에 그의 고향 집과 연락이 닿았다. 다행히 부모님은 두 분모두 살아 계셨다. 우리는 나이 드신 부모님께서 놀라지 않으시도록 아들의 상황을 차분히 설명해 드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수십 년 만에 말기 암환자로 만나게 될 자식의 사정을 들은부모가 어찌 그럴 수 있을까. 부모님을 모시고 그가 있는 병실까지 가는 길에 심하게 요동치는 두 분의 심장 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부모님의 눈빛엔 긴장과 두려움이 역력했고, 나 또한 복잡한 감정들을 다잡기 위해 애쓰며 바삐 걸어갔다. 병실 문을 여는 순간, 휑한 침대에 홀로 누워 있는 아들을 발견한 부모님은 잠시 멈칫하셨다. 아들도 많이 놀란 것 같았다. 그것도 잠시. 부모님과 그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부둥켜 안고 울었다. 그는 눈물을 훔치며 부모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어머니 정말 죄송합니다. 이 불효자식을 용서하세요. 제가 좀 더 일찍 뉘우쳤어야 했는데, 정말 죄송해요."
부모님은 아들을 일으켜 세웠다. 아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이미 지난날 속 썩었던 일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니다, 아니다. 다 우리 잘못이다. 너도 힘들었을 텐데 그걸 모르고 자식새끼 원망을 쌓아두고 살았구나. 어이구, 내 새끼. 이렇게 아픈 줄도 모르고.”
부모님은 아프고 초라한 행색의 아들을 지켜보면서도 질책도 원망도 없으셨다. 오히려 아들이 아픈 것이 자신들의 탓인 것처럼 죄스러워하셨다. 그래도 이제라도 만날 수 있어 다행이지 않느냐는 말씀도 연거푸 하셨다. 나이 든 아들의 몸 여기저기를 연신 쓰다듬으며 눈물 흘리는 부모의 모습에 지켜보던 사람들도 함께 뭉클해졌다. 늙은 부모님과 아픈 아들의 동거는 행복해 보였다. 항상 홀로 병상을 지키던 그의 주변엔 어느새 따뜻한 가족의 온기가 느껴졌고,
부모와 함께하는 작은 공간은 이 세상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특별하고 아름다운 공간이 되었다.
"제가 마지막을 보내기에 이보다 완벽한 곳은 없을 거예요.“
그에게 행복은 크거나 화려한 것이 아니었다. 부모님과 같이 밥을 먹는 일, 병원 로비를 걸으며 서로 농담을 주고받는 것‥‥‥‥ 이러한 사소한 것들이 그에게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적 같은 순간들이었다.
너무나 보고 팠던 부모님이어서 일까. 그는 자는 시간도 아까운 듯 잠든 부모님의 얼굴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그 눈길을 쉽게 거두지 못하고 아침을 맞이한 때도 많았다. 하루하루 그가 느끼는 진통 횟수는 늘어갔으나, 이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그는 큰 힘을 얻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웬일로 병원 로비에 홀로 앉아 있는 그가 보였다.
"좋아 보이시네요. 이 병원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세요.“
"그런가요? 하하하. 다 선생님 덕분이죠.“
그는 쑥스러운 듯 보였지만 그렇다고 감정을 숨기려 하지는 않았다.
"정말 고마워요, 선생님. 만약 제 고집대로 부모님을 찾지 않았다면 죽어서도 눈을 못 감았을 겁니다. "
"그럼요, 정말 잘 된 일입니다. "
"그런데 부모님이 많이 늙으셨어요. 주름살도 너무 깊게 패셨고, 힘도 없어 보이시네요. 다 저 때문이죠. 이제야 부모님 늙으시고 약해지신 게 눈에 보이네요. 조금 더 일찍 철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
그의 씁쓸한 미소가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그래도 너무 늦지 않아 다행입니다. 늙은 부모님 얼굴이라도 뵙고 떠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며칠 후 아버지는 아들에게 조금 더 힘을 내라고 당부하시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리셨다. 무덤덤한 표정이었지만 돌아서는 아버지의 어깨는 작게 흔들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들의 눈에서도 끝내 굵은 눈물이 떨어졌다. 그는 나지막이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아버지, 아버지‥‥‥‥“
차마 소리를 내지는 못했지만 아버지를 부르며 엉엉 울고 싶었을 것이다. 그 느낌이 너무 생생하게 남아 있는 탓일까? 지금도 그날 그들 부자의 마지막 이별 장면을 떠올릴 때면 저절로 코끝이 찡해온다.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가신 후, 그의 상태는 급속도로 나빠져 갔다. 그런 아들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한숨과 눈물도 하루하루 더해갔다. 조금이라도 통증이 가라앉기를 바라며 아들의 온몸을 주무르고, 혹시라도 잠깐 사이 어찌 될까 싶어 잠시도 머리맡을 비우지 못하고 지키던 노모의 가슴속은 점점 타들어만 갔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노력과 바람에도 그는 의식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이따금 겨우 정신이 들 때면 마른 입술을 움직이려 애썼다. “어, 엄마. 미안해. 내가 미안해. 태어나서 미안하고, 머, 먼저 가서 미안하고, 다 미안해.”
“내 새끼, 힘드니깐 인제 그만 해. 응? 그러다 기운 다 빠져. 그 마음 다 아니깐 그만 해도 돼. 불쌍한 내 새끼‥‥‥‥”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미안하단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그의 몸은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제야 아들의 죽음이 현실로 느껴지는지 노모는 초조해 보였다. 혹시나 듣고 있을지도 모를 아들의 귀에 대고 아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자신이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이야기해주었다.
“귀중한 내 새끼, 사랑하는 내 아들. 다음 생에도 나는 네가 내 아들이었음 좋겠다. 그래 줄 수 있지?그래야 이번 생에 못해준 거 이 어미가 다 갚지 않겠니. 귀중한 내 새끼, 사랑하는 내 아들‥‥‥‥”
대답은 없었지만 듣고 있는 것처럼 그의 눈은 이슬로 반짝였고, 들리지는 않았지만 적막이 감돌던 병실은 한마디의 메아리가 조용히 울려 퍼지는 듯했다.
'엄마......“
아들은 길고 힘들었던 사투 끝에 어머니의 품에서 생을 마감했다. 허망하게 가버린 가엾은 아들을 바라보며, 노모는 하염없는 눈물과 통곡으로 한참을 보냈다. 단 며칠의 짧았던 봄날은 그렇게 끝났다.
신이 인간의 언어를 만들 때 아내를 잃은 남편은 '홀아비'라 정했고, 남편을 잃은 아내는 '과부'라 정했으며, 부모를 잃은 자식은 '고아'라고 정했으나, 자식을 잃은 부모는 그 아픔이 너무 커서 부를 마땅한 호칭이 없었다고 한다. 자식을 잃은 아픔을 칼로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과 비교할 수 있을까. 평생 자식 노릇도 제대로 못한 못난 아들이었지만, 그런 아들의 마지막 죽음 앞에서 절규하며 흘린 노모의 눈물은 세상 모든 부모님의 마음일 것이다. 병원 로비에서 그가 평온한 얼굴로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래도 너무 늦지 않아 다행입니다. 늙은 부모님 얼굴이라도 뵙고 떠날 수 있으니 말입니다. "
염창환, 한국인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17가지, 21세기북스,2010,pp70-78